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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제국의 출현과 [공평성]

이것도 역시 번역한 것이 아깝다는 ...

 

 

伊藤景子(Itoh Keiko) 전[아시아의 개발과 환경]연구팀


[환경보호와 공평성]이라는 심포지엄이 4월 16일, 토쿄 시부야의 아오야마학원대학에서 열렸다. 패널리스트는 일본, 독일, 미국의 주로 정치학연구자들 약 10명. 50명 안팍의 학생, 연구자, NGO 멤버들이 모였다.






[공평성]은 영어로 equity. fairness보다도 엄격한 뉘앙스가 있다. 이것이 환경문제를 생각할 때의 키워드가 된 것은 1972년,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UN인간환경회의가 시작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산성비, 태평양과 대서양에서는 남획에 의한 해양자원의 감소, 일본에서는 공해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었다. 미나마타병에 걸린 환자의 대표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해서, 그 비참함을 호소했었다.

인간의 경제활동에 의해서, 지구의 환경은 이렇게까지 파괴되었으니,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환경보전에 힘쓰자고 주창하는 선진국에 대해서, 개발도상국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너희들이 자원을 좋을대로 소비해서, 실컷 자기들의 잇속을 차려 온 결과로서의 환경파괴는 아닌가? 환경이 소중하기 때문에, 개발을 제한하자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인도대표의 [빈곤이야말로 환경파괴의 최대의 원인]이라는 연설은 개발도상국의 갈채를 받았다.

그로부터 30년남짓. 환경분야에서는, 92년의 지구서미트에서 채택된 리오선언을 시작으로, 몬트리올의정서, 국제해양법 등 10개를 넘는 국제적인 협약이 맺어졌다. 심포지엄의 사회를 맡았던 太田宏(Ohta Hiroshi) 아오야마학원대학교수에 의하면, 주요한 협약에는, [equity]의 실현이 중요하다는 취지가 담겨져 있다. 대표적인 것은, 리오선언의 [공통하지만 차이가 있는 책임]이라는 문구이다. 지구환경의 파괴에는, 자원을 대량으로 소비해 온 선진국이 보다 무거운 책임을 진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남북경제격차는 해소되고 있지 않다. 환경을 둘러싼 국제회의는, [북쪽]의 나라들의 제안과 동의를, [남쪽]이 무시하거나 고함을 치거나 하는 장면이 반복되어져 왔다. 9 11 테러를 일으킨 것은 남북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어떻게 하면 세계는 [공평]하게 되는 것일까? 그를 위한 정책을 실현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것을 서로 의논하기 위해서 열렸던 것이 이 번 심포지엄이다. 발언자의 한 사람으로, 10년 이상 [공평성]을 연구하고 있는 Miranda A. Schreurs 메릴랜드주립대학 교수에 의하면, 일본, 독일, 미국 3개국의 GNP합계는 전세계의 GNP의 43%를 차지한다(일본, EU, 미국의 합계라면 75%). 이 3자가 지구환경에 부하(負荷)를 주고 있는 주역이라는 것이 된다. 일독미가 성실한 환경정책을 만드는 것이 지구환경에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Schreurs 교수는 말한다.

[공평]은 국가간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폐기물처리장과 유해물질이 배출되는 공장은 흑인, 히스파닉의 주거지에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메릴랜드주립대학의 Robert Percival 교수는 [미국의 어느 지역에서 조사하더라도, 흑인의 납중독은 백인보다 높다]고 발표했다. 일본에서는, 원폭과 산업폐기물처리장은 과소지(過疎地)에만 있다. 또 한, 지금 살고 있는 우리들이 환경을 오염시키면, 장래의 세대를 괴롭히는 것이 된다. 세상에 넘쳐 나는 이들 [불공평]을 바로 잡을려고 하는 것이 [공평성]의 사고이다.

게다가, Schreurs 교수는 [참가의 공평성], 즉 정책결정에 관료와 전문가만이 아니라, 시민과 NGO가 참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포지엄이 있었던 16일은, 이라크전쟁에서의 바그다드의 어이없는 함락이 있은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다. 압승한 미국이 전후부흥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 날, 몇 번이나 화제에 올랐다.

[독일은 녹색당과 사회민주당의 연합정권. 기업에의 과세 등으로 환경을 보호하려고 한다. 신자유주의경제의 미국은 경제우선을 바꾸지 않고, 기술로 환경문제를 극복하려고 한다. 이래서는 [공평성]의 사상은 나 오기 어렵다]. Schreurs 교수는 이렇게 우려했다. 덧붙여서 일본은 [대부분의 정책은 미국추종인데도, 환경만큼은 독일을 따르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고 한다.

Percival 교수는 [미국은 삭감목표의 수치에 과학적인 증거가 없다면서, 교토의정서에서 빠졌다. 그런데, 이라크에의 전쟁에서는 [당하기 전에 공격한다]며 선제공격을 했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상식의 예방원칙을 무시하고, 그 대신에, 안전보장분야에서 그 원칙을 관철하고 있다]고 조크를 날려서 회장을 열광시켰다. 그 후의 질의응답에서는, 부시대통령을, [(상대보다) 550표 적은데도 대통령이 된 사람이기 때문에, 다음 선거로 해결하겠지만]이라고 풍자했다.

심포지엄 전의 사전준비에서는 山村耕造(Yamamura Kozo) 워싱턴대학 교수가, 부시정권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만화가 실린 잡지를 꺼내서, 패널리스트들이 돌려서 읽고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발표를 한 5인 중의 4인이 미국인이다. 이런 미국인들만 있다면 고생은 하지 않겠지만...






평론가인 加藤周一(Kato Shuichi)씨의 강연회에 참석한 동료에 의하면, 加藤씨는 이라크전쟁 후의 세계를, [미국이 유일한 거대 제국이 되고, 나머지 국가들은 전부, 하인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극도의 불공평이 출현한 세계에서, 공평성을 추구한다. 환경문제는 정말로 귀찮은 시대가 되었다.


원문은 http://www.asahi.com/international/aan/issen/issen39.html



좀 더 멀리 긴 안목으로 세계를 바라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이라크침략전과 지금의 사스를 통해 본 한국의 모습은 힘만 없을 뿐이지 미국과 이스라엘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같다. 누군가는 국익이라던지 이익이라는 것을 계산하고 추구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평화와 평등이라는 원칙을 우리는 지킬 필요가 있다. 그렇지않다면, 당신이 비난하는 자들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지구는 하나일뿐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같은 하나의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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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미일동맹과 북한의 핵(7)

혼다    미국측의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만, 그 전에 이즈미씨에게, 조금 전의 비관적인 부분의 방책이란 것을 듣고, 그 후에 미국측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비관적인 길로 어떻게 될지, 그 경우에는.



마지막에는 북(한)이 양보하던지, 미국이 무력행사를 검토하던지/이즈미

 

이즈미  조금 전 말씀드린 것처럼, 한미일에서, 지금의 공로명대사의 이야기는, 매력이 있는 방식을 만들 수 없는 경우에는, 우선 첫째로 북한은, 어쨋든 미국과의 위험한 게임을 계속한다고. 모두에서 저(는), 2장 내지 3장의 카드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만, 그것은 전부 최대한의 한계까지는, 북한은 역시 사용한다는 것은 많이 생각되어질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카드를 남긴 채 양보를 한다, 혹은 뭔가 다른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들은 어렵다. 어쨋든 갈 수 있는 데까지 간다, 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한다, 어쨋든 끝까지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 사실은 조선어입니다. [가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말이 있고, 북한 사람들이 매우 좋아하는 표현입니다만, 지금까지의 그들의 방식을 보더라도, 그런 것은 자주 확실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역시 카드를 그들은 내 놓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놓으면, 상당히 긴장이 고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전부터의 의논이었던 레드라인, 한계선을 어디에서 그을 것인가라는 이야기에도 바로 관계되어진, 이야기가 됩니다만.

 

  단지, 저는 북한은 할 만큼은 하고, 그래도 미국과의 교섭은 불가능하다, 미국과 거래는 되지 않는 것으로 되었을 때에는, 그들이 전면적으로 양보를 하는 옵션, 선택지의 가능성이 역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온갖 계략을 다하는 자들이고, 어쨋든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해 봤지만, 안되었다고. 이 대로 진행되면 매우 위험하게 된다. 생존 그 자체가 지켜질 수 없다면, 포기하는 것이 하나의 방책.

 

  다른 하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연히 생각되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계속 분발한다던지. 원래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모두 내 놓아 버렸는데도, 더 앞으로 진행하는 것이 한 가지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더욱 더 저는 있음직 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제는 양보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해도,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 있다. 마음 속으로는, 이제 최종적으로는 이것은 양보할 수 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해도, 좀처럼 그 결단으로까지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물쭈물하는 시기가 자미 계속된다던지. 예를 들면, 플루토늄의 생산/추출에 손을 대어 버린 경우에, 원래, 그것을 도중에 그만두고 포기해도 괜찮다고까지 결심을 하고 있더라도, 바로 그것이 나오지 않는다던지.

 

  그 대로 가면, 저는 그것이 미국을, 혹은 국제사회를 매우 자극하는 것이 되어서, 그 정도가 되면 마침내, 조금 전부터 계속 말한 외과수술적인 공격, surgical strike가 옵션으로서 부상해 진다던지. 실제로 거기까지 행사할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2개의 시나리오가 가장 있음직 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이 전면적으로 양보한다. 두 번째는, 그 시기가 좀처럼 오지 않기 때문에, 마침내 미국은 군사적인 수단의 행사를 하나의 선택지로서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그 두가지는 아닐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혼다    칼루치씨.

 

정치적 결단나름/칼루치

 

칼루치  이즈미선생의 견해가 옳은 것이라면, 저는 낙담하고, 우울해 지겠지만, 그러나,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행하는 것은 확실히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어렵지는 않습니다.

 

  한국이 북(한)에의 군사력 행동에 대해서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북한이 미국의 군사력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무력행사의 가능성을 부정하더라도, 모두들, 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미국이 북한과 직접교섭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북한에게 조금도 양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은 그 대로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결단은 하룻밤 사이에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밤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 국무장관이 평양에 대해, 다음과 같은 메세지를 보낼 가능성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서울과 동경과 이야기를 끝낸 후, 당신들과 둘이서 만나려고 생각합니다만, 어떻습니까? 단, 조건이 있습니다. 둘이서 만나고 있는 사이에, 당신들은 원자로를 가동하지 않고, 사용이 끝난 핵연료의 재처리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라고.

 

  그리고, 일시와 장소를 결정합니다. 장소는 평양이외라면 어디라도 좋다. 그 모임에서 우리들은 북한에 대해서, [당신들의 요구는 알고 있습니다. 불가침 협정이지요]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불가침 협정을 줘도 괜찮다. 단지, 북(한)정권의 체제를 영원히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 법리에 따른다면, 정권을 타도하는 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북미관계정상화와 식량, 무역, 투자 등의 경제지원을 제시합니다. 북한의 경제적 곤란을 개선하기 위해서, 중국, 한국, EU와도 협력해 줍니다. 게다가 테두리 안의 합의를 재개합니다. 중유와, 경수로나 발전소를 제공합니다.

 

  이것들을 북한이 향수하기 위해서는,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사찰관을 받아 들이고, 고농축 우라늄에 의한 핵계획을 단념하는 것에 YES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거기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권한을 확대하는 새로운 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용이 끝난 핵연료를 즉각, 북한에서 국외로 옮기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한, 탄도미사일의 수출과 발사실험은 해서는 안됩니다. 이 두 가지는 간단히 검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이상의 탄도미사일의 배치와 제조를 원하지 않습니다. 통상 병력의 문제도 있습니다.

 

  쇼핑 리스트처럼 늘어 놓았습니다만, 실현될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가령, 내일, 교섭하기로 해서, 지금 말한 것을 (교섭상대인) 강석주 제1외무차관에게 나열하더라도 그는 쇼크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반대로 어느 것이 북한에게 있어서 좋은가라고 흥미진진하게 들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즈미선생의 견해가 옳지 않다느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정치적 의사의 문제입니다. 정치적인 결착의 의사가 있으면, 해결에의 구조는 보여질 것입니다. 지금의 단계에서 빠져 있는 것은 이 정치적인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혼다    이즈미씨, 반론은 있습니까?

 

일본은 납치문제때문에 정치적인 결단을 할 수 없다/이즈미

 

이즈미  아니오, 반론은 아닙니다만, 저는 정말로 지금, 칼루치대사가 말씀하신 것과 같은 방향으로 된다면 좋다고 매우 생각하고 있는 인간이고, 사실은 제가 어떠한 제안을 하고 싶은가 하면, 지금 칼루치대사가 말씀하신 것과 거의 같은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정치적인 의사, 정치적인 결단이 있고서 비로서 가능한 이야기라고 하면, 그러한 것을 어디에서 우리들은 발견할 수 있는 것인지? 평양에 있는 것인지, 워싱턴에 있는 것인지, 서울에 있는 것인지, 동경에 있는 것인지, 북경에 있는 것인지라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것일 거라는 것이 한 가지입니다.

 

  그것과 다른 하나는, 저는 별로 비관적으로 계속 있고 싶은 인간이 아니라, 어떻게든지 되지 않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만, 그러한 가운데에, 우리나라(일본)의 지금의 대응을 보고 있으면 매우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 일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

 

  일본에게는 북한에게, 핵문제에 대해서 그것을 해결로 이끌기 위한 인센티브로서 사용할 수 있는 레버리지(leverage, 받침대, 수단)라고 할지, 지렛대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것은 정상화이고, 혹은 정상화 후의 경제협력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북한의 체제는 생존할 수 없다고 조금 전, 공로명대사도 말씀하셨습니다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한 것을 제시하고, 당신들이 자세를 바꾸어서, 태도를 바꾸어서, 북한이 핵문제, 핵개발이란 것을 완전히 포기하면, 밝은 미래가 열리는 것과 같은 것을 우리들은 제시해서 북한을 바꾸어 가는 것이 저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지금의 일본의 분위기를 보고 있으면,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리라고 역시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본)정부가 할 수 없다는 문제보다도, 여론이 그것을 허용하는 것인지, 매스컴이 그것을 허용하는 것인지, 永田町(nagata-cho, 일본의 관청가로서 국회의사당 등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여의도가 가지는 의미와 같이 일본 정당, 또는 일본 의회(의원)으로 생각하시길)가 그것을 허용할 것인지. 전부 허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가라고 저는 생각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대응할 수단과 방법이 좀처럼 없다는, 반드시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 포지티브적(긍정적)인 방향으로 가져 가야만 한다고 강하게 생각합니다만, 상당히 어려운 것은 아닌가라는 것으로 다시 되돌아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혼다    여기에서, 저는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공로명씨. 한미일의, 이 연대, 매우 중요하다고. 이것은 다른 분들도 대체로 모두들 말씀하고 계십니다만, 특히 핵에 관해서는 한미일 각자가, 상당히 사실은 근본적으로 이해가 다른 것은 아닌가라고, 이러한 의논이 때때로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핵에 대해서의 관심이라는 것은, 9/11(동시다발테러)이후 바뀐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핵확산의 문제로서의 관심은 아닌지?

 

  한 편, 일본에 대해서는, 이것은 일본의 안전보장을 엄습하는 문제입니다.

 

  한국에 관해서는, 통상(재래식)병기에서의 위협이 이미 벌써 북한의 위협이 강하게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핵 문제라는 것은 그 만큼, 즉 일본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닌가라고, 이러한 의논이 사실은 일본에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상당히 있습니다만, 거기는 한국으로서는 어떤 식으로 보고 계시는 것입니까?

 

북의 위협으로 한국은 인질/공로명

 

공로명  그것은, 한국측에서 나 오는 여러 가지 의견 중의 어떤 부분을 받아들여서, 이러한 말을 사용해서 실례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매우 피상적인, 게다가, 이러한 경우, 자주 아카데미션(academician)은 저널리스틱(journalistic)하다고 말합니다만, 실례입니다만, 그러한 표현, 그러한 견해로부터 그렇게(그런 결론이) 오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핵이라는 문제는, 만약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큰 일이 된다는 것은, 진지하게 남북간의 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것은 이미 상식입니다.

 

  게다가 북한이 1개나 2개의 핵을 가졌고, 지금의 대포동 2호는, 겨우 태평양 근처에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미국에 대한 위협은 아닌 것입니다. 핵의 위협에 조우하는 것은 우리들, 한국, 조금 확대하면 일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첫 번째는 한국인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여러 기회에, KBS의 심야토론 중에서도 저는 강조해 왔고, 한국쪽에서도 최근, 정부의 지도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자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인질이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다지 한국쪽은 그렇게 로맨틱한 생각은 아닙니다. (웃음) 진지합니다.

