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6/04/20

4월 21일 캐릭터 머털도사, 스크린쿼터 사수 위한 1인 시위

“노무현 대통령님. 우리는 아직 청년도 아닙니다.
우리를 죽이지 마세오 ~”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은 우리를 극장에서 몰아내었고
한미 FTA는 우리를 안방극장에서 쫓아낼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생존권을 위해,
우리를 사랑하는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
“스크린쿼터 축소 및 한미 FTA 반대를 위한 캐릭터 1인 시위”를
2006년 3월 31일 (금) ‘뽀로로’를 시작으로 주 1회 진행합니다.

4월 21일(금) 광화문 1인시위 캐릭터는 홍길동입니다.

<1차 1인 시위 캐릭터 : 뽀로로, 로봇태권V, 홍길동, 머털도사>
< 캐릭터 1인시위 >
▶ 캐릭터 : 머털도사
▶ 일시 : 2006년 4월 21일 (금) 오후6시-오후8시
▶ 장소 : 광화문 사거리 교보빌딩 앞
▶ 촛불문화제 : 오후7시

 

** 촬영 가능하신 분, 덧글 달아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촬영일정 나누기

앞으로 이 게시판을 통해 촬영일정을 분담하기로 했었죠?

촬영이 가능한 분은 덧글로 의사표시 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고보니, 테이프는 어떻게 할 거고 관리는 어떻게 할 거며

공유는 어떻게 할 지 논의하지 않았군요.

다음 회의 때 촬영 가능한 분들과 이 부분을 정리했으면 합니다.

그리고나서 전체적으로 워크샵 자리에서 공유하거나 하지요.

 

(일단 뉴스 차원에서 참세상에서 요청하는 일상적인 일정은,

참세상에서 테이프를 제공하고 관리하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미FTA 관련 청와대 브리핑 댓글달기!!!

(펌)

범국본 활동이 점점 활기를 띠고 한미FTA에 대한 문제제기가 사회적으로 번지면서 청와대가 다급해졌나봅니다.
노무현 정권은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연속으로 FTA관련 기사를 내보내면서 한미FTA체결의 정당성을 주장는가 하면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의 구호를 연상'시킨다거나, '터무니없는 말로 여론을 호도 하는 행위'로 몰고 있습니다.

이에 손쉽지만 중요한 운동을 하나 제안하고자 합니다.
청와대 브리핑에 들어가셔서 한미FTA 관련 글을 읽어보시고 비판적인 댓글달기를 바로 실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 댓글효과 장난 아닙니다.^^

http://www.president.go.kr/cwd/kr/index.php
위 주소로 들어가시면 되고요.
바로 클릭하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저도 극영화의 의미에 대해 정리해봤어요.

맨날 정리만 하네요...

실천을 해야하는데... 극영화가 익숙지 않아서...

 

 

FTA국면, 어떤 영화가 필요한가? 

지친  대중이 꿈꿀 수 있게  ‘드라마(판타지)의 가능성’을 검토하자.

‘희망의 바이러스’ 퍼뜨리기 운동     

 



 

FTA국면, 어떤 영화가 필요한가? 

지친(?) 대중이 꿈꿀 수 있는  ‘드라마(판타지)의 가능성’을 검토하자.

‘희망의 바이러스’ 퍼뜨리기 운동     

                                                              2006. 4. 20  김이찬


2010년, 케이블 TV 뉴스시간 - 교육분야 뉴스


“ 대추리 주민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평택군민방송의 7시 뉴스를 전허겄습니다. 저는 읍 내 감나무집에 사는 김순자입니다. 어제가 나 칠순이라고 자석새끼들이 몰려와갖고 떠들다보니 목이 조금 쉬어 부럿응게 잘 안 들리더라도, 또박또박 이야기헐텡께 조금 양해혀 주시길 바라것습니다.


첫소식 전허겄습니다. 이번 학기가 시작되는 3월부터 모든 대학교육은 무상교육이 실시된답니다. 아, 진작에 그렇게 했어야하는데, 뒤늦은 감이 있구먼요. 그러니까 인자부터는 대학생 자녀들 둔 부모들은, 자식들이 행여 등록금달라고 하면 요놈이 뭔 딴꿍꿍이가 있구나 하고 생각해야 것습니다.  만일 대학당국이 등록금을 암암리에 요구하는 행위는 엄중한 범죄행위로 간주됩니다.  그런 짓을 한 사람들은 3년 동안 매일,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 행위는 절대로 영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라고 주위사람에게 말해야합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다가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되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이주자들을 위한 문화생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실천한다면 이때는 2년이상 해야한답니다. 


