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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별한 국가대표…여자 아이스하키 4인의 ‘올림픽 스토리’

등록 :2018-02-04 09:49수정 :2018-02-04 10:16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특별한 국가대표들’
평창 겨울올림픽에 나서는 한국 선수들은 모두 144명이다. 이들 중 귀화를 통해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전 종목에서 모두 15명이다. 여자 아이스하키에선 박캐럴라인(박은정·29·왼쪽부터)과 희수 그리핀(30), 임대넬(임진경·25) 3명이 특별귀화 방식으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사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공
평창 겨울올림픽에 나서는 한국 선수들은 모두 144명이다. 이들 중 귀화를 통해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전 종목에서 모두 15명이다. 여자 아이스하키에선 박캐럴라인(박은정·29·왼쪽부터)과 희수 그리핀(30), 임대넬(임진경·25) 3명이 특별귀화 방식으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사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공

 

▶ 개막을 앞둔 평창올림픽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은, 현재까진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다. 북한 선수들이 합류해 단일팀을 꾸렸기 때문인데, 사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단일팀이 전부가 아니다. 어느 대표팀의 어느 선수든 한두가지 사연쯤 없을까마는,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엔 다양한 이야기를 지닌 ‘조금 특별한 선수들’이 많다. ‘남북 단일팀 뉴스’에 묻힌 4명의 선수 이야기를 전한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나서는 한국 선수들은 모두 144명이다. 이들 중 귀화를 통해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전 종목에서 모두 15명이다. 여자 아이스하키에선 박캐럴라인(박은정·29·왼쪽부터)과 희수 그리핀(30), 임대넬(임진경·25) 3명이 특별귀화 방식으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 간 박윤정(마리사 브랜트·26)은 ‘국적 회복’을 거쳐 다시 한국인이 됐다. 남북한 단일팀 구성으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평창올림픽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선수들이 됐다. 단일팀 구성과 무관하게 남쪽 선수단이 구성되는 과정에서도 사연이 많았다. ‘조금은 특별한 시간’을 거쳐 대표팀에 합류한 네 선수를 만났다. 이들과의 인터뷰 약속을 1월 초에 미리 잡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남북한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제안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1월12일 이후, 여자 대표팀은 선수촌 안으로 숨어버렸다. 꼭꼭 숨어 훈련하던 그들이 내일(4일) 평가전을 시작으로 다시 공개 무대로 나선다. ‘이야기’ 많은 올림픽에서 이제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게 평창은…꿈같은 일이 벌어지는 중이에요”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특별하다. 대표팀은 여성들로 이뤄진 국내 유일의 아이스하키팀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엔 아직 ‘상설’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없다. 국가대표를 소집할 때만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구성된다. 대학팀도 실업팀도 없다 보니 ‘밥벌이’로 아이스하키를 하는 선수가 거의 없다. 고등학생(2001년생)부터 30대 초반까지 선수들 나이 폭도 넓다.

 

애초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올림픽 출전은 먼 훗날에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올림픽 개최국의 아이스하키 자동출전권은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대회부터 폐지됐다. 최근 2~3년 새 실력이 늘었다지만 대표팀의 세계랭킹은 2018년 1월 현재 22위다. 8개 팀이 겨루는 올림픽 본선 무대에 자력으로 진출하기엔 갈 길이 멀었다. 그러다 2014년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이 개최국 출전권을 부활시키면서 올림픽에서 뛸 기회를 잡았다. 출전권을 주는 대신 국제아이스하키연맹은 조건을 내걸었다. 평창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대표팀의 경기력을 올림픽 본선 수준에 맞게 끌어올리라는 요구였다.

