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레투]현대자동차 생산 모듈화 현황과 작업장 변화

현대자동차를 해부한다 ②
현대자동차 생산 모듈화 현황과 작업장 변화
- 노조 대응전략의 새로운 모색을 위하여 -
 
노사정 모두에게 현대자동차는 '공룡'이다. 현대자동차를 보면 자본의 운동, 그리고 노동의 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모든 상황이 드러난다. 그 '공룡'을 <비정규노동> 9월호(한국비정규노동센터 발행·월간)가 해부했다. <매일노동뉴스>가 <비정규노동> 9월호 '특집 : 현대자동차를 해부한다'에 실린 세 글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귀중한 원고를 전재하는 것을 허락해주신 필자 여러분과 <비정규노동>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편집자 주>


1. 현대자동차 모듈 도입 현황과 양상

1) 모듈화의 최근 추세

모듈 방식의 전면화

한국 완성차 생산 공장에 모듈화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현대자동차 울산 3공장에서 아반테 XD가 생산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사측에서는 아반테 XD 생산을 준비하는 동시에 모듈 라인을 5공장 옆 현대모비스 울산공장에 깔았다. 현대차 노조 집행부와 대의원회, 그리고 현장 조합원들은 모비스에 깔린 라인과 이미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모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모듈화는 현대자동차 모든 공장을 휩쓸었다. XD 이후 투입된 울산과 아산공장의 모든 신차종에는 모듈화가 적용되었다. TB(클릭), MC, JM(투싼), CM, HP(테라칸), NF(소나타 신형), TG(그랜져 신형) 등에 모듈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그리고 승용차와 RV 부문에 집중되었던 현대자동차 모듈화는 이제 상용차 부문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주공장에서 생산하는 버스와 트럭 부문에도 모듈 시스템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2005년 올 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듈 시스템 도입이 뒤쳐졌던 기아자동차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모듈화가 급진전되고 있다. 화성공장의 주력 차종인 옵티마와 쏘렌토에 모듈화가 본격 도입되었다. 특히 쏘렌토의 경우 롤링샤시모듈 형태가 최초로 도입되기도 했다. 화성 공장에 이어 광주공장에도 모듈화가 도입되었는데, KM(스포티지)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소하리 공장의 신차 JB(프라이드)와 VQ(그랜드 카니발)에도 모듈화가 대폭 도입되었다.

현대자동차그룹으로 한정되었던 자동차 모듈 시스템은 2005년 현재 한국 내 완성차 생산업체 전반적인 추세가 되고 있다. 얼마 전 GM대우자동차에서도 모듈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이미 몇 해 전부터 모듈화를 위한 기반을 구축해오고 있었다. 르노삼성 역시 부산을 거점을 한 모듈 부품조달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EF와 NF 모듈 비교
모듈명 EF 소나타 NF 소나타
프론트 엔드 모듈 쿨링 서브 +후드렛치 & 혼, P/STR'G 쿨러 튜브, 백빔, 헤드램프
콕핏모듈 크래쉬 패드 +와이어링, 카울바, 히터, 오디오, 클러스터, 스티어링 칼럼, 센터 페시아, 클로브 박스
도아 실드 없음 도아 랫치, 레귤레이터, 인사이드 핸들, 도어 스피커,
아웃 핸들 베이스
서스펜션 프론트 프론트 서스펜션 +액슬 리어
리어 +액슬, 스트러트 +액슬, 스트러트
주) 실제 생산에 투입된 모듈 형태는 이와 약간 차이가 날 수 있음.