 

혼다    이즈미씨.

 

왜, 한국은 남북비핵화 선언의 이행을 요구하지 않는 것인가/이즈미

 

이즈미  죄송합니다, 공로명대사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만.

 

  지금 말씀하셨던 것은 저도 그럴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은 확실히 그러한 의견, 그러한 것을 생각하고 계시는 분들이 한국에 많이 계신다는 것도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데도 우리들이, 적어도 제 개인이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왜 한국은 지금, (남북)비핵화공동선언을 확실하게 이행해 가자고 하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 것인지?

 

  이것은 확실히, 공로명대사가 비핵화공동선언 후의 핵통제위원회를 하셨고, 북한측은 그것은 반대했다고 할지,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되지 못 했다는 것은 저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러한 때이기 때문에, 한국측에서 적극적으로, 남북간에 91년에 맺은 비핵화공동선언을 확실하게 이행하고 싶다고, 그것을 말해 주길 바라고, 그것을 주장해 주길 바라고, 그것을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은 주위의 국가들은 전부, 물론 협력, 지원하는 것입니다만, 한국이 그 점에 대해서 잠자코 있으면, 결국에는 누구도 서포트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지금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 한국은 비핵화공동선언을 열심히 해 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실현될지 어떨지는 별개로 해서입니다. 그러한 부분이, 예를 들면 한국이 북한의 핵개발, 핵보유라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세 생각하고 계시는 것인지 어떤지를 의심하게 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다른 하나는, 한국은 왜 IAEA의 추가의정서에 아직 사인을 하지 않는가라는 것도, 밖에서 보면, 이해하기 상당히 어려운 부분도 있기 때문에, 만약 그 점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길 바랍니다.

 

공로명  두 번째인, IAEA의 (무엇이죠)?

 

이즈미  추가의정서.

 

공로명  하지 않았습니까?

 

이즈미  하지 않았습니다.

 

공로명  아, 그렇습니까. 음, 이것 좀, 저, 몰랐습니다만, 한국이 추가의정서를 하는가 하지않는가가 한국의 비핵화와, 현재 실제적으로는, 그다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지금, IAEA의 매우 엄격한 감시하에, 3개월마다 감시관이 와서 체크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부, 경수로인 것입니다만, 그 중의 2개는 캐나다식의 원자로이고, 이것은 비교적, 핵연료봉을 꺼내서 뭔가 재처리를 한다던지, 그러한 것이 매우 쉽기에, 이것은 IAEA의 매우 엄격한 감시하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비핵화라는 것은, 이것은 이미 철저하게 하고 있고, 우리들도 1970년대에 핵보유를 결정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공개된 것과 같은 비밀같은 것입니다만, 박정희대통령 때에 미국의 제7사단이 한국에서 철수하고, 또 한 여러 가지로 미국쪽에서도, 대통령선거가 있을 때에 한국에서의 미군의 삭감이라던지 철수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매우 안보상 불안정한 상태에 빠져 있던 어느 시기에, 당시의 박정희대통령이 한국의 핵개발을 시도한 적이 있고, 프랑스에 재처리시설을 주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미국은 한국을 매우 강하게 설득했습니다. 첫째는, 만약 한국이 핵개발을 하면, 북한에게 핵병기를 가질 정당한 이유를 준다. 만약 북한이 가지면, 일본이 가지고, 그리고 대만이 가진다. 그렇게 되면 확산금지체제라는 것은 없어진다. 한국은 그래도 핵을 보유하면서 안보를 확보할지, 그렇지 않으면 (한미동맹의) 우산 아래에서 안보를 확보해서, 거기에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것이 없는 길을 선택할지를 보여서, 한국은 YES, 비핵화로 가겠습니다고, 손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의 한국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북한은, 그것이 없습니다. 경제를 발전시킬 경제도 지금은 없어서, 평화도, 그들에게는 그다지 눈에 들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세계로부터의 원조가 줄어드는 것도 그다지 없다.

 

  2월 25일 콜린 파웰구무장관이 서울에 오셔서, 지금의 핵문제가 있는 북한에 대해서, 미국은 계속해서 인도적인 식량원조는 계속한다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일본은 식량원조는 요 2년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한, 당분간 할 예정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그럼, 핵에 대해서 왜 그렇게 단호한 자세를 보이지 않는가하는 것은, 저는, 그런데, 그러한 식으로 밖에서 인시하고 있는가라고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취임연설 중에서도, 북한의 핵에는 반대한다고 명확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계속해서 햇빛정책을 계승해서 하겠지만, 3가지의 전제, 원칙을 나타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북한에 대해서 우리들은 상호주의의 입장을 취한다는 것을 확실히 나타내고, 이른바 햇빛정책이 비판의 대상이 된 점을 보완하는 자세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앞으로, 5월까지의 사이에 우리들은 확실한, 이른바 미국정부가 말하고 있는 볼드(bold, 대담)한 어프로치(접근)이 대담한 솔루션(해결)을 가질 수 있는 로드맵이 생기면, 한국은 기꺼이 참가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3국간의 매우 긴밀한 제휴가 필요하다는 것도 노무현대통령이 강조하고 있고, 지금의 이라크전쟁에서도 한국정부는 (미국을) 지지하면서, 공병부대를 이라크에 파견하는 것도 말씀하셨고, 미국의 동맹국으로서의 자세를 분명하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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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미일동맹과 북한의 핵(6-2)

혼다    이즈미씨에게 묻고 싶습니다만, 이제부터 앞으로, 가는 길로서 어떤 길이 있고, 그리고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형태로 정리를 하면서 이야기해 주시면, 청중 여러분들에게는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압력과 당근이 해결에의 양축이지만, 현상태는 비관적/이즈미

 

이즈미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이러한 길이 좋을 것이라는, 한 가지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러나, 그것은 아마 거의 불가능한 것은 아닌가라고, 저는 상당히 난관적이기는 커녕, 상당히 비관적으로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조금 전 포네만씨가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한편으로 압력을 가한다, 또는 한편으로 확실히 억제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인센티브(보상/당근)를 주는 것이, 북한에게 핵개발을 포기시키는, 또는 이러한 위험한 게임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저도 완전히 찬성입니다. 아마 그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상당히 강력한 압력이 아니면, 우선 의미가 없다. 동시에, 다른 한편의 인센티브라는 것은, 만약 북한이 핵개발 등을 그만두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멤버가 되었을 때에, 그 나름대로의 취급(대우)를 받는다, 혹은 경제도 부흥할 수 있다, 또는 국제사회로부터 확실히 인정받을 수 있다, 그 후에, 체제도 보증되고, 확실히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인센티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 하면, 이것은 상당히 매력이 넘치는 인센티브가 아니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상당히 강력한 압력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상당히 매력이 있는 인센티브라는 것, 이것이 함께 되었을 때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혹은, 아마 그것밖에 길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아마 이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지금의 한미일을 보면, 물론 이제까지의 의논에서, 한미일을 중심으로 해서 매우 긴밀한 협의와 협력에 의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가려고 하는 것에는 저도 전적으로 대찬성입니다만, 실제로는 매우 어렵다고. 이것도 의논입니다만, 각자가 느끼는 위협 인식이 차이가 나거나, 혹은 안전보장상의 이익이 다르다는 것은, 서로 외국이기 때문에 당연하고, 한미일이 완전히 일치하는 형태로 대응한다는 것은, 특히 위기적인 상황을 맞이했을 때에는, 사실은 저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압력을 가한다는 의미로 말하자면, 지금은 미국이 가장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일본도 그쪽 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한국은 그것에 대해서 상당히 소극적이다. 따라서, 한국이 이 쪽과 하나가 되어서, 3자가 상당히 강력한 압력이 북한에게 가하는 방향으로 되면, 그것은 하나의 압력이라는 면에서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거기까지 한국이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인센티브를 매력이 넘치는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이것은 주로 일본, 한국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연히, 미국도 최소한 그것을 인정하는, 혹은 미국도 무엇인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라고 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지금의 부시정권이 그러한 인센티브를 제시한다는 것을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

 

  또는, 일본입니다만, 원래라면 일본이 가장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고. 방금, 야나이대

사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만, 작년 9월의 북일의 평양선언으로 결정된 것은, 북한이 확실히 일본의 안전보장상의 우려라는 것을 해소하는 것이라면, 따라서 북일정상화라는 것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분명히 기여하는 것이 확실히 담보된다면, 일본은 정상화를 하고 대규모의 경제협력을 한다고. 이 대규모의 경제협력이라는 것이 인센티브가 됩니다만, 지금 그것을 일본이 말하려고 하는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는 이유로, 따라서 잠재력으로서 가장 매력이 넘치는 인센티브를 제시할 수 있는 일본조차도, 그것을 제시할 수 없다.

 

  하물며 미국이 그러한 것에 찬동해 줄지 어떨지 모른다는 것이 되면, 역시 같은 것으로, 매력이 넘치는 인센티브라는 것도 형성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한편으로 압력도 효과가 있는 압력은 가하지 못하고, 다른 한편으로 압력을 가해 북한이 태도를 바꾼 경우의 인세니브도 제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되면, 우리들은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 노력은 모두 다 어중간하게 끝나 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고, 따라서, 상당히 괜찮은 방법이란 것은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혼다    좋은 방법이 없는 경우에, 그럼 어떻게 할지라는 이야기는, 좀 더 후에 이즈미씨에게 되돌아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지금, 손이 올라간 순서대로, 포네만씨. 그리고 그 후에 공로명씨. 포네만씨 부탁드리겠습니다.

 

포네만  매우 몸을 옥죄는 듯한 분석이 이즈미선생으로부터 있었습니다. 합의할 수 있는 점도 상당히 있었습니다. 북한에의 대책으로, 우리들의 단결이 얼마나 어려운 가 하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우리들 3개국에 있어서 利害의 차이가 있다고 지적되었습니다. 영원한 낙관주의자로 말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더라도 협조, 단결에의 수단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압력과 출구(인센티브)의 양축의 전략을 설정할 때에, 압력에는 한국이 소극적, 출구에서는 미국이 난색을 나타낸다고 하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차이를 조정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한국은 미국이 이라크전쟁 후에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접근방식에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만약 일본과 한국이 강력한 억제효과와 방위조치를 두텁게 하는 것과 같은 보다 강한 정책을 취할 수가 있다면, 미국은 3개국의 일치단결을 위해서, 한일이 말하는 인센티브를 인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만.

 

혼다    공로명씨.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본의 경제협력이 북에의 인센티브/공로명

 

공로명  생각나는 것을 말하면, 우선 지금, 어떻게 해서 평화적, 외교적으로 북한에게 핵을 포기시킬지, 어떻게 해서 교섭의 입구에 들어갈지라는 문제인 것입니다만, 사실은 저는, 지금의 (미국의) 공화당정부가 멀티 래터럴(다국간)인 플레임 워크(테두리 안) 속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어하는 것에는, 사실은 약간, 진실일까라는 느낌이 듭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자주 지금의 공화당정권을 일방주의(단독행동주의, unilaterlism)라는 것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만, 그 미국이, 미국 혼자의 힘이 아니라 이 문제는 여러 나라가 관련되기 때문에 여러 나라들과 보조를 맞춰서 하고 싶다고 하는 국제협조적인, 가장 국제협조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매우 의의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단 문제는, 이 공동전선을 정리해 가는 것은 큰 일입니다, 사실은. 중국은 중국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고, 러시아는 러시아의 생각이 있다. 지금, 이즈미씨는, 우리들, 한미일 3국의 보조의, 톤의 차이, 페이스의 차이를 말씀하셨습니다만, 한가지 한국의 입장을 말하면, 저는 절대로 지금의 새로운 정부를 대별할 수 있을 지식도 없고, 그러한 입장도 아닙니다만, 확실히 북(한)을 핵에서 단절시킬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명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명제를 평화적, 외교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해결방법이 있다고, 그 출구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3국이 서로 의논해서, 합의시키고, 미팅 오브 마인드(합의)가 있으면, 한국도 기꺼이 이것에 참가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즈미씨가 말씀하셨던, 한국은 좀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것은, 압력을 가하는 쪽이겠죠. 압력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외과적 수술을 할거야, (우리들 말을) 듣지 않으면 위협할거야라는 것입니다만, 한국정부는 지금까지, 아니 그것은 평화적, 외교적으로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즈미씨는)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말씀하셨지만, 새로운 한국정부에는 매우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적인 해결방법이 있는 것이라고, 서로 합의하면, 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 현실적인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북한이 핵을 단념했을 때, 북(한)이 사는 길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른바 포네만씨가 말했던, EXIT(출구)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 한가지는, 일본의 북(한)과의 국교정상화입니다. 북(한)이 살기 위해서는 경제를 재생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경제를 재생시킬 돈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가장 큰 부분은 역시, 북일국교정상화 뒤에 올 경제협력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것이고, 북한도 거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것에 일본이 움직일 수 있도록, 미국과 한국도 보조를 맞춰서, 게다가 중국, 러시아도 함께 보조를 맞춰 주면, 이것은 훌륭한 해결방법이 나 온다, 현실적인 방법이 나온다.

 

단지 문제는 북한인 것입니다. 북한이 왜 미국과만, 2자로,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인가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자신들의 위협의 근원은 미국이라는 인식입니다. 1950년에 전쟁(한국전쟁)을 일으키고 타격을 받은 역사로부터의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미국과만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이해할 수 있을 것같은 면이 있는 것은, 1996년에, 한국과 미국은 4자회담이라는 문제를 북한에게 제기했습니다. 4자회담이라는 것은, 한반도문제, 특히 휴전협정의 장래를 어떻게 할지라는 것으로, 미국과 중국과, 그리고 남북(한), 이 4자의 회담을 하자는 제안을 클린튼대통령과 김영삼대통령이 했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에, 북한의 첫 반응은, 왜 4자인가?, 3자로 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2자로, 그리고 나서 한국이 참여하는 3자로 합시다. 왜 중국도 들어가는가?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 미국과, 그리고 한국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한국은 옆에 두고, 미국과 둘이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중국까지 온다면, 1대 3의 교섭이란 것은 매우 부담이 크다는 생각이 있다. 왜 그러한 생각을 하는가 하면, 역시 북한은 고립되어 왔고, 자주노선을 추구해 온 결과, 그러한 정치문화로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 배경에 있다.

 

그러므로, 이 북한에게 멀티 래터럴적인 방식이 당신들에게 좋은 것이라는 것을 설득하는 것이 앞으로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조금 전부터도 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들에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여기는 역시, 상당히 매력이 있는 방식을 우리들은 만들어서, 이것을 북한에게 보이는 것이 필요해 진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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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미일동맹과 북한의 핵(6-1)

핵위기해결에의 해법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사회 그럼 지금부터 심포지엄을 재개하겠습니다. 혼다씨, 부탁드리겠습니다.


혼다 후반부의 주요한 테마, 이제부터의 대책이라고 할지,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지금부터 의논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후에, 회의장의 여러분들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는 시간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라는 의논을, 좀 자극적인 질문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94년의 테두리 안의 합의가 되었을 때에, 이것은, 북한은 어쨋든 붕괴할 것이고, 어쨋든 곧 붕괴하기 때문에, 테두리 안의 합의의 내용은, 불완전한 내용이 있더라도, 그대로 상관없다는 의견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 당시, 여러 가지로 취재를 할 때에도, 미국, 한국, 일본에 그러한, 테두리 안의 합의는 그것으로 괜찬다는 것은 별개로 하더라도, 북한은 어쨋든 곧 붕괴할 것이라는 견해가, 그 당시에, 상당히 많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후, 아무래도 그렇게는 되지않았다. 클린튼정권 때에는 오히려, 후반에는, 북한을 오히려 붕괴시키지 않는 편이 낫다는 형태로 정책을 한미일 모두 세우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전의 칼루치씨, 처음에 말씀하셨던 프레젠테이션(이야기)으로 말하면, 제4단계. 부시정권이 되고, 지금 현재는 그것이 또 경향이 바뀌고 있는 것같습니다. 북한이 붕괴해도 상관없다고, 이러한 전제에서, 혹은 정책을 생각하고 있는지 아닌지, 이 것부터. 결국, 94년 당시에는 사실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지금의 부시정권의 정책은 어떠한 것인지, 이 부분부터 의논을 진행해서,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가라는 것으로, 이렇게 진행해 가고 싶습니다만. 이 부분은 역시 칼루치씨에게 묻는 것이 가장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의 진상부터, 어떠했습니까?



