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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 앞 무릎 꿇고 사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게인 MBC⑩] 장준성 MBC 노조 교섭쟁의국장 " '노영방송' MBC 되찾아야 하는 이유"

17.10.16 18:41최종업데이트17.10.16 20:40
2012년 170일 파업. 그 후 5년이 지났습니다. 이 시간에도 MBC 구성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쫓겨나고, 좌천당하고, 해직당하고, 징계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MBC를,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제 그만 '엠X신'이라는 오명을 끝내고, 다시 우리들의 마봉춘, 만나면 좋은 친구 MBC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시 싸움을 시작하는 MBC 구성원들의 글을 싣습니다. 바깥에서 다 알지 못했던 MBC 담벼락 안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열 번째 글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노조 민실위 간사로 활동하며 MBC 보도를 비판·고발해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던 언론노조 MBC본부 장준성 교섭쟁의국장의 글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노동조합 이성주 위원장이 MBC 경영진 대신 사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당시 MBC는 유족 혐오 보도 등 이른바 '보도 참사'를 주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노동조합 이성주 위원장이 MBC 경영진 대신 사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당시 MBC는 유족 혐오 보도 등 이른바 '보도 참사'를 주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MBC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세월호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와 국민대책회의 회원들이 8일 오후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MBC 보도행태 규탄 및 선체인양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오보사태, 국정조사때 MBC 관계자 불출석, 농성가족 '불법집단' 매도 등 그동안의 MBC보도 문제와 함께 최근 '특별법'과 관련해서도 가족들이 생존학생들의 대학특례를 요구한 것처럼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 "MBC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권우성


1. 

나는 '세월호 리본'을 단 한 번도 단 적이 없다. 

2014년 4월 16일 당시 나는 노동조합(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집행부였다. MBC의 세월호 보도 참사를 기록하고 고발하는 보도 민실위 간사였다. 

그때 노동조합은 또 싸움을 시작했다. 노동조합 위원장이 빡빡 삭발하고 경영진 대신 무릎 꿇고 사죄했다. 분향소를 찾아 안광한, 김장겸 사장 등이 마땅히 들어야 할 욕을 대신 듣고 사죄했다. 보도 참사를 기록한 'MBC 세월호 보도 백서'를 국회와 언론단체에 배포하며 대대적 공론화에 나섰다. 

당시 경영진은 그런 우리를 조롱하고 비아냥댔다. 유족 폄훼·혐오 보도를 끝까지 이어갔다. "현장 기자들이 발제를 하지 않아 몇몇 정부 비판 보도(안전행정부 국장 참사현장 기념촬영 논란 등)를 할 수 없었다"고 국회에 수차례 위증을 했다. 그래놓고 "MBC 세월호 보도가 국민 정서와 교감했다"며 자화자찬까지 했다. 노동조합을 향해 "야당 측에 회사 정보를 유출했다"고 비난했다. MBC 구성원의 릴레이 비판과 문제제기에 보복을 가하기 시작했다. 해고와 정직 등 중징계와 부당전보 피해자가 잇따라 또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는 물론 지금도 노동조합 집행부는 세월호 이야기를 어디 가서 제대로 하지 못한다. 결국 막지 못했다는 공범자 의식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리본을 달 자격마저 없다고 늘 생각했다. 

지난달 26일, 우리는 안산에서 세월호 희생자 부모님들을 만났다. "보도 참사 장본인들은 정작 따로 있다는 거 잘 안다. 하지만 당신들 역시 공범이다", "MBC 정상화 이후, 보도 참사를 자행한 기간만큼 사과 방송과 정정 보도를 해야 한다"는 등의 질책을 들었다. 

어느 어머님이 물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식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처럼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중도에 싸움을 멈춘 것 아니냐." 우리는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 어머님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가장 중요한 말을 빼먹었다고 했다.  

"이번에는 꼭 이기세요!"
 
  장준성 교섭쟁의국장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지난 9월7일)에 입장하는 김광동 이사를 향해 "MBC 경영진의 위법.범법행위를 비호.방조했다. 즉각 책임져라"고 외치고 있다.

장준성 교섭쟁의국장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지난 9월7일)에 입장하는 김광동 이사를 향해 "MBC 경영진의 위법.범법행위를 비호.방조했다. 즉각 책임져라"고 외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2. 

그 때 세월호 보도 참사의 주역, 김장겸 사장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민주당 정권 낙하산 사장은 낙하산 아니냐. 노조가 좋아하는(?) 사장이든 싫어하는 사장이든 결국 다 낙하산 아니냐"고. 맞다. MBC 역대 사장 대부분 '낙하산'이었다. 정치권력 영향권에서 자유로웠던 사장, '공영방송 정체성'에 충실했던 사장,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떤 낙하산도 김재철-안광한-김장겸 같은 범법자·무법자, 불량 저질 낙하산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번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김장겸 같은 범법자-무법자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이들과 유사한 '불량 저질 낙하산'들이 앞으로 다시는 내려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MBC노조 이창순 보도부위원장, 김인한 기술부위원장, 김민식 편재부위원장, 정세영 영상미술부위원장이 29일 오전 여의도 MBC본사앞에서 '김재철 사장 해임'을 촉구하며 삭발단식농성에 돌입했다.

2012년 MBC 노조 파업 당시 삭발 장면ⓒ 조재현

 
 MBC 파업 참여와 무단결근, 대기발령 불응 등의 이유로 PD수첩의 최승호 PD와 전 노조위원장 출신의 박성제 기자가 해고된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남문 앞에서 MBC 노조원들이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2년 MBC 노조 파업 당시. MBC 파업 참여와 무단결근, 대기발령 불응 등의 이유로 PD수첩의 최승호 PD와 전 노조위원장 출신의 박성제 기자가 해고된 가운데 노조원들이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3. 