단순 조립에서 시스템 구현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차, 기아차와 같은 완성차 업체와 더불어 현대모비스를 축으로 하여 자동차 주요 위치에 곧바로 장착될 수 있는 고도로 완성된 모듈 시스템을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단순히 단품들을 조립하는 단계를 넘어 각 부품의 기능과 시스템을 통합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와 함께 중량 및 부품숫자의 감소, 조립의 신속성, 효율적 재고관리, 비용 절감 등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와 현대모비스 기술연구소의 기능과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기술연구소와 카트로닉스 연구소를 각각 가동하며 모든 섀시와 칵핏 모듈의 설계, 개발, 제조, 조립을 책임지고 있으며, 모듈의 시스템화를 고도화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기술연구소는 모듈 사업을 책임지면서 안전성, 편의성, 연비개선, 환경친화, 주행성능 그리고 승객안전을 위한 자동차 제어시스템을 마련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모듈 사업뿐만 아니라 최첨단의 전자유압제동장치인 ESP(Electronic Stability Program)를 비롯한 ABS(Antilock Brake System), TCS(Traction Control System), 신기술 Advanced Airbag System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카트로닉스 연구소에서는 각종 미디어(CD, MP3 등)를 재생하는 신기술 적용 오디오 및 시각적 정보(TV, Video, DVD)를 재생하는 AV 시스템, GPS를 통해 차량 위치 추적, 경로 탐색 및 안내, POI(Point Of Interest) 등의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차량 항법 장치, 에어백과 ABS 등 각종 Body 및 Chassis 시스템을 제어하는 전자 제어 장치, 차량 전장 시스템 통합을 위한 차량 네트워크 시스템, 무선 인터넷 및 모바일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텔레매틱스 시스템, 무인 자동차 시대를 여는 첨단 차량 시스템(ASV) 및 42V 시스템 전장품 등에 대한 연구와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2) 현대자동차 모듈화 도입 방식과 특징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모듈 공급체제 구축

현대자동차그룹의 모듈화 도입 과정은 곧 현대모비스의 성장과정이라고 할 만하다. 그룹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현대모비스는 지금 현대자동차의 울산 및 아산공장에서 생산되는 전 차종 및 쏘렌토를 위시한 기아자동차의 차종 대부분에 샤시모듈을 공급하고 있다. 또한 ‘쏘렌토’, ‘오피러스’ 및 ‘스포티지’을 위시한 기아자동차의 전 차종과 현대자동차의 울산공장 생산모델을 비롯 13개 차종에 대해 콕핏모듈을 공급 중이다.

또한 현대모비스는 신규 모듈사업부문인 프론트엔드모듈을 현대자동차의 신형 NF쏘나타에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임러크라이슬러로부터 CCM(Complete Chassis Module)을 수주하여 현지에 모듈 조립공장을 건설하여, '06년 하반기부터 생산라인에 직접 모듈을 공급할 예정이기도 하다.

 이로써 현대모비스는 명실상부하게 모듈업체로서의 위상을 완벽히 구축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제동전문 부품 제조업체인 카스코를 그룹사로 편입하여 전문 기술력과 제조부문을 확충하였다. 그리고 R&D 부문을 강화하여 해외영업망을 통해 적극적인 수출 협력을 추진할 계획을 밝히고 있다. 현대모비스 05년 반기보고서(05. 6.)

현대자동차 그룹은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모듈 공급체제를 구축함과 동시에 위아, 한국프랜지, 현대파워텍 등 별도의 부품회사들을 거느리고 각각의 영역을 구축하는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지멘스, ZF, 비스테온 등 세계 부품업체들과 다양한 형태의 협력관계를 맺어나가고 있다.

현대자동차 그룹 차원에서 부품공용화와 모듈화에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함과 동시에 ‘연구 - 부품 - 조립’의 총체적 구조를 형성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부품 부문의 대형화, 공용화, 모듈화에 대응하는 체제를 갖추는 것임과 동시에 현대자동차 그룹 차원에서 국내 독점 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현황(현대자동차 홈페이지)
자동차
제조, 판매
자동차부품
제조, 판매
철강, 금속
제조, 판매
금융업 레저·스포츠,
운송· 건설업
기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다이모스
케피코
현대파워텍
위아
본텍
위스코
아주금속공업
에코플라스틱
IHL
현대하이스코
INI스틸
B&G스틸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해비치리조트
글로비스
기아타이거즈
엠코
에이랜드
로템
에코에너지
NGB
오토에버시스템


신차종 투입 시 고용 유지에 바탕을 둔 노동자 동의 확보

그러나 현대자동차에서 자본이 구상하는 모듈화를 실제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 현대자동차 노사는 신기술, 신기계 도입 시 노사가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단체협약을 맺고 있다.

