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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드(디아르바크르)에서 촉발된 쿠르드인들의 저항이 쿠르디스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크즐테페는 2004년말 경찰이 아무런 이유없이 12살짜리 꼬마와 그 아버지를 사살함으로서 쿠르드인들이 크게 저항을 했던 도시이다. 아메드와 인근 지역에서 발생한 유혈진압을 중단할 때까지 테러를 계속하겠다는 '쿠르드 자유의 매'가 이스탄불에서 폭탄테러를 일으킨 것 역시 터키 정부의 쿠르드인 유혈탄압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보인다. 모든 쿠르드 공동체가 '쿠르드 자유의 매'처럼 테러와 같이 폭력적인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메드 인근 실반에서는 모든상가가 철시하였다. 버스회사는 물론 식당, 시장 심지어 노점상까지 철시하고 그 자리엔 경찰만이 남아 있다. 상가 철시와 같은 저항 방식은 공동체의 전체적인 합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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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동남부 아메드(디아르바크르)시에서는 사망자가 속출하는 격렬한 시위가 3일째 계속되고 있다.
시위대를 향한 경찰과 군의 총격 등으로 사망자가 발생하고, 이에 대한 항의 시위가 다시 조직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으며 이제는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29일 사망한 이들의 장례가 치뤄진 30일 아메드에서는 다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렘지 차그리(17세)등 3명의 쿠르드인 사망했다.
▲ 17세의 소년 렘지 차그리가 총에 맞고 옮겨지고 있다.
▲ 총에 맞은 쿠르드인. 이 사람의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메드 시내 곳곳에는 군과 경찰이 주요 시설에 대한 삼엄한 경비를 서는 한편,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는 군인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터키 경찰과 군의 이런 살인진압은 시위를 격화시키고 있으며, 30일 시위에서는 화염병이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진압과정에서 부상자를 후송하기 위해 구조신고를 해도 구급차가 도착하지 않아 정부가 구급차마저 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과 군은 시위대를 향한 사격으로 사상자를 발생시켰지만, 새총을 이용한 투석, 최루탄의 직격 발사 등으로 인한 부상자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 시위대를 향해 조준하고 있는 군인들.
▲ 시위대를 향해 조준하고 있는 군인들.
▲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새총을 이용해 투석을 하고 있다.
▲ 최투탄을 직격으로 배에 맞고 부상한 쿠르드인.
시위가 모두 종료된 현재(밤 9시 40분)에도 총성이 들리고 있으며, 시위 참가자 색출이라는 이유로 무단 가택수색을 하는 등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한국에게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우는 이 곳 터키는 지배자들이 민중을 억압하는 방법까지 그대로 닮았다. 터키 정부는 형제의 나라 한국에서 발생했던 80년 오월 광주민중항쟁을 기억하고, 더 불행한 일이 발생하기 전에 살인진압으로 시위대를 자극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분노를 풀어줄 방법을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 시위현장 근처에 떨어져 있던 탄피.
