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9/02/04 17:21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직장문제로 고민이 되다 보니 일이 손에 안 잡히기 시작한지 벌써 몇 일이다. 그러다 보니 딴 짓만 하게 된다.

 

분명한 것 몇 가지

 

1. 직장에서의 직급과 교수, 정규직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 활용, 현장 다니는데 있어서의 자유)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

2. 내가 지역에 온 것은 외각에서가 아니라 공간적인 묶음 속에서 일상적인 호흡을 같이하면서 무언가를 도모하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는 것

3. 마지막으로 전문가로서의 소양을 쌓고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것

 

판단해야 할 것 몇 가지

 

1. 지금 있는 병원에서 지금까지와 같이 계속 활동을 하고 시간적 자율성을 갖는게 가능한가의 문제.

2. 앞으로 한 두해를 기다리면 그런 조건들을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

 

이다. 이걸 가지고 계속 생각해보고 내일까진 결정을 내려야겠다.

 

12-1월 이래 저래 복잡한 마음이라서 주구장창 소설만 읽었다. (이게 바로 현실 회피다. ㅠㅠ) 이젠 슬슬 차분한 생각이 필요한 책들도 읽어야겠다 싶다. 혼자 살면서 일부러 TV를 사지 않았는데 이는 라디오나 책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는 것 같다. 좌우당간 1주간의 고민을 얼릉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1.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독립을 해서인지 갑자기 눈에 띄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고나니 서울에 혼자 계신 엄마 생각이 많이 나서 전화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뭐, 또 여전하다. 이런 신파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다양한 시점에서 전개된 독특한 구조의 서술방식이 재미있었다.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환타지적 요소가 있으니 제작비는 많이 들겠군.

 

#2.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서점에서 표지가 맘에들어 질렀던 책이다. 한동안 에곤 쉴레에  빠져 있었는데 (그 결과 올해 내 방에 걸리게 된 달력이 바로 에곤 쉴레이다.) 에곤 쉴레 풍의 그림이 눈에 띄었고 '밤은 노래한다'는 제목이 맘에 들었더랬다.

 

일제 시대 만주벌판에서 있었던 민생단 사건을 중심축으로 하여 평범한(?) 사람이 공산주의자가 되었다가, 중국 공산당이 되었다가, 민족주의자가 되기도 하면서 여러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게 되고 사랑을 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였다. 혼란한 시기 누가 적인지 우리 편인지가 상황에 따라 변해 버렸던 그 시기. 아마도 그들은 무엇을 위한 혁명이고 무엇을 위한 독립인지에 대한 고민이 어려웠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로 만들면 망하겠지? ㅡ.,ㅜ:;

 

이념과 신념이란게 절대불변의 또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무엇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한 무엇이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다.

 

#3. 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몇 년전 동생이 '누나가 읽어보면 재미있을 거야'라며 가지고 온 책이었는데 동생이 결혼해서 분가하고 난 후 집에 남아 있던 책이 내가 이사를 하는 와중에 딸려왔다. 영화를 보고 아무 생각이 없다가 어느날 문득 생각이 나서 밤에 읽기 시작하다가 후루룩 읽었다.

 

글을 감칠맛 나게 쓰기도 했지만 영화까지 보고 읽다 보니 더 생생한 느낌이었다. 영화보다는 그래도 소설이 조금 나은듯 했지만 뭐... 여전히 맘에 안 든다. 남자들의 로망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니 말이다. 그래도 술술 읽히는 글솜씨는 썩 괜찮았다.

 

#4. 2008 이효석 문학상 수상 작품집

 

 

몇가지 문학상 수상 작품집은 단편소설로 되어 있어서 자기전에 읽기에 딱 좋다. 김애란의 재기발랄한 문장들을 좋아하는데 나는 수상작인 칼자국 보다 자선작인 큐티클이 더 재미있었다. 비정규직으로 힘들게 일을 하면서 살아도 손톱을 다듬고 피부관리를 하는데 돈을 쓰는 우리네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이 살포시 겹쳐서 속이 쓰렸다.

 

#5. 2009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음.. 읽은지 오래되어 기억이 잘 안나는데 좋았던건 박민규의 낮잠과 박형서의 정류장이었다.

 

대상수상작은 담담한 문체로 지나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지독하게 하는 구나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내 공감을 불러 일으키진 못했던것 같다. 박형서의 정류장은 댐 건설이라는 개발속에서 망가져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엿보게 되어서 마음이 짠 했다. 글을 담담하게 써내는 필력이 꽤 괜찮았다.

 

박민규는 워낙에 좋아하는 작가인데 이번 작품은 좀 특이했다. 예전에 이 책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읽었던것 같기는 한데 박민규가 특유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기반으로한 얌체공같은 소설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진득히 바라보며 살펴야 하는 소설도 잘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 것 같았다.