 

 

박캐럴라인
합류 제안에 다니던 회사 사표
의학대학원은 무기한 휴학하고
대표팀 합류하려 어깨 수술도
“내가 옳았다는 걸 증명하고파”

 

 

임대넬
캐나다 대학팀 공격수로 뛰다
페북 메시지로 제안받고 합류
캐럴라인을 협회에 소개하기도
평창은 인생 최고의 순간 될 것”

 

 

희수 그리핀
한국인 어머니 이름으로 귀화
“어머니·할머니 나라의 국가대표
골까지 넣는다면…꿈같은 일
한국서 지도자도 하고 싶어”

 

 

박윤정
생후 4개월 때 미국으로 입양
동생은 미국 대표팀으로 평창행

 

 

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평창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가능성이 있는 국내 선수를 발굴해 캐나다 등 ‘아이스하키 선진국’으로 내보내고, 반대로 아이스하키 선진국의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공을 들였다. 세라 머리 현 여자 대표팀 감독이 영입됐고 미국이나 캐나다 등 ‘아이스하키 본토’에서 뛰는 한국계 선수들을 찾기 시작했다. 박캐럴라인(박은정·29)과 임대넬(임진경·25), 희수 그리핀(30)과 박윤정(마리사 브랜트·26)은 이 과정을 통해 대표팀에 합류했다. 아이스하키와 평창올림픽이 아니었다면 이들에게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먼 나라였을지도 모른다.

 

‘특별하게’ 구성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더 특별해졌다. 북한 선수들이 합류해 ‘남북 단일팀’이 결성됐기 때문이다. 단일팀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과 비례해 대표팀을 가까이서 보는 게 더욱 힘들어졌다. 지난달 12일 미국 전지훈련에서 돌아온 대표팀은 16일 충북 진천선수촌에 입촌한 이후 머리 감독의 인터뷰 외엔 언론에 전혀 노출되지 않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나 통일부를 통해 공개되는 ‘훈훈한’ 훈련 사진이 전부다.

 

그런 까닭에 네 선수와의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평창올림픽은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처음으로 참가하는 올림픽이다(물론 남자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쩌면 당분간 마지막 올림픽이 될지도 모른다. 설렘과 기대와 긴장 속에 있을 선수들의 목소리를 이렇게 전할 수밖에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국적을 언제 얻었나요?

 

박캐럴라인(캐럴라인) “2015년 3월에 얻었어요. 대표팀 훈련은 2013년 7월부터 함께 했고요.”

 

임대넬(대넬) “작년 1월에요. 2013년 7월에 한국에 처음 왔는데 대학교를 졸업하느라 국적 취득이 미뤄졌어요.”

 

희수 그리핀(희수) “2015년 7월부터 대표팀 친선경기가 있을 때면 합류하곤 했어요. 지난해 4월에 국적을 받았어요.”

 

박윤정(윤정) “저는 3명과는 좀 달라요. 전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됐거든요. 그래서 귀화가 아닌 국적 회복 절차를 밟았어요. 2016년 9월에 승인됐어요.”

 

박캐럴라인과 임대넬은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두 선수의 부모는 캐나다로 이민 간 한국인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희수 그리핀은 어머니가 한국인 이민자다. 이들이 말하는 귀화란 국적법상의 특별귀화를 말한다.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얻으려면 국내에 5년 이상 거주하거나 부모가 한국인이어야 하지만 ‘과학·경제·문화·체육 등 특정 분야에서 매우 우수한 능력을 보유한 자로서 대한민국의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되는 자’의 경우엔 특별귀화가 가능하다. 한국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하면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페북 메시지로 시작된 평창 프로젝트

 

이들이 대표팀에 합류하는 과정은 그대로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역사’가 될 만하다. 그 역사의 시작은 ‘미약’했다.

 

대넬 “(대한아이스하키)협회 김정민 홍보팀장한테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어요. 올림픽에 대비해 전력을 키우려고 한국계 선수를 찾는 중인데, 대표팀에 합류할 생각이 있냐고 묻더군요.”

 

―처음엔 긴가민가했겠네요?

