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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옮겨놓고...

근골격계 질환 엉터리 산재 환자 많다

산재 승인 독일 2%, 한국 94% … 입원 기간 조선업 평균 440일

경남의 중공업 업체 P사는 지난해 5월과 10월 두차례에 걸쳐 건강한 사무직 직원 8명에게 산업재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K병원에서 근골격계 질환이 있는지를 진단받도록 했다. 이는 K병원에서 근골격계 질환 진단을 받고 입원하는 직원이 급증해 작업에 차질이 생기자 병원의 판정이 과연 적절한지 확인해 보기 위한 것이었다.



진단 결과는 회사 측이 걱정했던 대로였다. 건강한 직원 8명 전원이 근막통증후군(목이나 어깨에 통증이 오는 증세).경추부염좌(어깨에 통증이 오는 증세) 등 근골격계 질환 판정을 받았다. 병원 측은 이들에게 2~3주의 입원치료 진단서를 떼줬다. 근골격계 질환은 무거운 물건을 드는 힘든 일이나 조립 공정 등 반복 작업으로 인해 발생하며 목.어깨.허리.팔 등의 부위가 저리고 아프거나 마비되는 직업병이다.

신종 산업재해인 근골격계 질환 판정이 남발되고 있다. 이 질환은 정밀검사를 하지 않고는 전문의들도 판단하기 어려운 병이다. 일부 병원과 근로자들은 이점을 악용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근골격계 판정을 받을 경우 병원에서 쉬면서 급여의 70%(일부 기업은 100%)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가벼운 증상에도 입원치료를 원하기도 한다.

상당수의 병원은 증세가 심하지 않더라도 근로자의 요구대로 근골격계 환자 진단서를 발급해 준다. 환자의 증세가 심하지 않은 경우 입원하더라도 병원 측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전남 목포시에 있는 한 병원은 근골격계 질환으로 입원한 환자의 ▶무단 외출▶병원 내 음주를 묵인하거나 진료비를 실제보다 많이 청구했다가 지난달 근로복지공단에 적발됐다.

그러나 엉터리 환자를 적발하기란 쉽지 않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일단 병원에서 근골격계 질환 진단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하면 대부분이 산재를 인정받는다. 2004년의 승인율은 93.7%였다. 8명에 불과한 공단의 산재 판정 담당 전문의가 연간 4000여건의 병원 진단이 정확한 것인지 판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공단 측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산재제도를 운영하는 독일은 병원에서 근골격계 진단을 받은 환자의 2%(1999년)만이 산재로 인정받는다. 700명의 산재 판정 전문의가 빈틈없이 가려내기 때문이다.

국내 근골격계 환자 중 조선업계의 평균 입원기간은 440일로 일반 건강보험 환자 중 근막통증 증후군의 입원기간(44일)의 11배이며 미국 산재보험 환자의 입원 치료기간(28일)의 17배나 된다. 이에 따라 공단이 지난해 9월 말까지 근골격계 환자에게 지급한 치료.요양비는 모두 711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92.7%나 늘었다.

전문가들은 엉터리 근골격계 환자 증가가 기업에 부담을 주고 궁극적으로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대기업의 산재 담당 관계자는 "우리 회사의 경우 전체 생산직의 약 10%가 근골격계 환자이고 평균 입원기간은 600일에 육박해 생산 차질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과잉진단을 막기 위해선 산재가 없는 회사에 대해 산재보험료를 할인하는 등의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부정이 드러난 경우에는 보다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철근.김기찬 기자<jcomm@joongang.co.kr>

2005.02.23 06:40 입력 / 2005.02.23 07:59 수정




노조가 병원에 "산재 인정" 압력

대기업 정규직에 보험 혜택 집중
한두 명 분산입원 … '가짜'적발 힘들어

2002년 3월 A사에 근무하는 박모(41)씨는 시장선거에 출마한 후보의 선거운동원으로 현장을 누비고 있었다. 그는 당시 노조 주관으로 집단 근골격계 질환 판정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고 있었다. 병원에 있어야 할 산업재해환자가 선거판을 뛰어다닌 것이다. 박씨의 '가짜 환자' 행각은 지지했던 후보가 낙선한 뒤 술을 먹고 승용차를 파손한 혐의로 약식기소되면서 드러났다.