한반도의 파국 회피가 94년 교섭의 안목/칼루치

칼루치 94년 당시를 되돌아 보면, 김정일(총서기)의 권력후계문제, 김일성(주석)의 병상, 경제의 악화 등이 겹쳐서, 북한체제는 그렇게 오래 견디지 못 할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CIA(미중앙정보국)의 국장은 북한체제는 붕괴한다고 예측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과 정책결정 속에서 체제붕괴라는 상정은 없었고, 테두리 안의 합의도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화당의 상원의원에게 테두리 안의 합의에의 지지를 바랄 때, 그는 반대론자였습니다만, 저에게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당신은 영리하구나, 북한이 붕괴할 것을 알고 있어서, 테두리 안의 합의에 의해서 제공할 예정인 경수로 2기는 건네주지 않고도 끝난다. 그러므로 합의한 것이다. 그러한 것이라면, 지지를 생각해도 좋다" (웃음) 저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현면하지 않습니다" (웃음)

북한체제가 경수로 건설전에 소멸할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건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늦어졌고, 아직도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합니다. 체제소멸을 염두에 두고 합의를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의장이 말씀하셨던 것 중에 맞다고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테두리 안의 합의 후, 서울을 방문해서, 공로명대사도 기억하고 있어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른바 북한의 소프트 랜딩(유연한 해결)과 하드 랜딩(강경 결착)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 때에, 친구인 한국인 기자 2사람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왜, 당신은 북한에 대해서 그렇게 소프트한가라고. 하드 랜딩을 바라는 욕구를 느꼈습니다.

진실을 이야기하면, 미국에 있어서의 최선의 귀결은 북한이 비행을 계속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착륙하지 않으면. 물론, 연착륙하면 좋겠습니다만, 그것은 보증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조이면, 하드 랜딩을 초래해서, 한반도가 비극적인 파국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게임에 미니 맥스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추정되는 최대한의 손실을 최소한으로 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채용했습니다. 즉, 이 말도 안되는 체제가 소멸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최악의 결과를 피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악이란 북한이 붕괴할 때에, 남한을 길도우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북한에의 경제원조 등의 지원책을 선택했었습니다. 북한을 윽박지를는 것이 아니라, 존속을 인정하는 전략입니다. 중유공급 등의 지원책을 취한 것입니다. 체제소멸을 전제로 정책이 행해졌다는 정책은 빗나간 추측입니다.



혼다 공로명씨로부터 들어야 할 때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포네만씨가 손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포네만씨 후에 공로명씨가 말씀해 주십시오. 포네만씨, 부탁드리겠습니다.



포네만 칼루치대사의 이야기에 2가지 보충하겠습니다.

우선 첫째로, 북한체제가 얼마나 존속할지, 북한은 핵병기를 1, 2개 가지고 있는지 어떤지에 관해서 다양한 분석이 있습니다만, 정책입안자는 낙관적인 추측에 의거해서 정책을 수립해서는 안됩니다. 10년전조차도, 북한은 이미 1개나 2개의 핵병기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상정했던 것처럼, 칼루치대사가 지금 지적했습니다만, 북한은 테두리 안의 합의가 완전 실시될 때까지 존속한다고 우리들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역사를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위트씨를 포함한 우리들 3인은 이 수년, 94년 위기의 역사를 그린 문서작성에 몰두해 왔습니다. 수개월후에는 출판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시기, 독일은 분단에 종지부를 찍고, 약화되고 뒤떨어진 동독을 흡수했기 때문에, 매우 곤란한 조정기에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정책의 참고로 했었습니다.

한국의 김영삼대통령이 95년 7월, 워싱턴에서 클린튼대통령과 행한 회담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북한의 랜딩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였습니다. 그 결과, 소프트 랜딩이 한미양국의 이익에 합치한다고 합의했습니다.



혼다 공로명씨, 좋습니까?


한반도에 공존 공생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 최상/공로명

공로명 조금 순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북한의 이른바 내부붕괴, 그리고 폭발/폭발하는 것과 같은 익스플로젼, 어느쪽이든, 소프트 랜딩과 하드 랜딩의 양쪽입니다만, 어느 쪽도 관계국에게는 그다지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거의 다수의견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북한의 출구를 찾아내서, 그 출구로 이끌어서, 어떻게든 해서라도 한반도에 평화적인 공존공생, 함께 살아가는 공생, 공생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한반도문제해결의 최상이라는 생각에 이른 큰 이유의 하나입니다. 물론 하드 랜딩이나 소프트 랜딩의 이야기는 심각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북한은, 적어도 중국이 크게 변하지 않는 한, 북한의 생존은 담보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거기에 덧붙여서, 제가 소련에 있었던 1990년에, 한국과 소련은 국교를 정상화했습니다. 그 때, 소련 외무부의 한반도관계의 전문가들은, 일부는 한국과의 국교정상화를 매우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그 추진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 결과, 한반도에 러시아의 밸런스가 한국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서,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줄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복원시켜야만 한다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내부에 있어서, 그것은 아시는 바와 같이, 3년전의 북한에 대한 이와노프외무장관의 방문이라던지. 현재는 오히려 러시아는 매우, 어떤 면에서는 노골적으로 양쪽의 밸런스를 취한 중간적인 등거리외교를, 한반도에 대해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국이 저런 식으로 뒤에서, 북한이 지금처럼 있어 주는 편이 자신들의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에는 두 개의 코리아 속의 밸런스를 균등하게 취하려고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소프트 랜딩이든 무엇이든, 당분간, 북한은 하늘을 날(존속할) 것으로 우리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의 핵 해결에 있어서도, 우리들은 그것을 전제로 해서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혼다 일본측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만, 야나이씨.

 

북의 대화재개가 급무, 중국/러시아의 협력도 불가결/야나이

 

야나이 고맙습니다. 확실히 1994년의 북미합의 때에는, 2003년쯤, 결국 지금쯤에는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비공식적인 예측도 있었습니다. 단, 조금 전, 칼루치씨로부터도 이야기가 있었던 것처럼, 이것이 정식 정책에 반영되어진 적은 1번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경우에도 그러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우리들 세대정도까지는 제2차대전 중의 극심한 배고픔에 대한 기억이 아직 있기 때문에, 결국 배고프게 되더라도 견딜 수 있다는 감각이 있기 때문에, 북한의 경제가 매우 나빠져도, 의외로 견디어 내지는 않을까라는, 이것은 감각적인 것입니다만, 그러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쨋든, 정책으로서는, 역시 북한의 저러한 정권이 존속한다는 것을 전제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라고. 이것이 가능한 해가 적어지도록, 모두들 노력한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에 관한 것입니다만, 조금 전 말씀드린것과 같이, 역시 일본, 한국, 미국의 협조/협력관계라는 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그것에 덧붙여서, 역시 중국, 러시아의 존재, 중국, 러시아의 협력이란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핵문제에 대해서는 중국도 러시아도, 북한의 핵무장이란 것에는 반대한다는 것을, 물어면 말합니다만, 다만, 반드시 강하게 반대하는 자세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이것은, 중국/러시아도 포함해서, 모두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서는 반대인 것을 우선 확실하게 한 후에, 다만 한편, 북한의 눈으로 보면, 특히 김정일이 자신의 정권을 어떻게든지 지켜자, 평안무사하게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매우 강하기 때문에, 현재, 미국의 부시정권은 북한과는 교섭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동시에 대화는 한다고 하는 것으로, 거기에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는 있는 것입니다.

 

작년 9월에 고이즈미총리가 평양에 가서, 평양선언이라는 것이 나왔습니다. 그 중에서, 핵을 포함해서 안전보장의 문제도 이야기하자면. 한편으로, 일본으로서는 경제협력을 하면, 그 대화(핵을 포함한 안전보장 문제)에도 들어갑시다는 것으로, 결국 북한에게 밝은 장래라는 것을 보이면서, 국교정상화 교섭을 하려고 하는 것으로, 일단 되었던 것입니다만, 유감스럽게도, 납치문제라는 심각한 상황이 되어서, 현재는 대화가 거의 끊어져 있는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확실히 UN도 포함해서, 또한 러시아, 중국도 포함해서, 다국간의 대화 속에 북한이 나오면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현실적인 문제로서는, 북한은 역시, 우선은 미국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미국이, 북한이 북미합의를 깬 이상, 합의에 되돌아가기 위한 댓가는 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것도 또 한 당연한 것입니다만, 그러나, 대화가 끊긴 상태인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다국간의 대화도 시야에 두면서도, 가능한 것부터, 이것은 한국이라도 미국이라도 일본이라도 좋습니다만, 2국간의 대화를 재개하는 노력을, 가능한 빨리 할 필요가 잇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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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미일동맹과 북한의 핵(5)


북은 현실적, 위험선을 넘지 않는다/공로명


공로명 칼루치씨의 마지막 부분과 관련해서, 제(가), 추가하고 싶은 것은 제가 모두에서 몇 개인가의 가정이 있다고 말씀드린 것 중에서, 지금, 북의 입장으로 봐서, 핵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핵이 빵(식량)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이것을 가지고 정권의 생존의 확실한 보증, 단보, 북이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만, 단보를 얻고 싶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라크전쟁을 보고, 북한으로서는 매우 우려를 깊게 하고 있다, 불안을 깊게 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미국이 이라크에 관여하는 사이에, 북한이 바보 같은 모험을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것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예방적 조치를 한다는 것이 보도되고 있습니다만, 예방적인 조치는 억제력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만, 단 저의 생각으로는, 북은 이른바 위험선을 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위험선을 넘었을 때에는, 미국이 매우 강하게 반격해 올 것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북한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는 우리들에게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해타산에 있어서 매우 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입장에서, 과거의 경험으로 우리들이 읽어 봐 지도, 그 위험선은 넘지 않는다. 그럼, 어디가 위험선인가? 현재의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사용이 끝난 연료봉의 재처리, 거기가 이른바 위험선의 시작인가? 대포동 2호의 시험발사를 하는 것이 시작인가? 그 부분은 좀 더 군사전문가와 핵전문가의 생각을 저는 듣고 싶습니다만, 조금 전, 이즈미선생께서 위험라인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만, 미국은 어디를 위험라인, 북이 정말로 핵에 발을 내딛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10년 전, 우리들 한국은 (북의 핵병기는) 1개 2개 있는 것은 아닐지라는 의혹을 끊임없이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미국은, 북한은 핵의 출입구에 들어가 있다, [New clear threshold]에는 들어가 있지만, 가졌는지 어떤지는 상당한 의문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최근 미국의 전문가와 국방관계자들이 말하는 말 중에는, 2개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추정을 해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8개가 되면, 전략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이것은 정말로 핵을 보유하는 단계로 간주하는 식으로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그곳의 위험라인이 어디에서 선을 끄을 것인지, 앞으로의 의논의 논제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혼다 미국대 한국이라는 느낌이 상당히 반복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슬슬 이즈미씨, 부디 부탁드립니다.



이라크전쟁 중에는 북은 도발하지 않는다/이즈미


이즈미 지금 공로명대사가 말씀하셨던 마지막 레드라인이란 것은, 정말로 한계선이 어떠한가라는 이야기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전에 하나 더 말씀하신 것이 잇고, 저는 찬성이기에 말하고 싶습니다.

저도 공로명대사와 마찬가지로, 이라크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에 북한이 무엇인가 도발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북한이 취해 온 과거 50년간의 행동을 되돌아보면, 하여간 북한은 도발적이고, 본격적인 전쟁부터, 게릴라를 파견하고, 테러를 하는, 온갖 나쁜 일은 모두 해 온 듯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언제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만, 그러나 그 반면에, 일관해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전면적인 군사적인 충돌에 이를 위험성이 있다, 혹은 전면적인 군사적 충돌로 급변해 갈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북한이 취해 온 태도는 극히 신중했습니다. 오히려 겁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신중하고 억제해 온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들은 올해가 한국전쟁이 끝난지 50년이라는 것을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올해 7월 27일로, 한국전쟁이 휴전상태를 맞이한 50년이 됩니다. 50년간 전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반도에 대해서는, 내일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이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내일이라도 북한은 전쟁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과거 50년간 계속해서 말해져 온 지역입니다만, 그러나, 50년간, 북한은 전쟁은 일으키지 않았고, 우리들의 눈으로 보면, 몇 번인가 찬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고 생각되어집니다만, 그러한 절호의 기회를 살리는 것도, 사실은 북한은 해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보면, 그러한 신중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지금, 미국이 일방적으로 전쟁을 하고 있을 때에 도발적인 행동으로 나오면, 원래 전쟁을 하고 있을 때에 보통의 신경으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얼 만큼 강경한 반응이 되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을 당연히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의 입장에 서서 보면, 이라크전쟁 사이에 미국을 도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 되고, 과거의 북한이 취해 온 흐름을 보면, 저는 역시 이라크전쟁 사이에 북한이 핵문제에서, 플루토늄의 추출에 들어간다든지, 혹은 미사일을 발사하는 듯한 매우 강한 도발행위는 취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혼다 지금, 포네만씨가 손을 들고 계시기 때문에, 포네만씨에게 발언권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그 전에 칼루치씨로부터 의문이 나왔고, 저는 거기가 매우 중요한 또 다른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북한이 어떻게 받아들여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이라크 후에 미국이 군사노선을 취할지, 외교에 중점을 둘지. 외교라는 것은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포네만씨는 거기에도 관계된 발언을 해 주시겠습니까.



레드라인을 명확하게 하고, 넘은 경우의 조치를 빨리 결정/포네만



포네만 그렇게 말씀하신대로 그 대로입니다.

우선, 현재의 이라크전쟁의 영향에 대한 답변으로, 공로명대사와 제가 공유하고 있는 전제 조건, 즉 극히 북한은 현실적이라는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라크문제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북한은 어디까지나 냉정한, 안전보장상의 분석에 근거해서 할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그리고, 전혀 반대의 방향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의 전쟁이 얼마나 빨리 끝내는 가에도 의합니다. 가령 북한의 수뇌진이 미국의 압도적인 행동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핵병기를 소유하는 것으로 판단해서, 미국의 눈이 북한을 향하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가능한 빨리 그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플루토늄의 추출과 병기화에는 시간이 걸리는 이유로, 그들이 시간적으로 무리라고 판단하면, 사담 후세인에 대한 미국의 압도적인 전쟁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위험라인을 넘어 서는 것은 단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만, 최악의 케이스의 시나리오를 상정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사용이 끝난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병기를 만들어 버리는 사태입니다.

그렇게 하면, 공로명대사가 지적하신 레드라인, 위험선은 어디인가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위험선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저는 3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레드라인이란 것은 상대에게 명백한 형태로 알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레드라인을 설정하는 목적은 억제효과에 있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어디가 위험선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상대는 어느 시점이 위험선을 넘어 서게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억제효과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의 레드라인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함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레드라인은 명백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새로운 레드라인을 설정하자는 제안이 있습니다. 이것은, 플루토늄의 분리, 추출이 아니라, 제3자에게의 공여의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은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3자에게 건네졌는지 어떤지, 우리들은 반드시 알 수가 없습니다. 매우 소형의 소규모의 플루토늄이 되면, 그것에 주의가 미치는데 몇 개월, 몇 년이나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유감스럽게도, 비참한 핵폭발을 세계의 여기저기에서 보게 되는 사태가 됩니다.

세 번째는,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상대가 위험선을 넘어서고, 우리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면, 우리들의 신용과 억제능력은 無가 됩니다. 그러므로, 레드라인을 넘은 경우에 우리들은 무엇을 할지를 결정해 두어야만 합니다. 어느 쪽이든, 위험선은 억제력이 메리트이기 때문에, 넘은 경우에는 그 결과는 이렇게 된다, 가장 심한 것은 이렇게 된다고 정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되풀이 말합니다만, 넘어선 경우의 대응을 결정해 두어야만 한다. 의미와 신용성을 가질 수 있는 레드라인을 위해 동경(일본을 의미), 서울(한국), 워싱턴(미국)은 긴밀한 협의를 해야만 한다.



혼다 포네만씨 자신은, 그 레드라인을 어디에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까?