 

대넬 “진짜일까 싶어서 한국에 있는 외삼촌에게 알아봐 달라고 했어요. 외삼촌이 직접 김 팀장을 만났어요. 장난이 아니었던 거죠. 협회가 진지하게 이 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정민 홍보팀장은 “무식한 방식”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우선 캐나다 대학에 소속된 팀들을 찾고 선수들 명단 중에 한국계 성씨일 가능성이 있는 김(Kim)이나 이(Lee), 박(Park) 등을 찾았죠. 캐나다 온타리오 디비전에 소속된 ‘로리에 골든 호크스’(Laurier Golden Hawks)에 임(Im)씨 성을 쓰는 선수가 있길래 사진을 보니 아시안이었어요. 페이스북으로 친구 신청을 하고 메시지를 보냈죠.”

 

협회는 임대넬의 삼촌을 통해 미국 프린스턴대 아이스하키팀에서 4년간 공격수로 뛰었던 박캐럴라인도 소개받았다. 박캐럴라인은 다시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격수로 뛰었던 한국계 선수가 있다는 사실을 협회에 전했다. 김 팀장은 희수 그리핀에게 메일을 보냈다.

 

임대넬이나 박캐럴라인이 대표팀에 합류했던 당시(2013~2014년)엔 대표팀 내 기존 선수들과 이들의 실력 차가 컸다. 임대넬은 캐나다 온타리오 디비전 챔피언팀의 현역 선수였다. 김 팀장은 “대넬이나 캐럴라인의 개인기가 월등했다”고 말했다.

 

 

윌프리드 로리에 대학교 4학년 때 학교 아이스하키팀 누리집에 실린 임대넬의 프로필과 그의 활약으로 경기에 이겼다는 기사. 누리집 갈무리
윌프리드 로리에 대학교 4학년 때 학교 아이스하키팀 누리집에 실린 임대넬의 프로필과 그의 활약으로 경기에 이겼다는 기사. 누리집 갈무리

 

윌프리드 로리에 대학교 4학년 때 학교 아이스하키팀 누리집에 실린 임대넬의 프로필과 그의 활약으로 경기에 이겼다는 기사. 누리집 갈무리
윌프리드 로리에 대학교 4학년 때 학교 아이스하키팀 누리집에 실린 임대넬의 프로필과 그의 활약으로 경기에 이겼다는 기사. 누리집 갈무리

 

―당시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캐럴라인 “특히 아버지가 많이 기뻐하셨어요.”

 

대넬 “‘영광스러운 기회를 잡게 됐다’며 모두들 기뻐했어요. 한국에 온 첫해(2013년)엔 오랜만에 어머니도 한국에 오셔서 당시 서울에 있던 오빠랑 여행을 가기도 했어요. 그때도 지금도 부모님 나라에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해요.”

 

희수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굉장히 기뻐하셨어요.”

 

―그래도 한국은 낯선 나라였을 텐데, 힘든 점은 없었나요?

 

희수 “언어 문제가 가장 어려웠어요. 아쉽게도 제가 한국말을 거의 못하거든요. 다행히도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잘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도움을 받았어요.”

 

―사실 감독이나 코치도 외국인이라 팀 내에서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지 궁금해요.

 

대넬 “조수지 선수가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래서 팀 내에서 통역 역할을 해요.”

 

희수 “제게는 이진규(그레이스 리) 선수가 큰 도움이 돼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역시 두 나라 말을 다 잘하거든요.”

 

―한국어 실력이 궁금하네요.

 

윤정 “저희 넷 중엔 제 한국어 실력이 가장 처질 거예요. 국적을 받으려면 인터뷰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한국어 공부를 하게 되는데, 전 그런 과정마저 없었기 때문에….”

 

대넬 “제가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아직도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하다는 게. 인터뷰할 때 정말 긴장을 많이 했거든요. 한국어를 좀 더 공부할걸 하는 후회도 되고. 그래서 국적 얻은 후에도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캐럴라인 “점수로 매긴다면 절반 이상은 될 거예요. 말하기는 여전히 좀 어눌하지만 듣는 건 거의 다 되거든요. 상대방이 한국어로 말하면 저는 그걸 듣고 영어로 말하고 있죠. 동료들 대부분이 영어를 조금씩 하니까 크게 불편하진 않아요.”