경총식 관점으로 본다면 이런 단체협약 조항은 자본이 도입·적용하고자 하는 모듈화 계획에 대한 족쇄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현대자동차 자본이 구상한 모듈화는 노사간 심의·의결을 통해서 도입되고 있다. 노동조합과의 교섭이나 공장별 대의원회와의 노사협의를 통해 모듈화를 도입하는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 31조(신기술 도입 및 공장이전, 기업양수, 양도)
1. 회사는 신기계, 기술의 도입, 신차종 개발(F/L 포함) 및 차종투입, 작업공정의 개선, 경영상 또는 기술상의 사정으로 인한 인력의 전환배치, 재훈련 및 제반사항은 계획수립 즉시 조합에 통보하고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 의결한다. 단, 신차종 개발의 경우 모델 승인 즉시 조합에 통보한다.


2. 회사는 공장별 생산차종 중 부득이 차종이관이 필요할 시 90일전 조합에 통보하고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 의결한다.


3. 회사는 사업의 확장, 합병, 공장이전, 일부 사업부의 분리(광역딜러, 분사), 양도 등 조합원의 고용에 영향을 끼치는 경영상 중요한 사항은 90일전 조합에 통보하고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 의결한다.


4. 회사는 신차종 양산 M/H 및 UPH 조정시 조합과 사전 협의하여 결정하되, 일방적으로 시행치 않으며, 충분한 안전조치, 시설 및 환경개선, 인원배치 등을 통하여 시행한다.


5. 회사는 신차종(F/L, M/Y 포함)의 연구개발기간 및 프로세스 변경에 따른 업무량 조정에 대하여 분기별 1회 조합에 설명하여야 하며, 조합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다.

현대자동차 자본은 ‘새로운 차종’을 개발할 당시부터 아예 모듈화를 전제로 신차를 설계한다. 부품발주가 공식화되는 모델 고정 이전 단계부터 이미 주요 부품사를 참여시켜 가능한 모듈 개발을 실질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반영하여 신차의 설계가 이루어진다. 현대자본은 이렇듯 ‘모듈 설계’를 반영한 ‘신차종’을 가지고 노조 및 공장별 대의원회와 교섭에 나선다.

동시에 현대자동차 자본은 현장 노동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고용’을 보장해주고 있다. 물론 모듈 시스템을 적용하기 위해 전환배치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해당 공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유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일부 현장조직이나 소위원들이 ‘모듈화는 고용 불안을 야기한다’고 선전을 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자본은 고용 유지를 ‘확약’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자본은 ‘신차종’ 투입과 ‘고용 안정’을 내세우며 모듈화에 대한 노사공동위원회의 심의·의결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집행부와 대의원 체면을 고려하는 협상 전개

이처럼 현대자동차 자본은 ‘협상을 통한 변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현대자동차 자본의 협상 방식을 보도록 하자. 우선 현대자동차 자본은 최대한 많은 수의 모듈 도입 계획을 제시하고 노조 집행부 및 대의원회와 협상하는 방식을 택한다. 당연히 협상 과정에서 노조 집행부와 공장별 대의원회의 요구를 수렴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진다.