이와 같은 조치에 대해 저기 전라도 새만금에서 조개줍는 일하는 한 할머니가 도 교육감을 찾아가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학력에 따른 차별’과 같은 악질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받아야하는 처벌이 ‘차별의 폐해를 알리는 비디오를 500편 이상 보고, 주위사람들과 토론500시간 벌여야하는 것임’에 비해 이번조치가 조금 약한 것 아니냐고 1시간동안 따졌는데, 결국 그날 저녁, 교육감이 할머니 집에 찾아가 밭에서 상추를 같이 따고 밤늦게까지 소주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여 의견차이를 좁혔다고 합니다. ”


위와 같은 뉴스가 주요 뉴스로 나오는 사회는 가능할까요?

이런 사회의 모습이 극영화로 그려지면 어떨까요 ?           


(1)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각 세력들의 상황에 대하여  


  ‘신자유주의를 막을 힘은 어디에 있는가?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조직된 민중의 힘 아닌가 ?’, ‘자본 중심의 지금과 같은 세계화는 용납할 수 없다.  그리고 대안적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 저항과 감시를 조직해야 한다.’ 는 믿음과 실천 이다. 


 그런데 아직 우리사회의 주요 운동세력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지만,  대안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또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지... 그 희망을 대중들에게 그려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는 현실이 너무 척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에게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피해가 있지 않는 한, (설사 그런다 하더라도)  주저하거나, 체념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유가 무엇인가? 현재의 ‘재벌-관료-언론’ 연합권력체제가 유포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 공세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체제의 피해자라 할 민중들이 대안체제에 대한 상을 못 그리고, 고립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 닥친 고통의 근원에 대해 짐작은 하지만, '돈벌기 위해서 죽어라 경쟁하는 것', ' 웬만하면 체제에 순응하여 빨리 돈을 모아 안정하고, 웰빙하고, 노후에 넉넉한 돈으로 자식들한테 천대 안 받고 늙는 것' 이라는, 현 체제가 강요하는 전망을 쉬이 뛰어넘지는 못한다. 그것이 영 싫으면, 그런 자본주의적 관계가 적은, 작은 공동체로 위축되거나, 아예 자기만의 세계로 스스로를 유폐시킨다.    


물론 이 사회의 문제를 느끼던 세력들이,  '대안 사회로의 이행방법'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자신들이 생각을 적극적으로 그려내고 설득하지는 못한다.


 FTA의 추진으로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획일적 속성들이 한국사회에 본격적으로 드러날 계기가 되었다.  (물론 지금까지와 같이 자본 측의 이데올로기공세는 훨씬 세련된 형태로 계속될 수도 있다) 지금은 '론스타 케이스'가 한 악덕자본만의 문제로 축소되어서 보도되지만,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됨에 따라, ‘기업중심의 세계화가 갖고 있는 본질적 한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그것을 넘어서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자본- 상품(서비스)의 생산 (대다수의 민중이 그 구조속의 부품으로서의 임노동) - 자본' 이라는 순환이 과연 우리가 살아야할 세계의 본질 이어야하는가? 에 대해 (시간은 걸리겠지만) 의문을 가질 사람들은 생겨날 것이다.      


(2) 대안사회를 꿈꾸는 독립미디어는 어떤 실천을 할 것인가 ?  - 실천의 방향

   (공백)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필자도 모른다. 


(3) 독립영화 (독립미디어) ‘콘텐츠생산영역’에서는 어떤 실험을 할 것인가?  

