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9/04/1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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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이란 무엇인가?'는 이미 끄적였으므로 나머지.

 

#1. 안녕! 사회주의 (메이데이. 2009)

 

 

나도 필자로 참여한 책. 친구들에게 몇 권 선물도 하고 나도 서평 쓴다고 읽어봤다. 3분의 2정도의 필자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개인 개인이 생각나서 제법 흥미로웠다. 최근 읽은 책에서 '상식(common sense)'와  '양식(good sense)'를 구분해 놨던데 내가 글이나 말에서 함부로(?) 상식의 의미를 써 왔음을 반성하게 되었다. 사회의 약자의 다수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용어에 대해 최근 좀 더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2. 인간불평등 기원론 (장 자크 루소 지음. 주경복/고봉만 옮김, 책세상 2003)

 

 

홍실이랑 같이 한 세미나 책. 깔끔한 번역, 루소의 생각이 가지고 있는 발랄함과 위트가 넘쳐나는 그의 글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보자면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당시 투표권도 없던 여성의 문제를 언급한 지점이나 생태주의적 고민이 일부 담겨 있는 내용등은 그의 '소유'에 대한 성찰과 함께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몇 백년씩 읽혀지는 글은 다 이유가 있는 거다.

 

- 인간 영혼의 최초이자 가장 단순한 작용들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거기에 이성보다 앞선 두 개의 원리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우리의 안락과 자기 보존에 대해 스스로 큰 관심을 갖는다는 원리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감성적 존재, 주로 동포가 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혐오감을 느낀다는 원리이다.

 

- 나는 인류에게 두 가지 불평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연적 또는 신체적 불평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에 의해 정해지는 것으로, 나이, 건강, 체력의 차이와 정신이나 영혼의 자질 차이로 성립된다. 또 다른 불평등은 일종의 약속에 좌우되고, 사람들의 동의로 정해지거나 적어도 용납되는 것으로 도덕적 또는 정치적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 의술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치료법보다 우리가 더 많은 병에 걸려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생활에서의 극심한 불평등, 어떤 사람에게는 지루한 여가가 주어지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과중한 노동이 강요되는 것, 우리의 식욕과 관능적 쾌락을 쉽사리 자극하고 만족시킬 수 있는 재간, 부유한 사람들에게 변비를 일으킬 동식물성 즙을 제공하여 소화 불량으로 괴롭히기 일쑤인 너무도 희귀한 음식들, 그나마 굶주리기 일쑤지만 경우에 따라 과식하게 마련인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없는 먹을거리, 그리고 밤샘과 온갖 종류의 무절제, 온갖 정념의 과도한 흥분, 정신의 피로와 소모, 누구나 경험하며 그래서 영원토록 영혼을 촘먹는 무수한 비애와 고통.

 

- 인간은 안락의 추구가 인간 행동의 유일한 동력임을 경험으로 배웠다.

 

- '왕국의 완전한 행복은, 군주가 그 백성의 신임을 얻어 백성들이 복종하고 군주는 법률에 복종하며 그 법률은 공정성과 언제나 공공 복지를 지향하는데 있다.'

 

- 이러한 모든 변천 가운데서 불평등의 진행을 따라가보면, 법과 소유권의 설정이 제1단계이고 행정 권력의 제도화가 제2단계이며 합법적인 권려에서 독단적인 권력으로 변화하는 것이 제3단계임을 알 수 있다.

 

-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인간 능력의 발달과 정신의 진보에 따라 성장하고 강화되며 소유권과 법률의 제정에 따라 안정되고 합법화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3. 에콜로지카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정혜용 옮김, 생각의 나무 2008)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글. 최근 하고 있는 소비와 소유의 재구성과 관련한 가장 아름다운(!) 성찰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널리 권하고 있는 책이다. 쉬운 설명과 깊이 있는 고민에서 앙드레 고르의 죽음을 왜 그렇게들 안타까워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줬다.

 

워낙에 비루한(?) 인문사회과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는 무식한(ㅠㅠ) 이과인 나는 그가 아내와 자살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사람들이 안타까워할 때 그가 누군지 몰랐더랬다. 진정 챙피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언제든 사람과의 관계와 감정때문에 힘들어지거나 고민이 되는 때가 오거나 혼자 고독을 씹으며 여행을 할 때가 되면 그의 'D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주체는 항상 나쁜 주체, 즉 권력과 규칙에, 전체적 기구로서의 사회에 반항하는 주체다.

 

- 소비는 개별화되고 사적인 것이 되어 자본의 이익에 굴복할 수 있어야 했다.

 

- 공산주의는 만인이 모두 취업하게 하자는 것도 아니요, 모두에게 월급을 주자는 것도 아니요, 자본주의 안에서 사회적, 역사적으로 특유한 형태에 부속된 노동, 즉 일자리 노동, 상품으로서의 노동을 폐지하자는 것입니다.

 

- 불황의 위협, 나아가 세계 경제에 무겁게 드리운 부괴의 위협은 규제가 없어서 생긴 일이 아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재생불능이라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 사람들이 추구하는 만족의 수준에 맞춰 노력의 수준을 조정할, 그리고 역으로 여럿이 동의한 노력의 만족도를 조정할 기준이 되는 규범은 '충분한 것'의 규범이다.