모듈 도입 항목 수만 놓고 본다면 애초에 자본이 제시했던 모듈 항목은 대폭 축소된다. 하지만 사실 현대자동차 자본은 거의 손해 볼 일이 없다. 모듈 협상과정에서 현대자동차 자본은 ‘현대모비스’가 담당하고 있는 모듈 항목만큼은 모듈화하는 성과를 얻기 때문이다. 어차피 ‘현대모비스’가 아닌 다른 부품업체로부터 제공받아야 하는 모듈의 경우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굳이 모듈화해야 할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자본으로서는 현대모비스가 생산가능한 콕핏모듈, 샤시모듈, 프론트엔드모듈의 도입에 합의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대자동차 자본이 노조 집행부와 공장별 대의원회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자신의 실속을 챙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업장에 대한 통제 메커니즘 확보

현대자동차 자본은 모듈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작업장 체제 및 라인을 재편하는 계획을 동시에 제출한다. 모듈 공급 시스템에 맞추어 라인 구성이 바뀔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자본은 이 과정에서 작업장에 대한 자신의 헤게모니를 관철하려 하고 있다. 자본은 작업장 통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상당히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지면 관계상 모두 소개하지 못하지만 부품고를 없애고 직서열을 확대하는 것, 생산기술 파트와 생산관리 파트를 강화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선 한 라인을 트림 라인과 샤시 라인, 그리고 파이널 라인으로 구분하고 그렇게 구분된 각 부분을 버퍼나 새로운 설비를 도입하여 연결한다. 이렇게 되면 세 부분 중에서 어느 한 부분에서 작업이 중단되더라도 다른 부분의 작업은 유지될 수 있다. 울산 1공장에서 TB(클릭) 생산 관련 합리화 공사를 진행할 때, 현대자동차 자본은 이 시간을 최대 30분 정도라고 했다. 또한 모듈화를 도입하면서 라인 중간중간에 로봇을 새로 투입하는 한편 자동화를 도입하여 무인공정을 라인 중간중간에 배치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대자동차 자본은 대의원과 소위원 등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작업장 통제 기능을 회복하려 하고 있으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 다음 자본은 재구축된 라인 설비를 최대한 가동할 수 있는 UPH 조정을 요구한다. 편성효율은 95%를 넘기 일쑤이고, 생산량은 설비능력의 최대 가동을 전제로 설정되고 있다. 이렇게 UPH를 올려야 모듈화로 인해 축소된 공정으로 인해 직무가 상실된 ‘여유인원’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간접부서에서 일하던 작업자들을 직접 생산라인으로 ‘전환배치’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전환배치’는 UPH-UP을 하면서도 M/H는 그대로 유지하거나 최소한만 높이는 효과를 낳는다. 신규채용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최소한의 인원만 해도 되는 것이다. 당연히 노동자 개인당 생산량, 즉 노동생산성은 높아진다.

2. 노동조합 모듈화 대응 진단과 대책

2004년 이후 현대자동차 모듈화는 울산 5공장, 1공장, 2공장과 아산공장에서 연이어 진행되었다. 모두가 신차 혹은 신모델이 투입되면서 모듈 문제가 다루어졌다. 공장별 대의원회가 주축이 된 노동자 교섭 주체들과 그 대표자들은 길게는 6개월 이상의 시간을 소요하며 협상을 벌였기도 했다. 때로는 해당 공장에서 협의를 결론짓지 못하여 본조 집행부로 넘겨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떤 형식의 교섭이 이루어졌건 간에 대부분의 모듈 교섭은 자본이 최초에 제시한 모듈 항목을 줄이기는 하지만 현대모비스와 연관된 모듈화를 철회하지도 사내모듈로 확보하지도 못했다. 개별 부품에 몇 가지 부장품을 부착하는 공정이나 두 개 이상의 단품을 결착하는 공정을 별도의 서브 공정으로 확보하기도 했지만 실제적으로 자본의 모듈화 추진 계획에 의미 있는 타격을 입혔다고 볼 수는 없다. 헤드라이닝과 같이 현대모비스가 현재 추진하고 있지 않은 모듈 단위 자동차 내부 천장 부분에 부착되는 램프와 헤드라이닝, 각종 전선을 일체화하는 것을 ‘roof 모듈’ 혹은 ‘헤드라이닝 모듈’이라고 한다.