 

희수 “여전히 한국어로 말하는 건 거의 못해요. 높은 점수를 주지 못할 것 같아요.”

 

 

동생과 함께라면…

 

박윤정은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레베카 베이커 코치가 다리를 놓았다. 베이커 코치의 남편이 미국 미네소타 대학팀의 코치였는데 그 팀엔 박윤정의 동생인 해나 브랜트가 있었다.

 

박윤정에게 한살 터울인 동생 해나는 특별하다. 1992년 한국에서 태어난 박윤정은 생후 4개월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미네소타주 배드네이스하이츠시에 살던 그레그-로빈 부부는 결혼 후 12년 동안 아이가 없자 한국인 아기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그레그 브랜트의 여동생 또한 한국에서 두 명의 아이를 입양해서 살고 있었다.

 

윤정을 데려오기 2주 전 그레그 부부는 해나를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윤정이 도착하고 6개월 뒤 해나가 태어났다. 자매는 어릴 적 피겨스케이팅을 함께 했었다. 그러다 5살 해나가 피겨가 싫다며 아이스하키를 시작했고 2년 뒤 언니 윤정(미국명 마리사 브랜트)도 동생을 따라 스틱을 들었다. 윤정은 미국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와의 인터뷰에서 “피겨스케이팅이 지루하기도 했지만 해나와 함께 있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윤정과 해나의 부모는 주말에 열리는 한국 학교나 한국 문화 캠프에 자매를 보내기도 했는데, 태권도나 전통무용을 좋아하던 해나와 달리 윤정은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안 가면 안 되냐”고 부모에게 먼저 말을 꺼낸 이도 윤정이었다. 동생 해나는 와의 인터뷰에서 “언니는 자신이 한국에서 온 입양아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평범한 이곳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미국 미네소타 전지훈련장에서 나란히 선 박윤정(마리사 브랜트)-해나 브랜트 자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공
지난해 1월 미국 미네소타 전지훈련장에서 나란히 선 박윤정(마리사 브랜트)-해나 브랜트 자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공

 

―2015년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한국에 온 적이 없나요?

 

윤정 “예. 입양을 간 뒤 한국에 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제가 태어난 곳이지만 한국에 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요.”

 

―합류 제안을 가족들에게 전했을 때 동생은 무슨 얘길 하던가요?

 

윤정 “‘아주 좋은 기회가 왔다’며 좋아했어요. 해나가 적극적으로 지지해 준 게 대표팀 합류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예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때 미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던 해나는 지난달 2일 발표한 평창올림픽 미국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 랭킹 1위인 미국 여자 대표팀은 올림픽 5연패를 노리는 캐나다와 함께 이번 대회 우승 후보다. 미국은 상위 그룹인 A조, 한국은 하위 그룹인 B조에 속해 있다. 1승이 목표인 한국 대표팀과 1등이 목표인 미국 대표팀의 맞대결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한국 대표팀한테 거듭 일어나야만 가능하다.

 

―언니는 수비수, 동생은 공격수인데 맞대결을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윤정 “쉽지 않을 거예요.”

 

―미국에 계신 부모님은 이번에 한국에 오세요?

 

윤정 “물론이에요. 저랑 해나가 모두 올림픽에 나가는데 당연하죠.”

 

―국적 회복할 때 낳아준 부모님을 찾기 위해서 이름을 박윤정으로 바꿨다고 들었어요. 어느 인터뷰에선 “박윤정이란 이름이 내가 아는 모든 것”이라고도 했던데요. 그동안 좀 알아낸 것들이 있나요?

 

윤정 “훈련하느라 시간을 내기 힘들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연하기도 해서 아직 구체적으로 (부모님을 찾으려고) 노력한 건 없어요.”

