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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료원 사태, 공공의료의 시장편입 막아야

 

 
 
[분석] 수익을 내는 공공재라면 국가가 소유할 이유가 없다
 
편집부 | 등록:2013-04-05 15:17:53 | 최종:2013-04-05 16:02:0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 * 시사블로거 다람쥐주인님이 5일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글을 필자의 동의하에 소개 합니다 - 편집자 )


▲ 공공의료에 대한 영국인들의 자부심을 드러낸 런던올림픽 개막식. 경향신문

작년 런던올림픽 개막식 도중 난데없이 수백 개의 병상과 간호사들이 등장했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레이트 오르몬드 스트리트 어린이병원(GOSH)과 무상의료제도(NHS)를 600여명의 건강보험직원들과 어린이들이 경쾌한 춤을 통해 형상화 한 퍼포먼스였습니다. 무상의료제도에 대한 영국인들의 자부심을 보여준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2차 대전 직후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전국민 무상의료제도를 도입했던 영국의 사례는 재정난 때문에 의료민영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을 옹색하게 만듭니다. 물론 완벽한 제도는 없기에 영국의 NHS역시 많은 보수주의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국민은 없어야 한다’는 정신만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지난 2월 26일 경상남도는 진주의료원을 폐업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홍준표 지사가 밝힌 폐업의 근거는 ‘적자’입니다. 공공의료기관을 운영상의 적자를 이유로 폐업한다니 도통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각계의 비난이 쏟아지자 홍 지사는 지난 1일 “공공의료를 빙자해 진주 의료원을 강성 노조의 해방구로 만들어 도민의 혈세로 노조원들만 배불리게 하는 것은 사회정의에 반한다”며 폐업의 원인을 노조에 돌렸습니다. 홍 지사의 발언은 여러차례 보도된 대로 사실관계가 전혀 맞지 않을 뿐더러, 이는 ‘해방구’와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반노조정서를 이용하고자 하는 계산된 발언입니다. 그가 노련한 정치인임을 환기시켜주는 대목입니다.

다리짓는데 수백억씩 쏟아붓는 경남도가 연간 10억 남짓한 공공의료시설의 적자를 감당못한다는 주장이 엄살로 들리는건 당연합니다. 모든 공공재는 운영상의 ‘적자’에 기초합니다. 수익을 내는 공공재라면 국가가 소유할 이유가 없습니다. 홍 지사는 어째서 이 간단한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요?


수익을 내는 공공재라면 국가가 소유할 이유가 없다

철저한 시장주의자인 홍준표 지사는 의료라는 영역을 시장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시장주의자에게 적자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진주의료원 폐업에 반대하는 이유는 의료분야를 국가가 마땅히 최소의 가격으로 제공해야 할 공공재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한 이래 이러한 공공재와 시장의 힘겨루기는 어디서든 찾아 볼 수 있는 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진주의료원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어딘가 특별합니다. 논리로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의료라는 영역이 다른 영역과는 달리 인간의 생명과 관계되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진주의료원 폐업은 한국 공공의료 붕괴의 신호탄이 될지도

국가는 가정의 지불능력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훌륭한 기초교육과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은 좌파지식인이나 노동운동가의 말이 아닙니다. 전세계 시장주의자들의 어머니이자 민영화의 화신인 마가렛 대처의 저서 <국가경영(Statecraft)> 중 가장 앞쪽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1982년 국영 화물회사를 시작으로 영국통신(1984), 영국항공(1987), 영국석유(1987), 영국철강(1988), 영국수도(1989), 영국전력(1990), 영국석탄(1994) 등 국가의 기간산업을 모조리 민간에 팔아치운 ‘철의 여인’ 대처지만 그녀조차 의료분야 만큼은 손을 데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건강과 교육은 시장에 맡기는 것보다는 국가가 책임지는 게 훨씬 낫다”라는 그녀의 스승 아담 스미스의 말에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시장주의를 창시한 학자와 역사상 이를 가장 충실히 실행했던 정치인조차 의료서비스만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공공의료의 개념을 굳이 멀리서 찾을 이유도 없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동서대비원과 혜민국을, 조선시대에는 활인서를 설치해 국가가 빈자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능력없으면 끊어”