레드라인은 플루토늄의 추출/포네만


포네만 제 자신은, 8000개의 사용이 끝난 핵연료봉에서의 플루토늄의 분리, 추출을 레드라인으로 합니다. 그 전의 단계는, 우리들의 집단안전보장에 큰 해를 주는 듯한 사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사용이 끝난 연료봉을 (재처리시설에) 이동시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한, 레드라인으로 하지 않습니다. 플루토늄의 분리, 추출 후의 단계도 레드라인이 되지 않습니다. 플루토늄의 추출이 레드라인입니다. 추출되어 버리면, 병기화되거나, 수출되거나 하는 것을 저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용이 끝난 연료봉의 이동추적이 중요하다/칼루치


칼루치 저는, 좀 동료(포네만)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싶습니다. (웃음)

그가 말한 사용이 끝난 연료봉의 이동과 재처리의 문제입니다. 그렇게, 쉽게 생각해도 괜찮은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확인하고 있는 방사화학연구소(영변)가 아니라, 다른 비밀 시설에서 재처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용이 끝난 연료봉의 이동을 경시하면, 잘못되게 됩니다. 간단한 시설일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라늄농축 핵개발의 소재지도 알고 있지 않습니다. 확실히, 사용이 끝난 핵연료봉의 저장시설에서 트럭을 눈으로 보면서도, 예의 재처리시설(방사화학연구소)이 방사성물질을 취급하기 시작했다(재처리)고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만, 그러나, 플루토늄의 추출을 경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라면, 사용이 끝난 연료봉이 어디에 어떻게 이동해 가는지라는 것도 걱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요?



포네만 당신은 언제나 내 인생의 방해꾼이 되어 주는군요, (웃음)

제가 말한 것은, 사용이 끝난 연료봉을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플루토늄의 추출을) 레드라인으로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사용이 끝난 연료봉을 (행방을) 놓쳐 버리는 것입니다. 칼루치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놓쳐 버리면, 확인된 재처리시설(방사화학연구소)에서 재처리되는지, 우리들이 파악하고 있지 않는 다른 시설에서 될 것입니다. 사용이 끝난 연료봉의 행방을 알 수 없다, 또는 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되면, 이 단계는 레드라인설정의 중요한 요소로 됩니다.

덧붙여서, 칼루치씨가 저의 입장을 더 난처하게 만들기 전에 말하고 싶은 것은, 사용이 끝난 연료봉이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도, 재처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들이 자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지표(수단)가 있다면, 레드라인은 플루토늄 추출에 근접하는 단계까지 물러설 수 있고, 사용이 끝난 연료봉의 소재불명에 대한 우려도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무력행사에 韓日은 동의하는지 어떤지/칼루치



칼루치 더욱 더 난처한 난제를 던지겠습니다. (웃음)


만약 북한이 재처리를 한 경우, 우리들의 대항조치가 무력행사라고 하면, 예를 들면 재처리시설을 공폭한다는, 이것은 10년전의 계획이었습니다만, 동경(일본)과 서울(한국)에 협의하러 가서, 동의를 받지 못 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질문에 당신의 대답을 들은 후, 일본, 한국의 동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미국은 무력행사에 대해서 한일 양국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어떨지라는 점입니다.



포네만 대답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웃음)



실로 이즈미선생이 말씀하신 것에 되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3개국이 합의할 수 있는 여지를 찾아낼 수 있으면 된다. 야나이대사가 명쾌하게 지적하셨던 것처럼, 일본은 직접적인 위협이 있습니다. 한국도 있습니다. 그리고 9/11(동시다발 테러) 이후, 미국에도 직접적 위협이 있는 것이 명확해 졌습니다. 그와 같은 수단이 필요로 되기 전에, 합의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당신(칼루치)은 더 이상 질문하지 마세요. (웃음)



혼다 공격은 최대의 방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먼저 질문을 진척시켜 가서, 방어하는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단, 지금, 나오고 있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 (핵관련시설에 한정해서 공격하는) Surgical attack(외과수술적인 국부공격)이라는 10년전인 94년 위기 때에, 미국의 클린튼정권내에서 계획되어졌던 북한의 핵시설을 갑자기, 공폭하는 옵션(선택지). 이것이 앞으로도 있을 수 있는지 어떤지, 혹은 지금, 정권내에 그와 같은 옵션도 One of them(몇 가지 중의 하나)으로서 있는지 어떤지라는 것도 포함해서의 이것은 의논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을 들고 계시는 순서대로, 공로명씨.


미의 무력행사에 반대, 중국 등 다국간 협의에서 해결을/공로명



공로명 2가지 있습니다만, 첫째는, 봉인이 뜯어진 사용이 끝난 핵연료봉, 약 8000개입니다만, 이것이 Out of sight, 우리들의 눈에서 사라졌을 때 어떻게 되는가라는 이야기이네요. 어딘가의 지하시설에서 할지도......

이것은, 위성사진 등으로 감시 가능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 전제입니다만, 그 부분이 첫째입니다. 그리고 지금, 최후의 레드라인이군요, 북이 핵을 보유하는 듯한 사태가 되었을 때에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이야기입니다만, 그런데 지금, 바로 Surgical attack, 외과수술적인 공격을 하게 되기 전에, 평화적, 외교적 해결이라는 대전제로, 이것은 일본 정부도 바라고 있고, 한국 정부도 물론이고, 중국도 바란다, 그리고 러시아도 바라는, 이 평화적, 외교적 해결의 전제가 되는 것이, 한국을 포함해서 모든 나라들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 정부의 경우에는, 이 전의 김대중대통령 때도 그랬고, 지금의 노무현대통령도, 절대로 북이 핵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해결을 위해서는 이들 국가들을 관련시켜서 북측과 교섭하는 구조가 매우 바람직하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군사적 공격 이외의 제재라는 것은 중국의 참여 없이는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국의 참여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핵심이라고 해도, 관련 국가들도 참가해서 해결하는 것이 긴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만약 북이 핵을 보유한 것이 확실하고, 게다가 그것이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숫자까지 올라갔을 때에는, 남북회담이라는 것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되면, 한국도 무엇인가의 방책을 갖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손을 들고 항복할지, 그렇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우리들의 가친인 생활을 추구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일어설지, 이와 같은 선택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레드의 레드의 레드라인입니다. 그러므로, 그 부분을 확실히 해서 이제부터 북한과도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혼다 야나이씨.



군사충돌을 하면 북한은 소멸한다/야나이



야나이 점점 이야기는 다음 의제로 옮겨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여기에서 한 가지만, 이라크 사태가 북한에게 줄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조금 전, 위트씨가, 이라크 사태를 김정일(총서기)이 보고, 저런 식으로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저렇게 되지 않도록 빨리 핵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할지, 그 점은 모르겠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저도 양쪽 다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어느 쪽이든,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와 교섭하는 경우에는, 만약 핵을 가졌다면, 혹은 북한이 전쟁을 걸어온다면, 아마 그러한 일은 없겠습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매우 비참한 결과가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 준 후에 교섭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전 이즈미선생께서, 북한은 매우 신중하다고 말씀하셔서,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더욱 더 신중하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만약 군사충돌이란 것이 되면, 북한은 확실히 소멸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상당한 피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북한이 없어진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선택할지, 혹은 한국, 일본, 미국, 그리고 중국, 러시아와의 평화적인 관계를 쌓아서, 북한을 번영한 나라로 만드는 것과 어느 쪽이 좋겠습니까. 이것은, 대답은 명백한 것입니다만, 역시 양쪽의 경우를 보이고 교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앞에서부터, 레드라인을 어디로 할 것인가라는 이야기가 상당히 나왔습니다만, 아마 북한은, 하려고 하면 핵개발은 매우 빨리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 한, 운반수단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쪽에 있어서 그다지 시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다음 주제가 되겠습니다만, 그런 의미에서, 이라크 사태는 나쁜 쪽의 결말을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억제력이 되는 것은 아닐지라고 생각합니다.



혼다 휴식시간 전에, 지금, 공로명씨가 하신 질문 하나, 이것만 만약 대답하실 분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8000개의 (사용이 끝난) 연료봉이 Out of sight, 우리들의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간단한 시설에서도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칼루치



칼루치 사용이 끝난 핵연료봉의 저장시설의 트럭의 움직임 등은 위성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시고 계시는 바와 같이, 사용이 끝난 연료봉은 미국의 기술자가 약 4년 걸려서 용기에 옮겨 담고, 봉인했습니다. 연료봉은 캔에 들어가 있어서, 재처리시설(방사화학연구소) 이외의 장소에 옮기는 것은 가능합니다.

왼쪽에 있는 우리들의 동료에게 좀 난제를 줍시다. 이런 종류의 연료는 고도의 화학적 분리, 추출기술과 재처리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작은 간단한 시설에서도 재처리할 수 있습니다. 조작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추출작업은 그만큼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사용이 끝난 연료봉은 영변의 핵연료봉저장시설에 아직 있는지 어떤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정보기관이 파악하고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레드라인을 어디로 할 것인가, 걱정입니다. 포네만씨의 지적대로, 선긋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디를 넘으면 안되는 것인지, 상대에게 확실히 인식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재처리착수를 레드라인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레드라인을 넘었는지 어떤지를 우리들이 파악할 수 없는 곳까지 진척되어 버리는 것보다는 좋을 것입니다. IAEA의 사찰관은 현지에 이제는 없습니다. 우리들의 감시의 눈은 위성사진에 한정되고 있습니다. 실태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공로명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플루토늄이 추출된다는 것은, (영변의 것은) 흑연감속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비교적 복잡하지 않는 방법으로 재처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수로에서 나온 것은, 상당히 복잡한 것 같습니다. 그것을 지금, 말씀하셨던 것입니다만. 그러나, 대단한 문제이군요, 이것은 정말로. (웃음)



혼다 이 문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기 때문에, 휴식 후의 의논으로 그대로 가져가기로 하겠습니다. 그럼 전반은 여기에서 매듭짓겠습니다. (박수)


사회 지금부터, 20분간 휴식에 들어갑니다. 지금서서 듣고 계시는 분도 있습니다. 앞쪽에 몇 개인가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면, 중앙쪽에도 듬성듬성 비어 잇는 자리가 있기 때문에, 휴식이 끝난 후에는, 아무쪼록 여러분, 안쪽부터 채워서, 한 사람이라도 많은 여러분들이 앉을 수 있도록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일단 회장을 나가신 분들은 동시통역 리시버는 일단 접수처에 반납해 주십시오. 그리고, 질문용지에 기입하신 분들은, 접수처의 질문상자에 넣어 주십시오.

재입장하실 때에는 프로그램을 보여주셔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프로그램을 가지고 가 주십시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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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미일동맹과 북한의 핵(4)

이라크전쟁이 북한에게 줄 충격은


혼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전 외교관이었거나, 대학 교수로 계셨거나 해서, 품위 있게 현실의 충돌과 의논을 잘 해오시고 있지만, 그것은 프레젠테이션이기에 좋았다고 하고, 이제부터의 의논은, 그 예의를 벗고 심한 장면도 있어도 상관없기 때문에, 계속 손을 들어서 의논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미일에 대해서 93, 94년 당시, 매일같이 만나서 이야기했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부러 매일 만나서 사이좋게 이야기했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매우 격렬한 의논이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것도 뒤에 듣고 싶습니다.

   여기에서, 의논의 시작으로, 지금,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라크전쟁의 충격이라고 합니까, 이 이라크전쟁이, 혹은 이라크전쟁에 이르는 이라크의 위기, 외교의 전개, 이것이 북한의 핵문제에 어떠한 임펙트를 주고 있는지, 또는 주어 왔는지, 주고 있는가? 이 점을 우선 의논의 시작으로 하고 싶습니다만, 여기에, 회장에 미국 국무성에서, 특히 클린튼정권에서 북한의 담당관으로 계셨던 조엘 위트씨가 와 계십니다. 조엘 위트씨에게 이 이라크전쟁의 임펙트에 대해서, 우선 좀 듣고 싶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수)



위트/북한에의 효과를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


위트     매우 고맙습니다. 이라크에 대해서 1, 2 말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들은 만약 미국이 현재 이라크에 대해서 하고 있는 행동이 좀 시간이 걸려서, 그리고 성공한다고 해도, 북한에 대한 영향/억제 효과를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라크에 대한 효과가 북한에게 억제효과를 가져와서, 북한의 방향을 전환시킬 가능성은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단,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의 군사력을 몇십년이나 연구하고 있다. 특히 최근 10년간은, 매우 정밀하게 체크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은 미국의 군사력이란 것은 매우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군사력이 효과를 거둔다고 해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의 효과가 매우 있었다고 해도, 미국의 대이라크군사작전은 북한의 핵병기계획을 서두르게 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될지는, 북한이 생존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를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라크 사태를 보고, 장래의 존속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핵병기계획을 가능한 앞당기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이른바 직감과는 역방향으로 가는 사고입니다만, 북한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저의 경험으로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고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혼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지금, 북한이 이것을 어떻게 인식할지에 대해서 조엘 위트씨가 이야기했기 때문에, 공로명씨에게 묻겠습니다만, 지금 이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면, 정말로 전쟁이란 것이 매일 24시간 보도되는 것입니다. 아마 김정일총서기도 이 텔레비전을 상당히 못 박힌 듯이 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북한 입장에서 봐서, 이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떻게 반응할지, 묻고 싶습니다만, 어떻습니까?



군사옵션이 한미의 갈림길/공로명


공로명     그것은 평양방송이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는 선전에 속하는 이야기는 별도로 하고, 북한의 지도부는, 일의 진전을 매우 깊은 관심과 매우 높은 염려를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조금 전 위트씨가 말씀하신 중에, 이 이라크 사태가 북한의 핵개발을 더 한층 촉진시키는 면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를 나타내셨지만, 저는 그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한 빨리 핵을 손에 넣으면, 조금 더 유리한 교섭이 성립한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북한의 실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은, 이와 같은 북한의 사고를 어떻게 변하게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입니다만, 지금 현재로서는,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라크문제는 이와 같은 전개를 본 것이지만, 북한 문제만은, 평화적, 외교적인 해결을 바라는 것이, 부시대통령과 한국의 새로운 노무현대통령과의 전화회담에서도 서로 확인한, 지금의 양정부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책은, 이번 5월로 예정되어 있습니다만, 전쟁이 어떻게 그 일정을 틀어지게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5월의 한미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아갈 것으로 우리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이야기란 것은, 어떻게 해서 북측에게 핵에서 손을 떼게 할 것인가. 그를 위해서는 외과수술적인 군사적 옵션(선택지)을 살려 갈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그 옵션은 포기하고, 어떻게든 시점을 평화적, 외교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될지, 이것이 한미간으로는 큰 갈림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편, 한국으로서도, 이른바 교섭에 의해서 해결을 하고 싶은 것도 북측의 지도부 속에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만약 북이 정말로 핵을 보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계획)을 추진하는 경우에는, 이것은 북의 정권의 생존을 보증하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키는 것이, 북을 교섭의 테이블에 서게 해서, 게다가 그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킬 필요가 잇다. 이것이, 매우 문제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94년에, 이른바 외과수술적으로 영변부근을 파괴하려고 한 미국의 밀리타리 옵션(군사적 선택지)에 한국이 반대한 큰 이유는, 만약 북측이 자포자기가 되어, 그럼 함께 죽자라는 작전으로 나온 경우에는, 2000만에 이르는 서울 근교의 한국 주민, 그리고 3만7000명의 주한미군은 물론이고, 이런 전부가 불바다에 휩싸인다는 위험성을 우리들은 당연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진실입니다.

   그것이 최악의 전쟁을 피하게 한 것이 카터 전대통령과 김일성의 회담이 그러한 전개를 중지시킨 큰 이유의 하나인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시점에서도 그대로 들어맞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이 지금의 이 시대에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결국, 북은 생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서 포네만씨가 말한 것처럼, 그 출구를 내 줘야만 한다. 그 출구는 무엇인가? 그것은, 역시 교섭입니다.

   테이블에 앉아서 북측이 바라는 이른바 정권의 안전, 그들은 불가침조약을 말하고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그것이 미국의 부시정권이 말하는 것과 같은 멀티(다국간)의 테두리 안에서, 멀티 래터럴 토크(다국간 협의) 속에서, 그것은 둘이서 이야기하는 2자회담도 가능하고, 어쨌든 멀티에 관계되는 일본, 중국, 러시아 그리고 EU, 호주 등의 나라들이 모여서, 필요한 안전보장도 북에게 주면서, 그리고 북의 핵을 단념시키는 여러 가지 수법을 찾아내는 것이 앞으로의 일입니다.

