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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아마겟돈' 출구는…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4/05 08:13
  • 수정일
    2013/04/05 08: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정욱식의 북핵이야기] 한미 외교적 노력했는데 北이 도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4-04 오후 2:31:29

 

북한의 벼랑끝 전술과 미국의 무력시위, 그리고 남북한 사이의 설전(舌戰)이 악순환을 그리면서 한반도에 극도의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위기 지수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 위기에서 벗어날 출구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도 위기는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양상이 다르다. 과거에는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갈등의 직접 당사자들이 대화에 나서면서 위기를 수습하곤 했다. 당사자들의 대화가 여의치 않을 때에는 중재자가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화는 없고 대결만 난무하고 있다. 마땅한 중재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의 위기가 더욱 심각하게 와 닿는 까닭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외교 무용론'이 득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 의제를 협상 테이블에서 치워버리면서 '전쟁이냐, 평화냐 양자택일하라'며 한국과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면서도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며 모호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북한이 먼저 도발적 언행을 중단하고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야 대화에 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서 달성해야 할 목표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박근혜 정부 역시 미국의 입장과 별 차이는 없다.

대북 외교의 실패, 원인은?

대북 외교가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실패의 원인을 '한미 양국이 충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는데 북한이 도발로 응수했다'는 일방적 인식에 두어서는 안 된다. 북한도 합의를 위반했지만, 한국과 미국도 북한과의 합의를 위반한 사례는 많다. 또한 합의와 이행에 대한 해석의 차이 역시 다반사로 일어났다. 그 차이를 대화를 통해 해소하려는 노력보다는 한미 양국은 대북 제재로, 북한은 도발적 언행으로 응수하려고 했던 것이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오히려 대북 외교의 실패 원인은 외교의 결핍에서 찾아야 한다. 외교의 결핍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평화협정 문제이다.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에서는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해 별도의 포럼을 열기로 했지만, 오늘날까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북한은 여러 차례에 걸쳐 평화협정 논의를 요구했지만, 한미 양국은 철저하게 이를 외면했다. 오늘날 북한의 극단적인 언행의 배경에는 이에 대한 강한 불만이 깔려 있기도 하다.
 

▲ 북핵문제 해결의 이정표를 세운것으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이 나온지 7년이 지났지만 북핵 문제 해결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사진은 성명 합의 직후 6자회담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은 모습. 왼쪽부터 당시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알렉산드로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 ⓒ연합뉴스


6자회담도 2008년 12월 결렬 이후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다. 당시 6자회담이 결렬된 데에도 한-미-일의 책임이 크다. 세 나라는 기존 합의에도 없었던 북한의 핵 신고서에 대한 검증을 요구했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서 결렬된 것이다. 이후 6자회담은 산소마스크를 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9년에는 북한이, 2010년 이후에는 한국과 미국이 6자회담 개최를 꺼려했다. 남북대화는 사실상 완전히 단절됐고, 북미 대화도 별로 없었다. 이 사이에 북한의 핵과 로켓 능력은 크게 강화되어왔다.

지난 5년간 한국과 미국이 대북 외교에 소극적이었던 본질적인 이유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뇌 관련 질환으로 쓰러지자 '북한은 오래 못 갈 것'이라며 흡수통일 망상에 사로잡혔다. 출범 직후 대북 포용에 적극 나설 조짐을 보였던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4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자, 한-미-일 3각 관계 강화로 방향을 선회했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대북 협상에 나서느니, MB 정부는 흡수통일을 추진하고,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에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김정은과의 '화학 반응' 일으켜야

북한의 도발적인 언행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중차대한 문제가 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금융제재로 응답하라(Answer North Korea with financial sanctions)"고 썼다. 실제로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대북 금융제재가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방코델타이시아(BDA)식 제재를 통해 북한 엘리트의 돈줄을 옥죄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BDA의 역효과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약 미국이 BDA 제재를 부과하지 않았더라면, 9.19 공동성명의 이행은 대단히 빨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대북 제재와 무력시위는 북한의 언행을 변화시키는데 별다른 할 효과가 없다. 북한 지도부가 아픔을 느낄 만큼 압박이 강할 지도 의문이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아픔을 느낀 북한 지도부는 굴복하기보다는 더욱 강하게 주먹을 움켜쥐기 때문이다. 북한의 움켜쥔 주먹을 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도 함께 주먹을 펴겠다는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미국이 B-52, B-2, F-22 등 막강한 무력을 동원하는 방식보다 특사 파견 등 고위급 회담을 재개해 평화협정을 체결할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앞으로 한국과 미국의 외교는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을 직접 겨냥해야 한다. 집단 사고(group thinking)에 익숙한 북한 체제의 특성상 북한의 언행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최고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의 핵군비경쟁에 정점에 달했던 1980년대 초중반, '글로벌 아마겟돈', '핵 겨울(nuclear winter)' 단어가 지구촌을 배회한 적이 있었다.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불렀던 도날드 레이건 대통령과 미국이 핵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한 소련 지도부 사이의 불신도 극에 달했다. 그러나 레이건의 변신과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에 힘입어 두 나라는 총성 한방 울리지 않고 냉전 종식을 선언했다. 두 지도자 사이의 여러 차례 정상회담을 통한 '화학적 작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코리아 아마겟돈'을 막을 수 있는 길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정은과의 화학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외교로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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