박씨는 2003년 1월 다시 근골격계 판정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던 중 노조 간부로 뽑혔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박씨가 노조간부 활동을 할 정도면 증세가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입원치료를 취소했다. 박씨처럼 놀면서 휴업급여를 챙기는 가짜 근골격계 환자가 늘면서 고통에 시달리는 진짜 환자들까지 의혹의 눈길을 받고 있다.

가짜 근골격계 환자가 느는 것은 근로자 자신과 병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근로자 입장에선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 판정을 받으면 통상임금의 70~100%를 받으면서 쉴 수 있다. 산재병원은 환자가 많으면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에 웬만하면 진단서를 떼어준다.

근골격계 환자 중에는 노조의 입김이 센 대기업 근로자의 비중이 크다. 지난해 10월 말 현재 전체 근로자의 58%를 차지하는 30인 미만 사업장의 신규 근골격계 환자는 632명이었다. 반면 전체 근로자의 6%에 불과한 1000인 이상 사업장은 1716명에 이르고 있다. D사의 전직 노조간부 L씨는 "환자와 병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점도 있지만 노조도 근골격계 판정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기업인 S사 노조는 근로복지공단 자문의가 집단으로 근골격계 산재를 신청한 사람 중 19명을 입원치료가 아닌 통원치료로 바꿔 승인하자 해당 병원 앞에서 한 달간 집회신고를 내고 시위를 벌였다. 담당의사는 결국 사표를 냈고 공단 측은 19명 전원을 입원치료로 바꿔 승인했다. L씨는 "대의원 선거를 할 때 조합원이 후보에게 당선되면 근골격계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표를 흥정하는 일까지 있다"고 털어놓았다.

중공업 업체 F사의 경우 지난해 노조가 결성된 정규직 근로자 중 근골격계 산재 승인을 받은 환자는 207명이다. 정규직 근로자와 수가 비슷한 비정규직 근로자 중 산재 승인을 받은 환자는 15명에 불과했다. 한 사내 하청업체 근로자는 "하청업체에서 산재가 발생하더라도 원청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그냥 넘어간다"며 "눈에 보이는 부상도 크지 않으면 숨기는 경우가 많은 형편이어서 근골격계 신청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물론 실제로 증상이 심한 환자도 많다.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장기간 일을 하다 병이 커진 경우다. 지난달 21일에는 근골격계 질환으로 입원 중인 한 타이어 업체 근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발생했다. 두 번의 수술을 거치면서 회사 복귀를 걱정하는 등 심적인 불안감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민주노총은 "우리나라 근골격계 환자는 미국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며 "근골격계 환자 수를 무조건 줄이려는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의 시도엔 강력히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늘어나는 가짜 환자를 잡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산재심사를 담당하는 복지공단의 상근자문의는 올해 5명을 새로 뽑아 모두 8명이 됐다. 700명에 이르는 전문의가 철저한 현장실사를 벌이는 독일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게다가 산재 환자들이 규모가 작은 개인병원에 흩어져 있어 감독을 하기도 어렵다. 산재의료원에 따르면 산재 입원환자 중 30개 병상 이하의 개인의원에 입원한 비율이 36.6%에 이른다.

한 자동차 공장의 경우 37명의 근골격계 입원 환자가 26개 병.의원에 분산 입원해 있었다. 이 업체 산재담당 관계자는 "근골격계 환자가 규모가 작은 개인의원에 한두명씩 입원할 경우 재활치료가 잘 안될 뿐 아니라 감독도 힘들다"고 말했다.

정철근 기자, 정윤아 대학생 인턴기자<jcom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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