   단 문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북에게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들은 이 프로세스(과정)에 어느 정도의 시간을 쓸 수 있을지, 이것이 문제입니다.

   좀 더 말하면, 94년의 북미간의 테두리 안의 합의는, 칼루치씨가 사인을 했었습니다만, 그 때, 저는 깜짝 놀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칼루치씨가 사인을 하기 전에 북에 대해서 특별사찰을 한다고, 우리들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북핵의 역사를 지켜보고, 핵의 실태를 완전히 파악한 후에, 테두리 안의 합의 속에 있는 포괄적인 해결,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 이러한 것을 순서를 밟아서 나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국은 핵문제를, 사찰도 포함해서 동결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사찰은 7년인가 6년 후에 경수로에, 노심부에 가장 중요한 부품이 들어가는 그 시점에서 하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매우 놀랐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결국, 우리들이 그 때, 조금 더 확실히 나사를 여기 저기 죄어 주었다면, 이번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큰 if(만약, 여기에서는 가정)를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 때, 미국이 좀 일찍 봉인에 들어 갔는가하면, 후에 알게 된 것입니다만, 실은 우리들의 기록을 장관(외무부 장관)이 된 후에 조사했습니다만, 그다지 확실한 이유가 나타나 있지는 않습니다만, 후에 페리씨가 [프리벤티브 디펜스(예방적 방위)]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것에 의하면, 북의 플루토늄 제조는 매우 진행되어 있었다.
조금 전, 연간 30개정도의 폭탄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처럼, 점점 시간이 지나가면 (개발이 진척되어 버린다). 가능한 일찍 이것을 봉인하는, 동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미국의 전략적 판단에 의해서, 특별사찰도 뒤로 연기해서, 테두리 안의 합의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여기에서 배워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94년의 그 역사로부터 우리들은 앞으로 배워야만 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 그 시간 사이에 북이 어떠한 것을 할지, 여러 가지 의구심이 우리들 속에 있습니다.

   두 분의 미국 핵전문가에게 조금 더 의견을 들으면, 여러분들에게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수)


혼다     칼루치씨, 나사가 느슨했던 것은 아닌가라는 것입니다만, 어떻습니까?


한창 이라크전쟁일 때에 북이 재처리를 시작한다면 어떻게 하나/칼루치


칼루치     테두리 안의 합의의 평가를 듣는 것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수년전, 두 사람의 신사와 의논한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테두리 안의 합의를 (높이) 평가하고, 다른 한 사람은 혹평했었습니다. 지지한 쪽도 [나였다면 당신보다 좀 더 나은 합의를 쓸 수 있었다]고 말했기 때문에, 저의 마음은 한층 더 침울해졌습니다.

   공로명씨의 지적은 그 대로입니다. 이 테두리 안의 합의 속에는 불충분한 분야도 있습니다. 단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최선의 합의였습니다. 여기에 당시 저의 팀인 위트씨와 포네만씨도 계십니다. 합의는 완벽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만, 일본, 한국, 미국의 안전보장의 국익에 맞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지금, 북한이 핵병기를 2개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 플루토늄은 우리들이 테두리 안의 합의에 이르는 교섭을 시작하기 훨씬 전에 추출한 것이 됩니다. 플루토늄생산의 역사의 문제라는 것이 됩니다.

   이라크와 북한과의 관련에 관한 문제입니다만,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 앞을 내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과 동맹국이 최후에는 승리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정권이 이라크에 승리한 후, 북한에게 어떠한 대응을 할지도 흥미 깊습니다. 일사천리로 갈지, 외교 교섭으로 해결한다는 종래의 방침을 재검토해서 군사적 수단으로 할지. 혹은 압도적인 힘을 배경으로 해서, 외교 교섭으로 결착을 도모할지. 저는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흥미 깊은 문제입니다.

   또 한, 이라크전쟁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 (북한에서 중대한) 사태가 일어난다면, 한국, 일본, 미국은 어떻게 대응해야만 하는가라는 문제도 여기에서 토론하는 것은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즈미선생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북한이 플루토늄 추출을 위해서 재처리를 시작한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가입니다.

   질문만 해서 죄송합니다. (웃음)


혼다     자,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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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미일동맹과 북한의 핵(3)

혼다 한미일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만, 다음은 93년부터 94년에 걸쳐서, 한국의 주일대사, 그리고 한국의 외무부장관이셨던 공로명씨입니다. 공로명씨의 선조는 중국의 공자라고 합니다. 오늘의 테마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공로명씨, 잘 부탁드립니다.


모두발언 공로명/북은 핵을 가지면 생존은 보증되지 않는다


공로명 고맙습니다, 혼다씨, 저의 선조 이야기까지 해주셔서 , 매우 고맙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공자의 자손일까라는 의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이것은 공자를 국교로 한 조선정부가, 일부러 곡부(중국 산동성, 공자의 고향)애까지 가서 확인한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들(공씨들)은 본명을 말할 때에는 [저는 곡부의 공입니다]는 식으로 이름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칼루치씨와 포네만씨의 이야기를 듣고, 매우 기쁘게 생각한 것은, 이 두 사람이, 단어는 좀 다르지만, 우선 첫째로 북의 핵 문제의 탈출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북의 생존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절대 핵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들은 지금, 생존을 위해 핵을 만들고 있다는 전략으로 나오고 있지만, 핵을 가져서는 절대, 북의 생존은 보증되지 않는다. 이 메시지를 여러분들이 확실히 명심하고 이야기를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사실은 저는, 10년 전, 1993년 3월 14일에, 뉴욕에서 나리타에 도착했습니다. 나리타에 내렸더니, 당시 주일대사를 하고 있었던 제 친구 오재희 대사가 비행장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왜 여기까지 나 온 것이지라고 놀라서, 왜인가라고 물었더니,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청천벽력이라는 말을 실감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실은 그 3일전에 워싱턴에 가서, 여기에 앉아 있는 칼루치씨를 만나서, 여러 가지 북의 핵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1월 20일에는, 클린튼정권이 발족했고, 또 한 2월 25일에는 한국에서는 김영삼정권이 발족했고, 저는 당시,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 한국측 위원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핵정책에 관한 양쪽(한국과 미국)의 입장의 정리 등을 위해 가서, 정리를 끝낸 후, 뉴욕에서 비행기를 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청천벽력이라는 말을 실감했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이해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0년 후인 지금, 다시 같은 북의 핵 문제가 나와 있습니다. 저는 이 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의 동아시아 특파원을 했었던 돈 오버도퍼라는, 지금은 존 홉킨스대학의 교수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가 쓴 [두개의 코리아](한국 : 중앙M&B발행)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어 번역판도 공동통신에서 발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관심이 있으면, 이 책을 꼭 읽어 주십시오. 한반도문제에 관한 매우 잘 된 책입니다.

그 [두개의 코리아]에서 그가 쓴 내용은, 한반도의 비극이란 것은 매우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이지만, 그 인구나 크기로 보면, 강대국이 Top Proirity(최우선 사항)로 취급하지 않는 것에 있다. 항상 2번째 주의밖에 받지 못하는 것이다. 94년의 제네바의 테두리 안의 합의에 의해서, 북의 핵 문제가 일단 동결되고, 그것으로 (핵문제는) 끝났다고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그보다 다른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고작,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에서 만드는 2개의 경수로의 진전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북이 여러 가지로 불평, 불만을 말하고 있다든지, 그러한 것만 신경을 쓰고,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98년 무렵, 앞서도 칼루치씨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파키스탄에서 다량의 알루미늄을 사들이고, 설계도면을 구하는 등으로, 우라늄 농축에 의한 핵병기 개발을 진행하는 징조를, 한국은 미국과 협조해서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작년 7월에 상당한 돈이 파키스탄의 칸연구소에 들어간 정보를 잡고, 그래서 작년의 10월에, 우리들의 친구인 짐 켈리 미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에 가서 추궁하고, 핵개발을 포기해 달라고 한 것으로부터, 지금의 위기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몇 가지 假定을 말해서, 앞으로의 이야기의 베이스로 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북의 입장으로 봐서, 북은 변하지 않는 한 절대적으로 붕괴한다는 명제를 그들은 해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만, 좀처럼 해결할 수 없다. 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면, 결국은 자원이 부족한 북한으로서는, 무역이라든지, 외국으로부터의 투자, 기술도입 등에 의해서 경제를 재건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나라를 개방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를 개방한다. 이것은 정권의 위기에 연결된다.

그래서 한 것이, 아시는 바와 같이 북한의 가장 끝에 있는 나진, 선봉이라는, 평양에서 가장 먼 곳에 경제특구를 만들었지만, 고작 만든 것은 보잘 것 없는 호텔과 카지노였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도박광들이 때때로 오는 정도의 경제특구에 그친 것입니다. 작년에는 대대적인 선전으로, 신의주에 특구를 만드는 것입니다만, 거기에 외국인 장관을 데려 와서, 경제특구를 상하이의 푸둥(浦東)처럼 만들고 싶다는 것을 거창하게 밝혔습니다만, 중국이 그 장관이라는 사람을 탈세 등의 죄로 교도소에 쳐 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발족 당시부터 실패한 것입니다.

이러한 실패 속에서, 북한이 무엇을 생각했던가 하면, 가설의 2번째입니다만, 생존을 위해서는 핵을 가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핵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는 것입니다. 북이 핵을 가지면, 세계의 핵확산금지체제가 붕괴한다. 북이 핵을 가지면, 일본이 핵을 가진다. 일본이 핵을 가지면 대만이 핵을 가진다. 한국도 가진다. 이렇게 되면, 지금, 세계의 핵 구조인 5/3/3/3의 마지막 3, 처음의 3은 물론 훌륭한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의 멤버들, 그리고 나서 다음의 3은, 아시는 바와 같이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 그 다음의 3은, 핵을 가진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른바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불려지는 이라크, 이란, 북한. 마지막 3은 경제력도 있고 기술력도 보유한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일본, 대만, 한국이 가지면, 지금의 핵통제라는 것은 완전히 무너지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북은 절대로 핵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나타내는 것이, 핵을 (외교)카드로 사용하는 것은 괜찮지만, 실제로 핵을 가지면 자신의 파멸이 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외교적 해결의 큰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 10분은 지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단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혼다 매우 알기 쉽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은 야나이씨. 일본은 93년 당시, 외무부에서 북한 위기에 대응해서 종합외교정책국이란 것을 만들었습니다만, 그 때의 초대 국장입니다. 그 때 일본은, 이 북한의 핵문제라는 것은, 때마침 일본은 정치적으로 대혼란기였고, 자민당의 일당지배가 끝났을 때이고, 그 정국 문제가 표면화되어서, 이 핵문제는 사실은 그렇게는 주목받지 못했던 면도 있습니다. 그 속에서, 당사자로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만, 그럼 야나이씨,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두발언 야나이슌지/한미일의 긴밀한 협조가 극히 중요



야나이 고맙습니다. 지금, 혼다씨가 말씀하셨던 대로, 당시 일본의 내정이 대변혁기에 있어서, 확실히 그 쪽으로 모두들 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사실은 저희들 당사자로서는, 그것도 물론이고, 역시 북한의 문제라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였고, 조금 전 포네만씨가 말씀하신 대로, 당시 우리들 3개국, 때마침 오늘 여기에 여러분들이 계시지만, 워싱턴에서 만나거나, 동경에서 만나거나, 혹은 서울에 찾아가거나 해서, 거의 매주 만나서 의논을 했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이번의 위기에 있어서도, 역시 이 3국의 긴밀한 협의와 협조관계가 극히 중요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 보다, 오히려, 그 당시 이상으로 중요하게 되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즈미선생, 포네만씨, 칼루치대사, 공로명대사로부터, 매우 좋은 이야기를 하셨고, 특히 북한의 현상태, 의도, 그리고 93, 94년 당시의 위기와 현재의 위기와의 비교에 대해서는, 거의 제가 덧붙일 분분은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라크 위기의 임펙트라는 것에는 별도의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우선 저부터, 역시 어제부터 이라크에 대한 무력행사가 시작도;ls 것도 있고, 이라크 위기와 북한의 위기라는 것은,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다른가에 대해서 몇 가지 말하고 싶습니다. 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만.

우선, 이라크와 북한의 경우, 어떤 위협이 있는가라는 점입니다. 특히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 지역에 대한 이라크의 위협이란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라고 생각해 보면, 첫째로는 핵을 중심으로 하는 대량파괴병기의 확산의 문제, 이것이 우리들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13년전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략했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서, 게다가 이라크가 핵을 가지고 그 지역을 지배하게 되면, 페르시아만의 석유에 매우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들 나라들은, 말하자면 경제의 목털미를 눌려서 꼼짝 못하게 될 위협도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북한의 경우에는, 물론 핵의 확산이라는 일반적인 위협은 있습니다만, 특히 한국, 일본에게는, 직접적인 안전보장상의 위협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북이 핵병기를 가지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 대량파괴병기에는 생물, 화학병기, 그리고 미사일, 그러한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앞서 이즈미선생께서, 저번과 달리 이번 위기의 경우에는, 미국에 대한 안전보장상의 위협으로도 되고 있다고, 대포동도 점점 개량되기 때문에, 그러한 측면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정말로 그 대로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으로 일본에 대한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대포동은 계속 개발되어서, 지금, 핵병기의 형태가 되어 있는지 어떤지 모릅니다만, 만약 핵병기가 소형화가 되어서, 대포동이 미국까지 도달하게 되면, 확실히 미국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핵병기를 포함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미국의 경우에는 핵공격을 받아도, 제2, 제3, 얼마든지 반격이 가능한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그러한 능력이 없다. 게다가 현재, 이미 배치되어 있는 노동 미사일의 사정거리에 일본의 영토는 전부 들어가는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매우 큰, 직접적인 안전보장상의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라크의 경우에는, 핵개발에 관한 매우 농후한 의혹이 있습니다. 그것에 비해서, 북한의 경우에는, 농후는커녕, 거의 확실한 의혹이 되고 있다. 이것은 오히려 북한의 경우에는 김정일씨가 94년의 북미합의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핵개발을 하고 있었던 것이고, 게다가 흑연감속로를 사용한 플루토늄형의 핵개발뿐만이 아니라, 천연 우라늄의 농축 방법에 의해서도 핵개발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을 넌지시 비춘 적이 있습니다.

이 점이 매우 다르다고 생각하고, 또, 미사일에 대해서도, 이라크의 미사일 능력에 비교하면, 북한의 미사일 능력, 게다가 이미 배치된 노동 미사일이 천 몇 백Km의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도 또 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이라크와 북한이 놓여진 국제적인 환경, 혹은 안전보장상의 환경이, 역시 상당히 다르지 않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라크의 경우에는 석유의 보고인 페르시아만에 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은 매우 높은 것입니다.

그것에 비해서, 북한의 경우에는 별로 천연자원이 있지 않다. 그런데도, 북한의 경우에는, 우선 첫째로 매우 유감스럽게도 한반도가 지금도 남북으로 분단되어져 있다. 냉전의 흔적과 같은 것이 남아 잇는 것이고, 따라서, 한국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라크에게는 그러한 상황은 없습니다.

그 외에, 동북아시아에 있어서는, 한국 외에 일본, 러시아, 중국, 그리고 미국이란 대국이 있고, 그 점에서도 환경이 이라크와는 매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것도 있고, 다음으로는, 국제적인 대처도 다른 것입니다. 이라크의 경우에는, 1990년 쿠웨이트침략이라는 매우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 있기 때문에, 그 때는 안보리의 허가하에, 다국적군이 쿠웨이트를 해방시켰습니다만, 그러한 경위도 있어서 UN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북한이 주로 미국과만 교섭하고 싶어 한 이유도 있고, 또, 국제적인 환경도 다른 것이고, 북한에 대해서는, IAEA의 사찰은 있었습니다만, 안보리의 관여는, 아직 본격적으로는 없었던 것입니다.

