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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아픔 위에 뜬 쌍무지개

제주4·3 아픔 위에 뜬 쌍무지개

최철호 2018. 04. 04
조회수 316 추천수 0
 

 

1-.jpg 2-.jpg» 제주도 4·3평화공원 순례 기도회 중 쌍무지개가 떠올랐다

 

며칠 전 ‘밝은누리’ 길벗들과 제주도에 갔다. 작년 가을 전쟁 위기가 한창일 때,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를 시작해 제주도까지 다다른 것이다. 이 땅 어느 곳도 민족의 아픔에서 벗어난 곳은 없지만, 유독 제주도는 그 아픔이 절절하게 배어 있었다. 원통함과 상처가 서린 학살 현장과 묘지들을 순례하는 동안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졌다. 4·3이라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도 ‘강력한 군사력(폭력)을 통한 평화’라는 거짓이 팽배한 땅에서 과연 새로운 것을 꿈꿀 수 있을까. 빗속에 기도 순례가 이어졌다.

 

 4·3평화공원 행방불명자 묘지에 모여 기도할 때다. 오히려 슬픈 영혼들이 순례단의 비탄을 달래주듯 쌍무지개가 떴다. 한라산에도 처음 올라보았다. 제주 생명들의 한과 꿈, 신화가 서려 있는 한라산은 멀리서나 정상에서나 한결같았다. 먼바다까지 펼쳐진 섬 전체가 하나의 생명이었다.

 

 제주도에 처음 가본 건 마흔이 넘어서였다. 어릴 때는 아무나 갈 수 없는 관광지라 여겼던 곳이다. 20대에 4·3사건을 공부하면서 역사의 비극과 상처가 서린 제주도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함께한 길벗들이 가장 많이 주목하고 나눈 고백은 이 아름다운 절경 속에 어떻게 그런 비극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비극은 현재형이었다. 제주 토박이로 유기농 감귤농장을 하는 분에게도 강요된 침묵이 깊은 상처와 불신으로 남아 있었다. 그분은 원통함을 푸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그것만이 참된 화해와 평화를 가능하게 할 거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동광리 동굴에 숨어 4·3을 겪은 할머니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차원에서 처음으로 사과하기 전까지는 그 오랜 세월 ‘4·3’이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고 하신다. 그 고통과 원통함 속에서도 유독 웃음기가 많은 할머니 얼굴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

 

3-.jpg» 제주도 한라산에서 아픔의 땅 제주도를 내려다보며 기도하는 기도순례단

 

 제주 토박이로 제주에서 공동체를 일구는 젊은 친구는 집안 어르신들이 4·3 때 제주도와 도교육청 고위 관료였다고 했다. 가해자 집안의 후손인 셈이다. 진실을 밝히고 원통함을 풀어 화해를 이루는 과정은 가해자 혹은 방관자로 살았던 삶에 대한 아픈 자기반성이 따른다. 자기 역사와 삶을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도 쉽지 않고 또 다른 아픔일 수도 있지만, 가야 할 마땅한 길이라는 고백을 들으니 희망이 보인다.

 

 그 아픔의 땅에도 자연농법을 지키고 더불어 사는 삶을 만들어 가는 이들이 있었다.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원통함을 풀고 남북이 화해하고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생명평화를 일구는 이들도 있었다.

 

 제주인들과의 만남이 여전히 신음하는 슬픔만 가져다준 것이 아니었다. 마침내 생명평화를 증언하는 땅으로 부활하리라는 소망과 기쁨도 주었다. 우리는 비극의 땅에서 기도했다. 하나 된 겨레가 비무장 영세중립 생명평화의 땅을 만들길, 모든 핵무기와 전쟁무기가 폐기되길, 판문점에 생명평화기구가 세워지길.

 

4-.jpg» 경기도 안산 세월호 분향소 기도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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