 

#6. 체인질링

 

 

우웩 지긋지긋한 경찰들. 공황기 LA의 경찰이나 지금 한국의 경찰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냔 말이다. 아메리칸 갱스터에서도 나왔던 그 당시 미국 경찰들의 구질구질한 추태를 한 싱글맘의 싸움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에서 이스트우드다운 냉정하면서도 꼼꼼함을 보았다. 그렇지만 전작들에서 보여주던 철학적 느낌은 별로더라. 아마도 실화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악이 응징당한다는 스토리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한국이라니... ㅠㅠ

 

참,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는 연기도 잘 하는 배우였다. 글구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하루종일 서서 전화교환수일을 하려면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7. 과속스캔들


 

워낙에 대박영화. 대박나기전에 개봉하고 얼마 안되서 바로 봤다. 이유는 오른쪽에 있는 저 꼬마 때문이었다. 예고편에서 본 심드렁한 미소가 얼마나 귀엽던지. ㅋㅋ 싱글맘과 그의 아들이라는 역할을 전형적이지 않게 처리한 것이 꽤 맘에 들었다.

 

#8. 쌍화점

 

 

솔직히... 조인성이 벗는다는 소식에 보러 갔다. ㅠㅠ 글고 어느 라디오에서 공형진이 조인성과 주진모가 평생의 필모에 뚜렷이 남길만한 연기를 했다고 평을 하길래 보러 갔다. 뭐.. 근데 생각보다 섹시하진 않았다. 동성애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 왕비가 강간이나 다름없는 섹스를 통해서 사랑을 알게 된다는 스토리도 영 거시기 했다. 내용에 집중이 안되니 조인성의 섹시함이 반감된듯 하다. 그냥, 사랑과 집착에 대한 영화라고나 할까? 뭐 그래도 미인도보다는 괜찮았다.

 

#9.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마르크스와 민중혁명을 입에 달고 사는 지나간 운동권의 허위와 재수없음이 그대로 까발려지는 영화였다. 씁쓸하기는 했지만 리얼한 느낌이 마음에 와 닿아서 좋았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았다. 만들어지고 몇 년 창고에만 있다가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를 뒤늦게 본건데 꽤 잘만든 날카로운 영화였다. 특히 여배우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표정 연기가 아주 좋았다. 홍소희라고 하던데 다음이 기대되는 배우다.

 

#10.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아는 형의 외삼촌 뻘인 박광정씨가 폐암으로 사망하고 나서 예전에 보고 싶었던게 생각나서 봤다. 바람난 부인의 남자친구의 택시를 타고 서울에서 속초로 다시 속초에서 서울을 오가는 로드무비같은 영화였다. 그 과정에서 진짜 속에 있는 말은 단 한마디도 못하는 소심한 남편과 바람 잘 피우는게 무슨 능력인양 자랑하는 바람둥이 남자 모두 사람들과의 진정한 소통과 관계에는 실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속에서 라디오 멘트로 몇번씩 반복되는 '이상할 정도로 더운' 어느 여름날에 사람들이 만나지는 과정을 꼼꼼하게 잘 그린 괜찮은 영화였다.

 

#12. 중경 삼림

 

 

1994년의 금성무와 양조위를 다시보는 느낌이 좋았다. 15년이 다 되가는 지금 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회화적인 화면과 연애라는 관계 전후로 나타나는 사람들의 미세한 감정을 잡아내는 왕가위의 솜씨는 정말 발군이다.

 

영화를 보면서 금성무가 참 잘 생겼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13. 민들레 바람되어

 

내용도 잘 모르고 그저 조재현이 하기 때문에 보러갔다. 죽어서 영혼이 된 부인과 늙어가는 남편의 대화가 시종일관 펼쳐지는 연극은 꽤 감동적이었다. 손을 잡고 같이 온 중년의 커플과 중년 여성들이 연극을 보면서 같이 울고, 웃고 하는 광경이 기억에 남았다.

 

 

#14. 콘서트

 

12월에는 콘서트를 갔다. 루시드 폴과 자우림.

 

루시드 폴은 정말 아무런 세션없이 기타하나 들고 조용히 앉아서 시를 읊듯이 부르는 노래가 너무 좋았더랬다. 혼자 가지 않았고 동네가 대구가 아니었다면 어디 포장마차 근처에서 소주한잔 했을 것이다. 그 콘서트에서 루시드 폴은 이제 공부는 그만하고 음악만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얼마전에 기사가 났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과감히 다른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그의 용기가 약간 부러웠다. 나는 영 소심하고 귀가 얇아서... ㅋㅋ

 

자우림은 정말 재미있고 신났는데 약간 씁쓸했다. 2008년의 마지막날과 2009년의 첫날에 걸쳐 펼쳐진 공연은 정말 카리스마와 가창력, 그리고 열정으로 넘쳐나는 공간이었다. 공연 중간중간 지금의 정권에 대한 느낌도 솔직히 전달할 줄 아는 그들이 좋았다. 하지만 그날은 보신각에서 송구영신 투쟁을 하고 몇몇은 연행되기도 한 날이었다.

 

표 값이 아까워 가기는 했지만 충분히 즐기기에는 영 분위기가 나지 않았던 연말인지라 공연끝나고 집으로 쌩~ 귀가 했다. 술 한잔 안한 맹숭맹숭한 새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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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4 17:21 2009/02/0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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