IAEA는 사찰관이 추방되고 나서, 안보리에 이 문제를 부탁했습니다만, 안보리는 아직, 이라크 문제로 매우 바빴기 때문에, 북한의 문제를 문제 삼고는 있지 않다. 따라서, 주로 이것은 한국, 미국, 일본이 협력해서 대처해 온 점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이라크의 경우에는, 이슬람세계라는 세계를 가지고 있고, 그 지지가 어느 정도 있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그와 같은 배경이 없는 점도 외교상 다른 점은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또, 마지막으로, 이라크의 경우에는, 북한과 같은 사생결단 정책은 , 최근에는 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떻게든 일련의 UN 안보리의 결의를 위반해서 대량파괴병기를 개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앞서도 이야기 되었던 것처럼, 북한의 경우에는 핵개발을 도구로 해서, 사생결단의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문제가, 93, 94년의 위기와 이번 위기와의 차이에 대해서는, 대부분 언급되었기 때문에, 2, 3가지만 덧붙이면, 저는 저번 94년의 위기에 비해서, 앞서도 말한 대로, 이번에는 미국, 그리고 일본에 대한 안전보장상의 위협이 높아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94년의 북미합의, KEDO설립에 이르렀던 그 때에 비하면, 그 때는 김정일은 합의를 하면 반드시 지킨다는 보증은 없었습니다만, 당시에는 백지상태에서 합의 한 것이고, 그럭저럭 지켜주지는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최근 그것은 어겨진 것이 또 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이 점에 대해서는, 앞서 칼루치씨가 적절하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북미합의, 그리고 KEDO라는 과정이 없었다면, 혹은 지금 이상으로 북한이 플루토늄을 축적해서, 매우 많은 핵병기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합의가 최근에 깨진 것은 확실하다고 해도, 그 합의의 공적이란 것은 저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난 미국의 클린튼정권은, 어쨌든 합의에 의해서 이 문제를 처리하려고 해서, 칼루치씨를 비롯한 미국의 교섭담당자들이 매우 노력했던 것입니다. 단, 지난 대통령선거 때에, 부시씨는 클린튼정권의 북미합의를 매우 비판했었습니다.

단지, 정권을 잡고 나서, 북한정책을 재검토해서, 결국, 그것밖에 없다는 것으로, 일단 KEDO의 틀을 유지했습니다만, 아마 마음 깊숙이에는 매우 비판적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그 합의가 북한에 의해서 깨진 것이 되기 때문에, 좀처럼 부시정권으로서는, 쉽사리는 북한과 교섭할 마음이 되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점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상황에 대해서 말하면, 물론 지금, 납치사건이 매우 전면에 나와 있습니다. 94년 당시에도 물론 그 사건은 있었던 것입니다만, 작년, 고이즈미총리가 평양에 가고 나서, 그 실태가 매우 확실해졌습니다. 일본의 여론이 북한에 대해서 매우 냉정해진 것도 저번의 위기와는 다른 상황은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는 최근,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되셔서, 새로운 정권이 탄생했습니다. 구체적인 정책을 어떤 식으로 내세울까. 이 점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앞서 말한 것처럼 일본, 한국, 미국의 긴밀한 협력과 협조가 없으면, 이 북한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아마 휴식시간 후가 될지, 또 의논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단계에서 이야기는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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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미일동맹과 북한의 핵(2)

모두발언:칼루치씨/ 합의에 의해 북한의 핵을 저지했던 것이 교훈

 

칼루치 : 의장 고맙습니다. 우선, 여기의 일원으로 초대해주셔서 매우 영광이고, 주최자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93년, 94년의 위기가 이번의 위기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10년간에 북한과 미국, 한국 및 일본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1단계는, 92년 무렵부터 94년(10월의 북미 테두리 안의) 합의까지입니다. 이 시기, 북한은 외교공세를 취해서, 91년 (12월)에 한국과의 남북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하고, 그리고 92년 초에는 미국과의 (북미)교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외교공세를 취함과 동시에, 핵개발계획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원자로 3기와 (사용이 끝난 연료봉을 재처리해서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한) 재처리공장을 건설하는 것으로, 1년간 핵병기를 약 30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북한은 활발한 외교공세 뒤에서, 핵병기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선 1번째. 그러나, 핵개발계획은 국제원자력기관(IAEA)의 사찰에 의해서 중단했습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즉, 플루토늄의 분리/추출을 몰래 하고 있엇던 것입니다. IAEA로서는 허용할 수 없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92년의 시점으로, 북한의 위반, 사기행위를 간파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2번째.

 

그리고, 다음에 일어난 것은, 미국이 UN의 승인을 얻어서, 직접, 북한과 2국간 교섭을 해서, 94년 10월의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북한의 이 사기행위를 밑천으로 교섭, 거래해서, 합의에 도달한 것입니다. 북한이 추구하고 있었던 플루토늄의 추출계획을 중지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북한이 플루토늄계획을 포기하는, 즉, 엄격한 사찰에 의해서, 흑연감속원자로 기술을 단념할 의향을 나타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들은 타결을 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1단계에서의 교훈으로는, 북한은 외교와 동시에 비밀리에 핵병기 개발도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인가 위반이 발견되더라도, 합의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2단계는 95년부터 98년까지의 시기입니다. 북한과 미국, 및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가 몹시 냉각되었습니다. 테두리 안의 합의에서는 (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기로 명문화되었습니다만,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합의를 승인하고 발족한)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의한 (핵동결의 대가인) 경수로 건설의 실행도 지지부진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측은 테두리 안의 합의에 의해서 가지게 될 것으로 생각한 외교적, 정치적 은혜/이익을 얻지 못 했던 것입니다. 미국과 북한과의 특별한 관계가 발전되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1998년 8월31일,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1호, 사정거리 1500킬로 이상, 일본 상공을 넘어서 태평양에 낙하)을 시험 발사했습니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물론 일본도 위협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이 핵병기 개발을 개척할 다음 루트로서, 우라늄농축분야에서의 협력을 파키스탄과 시작한 것도 아마, 이 시기였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교훈으로서는, 1)번째는, 북한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핵병기를 가지길 원하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로 나왔을 가능성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가능성으로서, (94년의) 테두리 안의 합의가 순조롭게 기능하지 않았고, 또 한, 미국이 북한의 생존을 보증하는 것과 같은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얻을 수 없다는 사태에 대비한, 북한의 보험용이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3)번째 가능성으로서는, 새로이 우라늄농축을 선택한 것은, 94년에, 플루토늄 추출에 의한 핵개발계획이 미국, 일본, 한국에게 (외교의 카드로서 비싸게) 팔렸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카드로서) 팔릴 것으로 예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4)번째로는, 북한측은 농축우라늄에 의한 핵개발계획은 전혀 염두에 두지않았지만, 노동 미사일 기술을 원하던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농축 기술과 물물교환하자고 제안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무엇이 정확한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3단계는 99년부터, 클린튼정권이 끝난 2000년말까지 입니다.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페리 전 미국국방장관이 정리했던, 한미일의 협조에 의한 북한과의 대화 추진과 핵/미사일 개발의 억지를 축으로 한 대북한정책)의 시기입니다. 북미 및 남북관계가 최고조로 달했습니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월) 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일 서기장과) 역사적인 (남북의 첫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같은 해 10월에는, 김정일 서기장의 특사로서, 북한지도부의 넘버 3인)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하고, (그 후에는)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부장관도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북한측으로 보면, 최고의 선물은, 요구하고 있었던 (생존의) 보증을 미국으로부터 얻은 것, 즉, 이제 미국의 적은 아니게 된 것입니다. 2000년 말, 우리들은 매우 전향적인 긍정적인 궤도에 올라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는 4단계, 부시정권의 등장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워싱턴에 와서, (그가 진행하고 있는) 햇볕정책에 대해서 부시 신정권에게 지지를 얻으려고 했습니다만, 김대통령은 반대로 큰 의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부시정권에는, (94년의) 테두리 안의 합의에 매우 적대적인 인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은 테두리 안의 합의의 가치에 매우 회의적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기 치는 듯한 국가와 합의, 거래를 한 것은 윤리에 맞는 것인지, 정치적으로 현명한 것인지, 의문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북한이 테두리 안의 합의를 깨고, 비밀리에 우라늄농축에 의한 핵개발계획을 진행하고 있다고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그 후, 상황은 악화되었습니다. (동시다발테러가 일어난 2001년) 9월 11일 이후, 미국의 안전보장에 대한 견해가, 핵병기 등의 대량파괴병기를 가진 [깡패국가]와 테러리스트와의 관련에 집중되었습니다. 우리들은 그 관련(깡패국가로부터 테러리스트 손에 대량파괴병기가 전달되는 것)에 매우 중대한 불안을 가졌습니다.

 

2002년의 1월이 되면, 미국 대통령은 일반교서 연설에서, 이라크, 이란, 북한 이 3나라를 [악의 축]으로 지명해버렸습니다. 테러리스트와 손을 잡고, 대량파괴병기를 건 낼 지도 모른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반교서 연설 후, 핵정책의 재검토가 행해지고, 북한은 우리들의 전략핵의 표적 리스트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9월에는, 미국의 [국가안전보장전략]이 발표되었습니다. 핵병기를 추구하는 [깡패국가]에 대처하는 수단으로서, l국이 선제공격이나 예방적 전투에 호소할 필요성을 선명하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명확한 정책의 선언이고, 공식적인 문서입니다. 그리고, 켈리 국무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에, 북한측에 대해서, 북한이 우라늄농축에 의한 핵개발계획을 몰래 진행하고 있는 것을, 미국은 알고 있다고 통고했습니다.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무력행사를 용인하도록 UN에 압력을 가했습니다만, 2002년 말에는, 북한은 가장 두려워하는 사태, 결국, 북한의 위협에 대해서도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 일본, 한국은 유럽연합(EU),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에의 중유제공을 중단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북한은 즉시 위기를 고조시키는 쪽으로 나아가고, 미국측에게 2국간의 직접협의를 하도록 요구했습니다만, 미국은 이것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다국간의 문제이므로, 해결도 다국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입니다.

 

이상의 4개의 단계를 보면, 북한이 여러 가지 수단으로 안전보장을 확보하고 싶어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핵병기에 의해, 핵이 불필요하면, 미국과의 합의로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북한에게 있어서, 미국은 (다른 나라가) 대신할 수 없는 강대국입니다. 다른 나라가 한 묶음이 되어도 미국보다 나은 안전보장을 줄 수는 없습니다. 북한이 단연코 핵병기를 가지려고 하고 있는지, 아니면 미국과의 관계를 위해서 핵계획을 단념하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94년의 중요한 교훈은, 합의에 의해서 북한의 핵병기개발은 저지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속였지만, 우리들은 합의를 했다. 그들은 (우라늄농축에 의한 핵계획으로), 또 우리들을 속였지만, 우리들은 합의를 한 번 더 해도 괜찮은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북한에게 파울을 허용하는 것과 같은 유연한 합의이면, 북한은 거기를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북한은 반드시 속인다, 반칙을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역시, 94년에 우리들이 교섭했을 때와 같은 합의가 필요합니다. 북한이 비록, 속일지라도, 미국, 일본, 한국의 경우에는, 효과적이고 전향적인 합의입니다. 94년의 테두리 안의 합의는 그것이었습니다. 북한이 현재, 많은 핵병기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은 이 테두리 안의 합의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한 번 더, 합의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직접교섭으로 생기는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혼다 : 감사합니다. 다음은, 포네만씨. 포네만씨는 93, 94년 당시, 미국 백악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핵확산금지 담당의 상급부장이셨습니다. 그럼, 포네만씨 부탁드립니다.

 

모두발언 : 포네만씨/압력과 당근이 중요, 3개국은 즉시 행동을

 

포네만 : 의장 감사합니다. 훌륭한 심포지엄에 초대해주셔서, 매우 명예롭게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입니다만, 3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93년, 94년을 교훈으로 해서, 현재의 위기에 적응할 수 없는가라는 것입니다.

 

북한의 핵계획에 대해서, 우리들은 우선 첫째로, 명확한 목표와, 이것을 달성하기 위한 논리와 전략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목표와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력적인 외교가 필수입니다. 위기의 복잡성을 생각하면, 모든 동맹국들이 힘을 결집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우리들이 성공하려면, 가지고 있는 정책과 수단을 모두 동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씩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논리입니다만, 북한정권에 대해서, 우리들이 가진 목표는 많이 있습니다. 핵위기가 가장 우리들이 의식하는 문제입니다. 이즈미선생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탄도미사일도 매우 위기적, 긴급한 위협입니다. 또한, 비무장지대에는, 냉전 이래로, 고도한 통상병력이 집중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한의 체제 그 자체에, 많은 문제와 불안이 있습니다. 정권의 행동, 기아에 고통 받고 있는 국민의 상황, 인권문제 등등의 것입니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이러한 목표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미국은 1993년에, 명확하고 의도적인 결정으로서, 이들 목적의 전부가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를 취하더라도, 매우 무모한, 게다가 또 한 규제가 없는 핵병기계획을 방치해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목표를 이루기 위한 효과적인 논리와 전략을 실행하는 것은 말하는 것 보다는 훨씬 어려워졌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 관해서 우리들은 다음 2가지를 명확하고 선명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북한은 우리들이 얼마나 그들의 핵병기개발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미국, 일본, 한국 및 국제사회가 이 위협에 얼마나 진지하게 대치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에 관해서는, 정책수단을 이야기할 때에 조금 더 상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북한이 핵병기계획을 이 대로 진행시켜 가면, 그들의 상황은 악화할 뿐이라는 것을 이해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또, 그들에게도 출구는 허용되어져 있다는 것도 보여 줄 필요가 있습니다.

 

즉, 그들이 핵에의 야심을 포기한다면, 체제/정권의 존속은 최대한 보장된다는 것을, 그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들이 원하는 목적을 그들이 받아들인다면, 출구는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확실히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음은 정력적인 외교라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의 관점으로는, 미국, 한국, 일본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대신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이 93년, 94년에 했던 우리 3개국의 노력이 성공해서, 합의에 기여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들 3국간의 조그마한 생각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능숙하고, 그것을 그들은 정치적으로 이용합니다. 93년부터 94년 때, 우리들은 매년, 한국과 일본의 동료들과 협의를 했었습니다. 때로는 수시간이나 이르렀습니다. 외교문서의 교환 등과는 대조적으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계속해서 의견과 지혜를 서로 내고, 마치 세미나의 브레인 스토밍 같았습니다. 우리들은 거기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한 번 3개국이 어떻게 할 것인가 합의를 하면,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은, 그 외의 국제사회의 멤버들을 끌어 들이는 것입니다. UN 안보리이사회, 가능하면 상임이사국, 즉 중국, 러시아라는 북한의 인접국을 끌어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해 나감에 있어서의 곤란함은, 북한에의 대처에 대해서, 관계국의 안전보장상의 국익이 다른 것입니다. 이즈미선생이 2003년과 93년과의 차이를 명확하게 지적해 주셨습니다. 미국의 인식은 9/11테러 이후, 변해 버렸습니다. 뉴욕에서도,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오클라호마에서도, 한반도의 38선으로부터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안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북한이 현재 가지고 있는 사용이 끝난 연료봉 8000개를 재처리시설에서 처리해서, 핵폭탄 5개, 6개분의 플루토늄을 추출해서, 그리고 매우 작은 숨기기 쉬운 것으로 하면, 9/11테러 후에 생긴 [국가안전보장전략]이 명확하게 말하고 있듯이, 이것은 칼루치대사도 지적하셨습니다만, 그것은 북한이 미국 본토의 위협이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대해서 핵병기를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본토에 대한 핵의 위협, 한국에의 보통병기에 의한 위협을 생각하면, 우리들은 지난 번 보다 더 긴밀한 협의/협조가 요구됩니다.

 

3번째입니다만, 완전히 내용물이 갖춰진 도구함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94년의 경험으로 얻은 명확한 교훈입니다. 94년 6월이, 당시의 위기의 정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최종적으로는 플루토늄 생산시설을 해체하는 것이 되는 핵개발 동결을 결단했습니다. 왜인가? 북한은 자신들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었다고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대화를 중단하고, UN은 제재 결의를 보이고, 미국은 주한미군 증강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은 그 시점에서 지나쳤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어떻게든 도망칠 방법을 생각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예상되지 않았던 카터 전대통령의 북한 방문이 실현되어 북한의 체면을 구해주고, 그 후의 테두리안의 합의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번에도 이와 같은 밸런스를 갖춘 어프로치(접근)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압력과 인센티브(당근)입니다. 이상의 역사에서 3개의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우선 첫째로 이 문제는 정말로 긴급을 요합니다. 수개월 이내에 북한은 5, 6개의 핵병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자신들이 사용할지, 혹은 우리들의 적에게 팔 수 있게 됩니다, 그 때문에 우리들은 즉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둘째로, 우리들은 북한에게 명확한 선택지를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에게 핵병기가 자신들의 존속을 보증하는 것으로 생각 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핵병기의 길을 선택하면, 고립화되고, 존속이 위험하게 되고, 핵을 버리면 존속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라고 (강력하게) 밀어 붙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제를 해결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이 3개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긴밀한 협력/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혼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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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미일동맹과 북한의 핵(1)

이것도 역시 2003년에 아사히신문에 연재될 때에 모사이트에 번역해서 올린 것 ....!!