    

   1) 지금까지 제작되어 온 독립적 컨텐츠의 특징 - ‘진단과 분석 비판’


   ‘독립영화’ 에 대한 평가틀과 그 문화가 아직 미비된 상태여서, 이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필자는 다음과 같은 분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민중운동권에 밀착한 제작자/단체들의 사회운동을 위한  '교육물/속보/굴욕적 현실과  민중투쟁과정을 담는 다큐멘터리'

    - 한독협 주위(?)의 제작자들에 의해 생산되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이 콘텐츠들은 현재의 지배권력과 그 구조에 대한 비판적/저항적 성격을 갖고, 개별 사안들에서 전체의 문제를 유추해내려 하고, 대안사회의 가능성을 탐색하기는 하지만,  총체적으로 제작자들이 희망하는 미래의 상을 과감하게 그려내지는 않는다. (물론 어떤 희망을 ‘선포’하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종종 급작스럽게 느껴지거나, 성급한 ‘당위적’ 수사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


이러한 제작물들의 개별사안들에 대한 진단은 섬세하다.   '부정의'/ '파괴적 인간관계' / '강자에 의한 지배' / '감춰진 착취' / '불평등' / '국가주의'에의 종속강요 / 민족지상주의 / ‘차별’ / ‘반생태주의’ / ‘반 문화주의’ / ‘성찰을 거부하는 문화의 유포’ / ‘생명체들 간의 교감의 부재’ 등과 같은 ‘구조화된 현실에 대한 비판’은 보이지만, 각 주제들의 상호연관과  총합적 전망 모색은 때때로 강하게 암시되지만 발견하기 힘들다. (물론 이와 같은 전망이 하나의 콘텐츠에 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일 수는 있다. - 따지고 본다면 독립영화들은 주류미디어에 의해 가려지거나 무시되는 우리시대의 ‘현실’ 그 자체를 기록해내고 그려내기에도 벅차다.  즉 ‘현실 건지기’ 투쟁을 하기에도 바쁜 것이다. )    


   2) ‘독립 다큐멘터리’에서 좀처럼 ‘낙관적 희망’을 발견하기 힘든 것은 어떤 이유일까?   


아마도 독립영화들이,  특히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위에 말한 바와 같이 가려진 현실에 대한  ‘분석/탐사’에 몰두해야만 하기 때문에, 또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비참함과 어이없음’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하기 때문에, ‘낙관, 희망, 즐거운 상상, 여유로운 성찰’과 같은 정서 혹은 관념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 같다.  - 이는 혹시 ‘현실성의 재현’ 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특징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런 정서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4) 독립영화(독립미디어)진영의 콘텐츠 제작계획에 공백은 없는가? 

   - ‘이상적 모습의 재현’과 ‘그것의 실현가능성’ 을 설득력 있게 그리는 콘텐츠는 기획되고 있는가?    

   

필자의 생각을 먼저 말하자면, 체념하거나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대안적 사회, 대안적 세계화'를 낙관적으로 그리고 제시하는 판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대중들에게 이 저항의 의미와 중요성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용기와 영감을 줄 수도 있다.   

           

 1) 현재의 대중투쟁의 방해물 - ‘대안없으니 어쩔 수 없다’ 는 체념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려면, 대중의 각성과 저항이 필요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그  저항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 저항의 의미와 목표가 끊임없이 재점검되어야한다. ‘왜 싸워야하는지, 싸우면 어떤 결과가 있을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실현되거나 반영된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그릴 수 있어야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꿈을 꿀 수 없다면, 힘이 생기기 힘든’ 것이다. 


  2) 공동체들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자


대중투쟁에 영감을 고취하는 좋은 상상 (판타지)은 물론 현실의 문제에 대한 꼼꼼한 진단에서 나올 것이다.  따라서 극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오히려 ‘다큐멘터리’제작보다 훨씬 더 많은 사전준비와 분석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제작방식의 특성을 볼때 ‘다큐가 현실의 흐름을 사후적으로 따라잡으며’ 간다고 할 때, 극영화는 사전에 미래에 발생할 현실에 대한 분석을 끝낸 다음,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이, 꿈’ 에 대해서 현실성있게 그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장르에 대한 다음의 인용을 참고해보자.  


