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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세인 ‘전쟁 반대’, 물꼬 트는 평화협상

문재인 정부, 조건 없는 남북대화 제안해야

지난달 북미 양국 정상이 직접 전면에 나서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것 같던 최고 수위의 긴장이 실제 있었나 싶을 정도다. 25일이 되도록 이렇다 할 조치가 없는 문자 그대로 ‘폭풍전의 고요’와 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북한이 아직 ICBM 등의 기술적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둥, 중국 당 대표대회 일정에 맞추어 발사하려는 것이라는 둥 근거 없는 주관적 판단만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고 수위에 이른 북미간 대결이 평화협상인가, 전쟁인가의 교차점에 서있다. 대부분의 국내외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행동을 시사하는 각종 발언에 긴장하면서도 다른 한편 북미간의 평화협상 진행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먼저 북미간 평화협상을 시사하는 상황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결정적인 것은 틸러슨 국무장관의 지난달 30일 베이징 발언이다. 그는 세 가지의 중요 사항을 공개하였는데 ▲“(미국만의)평양으로 열려있는 둘, 셋의 채널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그들(북한)과 이야기할 수 있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란처럼 조잡한 핵 합의를 북한과 꿰어 맞추진 않을 것”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중단한다면 많이 진정될 것” 등이다. 이는 북미간 대화가 복수의 채널로 진행 중에 있고, 그 방식은 이란 핵 합의와 같은 다자간 참여와 합의가 아니라 양자 대화로 결론을 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그 기간 동안 상황 과열을 막기 위해 북이 미사일 발사를 중단해 달라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북한이 지금까지 미사일 발사 등 초강경 조치를 하지 않은 이유로 보인다.

틸러슨 국무장관의 이 발언은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시간낭비”라고 부정됐지만, 거꾸로 만약 미 정부가 이 발언을 인정했다면 아마 언론의 집요한 북미대화 취재열기와 미국 내 반트럼프 호전세력들의 대화 반대 여론조성으로 북미 대화는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6일 북한 최선희 외무성 미주국장의 러시아 방문과 이달 중순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는 북미회담, 그리고 이달 1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되는 핵 비확산 관련 국제회의 역시 북미간 평화협상을 강력히 시사한다. 특히 최선희 국장이 러시아 방문 직후 “만족한다”고 평가한 게 러시아가 지난달 12일 조셉 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초청해 회담한 결과를 논의한 사실상의 삼각대화에 관한 것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문가의 말을 빌려 트럼프 정부가 북에 대한 압력 행사를 동결하거나 임시 중단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보도하였고, 미국 상원의원 12명은 트럼프 정부에게 틸러슨 장관의 발언에 근거해 “북과의 직접 대화 상황과 전망에 대한 기밀 브리핑”을 요청하였다.

지금까지 드러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요구사항은 ▲미사일 발사 중단 ▲북에 구속돼 있는 3명의 미국인 석방 요구 등이다. 여기에 스티븐 베넌 전 수석전략가의 말처럼 최소한 핵(무기) 동결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북의 입장은 리용호 외무상의 러시아 타스(TASS)통신 대표단과 면담에서 확인되듯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핵 위협의 근원적 폐기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하되 “우리의 핵무기가 대상이 되는 어떤 협상에도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결국 현 시점에서는 북미간 협상이 합의에 이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런 한편 북미간 무력충돌 가능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핵잠수함 ‘투싼’에 이어 ‘미시건’도 한국에 보내 두 척의 핵잠수함을 배치하고, 로널드 레이건호와 함께 루스벨트 핵항공모함 전단도 한반도 해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게다가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B-1B랜서의 한반도 야간출격을, 전시에 대통령이 군사작전을 지휘하는 백악관 상황실에서 직접 지켜봐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에 북한은 평양을 방문한 러시아 하원의원이 전한 대로 1만2000km에 달하는 ICBM 발사훈련을 준비 중이고, 리용호 외무상은 “우리 군대와 인민은 말이 아닌 불벼락 공격으로 미국과 최종 담판을 지을 것을 단호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예정대로 다음주 동해에서 항모전단이 참여하는 한미연합훈련이 진행되면 정세는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이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풍 전의 고요”, “단 한 가지는 효과 있을 것” 등 발언에 이어 11일 “이런 상황이 계속되도록 놔둘 수 없다”며 군사작전을 강력 시사했다. 백악관도 이날 성명에서 ‘예방전쟁’을 거론하는 등 대북 위협을 이어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계속되는 강경발언에 언론과 전문가들은 물론 공화, 민주 양당 의원들까지 나서 3차 대전을 우려하며 전쟁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미국 언론 ‘더 위크’에 따르면 국방부조차 ”북과의 전면전이 아닌 제한적인 군사작전으로도 현 사태를 해결할 길은 사실상 없다는 게 결론“이라고 밝혔다. 전쟁 반대 흐름은 영국과 독일 등 미국 동맹국들 사이에도 확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웨슬리 클라크 전 나토(NATO) 총사령관은 북한에 ‘미치광이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며 ”어떠한 선제공격이나 예방적 군사옵션에도 의존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이처럼 북미간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사회 여론이 대세가 되고 있다. 전쟁인가, 평화협상인가 결단을 요구하는 북미간 최종적 대결국면에서 전쟁 반대가 대세인 것은 결국 평화협상으로 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사실 ‘미치광이 전략’이란 한국전쟁 정전협상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협상의 유리한 결론을 위해 핵공격을 위협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전략은 이미 핵을 보유한 북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위협적 군사행동만 갖고도 바로 실제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 안팎의 광범한 전쟁 반대 여론은 이 전략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제 남은 길은 미국이 자신의 체면을 지키면서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평화협상을 진행할 것인가 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미국의 처지와 사정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미 정부의 호전적 수사만 앵무새처럼 따라 해서는 결코 남북관계의 개선도, 한반도 운전자도 기대할 수 없다. 무엇보다 먼저 문 대통령의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 한다”는 패배적인 ‘상황 탓’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이것은 여건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과 의지의 문제이다. 미국과 다른 목소리, 촛불국민이 원하는 남북화해와 평화협정에 관한 명확한 입장과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조건 없는 남북대화를 제안해야 하는 것이다. 남북대화를 북미 평화협상과 병행, 발전시켜 나가야한다. 이를 위한 첫 조치로 정의용 실장, 강경화 장관 같은 대미추종 일변도의 수구보수적 외교안보라인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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