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6/08/28 10:42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간만에 빈곤관련 자료들을 다시 보니 느낌이 새롭다. 지역을 고민하기 위해서 그리고 노동운동의 확장과 새로운 운동주체의 발굴을 위해서 '빈곤'이라는 주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근골격계가 노동자들의 주요한 무기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빈곤'은 전 민중의 무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전히 그럴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왠지 가깝고도 먼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

 

뭔가 끈질기게 고민한다는 것은 하나만으로도 벅차다. 에효... 병원 직원들의 구조조정땜시 스트레스가 만땅인 요즈음, 화이팅 하고 싶다. ㅠㅠ

 

================================================================================== 


사회보험과 빈곤에 대한 글을 쓰려고 자료를 뒤적이던 오늘, 정부는 4대 보험의 징수업무를 국세청으로 통합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발표하였다. 이유는 노무현 정부가 사랑(!)해 마지않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 통합에 대한 판단은 둘째 치더라도 일단 나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이 있었다. 바로 이러한 통합의 의견을 주도한 대통령 자문기구가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라는 사실이었다. 왜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에서 사회보험을 고민하는 걸까?


사회보험은 사회보장의 한 부분으로서 도입·시행되는 제도로 사회적 위험에 봉착하여 소득이 중단될 때 이전의 생활수준을 최대한 유지해 주는 목표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고용보험, 산재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의 4대 기본 보험이 있다. 개별적 필요에 의해 가입하는 민간보험과 달리 사회보험은 강제성을 바탕으로 하여 질병, 산업재해, 실업, 노령과 같은 인생의 ‘위기’에 대해 사회적 차원에서 ‘보험’을 드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보험의 대상이 되는 위기라는 것들이 결과적으로 빈곤을 유발하거나 또는 빈곤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니 이에 대한 ‘보호’ 또는 사회안전망의 의미로서의 4대보험이 이야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빈곤층의 많은 수가 노동빈곤층1)이고 불안정한 노동이 빈곤의 가장 커다란 원인이라는 것에 모두 공감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대안마련 혹은 차별해소의 차원에서 4대 보험의 적용 확대가 논의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적용의 확대가 주된 정책과제가 될 만큼 실제로 그 가입률이 매우 낮다2).


그러나 이러한 사회보험의 체계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각에는 근본적인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사회보험은 불안정노동이나 빈곤과 같은 일상적 위험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 산재, 실업, 노령과 같은 급박한 위험에 봉착할 경우에만 제공되는 체계라 빈곤층의 생활을 일상적으로 보장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둘째 사회보험은 정규적이고 안정적인 고용관계에 근거하여 마련된 제도인지라 실업과 고용을 반복하는 빈곤층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없다. 즉, 빈곤의 완화책으로서 사회보험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란 이야기다. 셋째 사회보험은 소득 역진적이라 안정된 정규직의 직장가입자는 사업주와 노동자가 반반씩 보험료를 내지만 상당수의 비정규직은 혼자 보험료를 내야 한다. 또한 사회보험에 의한 보상은 일정 기간 이상의 기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일정정도 임금불평등을 재생산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특수고용직이나 호출노동, 재택근로, 시간제노동자를 비롯한 영세자영업자와 같은 집단은 사회보험의 적용자체가 어렵다.


백번 양보해 ‘빈곤퇴치’가 아닌 ‘빈곤층보호’를 목표로 삼더라도 사회보험체계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보험이 아니라 사회보장체계 전체로 확장하더라도 문제는 마찬가지이다. 절대빈곤층만을 놓고 보더라도 노동빈곤층의 79.1%가 기초법을 수급하지 못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의 역사적 과정속에서 사회보험의 역할을 살펴보면 그 전망은 더욱 비관적이다. 필자가 아는 한 한국사회에서의 사회보험은 한번도 전체 노동계급에 또는 민중에 적절한 보장시스템으로 작동했던 적이 없다. 우리나라의 사회보험은 폭력적으로 집권한 독재정권들이 군인, 공무원, 교사 또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등을 포섭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역할을 해왔고 그런 유화책으로서 작동해 왔다.