어제,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편집하여 한국으로 보내기도 해야겠고 친구들도 우리가 아메드를 빠져나가길 바래서 일단 아메드를 빠져나왔었습니다. 오늘 쿠르드 소식을 알리는 위성TV와 전화로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오늘도 충돌이 일어나 10명이 사망하고 100여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입니다. 특히, 오늘부터는 군대가 사태에 개입을 시작했으며 시위대에게 직접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전화로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시위대를 향해 일제사격을 가했고, 사망자와 부상자의 대다수는 이 사격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100여명이 부상당했다. 소식을 전해 들으며 뇌리를 스치는 것은 80년 광주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자유와 나라'라는 현지 언론에 의하면, 아메드(디아르바크르) 시내는 상가가 철시하고 사람들마저 빠져나가 고요함을 이루고 있으며, 경찰과 군의 합동작전만이 거리에 있습니다. 텅 빈 거리에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고, 간간이 있는 시위대를 공격하는 경찰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각종 장비에 복면까지 뒤집어 쓴 군과 경찰은 무기라고는 돌밖에 없는 맨몸의 시위대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복면까지 뒤집어 쓴 군과 경찰. 시민에게 무차별 발포하는 것이 군과 경찰의 본연 의 임무인지, 80년 광주가 떠오르며 가슴이 아파옵니다. |
3월 25일 터키 동부 쿠르디스탄 지역의 빈골이라는 지역에서 터키 정부군의 대규모 PKK게릴라 소탕작전을 시행 총 14명의 게릴라를 사살하였습니다. 1985년생 1980년생 1977년생 ABDULLAH RUKUN(Êlih) ÎDRÎS SÎNET(Edene) KEMAL TAHAZADE(Mahabad) 1982년생 1982년생 1978년생 FATÎH ÇETÎN(Amed) HAMET GULÎ(Kobanî) MUZAFFER PEHLÎVAN(Amed) 1982년생 1979년생 1981년생 ADNAN MAHMUT(Kobanî) MAHMUT GULER(Amed) HUSEYÎN KIZIL(Semsûr) 1977년생 1982년생 1978년생 ARMAN KATURANÎ(Sinê) KAWA ÎBRAHÎM(Silêmanî) 1982년생 1979년생 사살된 14명의 게릴라 가운데 4명이 아메드 태생이어서 3월 28일 오전 10시에 합동으로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먼저 공격을 했는지, 장례행렬이 먼저 공격을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경찰과의 대규모 충돌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4명의 쿠르드인이 사망한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뒤늦게 이 소식을 알고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장례행렬은 끝났습니다만, 저녁 늦은 시간까지 남아 계속 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도착했지만 시위는 매우 격렬하였고 경찰의 진압은 한국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진압방식이었습니다. 경찰의 진압은 시위대를 향한것 뿐만아니라 주변의 시민에게까지 무차별로 이루어졌으며, 연행되는 시위 참가자의 사진을 찍는 저에게 경찰이 총구를 들이대며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위협하던 경찰은 정복도 아닌 사복을 입은채 총기로 위협하였으며, 설사 사격을 가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누구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연행되는 시위 참가자. 그는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계속 경찰의 폭행을 당하고 있 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총구를 들이대며 위협하는 통에 더 사진을 찍을 수 없었 습니다. 시위대를 총기로 구타하는 한편 시위대를 향한 위협사격을 계속하여 언제 총탄이 날아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젖기도 했습니다. 어두워질수록 무방비 상태에 있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은 돌을 던졌고, 시위가 있는 거리를 단전시켜 가로등마저 꺼버려 날아오는 돌이 보이지도 않은채 시위대를 공격하였습니다. ▲ 시위대를 향해 돌을 던지는 군인. ▲ 시위 현장의 거리를 단전시켜 가로등마저 꺼진 거리. 멀리 경찰 차량의 불빛과 희 미하게 시위대의 모습이 보인다. 시위대는 현 집권당인 AK PARTI 정부은행인 Trukiye Bank등을 공격하였고, 경찰과 군대는 이에 맞서 진압부대 배치 및 경찰장갑차의 기동순찰로 맞서고 있습니다. ▲ 집권당인 AK PARTI를 공격하는 시위대. AK PARTI를 방어하고 있는 대열은 경찰 이 아닌 군대이다. ▲ 시위대는 국립은행인 Trukiye Bank를 방화했다. 저녁 7시를 넘긴 시간까지 경찰 장갑차가 시내를 질주하며 순찰하고 있고 시위대는 산발시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
아메드(디아르바크르)에서 경찰과 충돌 발생!!
아메드(디아르바크르)시에서 쿠르드인들과 경찰과의 충돌이 발생,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급하게 전화로 알려왔습니다.
얼마 전, 아메드 시에서는 몇 명의 쿠르드인이 게릴라로 지목되어 죽는 사건이 발생, 그 장례식이 오늘(2006년 3월 28일) 있었습니다.