 

―올림픽이 끝나면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윤정 “평창올림픽이요? 해나와 함께 한국 여행도 하면서 즐겨보고 싶은데, 시간이 될지는 모르겠네요.”

 

 

아이스하키만 할 수 있다면…

 

희수 그리핀의 미국 이름은 랜디 희수 그리핀(Randi Heesoo Griffin)이다. 한국인으로 귀화하면서 그는 유니폼에 랜디 대신 희수라고 쓰기 시작했다. 희수는 그의 어머니 이름이다. 어머니는 10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한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첫 경기를 기억하나요?

 

희수 “물론이죠. 지난해 4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였어요. 어머니의 나라이자 외할아버지·외할머니의 나라를 대표하며 좋아하는 아이스하키를 할 수 있다는 게… 아이스하키는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중에 하나거든요. 2010년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소속팀이 없었어요 그게 가장 아쉬웠는데 다시 아이스하키를 하게 됐잖아요. 다시 선택해야 한다고 해도 같은 결정을 할 거예요.”

 

―언제부터 아이스하키를 했어요?

 

희수 “6살 때부터요. 클럽팀을 거쳐 2006년에 하버드에 입학했고, 4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어요. 동생도 하키 선수로 브라운대학에 갔죠.”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는 인기 스포츠잖아요. 대학 졸업 뒤 프로팀에 갈 순 없었어요?

 

희수 “여자 아이스하키도 프로리그가 있기는 한데, 남자 아이스하키처럼 규모가 크진 않아요. 많은 돈을 받지도 못하죠. 프로 리그에 소속되지 않은 선수가 대표팀에 뽑히기도 해요.”

 

―대표팀 합류 제안을 받고 “적응하기 힘들까봐 걱정했었다”던데, 실제 와보니 어땠어요?

 

희수 “한국에 가 본 적도 없고 한국어도 할 줄 모르니까 걱정됐죠. 무엇보다 졸업한 뒤엔 아이스하키를 거의 하지 않았거든요. 공백 기간이 5년 가까이 됐으니까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죠. 실제로 와서 하려니까 스케이팅이 잘 되지 않아 많이 힘들었어요.”

 

―현재 듀크대학에서 진화인류학 박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던데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어요?

 

희수 “사실 하키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런 일이 있다면 대학원 공부는 접을 수도 있어요. 미국아이스하키협회에서 받은 지도자자격증도 있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는 일도 해보고 싶어요.”

 

 

지난해 4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2 A그룹(4부 리그)에서 우승한 뒤 목에 건 금메달을 확인하는 선수들. 오른쪽부터 희수 그리핀, 박윤정, 정시윤. 연합뉴스
지난해 4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2 A그룹(4부 리그)에서 우승한 뒤 목에 건 금메달을 확인하는 선수들. 오른쪽부터 희수 그리핀, 박윤정, 정시윤. 연합뉴스

 

희수 그리핀처럼 박캐럴라인도 현재 하던 공부를 잠시 미룬 상태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 프린스턴대학에 입학해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의학대학원에 진학해 의사가 될 생각이었다. 2013년 7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겠냐?”는 김정민 홍보팀장의 메일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아이스하키는 한국에서 인기 스포츠가 아니잖아요. 여자 아이스하키는 더 그런데, 대표팀 합류를 망설이진 않았나요?

 

캐럴라인 “크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아이스하키는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였고, 부모님도 모두 제 선택을 지지해주시고 기뻐하셨거든요.”

 

―도대체 그 아이스하키의 매력이란 게 어떤 거예요?

 

윤정 희수 대넬 “스피드요.”

 

―그게 전부예요?