MBC는 원래 사장이 크게 중요한 회사가 아니었다. 엔지니어, 아나운서, 촬영감독, 프로듀서, 방송경영, 편집자, 취재기자, 영상기자, 디자이너. 모든 직군이 "MBC는 너와 나의 회사, 우리 '오너'는 무조건 시청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책에나 쓰여 있는, '주인의식'이 있는 종사자들이었다. 마치 협동조합처럼.

그래서 기회가 올 때마다 노동조합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노동조합의 가치는 곧 종사자의 '밥줄'이었다. 공정방송-편성독립-종사자의 자율과 개성, 창의 보장-시청자의 권익 실현.

어느 누가 사장으로 와도 공정방송을 보장하는 노사 단체협약으로 일터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회사 재정이 어렵다고 하면 임금을 오히려 깎는, 어찌 보면 바보 같은 노조원들이었다. 그만큼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저들은 노조 장악 방송, 즉 '노영방송'이라고 공격했지만, 정확하게는 종사자, 사원들의 방송-'사영방송'-, 시청자의 방송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노영방송 MBC'를 되찾아야 한다. 

4.
 
MB정부 국정원 'MBC장악 음모' 기사 살펴보는 조합원들 언론노조 MBC본부 총파업 11일차인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 사옥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발생한 출연자 및 프로그램 퇴출 사례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는 가운데, 조합원들이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MBC장악 음모를 다룬 총파업 특보를 살펴보고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발생한 출연자 및 프로그램 퇴출 사례 발표 기자회견.ⓒ 권우성


2010년. 국정원 '공영방송 장악' 지시 문건에 따라 MBC의 조직 문화를 파괴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MBC 사장 등 경영진이 국정원의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부인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들이다. 

실제로 이 범법자들은 단체협약을 일방 파기하고 노동조합 탄압에 나섰다. 이들의 국정원 문건 '실행' 작업은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언론사상 초유의 부당 징계와 유배, 보직을 미끼로 한 노조 탈퇴 종용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2000명을 넘겼던 조합원 숫자(전국 기준)가 1600명까지 떨어졌다. 

물론 저들의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 노동조합은 망하지 않았다. 2012년 170일 파업과 대선 이후 패배감이 엄습했던 시절에도, 누군가는 서울과 지역에서 노동조합을 맡겠다고 나섰다. 온갖 징계와 불이익으로 너덜너덜해진 사람, 경력 관리 따위 포기한 사람, 2년간 지역 지부장을 하다 서울로 올라와 또 2년을 희생하는 사람, 도와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네가 거절 못하니까 나도 거절 못한다는 사람 등등이 노조 집행부로 모였다. 

"이것들 봐라?" 경영진은 악에 받쳤다. 세월호 보도 참사를 계기로 공세는 더 악랄해졌다. 2015년 새로 출범한 노동조합 집행부에 대해 경영진은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 일방 해지 조치'를 내렸다. 그 누구도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일할 수 없게, 원래 부서로 복귀 발령을 내버린 것이다. 정년을 얼마 안 남기고 조합에 투신했던 '고참' 노조 위원장은 1인 지명 파업을 시작했다. 나머지 집행부는 육아휴직으로 버텼다. 법에 따라 무조건 휴직이 가능하니까, 육아 대신 조합 일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노동조합은 5년을 버텼다. 조합원 숫자는 400명 넘게 빠져 나갔지만(2000명→1600명), "해직자 복직까지 우리가 함께 책임지겠다", "이용마를 반드시 제자리로 되돌려놓겠다", "MBC를 언젠가 재건하겠다"는 조합원들이 끝까지 견뎠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9월 8일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 권우성


2017년 10월 현재, 우리 노동조합은 조합원 수 2000명을 다시 넘겼다. 6개월 전만 해도 꿈도 못 꿨지만, 상암동 MBC사옥 로비를 가득 채워 집회도 열게 됐다. 남은 것은 이제, 이기는 것뿐이다. 2000명 조합원의 목표는 문화방송의 '문화'를 재건하는 것이다. 원칙을 세워 공영방송이 (세월호, 최순실 때처럼) '공영흉기'가 되는 비극을 막는 것이다. 권력과 결탁하고 "때에 맞게 적절하게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합리화로 온갖 불법과 악행을 은폐·비호해온 경영진을 몰아내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그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이완용은 120년 전 독립문(獨立門) 건립의 주역이었다. 초대 독립협회장이던 그는 독립문 현판 작업까지 참여했다. 하지만 이후 친미파, 친러파, 그리고 친일파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그때마다 이완용은 "때에 맞게 적절함을 따르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때에 맞게 적절히' 바뀌지 않으면, '자신의 이익'을 잃는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 '이완용들'의 자기 합리화 끝엔, 1910년이 있었다. 교훈은 이렇게 반복된다.
 
 장준성 언론노조MBC본부 쟁의교섭국장

장준성 언론노조MBC본부 쟁의교섭국장ⓒ 장준성


장준성 국장은 2006년 MBC 기자로 입사해 2014년~2015년 10기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민실위 간사(상근), 2016년 11기 노동조합 SNS 홍보국장(비상근), 2017년 현 12기 노동조합 교섭쟁의국장(상근)을 맡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MBC 보도를 비판·고발하는 노동조합 민실위 간사로 활동하다 "회사와 특정 개인의 정보를 도용하고 외부에 유출했다"는 '죄목'으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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