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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정신14호]독재의 망령이 신자유주의로 되살아 날 때! 당신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윤보다인간을-현장정신에 쓴글]

 

독재의 망령이 신자유주의로 되살아 날 때!

당신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87년의 추억을 간직한 선배들께 드리는 글



1. 우리가 찾아야할 것은 87년의 추억이 아니라 ‘역사’

87년 사진 속․영상 속에서 보았던 낯익은 얼굴을 찾는 광고가 나온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기성 정치인들이 아닌 87년의 함성, 87년의 거리, 바로 그 곳에 있었던 사람들을 미디어에서 찾고 있다. 이 추억과 역사라는 이름으로 전개되는 혼란 속에서 87년 20주년을 다시 생각해 본다.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사실 많은 것이 변했다. 그 때문일까! 여러 인터뷰나 글에서 사람들은 20년 전 그날의 격정과 고뇌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오늘의 이야기는 찾기 어렵다. 세상을 이만큼이나 바꿨다는 그들의 감동이, 자꾸 멀게만 느껴지는 건 내가 87년 그 거리에 있지 않아서일까!


일반적으로 달은 밤에, 해는 낮에 볼 수 있다. 그래서 해가 져야 달이 뜬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둘이 서로 다른 운동주기를 가지고 있고 햇빛에 가려 낮에 달을 잘 볼 수 없을 뿐이다. 해와 달이 그렇듯이 독재의 시대는 가고 민주주의의 시대가 왔는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사회의 모습은 온전한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2.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는 87년 세대에게 고함!

87년 투쟁의 직선제 쟁취와 노동자 대투쟁을 통한 노동운동의 비약적인 질적․양적 성장은 이후 우리 사회가 한 발 전진하는데 훌륭한 밑거름이 된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87년 이후의 역사도 그리 순탄하게만 달려 온 것도 아니다. 91년 열사투쟁, 97-98년 총파업투쟁과 IMF, 2003년 열사투쟁 그리고 현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양극화 현상, 비정규직들의 투쟁은 치열한 생존의 역사이자, 투쟁의 역사다.


하지만 숨 가쁘게 달려 온 열정의 20년 뒤에는 87년 투쟁을 추억으로 바라보는 세력이 존재해 왔다. 그들은 ‘추억/을 밑천으로 정당으로 국회로 달려갔다. 그리고 점점 그들은 오만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들을 믿어달라고 했다. 혹은 남아 있는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제도 정치 안에서도 한국사회를 진보시키기 위한 나름대로의 역할이 그 곳에 있다고 말했던가! 이제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자신이 정당하다고 말한다. 민주화운동과 진보는 시효가 만료되었다고, 노동자들이 기득권자가 되어 양보할 줄 모른다고, 온갖 파렴치한 언사를 쏟아 붇고 있다.


87년의 사람들 또한 이제 자신이 할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지 새로운 독재의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말을 한다면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형식적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해가 뜨기 전에 떠 있는 달을 볼 수 없고, 태양이 항상 그 자리에 있어도 밤에는 볼 수 없듯이 세상이 돌아가는 하나의 ‘과학적 법칙’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바로 ‘계급에 의한 계급에 대한 착취’다.


 그리고 착취의 모습은 87년의 선도적이고 양심적인 열정적인 시민들이 민주화에 만족할 때, 당신들이 군부독재를 몰아냈다고 환호하며 자신의 생활 속으로 돌아가서 안주하고 있을 때,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독재로 태어났다. 신자유주의 독재는 더 세련되고 더 교활하고, 더 악랄하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민주주의를 배고픔과 착취를 분쇄하는 원칙으로 사고했다. 그러나 87년 민주화세대가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 87년 이후의 민주화 체제에서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 이외에 민주주의를 사고하는 것조차 사치일 정도로,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오늘 노동자 민중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고 파탄 내는 비정규직법안이나 FTA 문제가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전쟁기지 확장을 위해 주민을 내 모는 행위가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독재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노동자 민중이 신자유주의의 반 민주성에 대해서 사고하지도, 행동하지도 못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독재가 지배하고 있는 87년 민주화체제다.


3. 당신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꿈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슬픈 자화상이다. 87년을 거리에서 보냈고, 청춘을 바치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선배 그리고 동지들의 행진곡은 더 이상 메아리치지 못하고 슬픈 노래로 마감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은 민주화 이후의 비 착취 대안사회를 구상하지 못했고, 민주화체제 이후의 착취체제로서의 자유주의를 분석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화 체제 이후에도 착취체제는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민주화체제 이전․이후에도 커다란 틀에서 자유주의 체제가 지배해왔고, 87년 이후에는 신자유주의 독재가 민주화의 간판을 달고 착취를 정당화 하고 있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쓰다버리는 소모품 취급을 받고 있다. 여전히 돈이 없으면 치료받지 못하는 사회, 배우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아직도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조합을 만들지 못하는 사회, 농어민 자녀가 서울대에 들어가는 비율이 3%인 사회, 신분이 대 물림되는 사회가 87년 민주화체제 이후 (신)자유주의 착취체제가 지배하는 사회다.


그렇다면 87년 세대와 87년 세대의 후광을 입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에 만족하고 있는가? 무엇을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는가? 왜 우리는 다시 분노할 수 없는가? 87년 세대여! 당신들은 너무 늙어 버렸는가? 87년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방송에 출현하며, 신문에 칼럼을 쓰며 87년을 회고할 정도로 오늘의 현실에 만족하는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면, 아직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그 무엇이 있다면 다시 사회변혁운동의 전선에 나서야 한다. 당신들이 있어야 할 곳은 방송국도 아니고 신문사 기자와 인터뷰하는 자리도 아니다. 어느 정당, 386 정치인의 후원행사 자리는 더욱 아니리라!


87년 20주년 그 첫 포문을 열었던 6월 항쟁이 다가온다. 당신이 진정한 87년 세대라면 더 이상 만족하지 마라! 다시 분노해야 하며 다시 거리로 나와야 한다. 그것이 당신들의 역사적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당신들의 이마에 주름살이 늘었어도, 87년을 거리에서 보낸 당신들의 심장에 새긴 “분노와 희망”이라는 시계는 예전 그대로 이지 않은가? 87년 당신들의 피와 땀을 먹고 성장한 한국사회가, 민중들의 피와 땀을 가로 첸 어제의 386세대 오늘의 신자유주의자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현실을 인정할 텐가?


이제 87년과 같지만 다르게, 다시 당신이 나서야 한다. 노동현장에서, 비정규직 문제에서, 계급투쟁에서 그리고 여성문제에서, 환경과 생태, 인종주의 문제에서, 반전평화운동에서 전 사회적인 변혁운동을 신자유주의 독재체제에 맞서 싸우는 사회운동항쟁을 펼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군사독재에 맞서서 새로운 신자유주의 독재에 맞서 싸우는 또 다른 양식의 싸움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적을 타도하는 투쟁에서 착취 이데올로기를 분쇄하는 투쟁에서, 성찰하는 투쟁, 비착취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주체의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신자유주의라는 또 다른 가면을 쓰고 나타난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꿈꾸는 자에게는 추억이면 족하다. 그러나 미래를 원한다면 행동하자!


왜 그래야만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싸파티스타의 구호 “모두에게 모든 것을! 우리에겐 아무것도!”로 대신할 수 있으리라. 아직 아무것도 달라 진 것 없는 이 시대에 바로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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