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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북한 인권문제와 미국의 이중 잣대 - 김재명 월드포커스

북한 인권문제와 미국의 이중 잣대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16〉
등록일자 : 2006년 01 월 24 일 (화) 17 : 54   
 

  북한 인권을 둘러싼 논의는 거북스런 주제다. 매우 조심스레 다뤄져야 한다.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국제인권 상황을 재는 프리덤 하우스의 평가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자유국가'로 분류되지 못한 나라들이 절반에 이른다.
  
  민주국가냐, 자유국가냐도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다. 미 국무부는 해마다 인권보고서를 펴내지만, 국제정치학자들로부터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미 부시 행정부의 잣대로는 미국에 고분고분한 친미국가는 '자유국가'이고, 그렇지 못한 자주적 성향의 국가는 '독재국가'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한마디로 이중 잣대다.
  
  문제는 우리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다. 한국에는 두 가지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하나는 북한 인권문제를 꺼내는 것은 궁극적으로 북한의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노리는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과 냉전수구세력의 손을 들어주는 미련한 짓이라는 시각, 다른 하나는 북한인권문제가 심각한 게 사실인 만큼 짚고 넘어갈 대목은 짚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겠고 둘 다 맞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를 택하라면 필자는 전자의 입장에 서 있다.
  
  한국도 정부수립 40년만에 '자유국가'
  

 
2만 명의 정치범이 수용된 것으로 알려진 함경북도 회령 제22호 정치범수용소(미국 위성사진). ⓒ프레시안  

  돌이켜 보면, 인권에 관한 한 우리 한국도 투명하지 못한 지난 역사를 지녔다. 1970년대 유신체제 아래서나 1980년대의 5공화국 억압체제 아래에서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었다. 프리덤 하우스가 한국을 자유국가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1988년. 정부수립 40년만의 일이다. 그 뒤 이른바 '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가 잇달아 들어서면서 한국의 인권상황은 갈수록 나아졌다는 평가다.
  
  결론부터 대놓고 말한다면, 지금 시점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꺼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체제 특성상 인권보다는 다른 가치(이를테면 국가안보, 체제유지)를 우선하는 북한에게 인권을 말한다는 것은 북핵 폐기를 비롯한 현안을 둘러싼 외교적 대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은 인권문제에서 자유로운가
  
  지난해 9월 6자회담에서 북핵폐기를 전격 합의하고도 후속회담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여기에는 평양 당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미국의 비(非)외교적 발언이 한몫 해 왔다. "북한이 달러 위폐를 만들었다"는 주장을 비롯, "북한이 범죄정권"이라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의 발언은 북핵폐기라는 목표를 향해 막바지 달려가야 할 6자회담에 재를 뿌린 짓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은 "북핵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인권문제가 남아 있는 한 북미관계 정상화는 어렵다"고 토를 단다. 북한인권문제는 두고두고 뜨거움 감자가 될 듯한 분위기다.
  
  부시 행정부는 다른 나라에서의 인권을 체제변화의 명분으로 즐겨 삼아 왔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 전복이 대표적인 보기다. 그렇다면 미국은 인권 문제에서 자유로운가. 결코 그렇지 않다.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와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저질러졌고 현재도 계속되는 인권침해 기록은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우기 어렵다. 부시 대통령 퇴임 뒤로도 긴 그림자를 끌며 망령처럼 부시의 뒤를 따라다닐 것이다.
  
  "북한 돕기에 인권 연계 시켜선 곤란"
  
  미국 안에서도 북한인권 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한다. 미 외교정책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민간 싱크탱크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www.fpif.org)의 단골 기고자인 존 페퍼(John Feffer)의 글 '연계시킬거냐, 말거냐(To Link or Not to Link)'는 북한인권을 보는 미국 안의 다른 시각들을 보여준다. 페퍼의 의도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다 인권 문제를 연계시켜선 안 된다"는 것이다(원문보기: http://www.fpif.org/fpiftxt/2998).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존 페퍼는 북한을 3번, 그리고 남한을 25회쯤 방문한 경력이 말해주듯, 한반도 전문가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2003년 겨울 뉴욕 시립대학원에서 열린 한반도 관련 심포지움에서 페퍼를 만난 적이 있다. 그로부터 '열린 시각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미국의 양심적인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 북핵 폐기를 둘러싸고 한반도와 미국 사이에서 벌어진 줄다리기를 다룬 『남한 북한: 위기시대의 미국 정책』(2003년)의 저자다. 이 책에서 페퍼는 이렇게 미국 역대 행정부들을 비판했다.
  
  "북한의 핵 개발 움직임을 외교적으로 풀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을 경제적, 군사적으로 고립시키는 냉전정책을 유지했다. 또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대북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를 평양의 정권 교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공포와 불신을 디딤돌로 삼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외교적인 허식을 벗어던지고, 평양 정부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관점에 서서, 북한의 정권 교체를 미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았다."
  
  인권을 무기화한다?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에 실린 글에서 페퍼는 "북한에 정치범 수용소가 있고 기본적 자유가 제한되고 있지만, 미 행정부에서조차 정책결정자에 따라 인권문제를 핵위기와 인도주의적 지원에 연계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둘러싼 시각이 다르다"고 전한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 9월 "인권을 무기로 삼는 것에는 관심 없다(We have no interest in weaponizing human rights)"고 말했다. 이에 비해 제이 레프코위츠 인권대사는 "인도적 지원은 인권 문제와 연계돼야 한다"는 뜻을 나타냈었다.
  
  레프코위츠는 부시 행정부 내 보수강경파의 우두머리인 딕 체니에 선을 대고 있는 인물이다. 비교적 합리적 성향의 미 외교관들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협상과정에서 인권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은 북핵폐기 관련 합의를 어렵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그럼에도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들은 필요에 따라 전가의 보도처럼 북한 인권문제를 끄집어낼 태세다. 중국과 통상마찰을 빚을 때마다 천안문사태를 들먹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과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미국이 저지른 인권침해 사례들은 어디까지나 '비미국적인(UnAmerican)'인 1회적 사건이란 강변을 늘어놓으면서….

김재명/프레시안 기획위원,국제분쟁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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