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면 딱히 할 일이 없다.
인터넷이 되면 멍하니 인터넷 서핑을 한다.
이번에 새로 이사한 집은 인터넷이 안 된다.
신청을 할까 하다가 일단 버티기로 했다. 꼭 해야할 때는 근처에 싸고 괜찮은 핸드드립 까페로 간다. 맘에 드는 곳이다.
집에 가면 그래서 밥을 해 먹기도 하고, 청소도 자주 한다. 괜히 머리카락이 보이면 한번 방을 쓸기도 하고, 설겆이도 자주자주 한다. 화장실에 냄새 제거를 위한 커피원두 주머니를 만들고, 괜시리 방안에 깔아놓은 이불의 방향을 이리 바꿨다가 저리 바꿨다가 한다. 차 한잔을 마시고, 책장에 숨겨놓은 위스키도 한잔 마시고, 그런 온갖 가지 사소하고 잉여로운 일들 사이에 책을 읽기도 한다.
어제 손에 잡은 책은 포스트식민이성 비판과 네트워크사회의 도래 이다.
둘다 무척이나 두껍다. 포스트식민이성 비판은 글자가 굵직굵직 커서 읽기가 좋았는데, 조금 책장이 넘어가다보니 토나올 것처럼 어렵다. 한동안 멍때리면서 읽다가 덮고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를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이 정보 뭐시기 하는 영역은 내가 무척이나 재미없어 하면서 또한 왠지 모르게 참 진부한 내용이 것이다. 그래도 뭔가 새로운 것이 없나 하고 읽어보지만 그 두꺼운 책 어디에 재밌는 내용이 있을지 몰라서 참 보물찾기가 따로없다. 그래서 몇 페이지 읽다가 그대로 잠 들었다. 한참을 자다가 깨보니 바로 옆에 두툼하고 따뜻한 이불을 깔아놓고는 무릎담요 덮고 웅크리고 자고 있는 한심한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는 꼬물꼬물 기어서 이불 속에 파고들어 자는데, 불을 끄고 자야하건마는 불 끄는게 귀찮아서 그냥 잔다. 또 한참을 자다가 지구 온난화에 해로운 기여를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귀차니즘을 겨우 극복하고 일어나 불도 끄고 라디오도 끄고 코드까지 뽑고 잔다.
재미없는 책은 그만 읽자. 오늘은 도서관에 들러서 미하엘 엔데의 책을 빌렸다. 그의 책은 아마도 모모밖에 읽은 것이 없을텐데, 멋진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나도 좀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려나.
사실 지금 일을 해야 한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몇년 전의 일들부터 최근까지의 일을 모두 정리해서 보고해야하는 일이다. 하기 싫은 일을 앞에 놓고있으려니 몇시간이 그냥 가는구나. 보고를 해봐야 누가 본다고 그걸 정리해서 자료집까지 만들어야하다니 참 세상에는 쓸데없는 일이 많다. 쓸데없는 일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 일일 수도 있지만, 잉여로운 일도 잉여 나름이다.
잉여로운 글쓰기의 카테고리를 만들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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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시군요!! 저는 인터넷이 안 되도 청소는 안 하는데요. 굴러다니는 머리카락 사랑을 무시하지마-_-;; 이러는데.
ㅋㅋ 이사한지 얼마 안되서 그럴거예요. 아직은 낯설어서 뭐든 쓸고 닦고... 왜 남의 집에 가면 괜시리 더러운 거 눈에 띄고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