 

캐럴라인 “좋은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려면 갖춰야 할 조건들이 많아요. 우선 기본적으로 스케이트를 잘 타야 해요. ‘눈과 손의 협동감각 운동 능력’(hand-eye coordination)도 좋아야 하고, 두뇌 회전도 좋아야 하고, 체력도 갖춰야 해요. 팀 스포츠니까 동료들과의 소통도 중요하죠. 이런 요소들이 잘 조합돼야 좋은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거든요. 이런 능력들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는 게 아이스하키의 매력이에요.”

 

박캐럴라인은 (대한아이스하키)협회로부터 합류 제안을 받고 다니던 병원을 그만뒀다. 대표팀 합류(2013년 7월) 뒤엔 미국 컬럼비아대 의학대학원에 들어갔다. 2014년엔 어깨 수술을 했다.

 

―대학원은 지금 휴학 상태인 거죠? 공부와 아이스하키를 함께 하는 게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캐럴라인 “의학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중에 협회로부터 제안을 받았거든요. 의학대학원에 가고 싶은데 아이스하키 선수로 올림픽도 나가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둘 다 포기할 수 없었어요.”

 

―대학원 공부를 미루고 있는 게 걱정되진 않아요?

 

캐럴라인 학부 때도 공부하면서 운동했으니까 둘 다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둘 다 포기하지 않아요.

 

―어깨 수술은 왜 한 거예요?

 

캐럴라인 “학부 때 경기를 하다 다친 어깨가 자주 빠졌거든요. 일상생활 하는 데 크게 불편하진 않았는데 하키를 하려면 수술을 해야 했어요. 한국 국적을 받고 올림픽에 나가려고 (수술을) 했죠.”

 

―대표팀 합류 전후로 인생이 파란만장해졌네요?

 

캐럴라인 “예정에 없던 수술을 하고, 올림픽 나가려고 대학원도 휴학하고, 동계아시안게임에도 나갔는데, 이제 며칠 뒤면 올림픽에서 뛸 테니 인생의 많은 부분이 휘익 바뀐 셈이죠.”

 

 

나에게 평창이란?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1998년에 창단했다. 1999년 강원 겨울아시안게임 유치 당시엔 ‘개최국은 전 종목에 참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주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과 동호회 선수들을 모아 팀을 꾸렸다. 그 과정을 소재로 만든 영화 <국가대표2>를 보면, 아이스하키 대표팀으로 쫓겨나다시피 한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가 북한 아이스하키 대표 출신(북한이탈) 주인공의 퍽을 뺏으려다 빙판에서 넘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반시계 방향으로 경기를 펼치는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좌우 방향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는 아이스하키에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급히 만든 팀의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강원 겨울아시안게임에서 57골을 내주고 2골을 넣으며 3전 전패. 2003년 일본 아오모리 겨울아시안게임에서는 80골을 내주고 1골을 넣었다. 역시 3패.

 

2017년 4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맞붙은 남한의 희수 그리핀과 북한의 려성희. 둘은 이번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에서 같이 뛴다. 연합뉴스
2017년 4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맞붙은 남한의 희수 그리핀과 북한의 려성희. 둘은 이번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에서 같이 뛴다. 연합뉴스

 

그러던 대표팀이 지난해 2월에 열린 삿포로 겨울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처음으로 중국전 승리를 거두며 3승을 올렸다. 두 달 뒤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2 A그룹(4부 리그)에선 5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불과 2년여 전만 해도 디비전2 A그룹 잔류가 목표였던 팀이었다. 이제 대표팀은 다음주 금요일(9일) 개막하는 평창올림픽에서 ‘올림픽 첫 승’을 꿈꾼다.

 

―평창올림픽은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캐럴라인 “부모님이 경기를 보러 한국에 오실 예정이거든요.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제 선택과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어요.”

 

희수 “어머니와 할머니의 나라를 대표해서 올림픽에 나가는 거잖아요. 꿈같은 일이에요.”

 

윤정 “비록 다른 팀이지만 동생과 같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가족의 영광이에요. 저희 자매에겐 완벽한 올림픽이에요.”

 

대넬 “6살 때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이래,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 될 거예요.”