 


미일동맹과 북한의 [핵] - 94년 위기의 교훈을 근거로 해서



북한의 핵개발문제를 둘러싸고 한미일의 전문가가 토의하는 심포지엄 [미일동맹과 북한의 [핵] - 94년 위기의 교훈을 근거로 해서](아사히신문사, 시즈오카현립대학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 주최)가 3월21일, 동경 우찌사이와이쵸우의 이이노홀에서 열려서, 이라크전쟁과 같은 사태를 한반도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한미일은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를 토의했다.




로버트 칼루치 미 조지타운대학 외교대학원장. 미국무차관보를 거쳐 94년부터 96년까지 북한핵문제담당대사. 57세




다니엘 포네만 미 유력 싱크탱크 [외교문제평의회] 멤버. 94년 당시에는 미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 핵확산금지담당 상급부장. 47세




공로명 한국 동국대학 일본학 연구소장.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한국측 위원장. 주일대사역임. 94년부터 96년까지 외무부장관. 71세




야나이 슌지 일본 중앙대학 법학부교수. 외무부 종합 외교정책국장으로서 94년 핵위기에 대처했고, 그 후 사무차관, 주미대사를 역임했다. 66세




이즈미 하지메 시즈오카현립대학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 소장. 동개학 조교수, 교수를 거쳐서 1월부터 현직. 공저로 [김정일시대의 북한]. 52세



(코디네이터는 혼다 마사루 아사히신문 편집위원)

 



 

사회 여러분, 안녕하세요, 매우 오래 기다리게 했습니다. 지금부터 아사히신문사와 시즈오카현립대학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가 주최하는 [미일동맹과 북한의 핵 - 94년 위기의 교훈을 근거로 해서]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오늘의 아나운서를 담당하는 이토나가 나오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수)

먼저, 주최자를 대표해서, 아사히신문사 전무이사 편집담당인 키미와다 마사오씨가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키미와다 여러분, 바쁜신 중에도, 많이들 와 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시즈오카현립대학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 그리고 아사히신문인 주최자를 대표해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어제, 미군, 영국군의 이라크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량파괴무기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들은 피할 수 있을지 어떨지, 해방될 수 있을지 어떨지... 이 같은 테마는, 실은 오늘의 테마인 북한의 핵문제와 연관된 것입니다.

북한은 작년말, 94년의 [북미 틀안의 합의]에 의한 핵개발동결을 그만둔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탈퇴, 그리고 원자로의 재가동이라는 수순으로, 행동해 가고 있습니다. 향후의 전개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도 할 수 없습니다만, 만약, 북한이 본격적으로 핵개발을 하게 되면, 아시아의 안정, 평화는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동시에 또 하나, 납치문제라는 큰 문제를 안고 있어서, 북한에게 조기에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사히신문사는, 북한문제에 관한 연속 심포지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미 제1회는 지난 달 말, 개최되었고, 여기에는 한국의 동아일보의 21세기 평화연구소, 그리고 중국의 현대국제관계연구소, 마지막으로 아사히신문의 아시아 네트워크(ANA)라는 3곳의 싱크탱크가 공동으로 개최했었습니다. 또한 그 내용은 3월 6일자 지면에 게재되었기 때문에, 혹시 읽으셨었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2번째 심포지엄이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시즈오카현립대학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와 공동으로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제2차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던 1993년, 그리고 1994년 당시, 미국정부의 북한 핵문제담당대사로서 틀안의 합의를 이끌어 낸 로버트 칼루치씨, 그리고 전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 핵확산금지담당 상급부장인 다니엘 포네만씨, 그리고 전 란국외무부장관이었던 공로명씨. 공로명씨는, 바로 지금, 도착하셨고, 이번 문제로 공항의 시큐러티 체크가 엄격해졌기 때문에 가까스로 여기에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 외무사무차관이었던 야나이 tbs지씨, 마지막으로 주최자를 대표해서,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 소장인 이즈미씨. 모두들, 프로 중에 프로이고, 실무에 종사하셨던 분, 연구하셨던 분들뿐인 정말로 훌륭한 모일 수 있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을 막을 수 있을지 어떨지,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해결을 향한 길의 실마리를, 이와 같은 심포지엄을 통해서 잡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지금부터 오후 5시까지, 매우 긴 심포지엄입니다만, 마지막까지 경청해주신다면, 주최자로서 매우 고맙겠습니다. 그럼, 부디 마지막까지 편안히 들어주십시오. 감사했습니다. (박수) 

사회 그럼, 패널리스트 여러분들이 등단하시겠습니다. 자,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박수)

지금부터,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은, 패널리스트 여러분들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우측부터, 전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 핵확산금지담당 상급부장인 다니엘 포네만씨. (박수)

미국 조지타운대학, 외교대학원장인 로버트 칼루치씨. (박수)

전 한국 외무부장관인 공로명씨. (박수)

중앙대학교수로, 전 외무사무차관인 야나이 슌지씨. (박수)

시즈오카현립대학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 소장인 이즈미씨. (박수)

그리고, 코디네이터를 담당하신 분은,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인 혼다 마사루씨입니다. (박수)

심포지엄에서는, 여러분들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접수할 때 배포해 드린 질문용지에 간결하게 기입한 후, 휴식시간, 15시 10분 무렵으로 예정하고 있습니다만, 그 때 접수처의 질문함에 넣어 주십시오. 그럼, 이 후의 진행은 혼다씨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혼다 코디네이터를 담당하고 있는 아사히신문의 혼다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라크전쟁 개전 2일째라는 중요한 타이밍에 이 심포지엄은 겹쳤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작년 가을 이래, 급속하게 심각하게 되어 가기만 하는 북한의 핵문제는, 이라크의 위기와도 여러 가지로 밀접한 관계가 뒤섞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이런 타이밍에 심포지엄이 열린 것은, 매우 잘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본질을 의논하기에는 매우 좋은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참석해 주신 패널리스트 여러분들은, 1993년부터 94년에 걸쳐, 전쟁 일보직전까지 사실은 갔었다고, 미국의 전국방장관인 페리씨가 말했던 [93년, 94년 북한핵의혹위기] 때, 한미일의 각 정부의 당사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심포지엄의 부제는, [94년 위기의 교훈을 근거로 해서]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타이밍도 생각해서, 아울러서 [이라크전쟁의 한반도에의 임펙트]라는 점도, 실질적으로 오늘의 토론, 심포지엄의 부제가 된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처음에 각 패널리스트 여러분들이 10분씩, 현 상황, 북한의 핵위기란 대체 무엇인가?, 94년과 비교해서 어느 부분이 같고 다른가, 또는 이라크전쟁과의 관련도, 이것은 후에 제대로 의논하겠습니다만, 언급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선, 이즈미선생, 북한의 이 핵위기란 대체 무엇인가와, 그라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지, 여기서부터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두발언 이즈미씨/10년전 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게임


이즈미 고맙습니다. 1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이기 때문에, 포인트만을 몇 가지 말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북한의 핵문제는 아직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수개월간으로 위기라고 말해지는 상태가 될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은 아닐까라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위기의 성격을 생각할 때에,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특히 이것을 10년전의 위기와 비교한 경우입니다만, 미국의 이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이해 방식이, 저는 10년전과는 크게 변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10년전의 경험을 그대로 답습해서, 같은 게임을 다시 반복하려고 하고 있다. 미국이 크게 변해 있다는 점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사실은 북한에게는 없는 것은 아닐까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의 인식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93년, 94년 당시의 핵위기때의 미국의 관심은, 이것은 후에 칼루치대사, 포네만씨들도 발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역시 확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핵병기를 가지는 것 자체가 핵병기의 확산을 초래한다는 인식이, 미국에게는 강해서, 그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상당한 중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3가지 중요한 것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1번째)는, 1995년에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재연장회의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이 핵병기를 보유하는 것을 허용하게 되면, 세계적인 범위에서의 핵확산방지체제, NPT체제가 크게 동요하는, 혹은 붕괴할 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것을 막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번째)로는, 북한이 핵병기를 가지는 것은, 동북아시아지역에 핵병기가 확산하는, 즉 일본 혹은 한국, 게다가 대만이 핵병기 보유 방향으로 움직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동북아시아지역의 국제관계를 크게 변화시키고, 매우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3번째)로는, 북한의 핵병기는, 지역을 넘어서, 예를 들면 남아시아, 혹은 중동지역에 수출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우선 중동지역에 갈 가능성은 크게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중동의 평화 안정을 상당히 위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이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할 수 밖에 없어서, 93, 94년 교섭을 하고, 합의를 본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그 때에는, 적어도 미국 본토가, 혹은 미국이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는다는 인식은 매우 적었다고 생각하니다.

그러나, 현재의 부시정권이 북한의 핵문제를 생각할 때에는, 이것은 확실히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지금의 부시정권의 언행에서 보면, 본토방위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 점이 매우 강해지고 있는 것이 큰 변화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북한이 핵병기를 보유하는 것은, 미국을 직접 공격하는 수단으로서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점이 있고, 또는 북한이 많은 핵병기를 보유해서, 혹은 많은 병기용의 플루토늄을 보유하는 것은, 당연히 중동지역의, 이른바 미국이 말한 [깡패 국가]의 손에 들어가거나, 또는 테러리스트가 북한에서 얻은 핵병기를 미국에 사용할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이제는, 북한의 핵병기란 것은, 적어도 거의 간접적인 형태이든,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하는 것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10년간의 변화에서 또 하나의 다른 큰 차이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의 개발을 계속해 왔고,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향상되고 있는, 장래에는 대포동2호라고 불려질 미사일이 미국 본토에까지 도달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우리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더욱 더 북한은 미국을 직접 공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현재의 부시정권에 있어서의 북한 핵문제라는 것은, 미국 본토를, 미국 자신을 직접 위협할지도 모르는 문제로서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본토 방위의 관점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10년전과는 상당히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반면 북한은, 여전히 93, 94년의 성공예라고 할지, 경험, 기억에 근거해서 또 현재의 핵문제에 대처하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조금전에도 혼다씨가 소개했습니다만, 여기에 계시는 저 이외의 분들은 모두 93, 94년의 북한의 핵위기 때에 당사자인, 미국, 한국, 일본의 정부에서 담당하셨던 분들입니다. 지금, 정부를 떠나서, 이러한 형태로 심포지엄에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을 보면, 93, 94년의 핵위기 때에, 말하자면 핵문제를 만든 사람들, 그리고 미국과 교섭했던 사람들이, 또한 현재에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의 경우에는, 이 10년간 계속 같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담당해 왔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10년전의 기억, 체험이란 것은, 매우 대단한 것이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그렇다고 하면, 북한쪽에서 보면, 93, 94년의 모든 핵위기를 만들고, 미국과 교섭을 해서, 미국과의 사이에서 거래를 성립시킨 것은, 역시 성공이었다는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해서 미국과 교섭을 하고, 교섭을 통한 거래를 무엇인가 실현시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범위에서 북한이 나오는 것은 어렵고, 새로운 발상에 서서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는 것은, 저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문제는, 미국의 인식이 크게 변한 것은, 바로 2001년 9월 11일의 동시 다발 테러사건 이후입니다. 미국 본토가 직접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을 전제로, 미국이 안전보장을 생각하게 된 것은, 8월 11일 이후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세계, 국제정세를 크게 변화게 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미국 자신들을 크게 변화시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 북한이 과연 어느 정도로 이해를 하고 있는지, 또는 특히 북한의 경우에는, 김정일 총서기장이, 얼마나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아마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밖에서 보면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북한의 관점에서 보면, 93, 94년 했던 것을 반복하면, 반드시 최후에는 미국이 교섭에 응하고, 거래에 응해 주는 것은 아닐까. 즉 미국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미국을 위협하면, 끝내는 미국이 교섭에 응해 주는, 그리고 교섭을 통한 거래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향후의 전개를 생각해 보면, 북한은 반드시 지금의 위기 레벨을 올려 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때, 지금, 자주 말해지는 것은 3가지입니다. 첫째)는 북한이 플루토늄의 생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탄도미사일의 발사 실험을 다시 실시한다. 이 번의 경우에는, 대포동2호가 되어, 보다 사정(거리)가 긴 것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핵보유선언, 혹은 핵실험을 실시하는 것이, 북한이 사용할 수 있는 3가지 카드로, 자주 말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세 번째인 핵보유선언이든지 핵실험은, 당면의 경우에는, 거의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지금까지 자신들은 핵병기를 가지지 않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하는, 실현시키자고 말해 왔기 때문에, 일단 이 태도를 뒤집어서 핵보유가 되면, 이것은 완벽하게 국제적으로 고립한다. 중국, 러시아조차, 이제 북한과의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저는 북한이 간단히 그러한 방향으로 착수한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단 문제는, 플루토늄의 생산, 그리고 미사일의 발사이지만, 이 2가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이것을 카드로서 내놓고서 미국을 더 위협해서, 미국을 교섭 테이블에 어떻게든지 끌어내서, 그리고 거래를 하려는 상황으로, 가까운 시일내에 북한은 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플루토늄이 먼저인가 미사일이 먼저인가라는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보다 확실한 것부터 카드를 내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순서로 말한다면, 플루토늄생산이 먼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미사일발사라는 것은, 발사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단 실패를 하면, 미사일 카드는, 거의 효과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플루토늄생산은, 제대로 준비를 갖춰서 추출에 들어가면, 확실하게 플루토늄은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확실성으로 보면, 플루토늄이 훨씬 높다. 따라서 저는, 카드를 내놓는 순서는, 보다 확실성이 높은 것으로, 미국을 위협한다는 것이 당면, 이 수개월, 비교적 가까운 시기, 이라크전쟁이 일단락된 후에는 그러한 방향으로 갈 것은 아닐까 시ㅍ습니다.

그렇게 하면, 이것은 매우 긴장을 높인다. 그리고, 미국을 상당히 자극하는, 미국은 상당히 심각한 걱정을 가질 것입니다. 즉 직접 미국의 안전이 위협받을지 모른다고 부시정권은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게임일 것으로. 93, 94년에 한 것 보다도 훨씬 위험한 게임을 북한은 하려고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북한에게 그러한 도발적인 공갈의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상당히 간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혼다 고맙습니다. 톱타자로 나서면, 매우 힘들 걸로 생각합니다만, 시간이 다소 길었습니다. 다음 분은 가능한 10분의 제한시간을 지켜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칼루치씨. 칼루치씨는 93년, 94년의 위기 때에는, 국무차관보에서 북한과의 실제 교섭담당 대사를 하시고, 또 한 틀안의 합의라는 중요한 협정을 이루어 내신 분입니다. 그럼, 칼루치씨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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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핵개발에 대한 견해(이즈미 카오루 인터뷰내용)

2002년 11월 20일자 잡지[반전정보]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지금 보면 좀 지난 내용이지만...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번역해 봤습니다.
내용에 실수가 있는 경우는 제가 번역에 미숙해서 그런 것이기에 너그러이 봐 주시길...


--일본과 북한의 국교정상화 교섭재개 직전에 미국의 지적에 대해서 북한 자신들이 핵개발을 행하고 있다고 인정했습니다만, 그 경위는 어떠한 것이 있습니까?