자본의 유연화와 포섭 전략과 보조를 맞추어서 사회보험의 가입범위를 확대시키고, 관리운영 구조를 통합하는 것은 빈곤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산재보험의 적용 사업장이 확대3)되었지만 이는 노동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확장하는데 기여하지 못했다. 노동자들이 양심도 없이 산재보험료 타먹어서 산재보험의 운영이 어렵다는 이야기로 귀결되었다. 또한 산재보험의 합리적 운영이라는 미명하에 승인을 어렵게 하고 강제종결하고 산재환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는 지금에 이르렀다.


사회보험이라는 단어 속에서 ‘보험’이 아니라 ‘사회’에 방점을 찍는다면 ‘효율과 합리라는 비용절감’이 아니라 ‘얼마나 잘 보장해 주는가’가 운영의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군다나 한미 FTA의 체결로 우리나라의 공적 보험 체계는 자본의 민간 보험에 대한 집중 포화속에 커다란 위기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돈 놓고 돈 먹는 보험시장이 커질수록 사회보험의 설자리는 작아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곤해결을 위한 또는 완화를 위한 체계는 사회보험이 아니라 사회보장이라는 큰 틀에서 고민되어야 하며, 상당한 재원의 투입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한 지금까지의 사회보장체계로는 빈곤완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현실에 나타나고 있다.


왜곡된 자산평가로 인해 낮은 수급률을 보이는 기초법이나 빈곤한 노동의 악순환을 해소하지 못하는 자활사업, 생활임금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최저임금의 한계는 이미 명확해졌다. 또한 최근 도입이 검토되고 있는 일하는 사람들의 세금 체계를 조정해주는 근로소득보전세제(EITC)는 그 체계상 소득보장이나 빈곤탈출의 효과보다 저숙련·저임금·불안정 노동으로 빈곤층을 몰아넣는 효과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본개념을 확 바꾸는 정책이나 대규모의 재원 확대를 통한 현 체계의 확대재편이 단기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능력이나 자산조사 등의 조건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현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basic income)’의 도입이나 단기적 해결책으로서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대대적 개혁 및 실업부조의 도입과 확대 등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옛 속담이 있다. 이는 가난은 나랏님이 이야기하는 어떤 정책이나 제도적 보완책으로 또는 자선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결국 사회보험의 연장선상에서 고민한 제도적 보완장치와 정책들도 결국에는 구제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나랏님이 아무리 ‘양극화’ 어쩌고 외쳐대도 그 해결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최근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양극화가 더 심해졌으니 경제성장률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현 자본의 흐름을 무시한(!) 어처구니없는 구시대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이야기한 기본 소득의 문제나 실업부조의 도입, 또는 현 법제도는 개혁이라는 최소 목표도 전체 계급의 힘없이는 결국 자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리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4). 결국 극도로 불안정한 노동시장 속에서 고통 받는 민중들이 가난에서 구제되는 길은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안정된 일자리의 확대, 일상적 구조조정을 저지하기 위한 현장통제력의 확대, 다양한 조세 개혁과 사회보장 정책의 변화 등 사회 모든 영역과 수준에 걸친 민중들의 자율적 저항에 달려있다. 결국 가난 구제는 우리 스스로 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자본을 강제하고 이에 저항해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8/28 10:42 2006/08/28 10:42
TAG :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ptdoctor/trackback/23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kong 2006/08/29 1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갸우뚱 갸우뚱... 정부의 누군가가 "사회보험(만)으로 빈곤을 해결하겠다"라고 장담을 했다는 건지? "기본개념을 확 바꾸는 정책이나 대규모의 재원 확대를 통한 현 체계의 확대재편"이 "단기적인 대책"이므로 4대보험 통합 논의에 대해 반대/비판하는 것인지? 글에서 주장하는 바를 잘 모르겠어요. 맨 마지막 문단에서 말하는 "개혁이라는 최소 목표"가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것인지도 설명이 더해지면 좋겠어요. 몇번을 읽어도 모르겠삼... OTL