를 사내화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역시 현대자동차 그룹 혹은 자본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량 확보를 위한 ‘경쟁’이 아닌 본조 차원의 교섭 필요

모듈화 반대를 외치며 ‘사내모듈’을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진 현대자동차 노조나 공장별 대의원회가 결과적으로 모듈 품목 수를 조정하는데 머무르는 이유는 무엇일가? 이는 앞에서도 지적했다시피 ‘정규직 조합원의 고용 안정’ 문제가 노조 집행부나 공장별 대의원회의 현실적인 목표로 전제되어 있는 탓이다.

98년 경기침체로 정리해고를 맞본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잘 나가는 차종’을 생산하고픈 열망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팔리지 않는 차종’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알고 있는 현장 노동자들로선 모듈화에 숨어 있는 자본의 논리 이전에 자신이 일할 수 있는 공장이 중요하고, 그 공장을 유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차종’을 확보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각 공장별로 생산라인이 두 개씩 있고, 일부 생산라인에서는 혼류생산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공장별로 비슷비슷한 차종을 생산하거나 동일한 세그먼트에 속한 차종을 생산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를 기아자동차로 확대하면 생산 차종 중복은 아주 분명하다. 어느 차종이 잘 팔리냐 안 팔리냐에 따라 라인별 생산량이 결정된다. 시장에서 안 팔리는 차종을 무작정 생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가동률이 줄고, 노동시간도 자동적으로 축소되기 일쑤이다.

현실적으로 ‘공장 가동을 위한 물량(차종)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현장 노동자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한다. 객관적인 ‘시장의 상황’으로 인해 몇 달간 특근은 고사하고 잔업도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 당장 노동자들은 가정을 꾸려나가는데 있어 상당한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잔업과 특근이 없으면 월급의 60% 이상이 줄어든다.) 자본은 객관적으로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런 상황을 방치하기 일쑤이다. 이런 일이 5공장에서, 4공장에서, 2공장에서 반복되는 가운데 일거리가 없는 노동자들은 물량을 확보하는데, 그런 공장의 노동자들을 지켜보고 있는 노동자들은 물량을 유지하는데 온통 신경을 빼앗기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 노동자의 선택은 두 가지 중 하나이다. 잘 팔리는 차종을 만드는 공장 라인으로 ‘이동’하거나 잘 팔릴 만한 새로운 차종을 생산하는 것이다. 확실히 과거와는 달리 공장간 ‘이동’이 낯선 풍경은 아니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은 이 공장에서 저 공장으로 이동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가고 싶어도 잘 팔리는 차종을 만드는 라인의 현장 노동자들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느새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야 할 ‘같은 노동자’라는 생각보다는 내 잔업과 특근을 깎아먹는 ‘경쟁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퍼져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대안은 새로운 차종을 받아서 잔업 2시간이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생산을 하는 것으로 모아진다. 안 팔리는 차종을 생산했던 라인은 그 라인대로, 잘 팔리차는 차를 생산했던 라인은 역시 그 라인대로 시장에서 잘 팔릴 수 있는 신차를 자기 라인에서 생산하려는 ‘물량 경쟁’이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모듈 반대, 사내모듈 쟁취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물량 확보’가 현장 노동자들, 공장별 노동자의 주요한 관심이 되어 있는 가운데 자본은 신차종 개발과 투입을 앞두고 현대와 기아 노조를, 현대자동차 각 공장 대의원회를 교란하고 경쟁시키고 있다. 이런 물량 경쟁 속에서 ‘모듈화 반대’나 ‘사내모듈’ 요구는 사실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어떤 조건보다 물량 확보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조합원을 직접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대의원들의 입장에서는 ‘원칙’을 고수하며 마냥 차종 투입을 늦추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 풀 꺾인 대응은 어쩌면 이미 구조화되어 버렸는지 모른다.

따라서 본조 집행부와 각 지역의 지부 집행부, 그리고 각 공장별 대의원회가 이러한 경쟁을 스스로 물리치고 ‘물량의 개발과 배치’를 현대 자본과 일괄적으로 협의하는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일이 급선무다. 경쟁의 구조를 스스로 탈피하는 자기 구조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이는 당연히 현대자동차 차원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아자동차 노조도 관련된 문제이다.