현재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에 관한 기술은 구소련으로부터 제공된 것입니다. 이미 북한은 60년대부터 일반적인 원자력 개발은 하고 있었습니다. 소련도 핵보유국으로서 핵확산에 대해서는 민감했기 때문에 북한에게 NPT에 가입하도록 압력을 넣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1985년 NPT에 가입하고 그에 따라서 국제적인 틀 속에서 핵개발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오해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병기가 되지 않는 레벨, 즉 ‘평화적 이용’이라면 국제적인 결정하에 북한의 핵개발이 문제가 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단 NPT에 가입하고 원자력개발을 진행하는 것은 관리 감사체제로서 IAEA와 협정을 맺고, 그 사찰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북한은, 그 사찰 협정을 맺지않은채 원자로를 가동해서 거기에서 플라티늄을 추출할 수 있는 핵연료 재처리공장 건설에 착수했습니다. 이것은 NPT의 빈틈을 이용한 군사전용이라는 의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원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이용은 종이 한 장 차이이기 때문에, 사용이 끝난 핵연료에서 병기용의 고순도 플라티늄을 추출하지 않는다는 보증 감시를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북한이 재처리시설의 건설을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북한이 왜 핵무기개발을 하고 있는가? 그 첫 째 이유는, 세계 최대의 군사대국인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가장 값 싸고 효율적인 억제력은 핵병기이기 때문입니다. 핵보유대국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약)소국은 항상 ‘핵을 가지고 싶은 유혹’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도 그러한 ‘유혹’이 있었습니다. 닉슨독트린에 의해 미국이 아시아에 직접 개입을 하지 않기로 하고, 카터정권이 주한미군 철수를 말했던 70년대 후반에는 한국도 핵무기를 가지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약)소국의 ‘핵의 유혹’은 당연한 것이고 북한도 핵대국인 미국과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핵을 가지려고 한다는 측면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측면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사태를 잘못 파악하는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이유로서 액면그대로인 [에너지 문제의 해결]이라는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매장자원도 부족하고 거기에 석유도 산출되지 않는 국가입니다. 그리고 남북한은 ‘온돌문화’라고 말해지듯이 매우 추운 겨울을 보내기 위한 연료의 문제, 전력・에너지의 확보는 매우 중요합니다. 게다가 외화획득 수단이 한정되어져 있는 북한으로서는 원유에 의존하는 에너지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한 대체 수단으로 핵연료사이클(우라늄에서 플라티늄을 추출하고 재이용하는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핵연료사이클은 에너지를 자립적으로 운용한다는 면에서도 매력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에너지 문제 때문에 원자력 개발을 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언론에서는, 오로지 ‘핵개발의혹’만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이 왜 북미관계라는 문제, 특히 ‘핵 의혹’으로 부상한 것인가?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우선 90년대에 들어서 북한의 힘든 상황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전후 냉전구조 속에서 경제적으로도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에 의존하고 있었던 북한이, 그 냉전구조가 붕괴함에 따라 북한의 상황이 매우 힘들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소련이 해체됨에 따라 소련에 의존하고 있었던 물자들이 들어오지 않게 괸 것입니다. 원유등의 에너지자원, 밀가루등의 식량・가축사료, 그리고 기계부품등이 원조의 의미로 들어오던 것이 외화결제로 바뀜에 따라 사실상 수입중단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결과, 공업생산, 농업생산, 유통이 파국적이 되어 - 이것이 그 후 자주 언급된 [기아상태]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사건이 계속 있었습니다. 한국은 소련과 중국과 국교를 맺었습니다. 즉 한국은 외교 공세의 결과, 90년대 전반에 한국전쟁에서 적대관계에 있었던 중국과 소련, 다시 말하면 북한의 [동매적인 국가]와 국교를 맺고 화해한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그 반대의 경우, 즉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국제적인 외교・정치적인 고립에 의한 초조함과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경제적인 타격이 북한에게 있어서는 외교 공세를 강화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90년대 초에 북일국교정상화 교섭도, 삼당방북단(가네마루방북단)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과 한국에게는 큰 입장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국이 소련과 중국을 관계 개선 교섭의 테이블에 앉힐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자신이 ‘선진국화’되어 상대국으로서도 일정의 메리트가 있었던 것에 비해서, 북한은 미국과 일본을 외교 교섭에 앉히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외교 교섭을 위한 외교 카드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정된 조건 속에서 어떤 카드를 꺼냈는가하면, 특히 미국에게 가장 민감한 [핵 확산]에 관계되는, 어떤 의미에서 ‘사생결단의 외교적’ 카드를 꺼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것이 왜 94년의 한반도 위기가 된 것입니까?

미국은 이미 90년 가을 무렵부터 북한이 IAEA와 협정을 맺지 않은 채 원자력 개발을 하고 있는 것에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고, 위기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이 카드가 외교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미국은 [핵확산 방지]라는 정책으로 북한과의 접촉을 행하고 국제적인 압력을 행사해서, 92년에는 IAEA와 북한간의 핵사찰협정의 체결을 실현시켰습니다. 하지만 북한쪽에서 보면 IAEA와의 핵사찰협정의 체결이라는 카드를 잃은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로 북미간의 외교 라인은 있었습니다. 이것은 구 부시정권때의 일입니다. 이 정권은 냉전을 끝낸 정권으로서 [냉전후의 국제 질서]를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했고, 그 가운데 북한과의 교섭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교의 부시]를 격파하고 당선된 [내정의 클린튼]정권은, 발족한 당시에는 외교 문제에 대해서 별루 적극성이 없었습니다. 그 반면에 북한은 마침내 경제 위기가 닥치고, 실리를 얻을 수 있는 국면 타개책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도 클린튼 정권은 IAEA와 북한과의 협정이 체결 되었지만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의욕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문제도 납치문제 등이 생겨서 중지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가운데 새로운 외교 카드로서, 이미 핵병기 개발도 생각하고 있었던 북한은 IAEA의 사찰을 특정 시설에 대해서는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93년 초에 IAEA가 특별감사(당사국이 신청한 시설외에도 사찰을 요청할 수 있는 것)를 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 북한은 거부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서 [핵개발 의혹]이 [핵문제 위기]로 전화되어 간 것입니다. 그 평가는 미묘합니다만, 북한이 [사생결단적인 외교적] 카드를 사용했다고도 볼 수 있고, 현실적으로 핵병기개발을 포기하지 않은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되던, 특별사찰을 거부한 북한은 준전시체제에 들어가고, 게다가 NPT 탈퇴를 선언해 버립니다. IAEA는 이 사실을 UN안보리에 통고하고, 안보리에서 이 문제가 처리되게 되어서, 결국 미국은 테이블에 앉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북한은, 미국과 교섭을 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향으로, 1)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라 2) 한반도를 비핵화하라 3)주한미군의 위협을 없애라 는 것을 IAEA의 특별사찰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제시했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미국과의 교섭을 진척시키고 싶은 의지를 명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이 북한과의 교섭에 착수하지 않으면 UN안보리로서도 손 쓸 방법이 없고, NPT를 탈퇴하려는 북한을 막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93년 6월부터 미국은 북한과 교섭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NPT를 탈퇴하지 않는다고 표명했습니다만, 실로 [벼랑 끝 외교]를 계속해서 외교 카드로 사용한 북한에게 있어서는 IAEA의 특별사찰을 둘러싼 문제가 다음 카드가 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클린튼정권은 북미간의 교섭에서는 결말이 나지않기 때문에 경제제제라는 압력 수단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당시의 북한이 처한 경제적 곤궁 상태에서 보면, 실제로 그렇습니다만, 북한은 미국에 의한 경제봉쇄는 ‘선전포고로 간주한다’고 표명했습니다. 북한의 상태가 그만큼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94년 4월부터 6월까지의 [한반도위기]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경제제제를 UN안보리의 결의라는 압력으로, 군사전용이 가능한 북한의 핵개발 시성의 동결을 성사시키려고 하고, 이에 대해서 북한은 이제는 물러 쓸 수는 없다고 이 제안을 거절하므로 위기적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 때에 미국은 일본에게 최악의 사태 [제2차 한국전쟁]을 상정해서 군사협력을 타진했습니다. 이것은 일본에게도 매우 큰 의미를 가진 문제였습니다. 미국은 [제2차 한국전쟁]을 포함한 여러 가지 선택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올해(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카터 전대통령이 국무성의 일부와 연대하면서 그 자신의 판단도 포함해서 조정에 나선 것입니다. 평양을 방문해서 김일성주석과 회담해서, 미국이 일정한 조건을 수용하면 북한도 핵개발 포기의 의향을 백악관에 전달했습니다. 이렇게 [한반도 위기]는 극적으로 해결되게 된 것입니다.


-- 그 때의 [테두리안의 합의]라고 말해지는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김일성주석이 제시한 것은, 미국이 북한의 안전 보장에 대해서 일정한 배려를 나타내고, 북미관계 개선에 대해서 계속적인 약속을 한다면, 사용이 끝난 핵연료에서 추출한 플라티늄을 봉인하고, 건설중인 핵개발관련 시설도 동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클린튼정권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일단은 위기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북미교섭이 재개되어, 94년 10월의 이른바 [테두리안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테두리안의 합의]의 내용은 1) 소련이 제공한 흑연감속로는 플라티늄을 추출하기 쉽기 때문에, 이것을 플라티늄을 추출하기 어려운 경수로로 바꾼다. 이를 위한 기술과 시설을 북한에 제공한다. 2)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계속 노력], 예를 들면 교섭을 대사급으로 격상시킨 것입니다.

3) [비핵화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노력]입니다. 남북한은 91년에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합의에 서명했습니다만, 북한 입장에서는 이 문제는 남북한이 합의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주한미군이 한국에 있는 이상 미국과 합의하고 싶다는 것이 일관된 북한의 정책이었습니다. 이것에 미국이 합의한 것입니다.

4) [국제적인 핵확산 방지를 위해 협력]입니다. 결국, 이것은 북한이 NPT 탈퇴라든지 IAEA의 핵사찰협정을 준수하지 않는 행동을 방지한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북한은 핵병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에너지문제 때문에 원자력개발을 했기 때문에 경수로의 제공을 요구했고, 경수로가 완성되기 전까지 핵개발 시설을 동결하길 원한다면 에너지의 제공을 요구했습니다. [테두리안의 합의]에서 2002년에 경수로 2기를 제공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또한 경수로 완성까지 년간 50만 중유를 제공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테두리안의 합의]는 북미가 각자 무엇을 중요시 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에너지의 확보, 미국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에 대한 약속의 성립, 북미관계 정상화의 창구를 확보했습니다. 이를 위해 거래한 내용은, 흑연감속로의 포기, 핵관련시설의 동결, [핵확산 방지 체제]에 협력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테두리안의 합의]가 실행된다면 북한으로서는 괜찮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이 합의에 협력하는 국가로서 보면, 결국은 북한의 위협 때문에, 북한에게 상당한 특전을 준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무상은 아니다고 해도, 경수로 기술과 시설의 제공과 중유 공급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합의가 이루어진 당초부터 이것은 지나치게 양보한 것이고, 위협에 굴복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기에, 우선 의회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는 매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클린튼정권이 이러한 정책 방향을 결정을 이유는, 북한의 체제는 자멸해서 붕괴될 것으로 예측하고 판단했기 때문이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의 핵개발을 저지하고, 시간을 벌면, 미국이 양보한 상대가 없어질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그런데 얄궂게도 그 후 이른바 [대만해협 위기]가 생기면서, 중국이 미중간의 완충지대로서의 북한의 역할을 재평가하게 되어서, 구도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 [대만해협 위기]에서 중국이 북한의 역할을 재평가했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중국에게 있어서, 대만과 함께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다른 한 전선인 한반도의 남부에는 주한미군이 있습니다. 중국이 90년대 후반에 완충지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북한을 유지시키기 위해 사실상의 원조를 포함한 교역을 강화함으로서 북한은 경제적 위기 때문에 자멸하지 않고, 한숨을 돌리고 현재의 바닥을 기는 상태까지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조기의 체제붕괴를 전제로서 북한과 교환한 약속은 반대로 미국의 족쇄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약속한 중유의 제공과 원자로 기술의 제공을 좀처럼 스케줄대로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북한은, 에너지 제공 등을 사실상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속위반이다]고 미국을 비난했습니다.


-- 클린튼정권 말기에는 북미관계 개선의 흐름도 있었죠.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클린튼정권은 말기가 되어서, 남북한정상회담에 이어서 북미관계 개선을 진척시켜도 좋다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부시Jr정권이 등장하고, 부시정권은 클린튼노선을 계승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새로운 교섭 상대에 대해서, 어떤 교섭전략으로 임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않되었습니다.

그럴 때, 9월11일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클린튼정권도 북한을 [깡패국가]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지금 말한바와 같이 교섭과 타협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시정권은 하필이면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명시해 버렸습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제일의 목표였습니다만, 그것을 최우선으로 진척시킬 조건이 없어진 것입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한국의 김대중정권도 남북관계에 노력해 주고는 있지만, 곧 이정권도 마지막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타개가 가능한 것은 북일 관계뿐이었습니다. 일본의 고이즈미정권의 사정도 당내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퍼포먼스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기에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실현되고 북일 교섭 재개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남북과 북일은 우선 교섭의 테이블에 앉은 것입니다.

-- 북일회담후에 켈리 미국무부 차관보가 방북했죠.

부시정권은, 동아시아의 미국의 파트너인 일본과 한국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으로 방향을 취한 이상,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당장 이라크와의 전쟁을 앞둔 상태에서 2곳에서 군사적 대결을 수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 미국의 자세를 나타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미국은 어디까지나 북한이 위험한 나라이고, 핵병기 개발의 의혹도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러나 그것이 전면적인 대결이 되지 않는 상태로 두면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북한이 핵개발도 하는 위험한 국가로 두는 것은, 미국의 미사일방위(MD)계획에 있어서 필요한 것입니다. 북한의 핵개발의혹과 미사일개발은 미국이 미사일방위계획을 진행시키는 좋은 구실인 것입니다. 노동과 대포동이란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핵개발도 추진하는 등, 미국과 동맹국을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미사일방위계획이 필요하고 할 수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는 북한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위협적이지 않은 국가가 되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곤란한 것입니다. 군산복합체의 이익으로 봐도, 미사일방위를 추진하는 정권으로서도 곤란한 것입니다. 그러나, 전면적인 대결에 대해서는, 지금은 거기까지 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북한이 여전히 핵개발을 진행시키고 있는 위험한 국가이다고 우선 말해두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필요했던 것입니다.

-- 북한은 왜 핵개발을 인정하는 견해를 표시한 것일까요?

그것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미국에 대한 보험이다]라는 것이, 북한으로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북한)도 어쩔 수 없이 핵개발을 하고 있다는 북한의 이유는, 반드시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 없고, 단순한 선전용도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태도를 바꿔서 핵개발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괜찮은 것이었습니다.

반면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핵개발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에서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양자의 관계에서, 북미교섭에서 미국이 ‘핵개발의 증거’를 지적하고, 북한이 그것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구도가 생긴 것입니다.

미국은 이라크에 대해서, [핵병기를 개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 수준에서 군사공격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대해서는 [핵개발을 하고 있습니다]고 말하면서도, 군사행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묘한 딜레마입니다만, 이것은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북미관계의 경위 속에서 서로의 입장을 인식한 결과인 것입니다.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둘러싼 일본 매스컴의 보도는, 이 기묘함을 전혀 지적하고 있지 않습니다.


-- 북일교섭도 암초에 걸린 듯이 보입니다만...

고이즈미정권을 북일교섭 재개로 이끈 것은, 여론 의존형 정권 구조때문이었고, 그 교섭이 막다른 길에 들어간 것도 여론 의존형 구조 때문입니다. 전의 인터뷰에서도 말했습니다만, 고이즈미정권의 옳고 그름은 별도로 하고, 나는 북일교섭을 진행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동북아시아의 안전에 이익이 있고, 미국의 행동을 봉쇄하는 것도 됩니다.
고이즈미정권도, 이것을 진행시킬 마음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속에서 납치문제가 외교카드인가, 따로 해결할 문제인가가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무엇으로 납치문제의 해결로 할 것인가, 준비가 없는 채 교섭에 임한 결과인 것입니다.

또한 매스컴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납치피해자의 사정을 생각하면 원상회복입니다만, 그것이 북일국교정상화와 어떤 관계인가를 정리하지 않은 채 국민감정을 선동했을 뿐입니다. 고이즈미정권은 여론 의존형이기 때문에 이것을 조정할 힘이 없습니다.

북미관계와 마찬가지로 이대로라면, 북한으로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으로,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고, 교섭은 파국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납치피해자의 원상회복은 필요한 것입니다만,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이것을 포함해서, 본래 국교정상화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그 누구도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핵문제는 [테두리안의 합의]에 되돌릴 수 있을까가 문제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면 북한으로서도 핵개발 동결은 가능합니다. 납치문제는 이번의 일본인 귀국자뿐만이 아니라, 사실상 삼세대에 걸친 문제로서 북일간에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을 위협으로 두길 원하고, 고이즈미정권은 해결 능력이 없습니다.


-2002년11월11일..이즈미 카오루와의 인터뷰(잡지 반전정보에서)

이즈미 카오루 홈페이지 : http://homepage2.nifty.com/IZUMI_Lab/

 

 

--- 아주 예전에 모사이트에 번역해서 올린 것인데 ... 지금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말들이 있는 것 같아서 ...라기 보다는 번역한 것이 아깝다는 ...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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