  2. 해미 2006/08/29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콩/ 사회보험 체계로 최소한의 해결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룹이 있는거구요. 정부는 그야말로 다각적인 대책들을 내고 있지요. 그 중에 중요한 한축으로의 사회보험개혁건이 있는 거구요. 4대보험 통합은 빈곤에 대한 대책으로 직접적으로 언급된것은아니고 그냥 글을 쓰던날 들었던 느낌이라서 사회보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라 갖다 붙인거에요. 4대보험 통합에 대해서는 아직도 생각중...
    개혁이라는 최소목표는 이른바 사각지대의 해소나 혜택받는 사람들에 대한 확장, 보장성 확장등을 이야기하는 것이구요. 이것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근본을 보자는 내용이었죠. 결국에는 사회보험의 체계로 (예를 들어 실업급여나 근로자소득보전제도, 기초법 개정 등) 같은 것으로는 빈곤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쓰려고 한거에요. 현재는 이런식의 제도적 접근이 대세니까요. ^^

    에공.. 좀 자세히 진중히 글을 써야 했는데... 지송.

  3. kong 2006/08/30 1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덧글과 본문을 다시 보니, 언뜻 해미가 사회보험/사회보장/공적(공공)부조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여지가 있네그려. 그게 아니더라도 독자는 충분히 혼동할 수 있겠다 싶고. 최소한의 생계보장이나 의료보장은 사회보험의 역할이 아니라 공공부조 혹은 사회보장제도의 역할로 배웠던 기억이 나네. 그래서 누군가가 '사회보험으로 빈곤을 부분적으로라도 해결하겠다'라고 주장했냐고 물었던 거야. 만일 그랬다면 '사회보험은 기본적으로 빈곤과 무관한 건데, 그걸 가지고 빈곤해결 어쩌구 생색을 내고 있냐'라고 반박해버리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글 전체적으로 사회보험이 아니라 사회보장으로 수정하면 해미의 논리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

    '자본주의사회에서 빈곤은 해결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의료, 주거, 교육 등 다양한 삶의 요구를 가지고 투쟁하고 있는 이들이 '사회보험/사회보장/사회복지를 제대로 하라'라고 요구하는 것, 그것에 희망이 있다고 말하려는 거 맞지?

  4. 해미 2006/08/31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콩/청탁받은 제목대로 글을 쓰다보니 그리 되었지요. 제가 혼동을 한게 아니라 사회보험만으로 이야기하기 민망하여 사회보장, 공적부조를 포함해서 이야기를 쓴거에요. 생각해보니 걍 제목도 바꾸라고 할걸 그랬네요. ㅋㅋ

    제가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언니가 이야기한 부분도 있지만 사실은 제도와 법, 복지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정책을 포함한 사회정책과 불안정 노동 전반에 대한 요구와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너무 뜨는 이야기인것 같아 적당히 모호하게 처리한거라우.

    글이 실릴 잡지의 독자층을 고려하여 적당한 환기와 중요성 인지등을 글의 기능으로 삼았던 거지요. 사회보험/보장 체계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자니 그거 일일이 설명하다가는 분량이 넘어갈것 같고, 현재의 흐름만을 가지고 이야기해야겠다 생각했었거든요. 흠.. 다음부터 이런글을 쓰지 말아야겠다.

  5. kong 2006/08/31 1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해미의 마지막 저 말은 더 좋은 글을 쓰겠다는 다짐인게야.... ㅡ.ㅡ++

About

by 해미

Notice

Counter

· Total
: 420761
· Today
: 46
· Yesterday
: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