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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금감원장, 삼성 지배구조를 뒤흔들 카드를 손에 쥐었다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 2018-04-04 18:48:05
수정 2018-04-04 18: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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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사무처장 출신으로 대표적 시민운동가 중 한명이었던 김기식 전 의원이 금융감독원의 새 선장이 됐다. ‘금융계의 검찰’로 불리는 금감원에 정통 재벌 개혁파인 김기식 원장이 수장에 오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더구나 김기식 원장은 오래 전부터 ‘삼성생명 법’으로 불렸던 보험업법 감독 규정에 매우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만약 김 원장이 자신의 소신 대로 보험업법 감독 규정을 개정한다면, 삼성의 지배구조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 말은 김기식 원장에 대해 삼성이 극단적인 거부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벌써부터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은 김기식 원장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 원장의 취임을 계기로 ‘삼성생명 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감독 규정이 무엇이고, 이 조항이 지금까지 삼성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후원’해왔는지를 살펴본다.

왜 보험회사의 주식 보유를 제한하나?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들이 정해진 규칙을 잘 따르는지를 감시하는 기관이다. 당연히 보험회사에 대한 관리와 감독도 금감원의 권한에 속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보험업법 안에 아주 희한한 규정이 하나 있다. 이 규정이 너무나 일방적으로 삼성생명에 유리해 ‘삼성생명 법’이라는 조롱이 따라 다녔다.

 

보험회사는 돈이 많은 회사다. 삼성생명만 해도 총 자산이 200조 원이나 된다. 이 돈은 당연히 삼성생명의 돈이 아니라 고객들이 맡긴 돈이다. 그래서 보험회사는 고객의 돈으로 계열사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고객 돈을 이재용의 지배 강화를 위해 쓰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사를 하고 있다.ⓒ김슬찬 인턴기자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삼성생명은 막대한 고객의 돈으로 이재용이 그룹을 지배하는 일을 도왔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만 무려 7.5%다. 이 주식을 사는 데에 23조 원이 들었다. 이런 지원 덕에 이재용은 0.5%에도 못 미치는 삼성전자 개인 지분율로도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었다.

이 뿐이 아니다. 삼성생명은 삼성증권, 삼성화재, 삼성자산운용, 삼성카드 등 주요 삼성 금융계열사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당연히 여기에 사용된 돈도 고객의 돈이다. 보험 설계사 말만 믿고 삼성생명보험에 가입한 수많은 고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재용의 그룹 지배 강화를 도왔던 셈이다.

오로지 이재용을 위한 엉터리 감독 규정

이게 너무 말이 안 되니까 법으로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규정을 해 놓은 대목이 바로 보험업법의 감독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보험회사들은 그룹 계열사의 주식을 사는 데 총자산 의 3% 이상을 쓸 수 없다. 이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삼성생명은 그룹 계열사 주식을 6조 원 이상 살 수 없다. 삼성생명의 총자산이 200조 원이고 그 돈의 3%가 6조 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벌써 이상하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만 7.5%로 시가로 환산하면 23조 원이나 된다. 이미 6조 원을 훌쩍 뛰어넘어버린다. 게다가 삼성생명은 삼성증권, 삼성화재, 삼성자산운용, 삼성카드 주식까지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 돈을 다 합치면 30조 원에 육박한다.

감독 규정은 분명히 6조 원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감독 규정에 묘한 단서 조항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규정에 나와 있는 3% 기준은 시가(時價)가 아니라 취득원가로 계산을 한다’는 조항이 바로 그것이다.

당최 말이 되지 않는 조항이다. 만약 재산세율을 10%로 정했다면 10%의 기준은 당연히 시가여야 한다. 1억 원에 아파트를 샀는데 그게 지금 10억 원이 됐다면, 재산세의 기준은 1억 원이 아니라 10억 원이다.

그런데 보험업법 감독 규정만 희한하게도 시가가 아니라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한다. 지금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 계열사 주식 30조 원을 취득원가로 계산하면 6조 원 이하로 줄어든다. 그래서 삼성생명이 막대한 고객 돈으로 계열사 주식을 30조 원어치나 들고 이재용을 지원한 것이다.

규정 한 줄만 고치면 된다

이 말도 안 되는 규정을 고치기 위해 수많은 정치인들이 보험업법 자체를 바꾸려 했다. 규정을 고치면 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금감원이 스스로 규정을 고칠 리가 만무했으므로 법 자체를 고치자고 나선 것이다.

삼성생명
삼성생명ⓒ월간 말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이종걸 의원 등이 ‘삼성생명 법’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이 다수당이었던 국회는 당연히 법 개정에 반대했다. 그런데 이 법을 고치고자 노력했던 또 한 명의 19대 국회의원이 바로 김기식 금감원장이었다.

사실 금감원이 그 동안 이 규정을 안 고쳐서 그렇지, 규정을 바꾸기 위한 절차는 매우 간단하다. 이게 법이 아니라 규정이기 때문에 굳이 보험업법을 통째로 바꿀 필요조차 없다. 금감원이 규정에 나와 있는 ‘취득원가’라는 단어를 ‘시가’로 바꾸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만약 금감원이 김 원장의 소신에 따라 이 한 단어를 바꾸면 삼성생명은 30조 원에 이르는 주식 최소한 20조 원이 넘는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이러면 삼성의 지배구조는 뿌리부터 흔들린다. 이재용이 지금 발휘하고 있는 막강한 지배력도 크게 약화될 것이다.

그것 때문에 보수언론과 야당의 김기식 원장 흔들기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일은 반드시 해 내야 하는 일이다. 국민들이 노후를 대비해 보험에 가입했을 뿐인데, 왜 그 소중한 돈이 이재용의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일에 사용돼야 한단 말인가?

‘삼성생명 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법을 바로 잡을 적임자가 마침내 금융감독원장에 취임을 했다. 김 원장이 소신을 접지 않고 반드시 규정을 고치기를 소망한다. 고객 돈을 총수 지배구조 강화에 쓰는 이 비정상적인 삼성공화국을 이번에 끝내지 못한다면 그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김 원장의 어깨에 한국 경제의 정상화를 위한 무거운 책임이 놓여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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