흡연자라면 자주 들어봤을법한 ‘자본주의적 농담’입니다. “능력없으면 먹지말아라”, “능력없으면 입지말아라”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능력없으면 죽어라”라는 말을 쉽게 뱉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공공의료란 말을 쉽게 이야기하면 ‘능력이 없어도 죽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공공의료의 개념은 굳이 그 역사나 정의를 모르더라도 측은지심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진주의료원 입원 환자와 가족, 진주시민, 지역 정치권과 보건복지부까지 폐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홍 지사의 고집은 완강합니다. 진주의료원은 지난 3일 한달간의 휴업을 시작했고, 휴업이 끝나는대로 폐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입니다. 경남도는 "공공의료법의 개정으로 민간병원도 공공의료서비스를 할 수 있기 때문에"라며 공공의료법 개정을 진주의료원 폐업의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경남도의 설명과는 달리 지난해 2월 개정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은 오히려 공공의료의 확대를 위한 취지로 도입된 법률입니다. 이를 근거로 공공의료시설을 폐업한다는 것은 법의 취지를 반대로 해석한 아전인수입니다.

물론 경남도측의 설명처럼 진주의료원이 폐업한다 해서 당장 그곳의 환자들이 죽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100년넘게 전문 공공의료기설로 기능해 온 진주의료원을 민간병원이 대신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공공의료의 시장편입을 뜻하며, 의료원의 폐업으로 인한 민간병원의 대폭 수가인상도 예견되는 상황입니다. 설사 운영상의 불합리한 점이 있다 해도 불과 5년전에 큰 돈을 들여 신축이전한 병원을 폐업하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폐업을 위한 폐업입니다.


홍준표의 ‘공공 병원 죽이기’, 진짜 목적은 1000억 원? http://bit.ly/YzkK28

진주의료원의 폐업이 더욱 우려스러운 이유는 이것이 한국 공공의료의 붕괴를 촉진하는 신호탄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국 34의 지방의료원 중 27개의료원이 적자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중 하나가 만성적자를 이유로 사라진다면 아주 나쁜 전례가 되는 셈입니다.

▲ 홍준표 그는 행정가이기 이전에 정치인이다


경남도민들이 분명한 경고 보내야

홍 지사는 행정가이기 이전에 정치인입니다. 정치인은 표가 떨어질 행동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가 쇄도하는 비난을 감수하며 진주의료원 폐업을 밀어부치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정치적 미래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치인의 비인간성은 그를 뽑아 준 유권자들의 비인간성에서 비롯됩니다. 홍 지사는 지난 선거에서 63%라는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습니다. 경남지역의 정치지형을 볼 때 아마도 진주의료원 폐쇄보다 더한 파행을 한다 해도 그의 재선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성을 상실한 정치인에게 표의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제2, 제3의 홍준표는 계속 나올 것입니다.

김정은이 핵폭탄을 터뜨리는 와중에도 미국인들의 관심사는 온통 건강보험개혁에 쏠려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10년 이상 건강보험이 없는 수백만 명의 국민에 의료 혜택을 주기 위해 연간 2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린 개인 투자자들과 25만 달러 이상을 번 가구에 대해서 ‘투자수익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적인 공공의료 후진국인 미국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죠.

오바마가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힘은 그를 뽑아준 유권자들로부터 나왔습니다. 미국인들은 공공의료확충을 약속한 오바마를 뽑았지만 경남도민들은 철저한 시장주의자인 홍준표를 도지사로 뽑았습니다. 홍 지사가 시장논리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 역시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로부터 나옵니다.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홍 지사가 지독한 시장논리를 철회할 근거도 유권자들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경남도민들이 진주의료원폐업을 원치 않는다면 정치인 홍준표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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