‘고용 상태 유지’와 함께 ‘직무안정’을 실현해야

약간 각도를 틀어 노동자의 직무와 작업 배치 문제를 살펴보자.

자본측 연구자들은 여전히 기업내 작업유연성이 떨어진다고 호들갑을 떤다. 아마도 노사합의 및 개인동의 없이는 직무순환과 전환배치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자동차 작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생산량의 변동에 따라 공장을 이동하는 일이 90년대에 비해 엄청나게 자주 진행되고 있다. 물량 변동과 작업조직의 변경에 따라 한 지역 내 공장 간 이동을 넘어 울산, 아산, 전주 간 노동력 이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모듈화로 사라지는 직무로 인해 노동자들의 이동도 불가피하게 이루어진다. 모듈화가 진행되면서 해당 분야의 서브 작업과 부품서열 및 공급 작업이 사라지고 있다. (이른바 생산간접부서들이 사라지고 있음) 그래서 그런 일을 하던 노동자들은 대거 ‘생산기술이나 생산관리, 혹은 품질관리’ 파트로 이동하거나 직접 생산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직접 생산라인으로 이동하는 것이 선호된다. 잔업과 특근에 몇 개의 수당이 더 붙을 뿐만 아니라 직접 생산이 고용 안정에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노동조합 집행부와 (공장별) 대의원회는 90년대 신경영전략에 대응하면서 일반화된 전환배치 논리와 사고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작업장 내 노동의 유연화는 노동력을 마음대로 이용하려는 자본의 논리라는 생각만을 하고 있다. 이미 작업장 안에서 노동자들이 부서간 이동, 공장간 이동, 지역간 이동을 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눈감고 있는 것이다.

신차종이 투입되는 과정에서 모듈화가 진행되면 자동화, 라인설비 변경이 동시에 진행된다. 라인 길이는 길어지고 휘어진다. 중간중간에 로봇이 투입되고 무인 자동화 공정이 배치된다. 콕핏 모듈, 샤시모듈, 프론트엔드모듈 등이 도입되면서 이와 관련된 작업을 할 수 있는 장비와 설비도 투입된다. 물론 모답스 공법에 따라 배정되는 공정별 시간과 투입인원은 줄어든다.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작업표준서가 만들어지는 가운데 UPH를 높여서 기존 인원을 흡수한다. 때로는 과도한 생산량 예측과 UPH-UP 때문에 신규 사원을 채용하기도 하지만 인원 수는 그리 많지 않다. 모듈화와 자동화로 인해 공정 수는 줄어드는데 UPH-UP으로 기존 인원을 수용하다보니 ‘여유인원’ 확보는 기존 인력을 활용하는 방식이 아니면 제대로 검토되지도 않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고용안정’이 실현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현장 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 몇 공장에서 일을 한다는 측면만 유지될 뿐 ‘직무안정’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듈화와 자동화로 완성차 생산라인에서 사라지는 공정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만 한다. 이런 것은 ‘전환배치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장 노동자들은 ‘기업에 고용된 상태’를 유지하는 대신 ‘자신의 직무’는 상실하고 있다.

