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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미사일 위기’에 비춰본 한반도 위기

먼저 ‘큰 나라’에 도전한 ‘작은 나라’ 쿠바 1962, 그리고 북한 2013

이정무 기자 jmlee@vop.co.kr
입력 2013-04-04 17:39:40l수정 2013-04-04 21:54:30

 

미국의 유력지인 USA투데이는 2일자에서 군사전문가인 미국 랜드연구소의 블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을 인용해 북한의 위협과 이에 미국이 반응하는 태도가 “쿠바 미사일 위기와 비슷하다”고 보도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1962년 옛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세우려 하면서 발생했던 냉전시대의 최대 전쟁위기였다.

쿠바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친미 정권을 몰아낸 이후 미국과 국교가 단절됐다. 케네디 행정부는 2년 뒤인 1961년에는 쿠바인 망명자들을 주축으로 해서 이른바 ‘피그만 상륙작전’을 펼쳤으나 카스트로 정권 전복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는 미국에 대한 쿠바의 역공이었다. 카스트로는 소련과 손잡고 핵미사일을 도입하기 위한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미국은 이를 포착하자 쿠바를 미 군함으로 봉쇄한 후, 미사일을 싣고 오던 소련 화물선과 대치했다. 미국 내 강경파들은 쿠바에 대한 공습을 주장하기도 했다.

위기가 지속되면서 강온을 오가던 케네디는 결국 소련과의 타협을 선택했다. 소련도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는 대신 화물선을 되돌림으로써 쿠바 미사일 위기는 12일 만에 마무리됐다. (자세한 내용은 '간추린 쿠바 미사일 위기' 참조)

미국, ‘전략적 인내’ 대신 무력 시위
 

미국이 주도한 대북조치

미국이 주도한 대북조치ⓒ민중의소리 유동수 디자인실장

미국이 이번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은 여러 당국자들의 말로 표현되고 있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3일 “그들(북한)은 지금 핵 능력(nuclear capacity)을 갖고 있으며, 미사일운반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위협은 괌에 있는 우리 기지를 직접 겨냥했고, 하와이와 본토 서부해안을 위협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또 B-52, F-22 스텔스 전투기, 핵추진 잠수함 샤이엔 등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무기들을 한반도 주변에서 공개함으로써 ‘무력시위’를 벌였다. 미 국방부는 또 몇 주일 내에 고고도방어체계(THAAD)를 괌에 배치할 예정이다. 북의 무력시위에 더 큰 무력시위로 맞선 것인데, 이는 그 동안 오바마 행정부가 견지해 온 ‘전략적 인내’ 노선과는 다르다.

유럽과는 달리 자국 내에서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미국은 본토에 대한 공격 가능성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다룬다.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 역시 미국으로부터 140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쿠바에 적대국의 핵미사일이 배치되면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더욱이 북한은 당시 쿠바처럼 ‘국가 차원에서’ 반미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군사적 능력 문제는 미국으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에 대한 공습을 주장하는 매파와 세계대전을 우려해 소련과의 타협을 주장하는 비둘기파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2기 오바마 행정부에서 가장 큰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먼저 ‘큰 나라’에 도전한 ‘작은 나라’ 북한

쿠바는 미국에 비교할 수 없는 ‘작은 나라’다. 북한 역시 미국에 비할 수 없는 ‘작은 나라’다. 미사일 위기 전후로 쿠바와 미국이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격렬하게 대립했던 것도 북미 사이의 오랜 정치군사적 대립과 비견할 만하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북한은 이스라엘이나 인도, 파키스탄과 같은 다른 핵개발국과 전혀 다르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지원 혹은 비적대적인 관계 위에서 핵무기를 개발한 반면, 북한은 처음부터 미국을 겨냥한 핵무기 개발을 추진해왔다.

‘작은 나라’가 먼저 ‘큰 나라’에게 도전했다는 것도 쿠바 미사일 위기와 현재의 한반도 위기가 비슷한 점이다. 이럴 때 ‘작은 나라’의 행동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상황 변화’의 의지다. 상대를 압도할 수는 없지만 상대에게 치명적 피해를 줄 수 있음을 보여줘서, ‘일방적 약자’의 위치를 벗어나보겠다는 것이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지난 달 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연설에서 “(미국이) 세계최대의 핵보유국이고 항시적으로 핵위협을 가해”왔지만, “(상대가) 지구상 그 어디에 있든 핵무기로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능력만 든든히 갖추면 그 어떤 침략자도 함부로 덤벼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제1비서는 또 “정밀화, 소형화된 핵무기들과 그 운반수단들을 더 많이 만들며 핵무기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가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대외적으로는 ‘선제핵공격’을 거론하지만 실제에서는 핵 보유고를 늘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 방향으로 중,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첨예하고 장기적인 위기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 행정부는 최종적으로 소련과의 타협을 선택했다.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미사일 기지 건설 중단을 맞바꾼 것이다. 이번에 북미 간에 조성된 위기에서 이런 ‘맞바꾸기’는 가능할까? 현재로서는 낙관하기 어렵다.

우선 북한의 핵 보유 의사가 완고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달 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핵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재확인했다. 탈냉전 이래 지속된 미국의 절대적 우위 상황을 바꿔보겠다는 북한의 의지는 ‘전쟁 불사’를 호언할 정도다. 1962년 당시 쿠바는 소련이라는 후견국이 있었지만 지금 북한에게는 미국에 비견할 수 있는 후견국이 없다. 한 발 물러설 여지가 적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미국은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을 용인할 수 있을까? 만약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논리적으로는 북한을 군사적으로 ‘굴복’시키는 방법과 더 큰 ‘대가’를 치르고 북한과의 타협을 모색하는 방법만 남게 된다. 미국이 이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할 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전면전과 국지전의 버튼은 누가?' 참조)

미국의 선택이 분명해지기 전까지는 북미 양측의 긴장은 더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전쟁이건 협상이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행동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번 한반도 위기가 쿠바 미사일 위기에 비해 첨예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장기화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은 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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