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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 분류
    riverway
  • 등록일
    2008/08/19 14:30
  • 수정일
    2008/08/19 14:30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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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손님은 누구라도 반갑지 않다고들 한다.

열흘간의 여행 끝에 피곤한 몸으로 돌아왔더니, 시동생의 막내딸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을 비우는 동안 다섯식구가 서울나들이 겸 휴가를 보내고 가라했더니, 그 끝에 막내는 무용레슨을 받아야 한다고 두고 갔다. 하루 이틀 더 있는 정도가 아니라, 2주를 더 있겠다고 했다.

더운 날씨, 피곤한 몸.. 선풍기 틀고, 문 열어 놓고 자도 잠을 제대로 자기 어렵던 날들을 불청객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무용을 하여 예고를 가겠다는 아이. 부모에게 단단히 잔소리를 들었는지 무엇이든 알아서 할 수 있다고 신경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 자는 시간, 먹는 시간,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 모두 내 소관이 아니란다.

내 공간에 와 있으면서, 통제받기를 거부(?)하는 당돌함이 처음에는 몹시 언짢았지만, 어찌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데 며칠 걸렸다. 아이를 미워할 순 없으니, 부모에 대해 짜증을 낼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속으로만!! 시댁식구란 그런가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위 요즘 아이를 관찰하는 기회로 삼는 나를 재발견하였다. 혼자서 컴퓨터와 PDA인지 DMB인지 모를 손바닥만한 컴퓨터, 핸드폰 등으로 말없이 얼마나 잘 노는지 한편 놀라웠다.

버릇처럼, 저렇게 혼자 놀기를 즐겨하면 사람과 어떻게 소통을 할 것인지 혼자 걱정을 늘어지게 했더니, 주말에 시댁에 가서 만난 지 언니와 어찌나 수다를 재미있게 떠는지 또 한번 놀랐더랬다.

2박3일 내가 집을 비우는 동안, 조카와 큰아빠가 함께 외식을 했단다. 같이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지 살길을  이미 다 구상하고 있는 아이라고 몹시 대견해 했다. 자기가 무용을 하려는 이유, 무용을 하지말라고 말리는 이유에 대한 반박논리를 나름 분명하게 설명하고, 특히 고등학교 자녀의 학비를 대주는 회사를 다니는 아빠에게 자기가 대학에 가기 전에 절대 그만두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 했다.  대학을 가면, 자기 힘으로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보여주었단다.

자연스레,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모습을 떠 올려보게 된다.  세상물정 모르고, 부족함이 마냥 싫기만 했던 시절......

비오는 아침, 가방을 끌고 양 어깨에 메고도 혼자 갈 수 있다고 하는 아이를 굳이 터미널에 데려다 주면서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시절을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안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특별히 해줄 게 없으니까, 자꾸 걱정거리만 찾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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