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9/02/20 17:03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데이비드 핀처와 브래드 피트의 조합이었다. 게다가 케이트 블란쳇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아니라 무덤에서 요람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이야기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그렇게 사람의 호기심을 끌만한 영화였다.

 

 

세븐으로 세기말적 분위기를 자아내던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가 맞나 싶을 만큼 영화는 그렇게 염세적이거나 비관적이지 않았다. 가슴이 아프기는 하지만 인생에 대한 관조와 낙관이 엿보이는 영화였다. 데이비드 핀처의 지난 영화인 조디악을 아직 보지 못했는데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세븐과 이번 영화는 그만큼이나 간극이 크다.

 

영화에 대한 첫인상은 '사랑'에 대한 영화라는 것이다. 겉모습이 늙어 있는 벤자민은 젊은 육체를 가진 데이지에게 적극적이지 못하고 늙어가는 데이지는 젊은 육체를 가진 벤자민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다. 시간의 흐름 속에 그들이 진정으로 그들의 사랑에 솔직하고 욕구에 충실할 수 있었던 시기는 그들이 비슷해 보였던 잠깐일 뿐이다. 그것도 벤자민이 친부로부터 거액의 재산을 물려받아 경제적 능력이 생긴 그 순간 말이다.

 

벤자민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배를 타면서 일용직 노동자로 살았다면 그들의 그 잠깐의 달콤한 순간조차도 불가능한 것일 수 있겠다 싶었다. 사랑이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런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을 비롯한 조건들이 맞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서로가 상대방에게 당당하게 설 수 있을 때 그들의 관계는 진전하는 것이 아닐까? 그 당당함이라는 것이 표면상의 나이와 경제적 문제였다는 것이 불만이기는 하지만 영화속 사랑은 관계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들의 사랑이 더 안타까울 수 있는 것 아닐까? 매일 밤 다른 장소에서 서로 '굿 나잇'을 나즈막히 읖조리지만 결국 함께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그들의 사랑이 아련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사랑'에 대한 영화는 아닌 것 같았다. 전쟁에서 사망한 아들을 생각하며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들었던 사람에게, 벤자민이 살아가던 양로원에서 죽음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60세가 넘은 나이에 도버해협을 수영해서 건넜던 그 사람에게, 벤자민이 젊어지는 동안 죽어간 그 양로원의 사람들에게 시간이란 뒤로 혹은 앞으로 옮겨보고 싶은 그 무엇일 것이다. 

 

물리적 시간과 사람의 시간은 같이 갈 수도 있고 거꾸로 갈 수도 있고, 속도가 다를 수도 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무언가 원하는 것을 하고 일정부분 타협도 하고,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죽음이 가까워 질수로 그런 아쉬움들을 달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게 사람들의 인생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다만 이들의 이야기에 비해 벤자민과 데이지의 사랑이 중심이 되면서 시간과 인생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이 부수적인 것으로 살짝 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양로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들, 동물원에서 전시(?)되었던 부시맨 아저씨, 아들을 기리며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드는 시계공, 번개를 7번이나 맞고도 살아 남은 할아버지까지... 태어남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인간사들이 조금더 촘촘히 그려졌으면 좋겟다 싶었다. 물론, 그렇게 됬으면 이미 3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 타임이 더 길어졌을 테니 제작사 입장에서는 이정도에서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 싶기는 하다.

 

게다가 주변부의 이야기가 조금 느슨하다고 느끼게 만든것은 그 둘의 관계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만든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의 훌륭한 연기다. 80세 할아버지의 표정부터 10대 소년의 표정까지를 담아낸 브래드피트도 정말 훌륭했지만 그 시간들을 살아가는 여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도 정말 멋졌다.

 

한편 내게 무엇보다 눈에 띄는 캐릭터는 벤자민의 양어머니인 퀴니였다. 괴물처럼 생겨서 친 아버지가 갖다 버린 아이인 벤자민을 그저 '다를 뿐'이라며 받아들이는 그녀가 흑인 인 것은 더욱 의미심장 했다. 괴물인 벤자민을 이전 자기 남편과 닮았다며 좋아라하고 쉽게 받아들이는 할머니들이라니... 사랑스러운 관계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날 태어나는 벤자민과 2005년 허리케인인 카타리나가 오던 날 사망하는 데이지의 인생 속에서 시간과 관계에 대한 고민을 했고, 그 만큼 잔향이 진하게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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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0 17:03 2009/02/2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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