 

―한국 대표팀은 1승이 목표라던데, 그 이상도 기대하고 있나요? 개인적으로 바라는 건?

 

희수 “다들 강도 높은 훈련을 버텨냈거든요. 그에 걸맞은 성적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론 강릉에서 열렸던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어시스트만 했고 골이 없었거든요. 올림픽에서 꼭 골을 넣고 싶어요.”

 

대넬 “올림픽에서 골이라니…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네요.”

 

윤정 “전 수비수인데다 슈팅 능력이 그닥 좋지 않아서… 경기 앞두고 해나랑 ‘너를 위해 골을 넣을게’라는 문자를 주고받거든요. 그게 올림픽에서 실현되면 기쁠 것 같네요.”

 

―한국 팬들에게 아이스하키는 여전히 생소한 스포츠예요. 재밌게 보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희수 “아이스하키는 몸과 몸이 부딪히는 격렬한 스포츠거든요. 몸싸움이나 순발력이 필요한 스케이팅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재밌을 거예요.”

 

대넬 “아이싱(전방으로 쳐낸 퍽이 어느 선수에게도 닿지 않은 채 상대팀 골라인을 넘어가는 경우 주어지는 페널티)이나 오프사이드 같은 기본적인 규칙 몇 가지만 알아도 더 재밌게 보실 수 있어요.”

 

―가까이에서 본 세라 머리 감독은 어떤 지도자인가요?

 

대넬 “선수가 감독을 평가할 순 없어요. 노코멘트 할래요.”

 

―본인들 외에 주목할 만한 대표팀 선수를 꼽아본다면?

 

윤정 “글쎄요. 한두 명만 꼽긴 쉽지 않은데….”

 

대넬 “전 주전 골리 신소정 선수요. 늘 노력하는 선수거든요.”

 

희수 “전 수비수 엄수연 선수랑, 공격수 한수진 선수요. 영리하고 센스가 좋아요.”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에게 평창올림픽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넬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제가 처음 한국에 왔던 2013년과 비교하면 여자 대표팀은 정말 엄청난 성장을 이뤘어요. 이런 속도로 성장하고 노력하고 지원한다면 3~4년 뒤엔 또 달라져 있을걸요. 마지막이 아닐 것 같은데요?”

 

희수 “어린 선수들을 잘 키우면 예선 통과 못 할 것도 없을 텐데요? 중국과 일본도 했는데 한국이라고 왜 못 하겠어요?”

 

 

2015년 2월 <한겨레>와 인터뷰 중인 세라 머리 당시 대표팀 코치와 박캐럴라인 당시 플레잉코치. 김봉규 <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2015년 2월 <한겨레>와 인터뷰 중인 세라 머리 당시 대표팀 코치와 박캐럴라인 당시 플레잉코치. 김봉규 <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아이스하키와 대표팀을 향한 열정으로 충만한 이들에게 남북 단일팀으로 평창올림픽에 나서는 소감을 마지막으로 물었다. 하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상대편이던 북한 선수들과 같은 팀으로 만난 기분이 어떤가요?” 따위의 ‘상투적’인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단일팀 관련한 인터뷰를 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고 전했지만 통일부나 문체부는 “정부 차원에서 인터뷰를 하지 말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남북한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제안했다는 지난 1월12일, 대표팀은 미국 미네소타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날 공항에서 골리 신소정과 주장 박종아, 부주장 조수지 선수가 “선수들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결정에 실망스럽다”고 말한 게 단일팀으로 평창올림픽에 나서는 선수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감이었다. 그날 이후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진천선수촌 안에서 비공개로 훈련 중이다. 1월25일엔 북한 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했다.

 

‘의도치 않게 베일에 싸이게 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4일 저녁 7시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스웨덴과 평가전을 치른다. 단일팀이 만들어진 뒤 치르는 첫 경기이자 올림픽을 앞두고 여는 처음이자 마지막 평가전이다. 국내외 언론의 관심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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