90년대 신경영전략이 본격화될 당시 ‘전환배치 반대’가 노조의 기본 대응 방침이었다. 그 이유는 자본이 노동자를 마음대로 이동시키거나 사용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지금도 현대자동차 단체협약에는 그런 정신에 입각한 ‘전환배치’ 관련 조항이 살아 있다. 그런데 생산 물량 때문에 현장 노동자들이 공장을 넘어다니고 모듈화와 자동화 때문에 기존 직무로부터 이탈하는 상황에 대한 대응책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자본은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하고 노동자는 그것을 반대하는 듯 표현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시장조건과 라인의 가동현황, 모듈화와 자동화(달리 말하면 신기술과 신기계 도입)에 따른 노동력 이동은 이미 자유로워졌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자본의 주도력과 시장의 헤게모니가 관철될 뿐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현장권력’은 서서히 소멸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 상황과 모듈화/자동화에 의해 떠밀려서 이루어지는 노동력 이동에는 눈감은 채 ‘기업에 고용된 상태의 유지’에 만족할 것인가 아닌가는 전적으로 현장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선택할 문제다. 다만,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업에 고용된 상태 유지’에 만족할 경우, 모듈화와 자동화는 완성차 내 비정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을 불안하게 한다. 아산공장에서처럼 모듈화/자동화로 인해 공정이 축소되고 작업이 사라지게 되는 경우 라인 길이와 UPH-UP이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할 만큼 되지 않는다면 그 노동자들은 일자리 자체를 잃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일은 모듈화/자동화로 인한 고용 문제가 완성차 내부에서는 정규직의 공장이동이나 직무변경, 비정규 사내하청 노동자의 일자리 불안으로 드러나는 반면, 모듈화를 직접 담당하는 현대모비스에서는 고용 확대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현대자동차 공장의 고용불안과 현대모비스의 고용확대 사이에는 큰 강이 놓여있다. 그 강을 메워서 모듈화/자동화에 따른 각종 직무 변경과 상실, 총 고용 문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사내모듈을 포기할 것인가?

핵심 모듈 분야는 외주화되고 있다. 핵심 모듈은 상당히 긴 조립 공정으로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외주화되면서 노동자들은 직무이동, 공장이동을 할 수밖에 없다. 사내모듈화를 합의해놓고도 이를 실현하지 못한 울산 5공장 사례 이후 모듈화 대응에서 ‘사내모듈’은 생색내기용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내모듈은 불가능한 목표인가? 일단 사내모듈을 기존의 서브작업 개념으로 상상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서브작업이지 모듈 작업이 아니다. 모듈 작업이란 자동차 내에서 특정한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는 ‘분야’를 별도로 연구하여 관련한 부품간 기능과 구성의 시스템을 제고하는 것이다. 그런 기능적 시스템을 충분히 구축하기 위해 조립 과정을 별도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완성차 조립 과정에서 일의 편의성을 위해 이루어졌던 서브작업과는 질이 다르고 작업의 성격 또한 판이하게 다르다.

따라서 모듈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기존 완성차 조립 라인으로부터 독립하는 수밖에 없다. 최소한 엔진 서브장과 같은 위치와 구성을 확보하고 최종 조립라인과 연결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내모듈을 하려면 그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관련 인원의 이동(조립 본 라인으로부터 이탈)도 필요하다. 그런데 5공장의 사례에서 보다시피 자본은 관련 인원을 먼저 ‘당장 필요하다’는 이유로 일단 다른 작업을 하게 한다. 이것은 바쁜 현실을 근거로 하겠지만 사실상 사내모듈에 필요한 ‘인원’을 사실상 소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일단 다른 작업을 하기 시작한 현장 노동자들이 모듈 파트로 또 이동하라고 한다면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공간의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사내모듈 작업장을 마련하는 일을 차일피일 미룬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사내모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과는 거의 없어지고 만다. 결국 사내모듈은 공허한 외침으로 스러진다.

사내모듈은 모듈화를 거부하기 위한 명분이 아니라 모듈화를 수용하는 노동자적 방식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사내모듈과 모듈의 외주화는 별 차이가 없다. 모듈화를 수용하는 노동자적 방식이란 모듈화를 도입하는 과정과 모듈 시스템이 작동하는 생산 과정 전반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가 이루어져서 노동자의 직무통제, 생산통제가 가능한 구조를 실현하는 것이다. 90년대 신경영전략 대응 과정에서 고민했던 ‘현장권력 쟁취’가 여전히 고민되고 실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90년대 신경영전략에 맞선 현장권력 쟁취가 대공장 완성차 공장 내 노동자에 한정된 것이었다면 21세기 현재 모듈화에 맞선 현장권력이란 ‘자동차 연구 - 부품 생산 - 완성차 조립’ 전 과정에 종사하는 노동자 전체를 염두에 두고 각 영역과 공간에서 노동자의 헤게모니와 통제권을 실현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공장과 중소영세사업장의 차이와 차별을 넘어서는 생산과 작업에서의 ‘노동자 헤게모니 시스템’을 고민하고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내모듈이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존의 공장 안에서 모듈 작업을 하는 것으로 제한되어서는 안된다. 현대모비스라는 괴물을 통해 외주화되어 있는 모듈 생산 시스템을 다시 노동조합의 통제권을 끌어들이는 것이어야 한다.(가능하면 이 통제력을 행사하는 노동조합의 주체적 상태는 산별노조여야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울산 5공장 옆에서 가동되고 있는 현대모비스 공장을 ‘사내화’ 해야 하지 않을까? 울산 모비스 공장을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으로 귀속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현대모비스의 전국 공장 모두를 현대자동차로 귀속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완성차 조립공장 바로 옆에서 가동되는 모비스 공장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자고 요구해야 하고,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본다.