 '모든 영화는 다큐멘터리다. 제 아무리 별난 극영화도 이는 그것이 생산된 문화적 배경의 증거이며 ,  그 문화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유사성을 재생산해낸다. 사실상 두 종류의 영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 소망 성취 (wish-fulfillment)로서의  다큐멘터리 -극영화- 와 사회적 재현으로서의 다큐멘터리가 존재한다...' (빌 니콜스, 이선화역 , 다큐멘터리 입문  중에서 )


위 학자의 규정, 즉 극영화는 ‘소망-성취로서의 다큐멘터리’ 라는 정의를 따라가보자.  그리고 우리는, 사회의 부조리가 ‘절대적’이며 ‘불가항력적’이라고 체념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소망’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5)  ‘극영화(적 장치)’에 주목하자. - 이상의 현실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위에 말한 바,  다큐멘터리들이 ‘실현 가능한 희망’을 섣불리 그려내지 못하는 것은 현실이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는 현실의 민중의 삶이 척박하고, 투쟁의 장기적 전망이 보이지 않음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들은 별별 악폐들을 ‘고발하기에도 벅찬’ 상황에 있다. 민중들이 ‘지쳐있다면’ 더더욱 꿈을 키우는 일을 해야 할텐데, 그러한 일은 공백으로 남아있고,  지금은 그 자리를 재벌들이 유포하는 ‘판타지’가 메꾼다. 민중들이 당장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열심히 일하면 좋은 집 사고, 웰빙할수 있다’고 말한다. 명품 자동차, 명품집, 고급 사교모임, 고품격의 써비스를 누려야 인생을 잘산 것이라고 ‘고상하게’ 말한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교묘히 호도한다. 대중들의 현실에 대한 성찰을 차단하는  집요하고 완강한 이데올로기 공세가 펼쳐진다. - 그런데 우리는, 미국 대공황 시대에 코미디와 뮤지컬이 득세한 것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 대중들은 여기저기 널려있는 ‘비참함’을 또다시 극장에서 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


요컨대, 극영화의 ‘소망-실현’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지친 대중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유포하자는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이 일이 결코 녹녹하지는 않지만)  독립영화진영이 대안적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이것이 ‘실현 가능한 판타지’ 라는 점을 암시하고 대중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의미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주류미디어들이 유포하는 바와 같이 '현실을 잊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그려내고 용기를 내게 하기 위한’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1) 판타지의 태도는 어떠해야할까? :   낙천성 +현실성 ?  혹은,  실현가능한 판타지 


    (굳이 이야기하자면) '얼마나 먼 길을 걸어야 인간들은 정신차리나...그 답은 바람만이

안단다.' 와 같은 밥딜런 노래의  푸념조(?) 의 정서보다는,

   ‘천국과 지옥, 종교와 국경이 없고, 소유와 굶주림이 없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세계를 상상하라’ (Imagine)라는 존 레넌의 태도에 좀 더 가까워야 할 듯하다.  아니 더 나아가 ‘상상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형상화’ 해보자는 것이다.   

 

   첫째, 그가 말한 '꿈들' (무소유/ 국가의 소멸 / 차별이 없음 등등) 이 우리가 속한 사회에 '현실화‘ 된다면 그것이 실제로 어떠할지 그려내 보자는 것이다. (때론 천연덕스럽게 그걸 당연한 현실로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대중들이 '꿈'을 단순히 'Utopia : 없는 세계' 로 인식하도록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 ideal'의 '잠재성(현실성)'을 강하게 연관시켜 이해하도록  판타지(극영화)를 제공하는 것이다.      

    예) 화폐없는 호혜적 교류가 일반화된 사회를 상정하고 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것이다. ( 그런데,  '웰컴 투 동막골'처럼, 그 내적 연관이 드러나지 않고, '지나치게 현실성 없는' 설정을 넘어설 필요가 있는 듯하다. - 그 영화를 본 사람 중에, 누군가 현실의 알레고리를 발견한 사람이 있을까 ?  이 영화를 통해 '앞으로 우리는 동막골과 같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해! 그것은 가능해!' 라는 암시를 받은 사람이 있을까?)


(6)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상적 상황’을 그린 컨텐츠를 기획하고 만들자 ! 

  

   이와 같은 극영화들은, 지금 만들어지고, 계획되고 있는 현실과 미래의 아프고 갑갑한 상상과 대비될 때,  더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이상은 민중들의 저항과 견제, 준비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는 엄연한 사실을 담은 메시지가 뒤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메세지는 현실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영상들과 대비를 이룰 때, 즉 한 컨텐츠 내에서만이 아니라, 이질적 컨텐츠들의 대조와 병치를 통해서 그 상승효과를 볼수도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