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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한 인환씨를 만나러

너무도 허전한 '다녀오기' 카테고리를 채워볼 요량으로 퍼온다.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사정상 이 카테고리를 없앨까도 생각해봤지만 설마 마냥 이렇게 살기야 하겠냐는 희망으로 살려둔다.

 

다소 우발적으로 전남 곡성을 가게 됐다.

그러다 보니 열차표도 예매를 못했고, 토요일인지라 아침 8시 기차밖에 없었다.

인환씨는 5시정도 되야 일이 끝나는데 난 4시간 정도 먼저 곡성에 도착했다.

일단 역근처에 있는 식당을 찾았는데 두 군데밖에 없었다.

그 중 하나는 중국집. 예까지 와서 중국집을 가긴 싫었다.

백반을 시켰는데 12가지 반찬에 동태찌게까지 나왔다.

역시 전라도다.

전라도 음식치고는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지만 다양한 반찬에 만족스런 점심이었다.

기차역에 있는 지도를 보니 5Km 떨어진 곳에 도림사가 있다고 한다.

걷기에도 만만하고, 시간 때우기에도 만만하다.

도림사를 찾아가다 길을 물으니 아저씨가 길을 가르쳐 주면서 하는 말.

"걸어가려고요? 솔찬히 먼데..."

 

 

솔찬히 걸어서 도림사에 도착했다.

배경에 묻혀서 처음엔 이 녀석들을 보지 못했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니까 긴장해서 그렇지 실제 모습은 너무나 귀엽다.

하는 짓도 그렇고.

털색깔이 너무 특이해서 마치 들개 같았다.

나하고 잘 놀던 녀석이 다른 등산객들이 지나가자 짖어대기 시작했다.



인환씨가 두 개에 5천원 주고 산 드럼통으로 만든 난로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내가 간 그 날에야 시운전에 성공했다.

난로옆에 있는 녀석은 서울에서 같이 내려온 누이.

 

원래 이름은 '루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종자도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데 이름까지 '루이'라면

자칫 왕따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장 근접한 이름으로 바꿨다고 한다.

'누이'로. 성까지 같이 부르면 '오누이'

 

나를 가슴 아프게 만든 녀석이다.

진돌이의 공격으로 한쪽 눈이 빠졌다.

 

진돗개를 일본으로 데려가 종자개량을 했다는 야키다. (맞나?)

 

누이와 진돌이는 정말 친구같았다.

진돌이가 너무 사고를 많이쳐서 문제였지만.

기르던 기러기도 물어 죽이고,

좋다고 내게 달려들어 머리로 내 턱을 쳐받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마당 너른 집. 먹고 사는 걸 떠나서 그냥 바라보기엔 너무나 좋아보였다.

 

드디어 보호대를 풀었다. 그동안 제대로 긁지 못해, 한참을 긁고 문지르고 난리였다.

8살이나 먹었는데, 재롱떠는 것이 너무나 귀여운 녀석이다.

 

산에서 따온 이름모를 열매로 염색을 해보았다.

 

인환씨 밭 바로 앞에 있는 저수지.

지난 여름에 여기서 수영을 했다고 한다.

물론 수영금지라고 써있지만.

 

요만큼이 인환씨가 뭘 심어놓은 밭이고,

이만큼이 앞으로 풀뽑고 돌 골라내고 해서 밭으로 일궈야 할 곳이다.

실제로 보면 무지하게 넓다.

 

수확의 기쁨?

배추씨를 심고 비닐을 덮어놨는데 한달만에 와보니 많이 자라 있었다.

이건 마늘. 따뜻하라고 겨를 덮어놨다.

 

그리고 섬진강으로 갔다.

사실 사진 찍으러 간 것도 아니었고, 이런 얘기를 쓰려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귀농을 선택한 인환씨의 얘기도 들어보고, 그들이 사는 모습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여기에 쓸까 했다.

많은 얘기를 듣고, 많은 걸 느끼고 오긴 했는데, 정리가 안된다.

뭐, 사실 안될 것도 없긴하다. 그런데 별로 쓸 자신이 없다.

쓰는 게 잘하는 짓인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그들이 예쁘게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쓸 수도 있을 것이고,

그들이 겪고 있는 고생에 대해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 하룻밤 자고 오면서 보고 느낀 것에 대해 주절대는 것이

너무 같잖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다.

초여름쯤에 다시 가기로 했다.

 

 


2004년 초에 다녀온 것이다.

아버지께서 병이 나는 바람에, 초여름에 다시 가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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