장례과정에서 경찰과의 대규모 충돌이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누가 먼저 공격을 했는지, 정확한 사상자는 어떻게 되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대규모의 충돌이 일어난 것으로 미루어 많은 사상자가 있을것으로 예상됩니다.
한상진씨와 저는 10분전 이 소식을 전화로 전달받았으며 늦으나마 급하게 아메드로 가려고 합니다.
매일같이 죽어가고 있는 쿠르드인들의 현실은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PLSong.com 운영자 단풍 드림
21일 네우로즈에 참석하기 위해 터키 동남부의 지즈레라는 도시에 와 있습니다.
도착해 숙소를 정하고 식사를 하느라 큰 일은 없습니다만, 현재 지즈레에서는 도시의 아이들이 모여 거리를 행진하며 "오잘란"을 외치고 있습니다. 오잘란은 쿠르드 독립을 주장하며 무장 게릴라 조직인 쿠르드 노동자당(PKK)의 당수로 현재 터키 정부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고 복역중에 있는 쿠르드의 지도자입니다.
아직까지 큰 불상사는 없지만 아이들이 계속 시내를 행진하고 있는 탓에 경찰은 매우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내일 있을 네우로즈에서 더욱 큰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을 경찰도 원치 않을 것이므로 불상사는 없을 것입니다.
터키에 와서 여러 도시에서 열리는 네우로즈에 최대한 많이 참가하고 싶었지만 첫 네우로즈는 군과 경찰의 검문때문에, 두 번째 네우로즈는 하카리 경찰에 연행되는 통에 한 번도 제대로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내일은 꼭 볼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오잘란의 사진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아이들의 사진을 한 컷 올립니다. 단,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하였습니다.
지금은 하카리에서 4시간 떨어진 반이라는 도시입니다.
하카리에서 네우로즈에 참석하려다 경찰에 연행되어 6시간 동안 억류되어 있다 풀려난 뒤 곧바로 하카리를 떠나왔습니다.
연행되고서 무려 5시간이나 지난 다음에야 하카리 네우로즈는 허가되지 않은 불법집회였고, 그에 따라 네우로즈 모든 참가자를 검색하라는 명령이 상부에서 내려져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경찰로부터 전달받았습니다.
아침 9시경 네우로즈 현장에 들어가려는 저를 가로막아선 경찰은 아무런 말도 없이 제 몸을 더듬기 시작했고, 이에 항의하던 저는 단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콘트롤"
Control. 통제를 하겠다는 뜻이었고 이에 영어가 가능한 경찰을 찾으며 거부를 했더니 곧바로 입이 틀어막히고 팔이 뒤로 꺽인채 경찰차에 강제로 실려 경찰서로 연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두어대 얼굴을 가격당하기도 했습니다.
팔이 너무 심하게 꺽여 아프다고 말했지만 경찰은 "웰컴투 터키", "터키 폴리스 굿"이라는 말만 하더군요. 마치 아는 영어는 그것밖에 없는 것처럼...
경찰서에 도착하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영어가 가능한 경찰이 왔고, 그 이전에는 한 경찰은 저에게 침을 뱉는 등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더군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아무런 설명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경찰서에서 변호사가 오고 영어통역이 가능해지고 나서야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콘트롤"이라는 터키어 단어가 있으며, 그것이 수색을 의미한다는 사실과 수색을 요청-콘트롤이라는 한 마디-했는데 그것을 거부하여 수색거부죄로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사실을 연행 뒤 5시간이나 지나고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6시간만에 법정으로 가서 약식으로 재판을 받았고 방면되었습니다. 방면되고 곧장 네우로즈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끝난 상황이었구요.
오로지 네우로즈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지 않고서야 이럴 수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일단 몸에 이상은 없고 곧장 하카리를 떠나왔기에 신변의 위협도 사라졌습니다.
형제의 나라 터키에서 아무런 통보도 없이 강제 연행, 억류, 폭행 당했지만 그나마 저는 외국인이라 이정도 일 것입니다.
제가 쿠르드인이었다면, 현장에서 어떤일을 당했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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