 

- 생태사회학의 근본적 의미는 모든 이에게 한편으로 덜 일하고 덜 소비하는 것, 또 한편으로 좀 더 많은 자율성과 실존적 안전을 확보하는 것 사이의 상관관계를 정치적으로 확립하는 것이다.

 

- 생태사회적 정치는 주로, 노동시간과 상관없는(노동시간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노동 자체와도 상관없는 충분한 수입을 보장해주는 데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을 재분배하여 누구나 일할 수 있고 일을 좀 더 잘하면서 덜 하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 노동에서 놓여난 시간을 개개인이 그들이 선택한 활동-그들의 시장 의존과 직업적 혹은 행정적 책임을 줄여주고, 직접 체험된 연대의식과 사회성의 조직, 즉 상화부조, 서비스 교환, 무정형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조직을 다시 짜게끔 해줄 재화와 용역의 자기생산을 포함한-에 쓸 수 있는 자율성의 공간을 창출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해방, 기능적으로 특화된 타율적 노동의 해방은 전체의(전체를 아우르는) 정치로 구상되어야 한다.

 

- 그 자체로 자신의 목적이라 할 만큼 가치 있는 활동에 바칠 수 있는 시간을 '부의 진정한 척도'로 삼았다.

 

- 자동차는 처음으로 계층간의 차이를 속도, 운송수단의 차이로 확대했다.

 

- 저마다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노동시간대를 조절하고, 노동을 연속적인 방식으로 혹은 불연속적인 방식으로 할지 자유롭게 정하고, 하나의 활동영역에서만 노동을 할지 혹은 여러 활동영역에서 노동을 할지를 자유롭게 정하여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을 2만 시간하는 대신에 평생 사회수당을 보장받는 것, 이 모든 것은 조절과 '전반적 균형'을 담당하는 중앙기구, 즉 국가가 존재해야만 가능하다.

 

-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를 반박한다는 것이 가구 단위나 마을 단위의 자급자족 경제로의 회귀도, 경제활동 전반에 대한 ㅗㅇ합적이며 계획적인 사회화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삶에 있어서 그 일이 마음에 들은 안 들든 해야만 하는 것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서', 그리고 자유의 영역을, 그러니까 집단의 활동이든 개인의 활동이든 간에 그 자체로 목적인 독자적 활동들의 영역을 '최대로 확장하기 위해서', 필요의 영역만을 사회화하는 것이다. 또한 국가가 개인을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생각도, 각 개인이 전반적으로 사회운용에 필요한 것들을 도맡아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개인을 국가와 동일시하고 국가의 요구를 개인의 행복과 동일시하는 것은 전체주의가 지닌 두 얼굴이다.

 

- 자본주의는 한편으로는 각자 무슨 대가를 치르등니 노동을 얻어내기 위해서 만인을 상대로 싸우기를 요구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노동'을 대거 몰아내고 있는데, 이렇듯 모두의 의식, 생각, 그리고 상상 속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노동은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게 되면 그 중심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 유토피아는 우리가 그 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한 우리가 노동을 '하지' 누군가 우리에게 노동을 '주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줄 것이다. 또한 노동의 재점유 수단이기도 한 그 수단들을 이제는 우리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분명히 보여줄 것이다.

 

- 노동운동과 노조는 임금수준과 노동조건만이 아니라 생산의 궁극적 목적, 생산을 실현하는 노동의 상품 형태를 문제 삼을 때에만 반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4. 남아프리카 공화국 (디 리식 지음, 이은주 옮김, 큐리어스 시리즈 휘슬러 2005)

 

 

남아공 학회를 가면서 읽은 책. 20여 시간의 순수(?) 비행시간에 남아공에 대한 기본 이해를 도와줬다. 다른 가이드 북이나 여행기에 비해서 남아공의 정치적, 역사적 변화가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어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아공의 정치적 상황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과 변화들이 덩달아 생각이 나는 통에 착찹해지기도 하고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남아공을 여행할 거라면 정치에 관심이 없더라도 누구나 읽어봤으면 좋겠다. 남아공 정치를 전공하고 쓴 논문도 있다던데 언젠가 다시 남아공에 갈 일 있으면 그 논문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잠깐, 정말 잠깐(!) 스쳤다. ^^

 

#5. 사회 국가, 한국사회재설계도 (진보정치연구소, 후마니타스 2008)

 

 

공공성에 대한 고민을 한 후, 도대체 복리를 위한 국가가 뭔지 궁금해서 읽어봤더랬다. 결과는 실망. 일반인을 대상으로 썼다고 하기에는 기본 전제로 깔려있는 내용이 너무 심오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읽기에는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 목표로하는 독자를 고려한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반면교사가 된 책이었다. 물론, 사회 국가의 설계를 위한 다양한 영역의 내용들을 한꺼번에 정리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겠지만 아쉬운건 아쉬운 것. 좌파 학자들의 빈약함과 수적 열세를 홍실이와 한참 한탄했더랬다. 나부터 반성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부끄럽구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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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6 11:49 2009/04/1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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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essee 2009/04/30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사회국가를 읽으면서 "약간 허하다"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설계도가 시방서는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기는 했지만..
    좌파학자들이 보약이라도 한재 지어 먹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용.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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