 최소한 그 정도는 요구하며 자본과 한판 댓거리를 치루어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면 반드시 ‘그게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당장 정권과 자본은 경영권 개입이라며 펄쩍 뛸 것이고, 현대자동차 자본은 사활을 걸고 그런 식의 노조 요구는 묵살할 것이 뻔하다.

이들의 힘과 태도만 염두에 둔다면 당연히 현대모비스에 대한 노동자의 개입과 통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진영이 어떻게 힘을 만들어낼 것이냐는 주체적 시각과 관점을 가진다면, 이 일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진정으로 자동차산업 모듈화와 구조조정에 맞서는 노동자의 모습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느냐를 묻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이 전제가 서야만 모듈화로 인한 각종 불안을 제거할 수 있고, 조립라인으로 집중되는 현장 인원들을 노동자의 관점에서 적절하게 배치할 수 있다. ‘기존의 직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고용 안정’과 더불어 생산량이 증가하고 생산성이 향상되는 만큼 작업량과 작업 시간이 줄어드는 ‘살 맛 나는 일터’는 우리 노동자의 기본적인 목표이다.
 
조합원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라

모듈화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자본과의 전면 승부 혹은 장기전이 불기피하다. 한 공장의 문제, 특정 차종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긴 호흡으로 대응을 준비하려면 노동자 내부의 단결과 연대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진행된 모듈화 대응을 보면 자본에 맞선 대응이 어려울 정도로 노동자 내부가 이완되고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부 집행부(울산의 경우 본조 집행부)와 공장 대의원회가 반목하고, 대의원과 소위원이 갈등을 빚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어떤 일을 하던지 간에 조건과 처지에 따라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고, 취하는 행동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책임을 떠넘기고 협상 과정에 대한 접근이 봉쇄되고 의사 수렴과 결정 과정이 은폐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모듈화 협상 과정에서 단 한번도 이런 문제가 제기되지 않은 적이 없다는 점은 노동조합 각 주체들의 심각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협상의 모든 과정이 조합원들에게 공개되고, 조합원의 의사를 수렴하는 과정을 밟는 것이다. 의견을 수렴한다면서 한 공장 안에서 부서와 반으로 쪼개놓고 부서별 반별 의견을 대립시키는 방식은 옳지 않다. 공장 전체의 관점에서 조합원들이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상충되는 이해에 대해서는 상호 이해력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조합원이 참여하는 보다 직접적인 대중행동이 기획되고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듈 교섭단의 교섭 결과를 조합원의 투표에 부쳐야 한다. 공장 협의이므로 단체교섭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으나, 조합원의 고용과 생존권에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어떤 방식으로든지 조합원의 의사는 확인되어야 한다. 당연히 조합원에 의해 교섭 내용이 부결된다면 교섭단은 일괄 사퇴하고 새로운 교섭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잘 되던 못 되던 모든 것은 최종적으로 조합원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이것이 비록 ‘형식적 민주주의’라고 비판받을 소지가 없지 않지만 민주노조운동이 세워 온 직접 민주주의의 전통은 지켜져야 하고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이종탁 자동차노동연구모임 대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