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이들의 뚝심과 희생·연대가 삼성 ‘백기’ 들게 했다

등록 :2018-04-20 05:02수정 :2018-04-20 08:46

 

삼성 무노조 80년 깨뜨린 주역들
나두식 삼성전자 서비스 지회장
43살때 노동 3권 눈떠 금기 도전
무노조 삼성 무너뜨린 주역으로

고 염호석 양산분회장은
회유·협박 맞서다 세상 떠
굳건한 ‘연대’ 손길도 버팀목
조돈문 교수 교육·연구로 뒷받침
조현주 변호사 노조원 소송 지원
이남신 소장 시민사회 연대 끌어
‘삼성의 통 큰 결단.’

 

삼성전자서비스가 최근 사내 하청노동자 8천명을 직접고용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포기’ 선언 등이 나오자, 일부 언론은 삼성의 변화를 높이 평가했다. 그런 삼성 못지않게 주목받아 마땅한 이들이 있다. ‘무노조 경영 80년’이라는 삼성의 안과 밖에서 끊임없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켜내려 했던 노동자와 활동가들이다.

 

먼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나두식 지회장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그를 ‘무노조 삼성을 무너뜨린 주역’이라고 불렀다. “삼성이라는 자본이 무서운 건 탄압만 하는 것이 아니라 회유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이다. 그걸 이겨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 지회장은)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 결코 타협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싸우면서 새로운 투쟁 모델을 만들었다.”

 

왼쪽부터 조현주 변호사, 조돈문 교수, 이남신 소장, 나두식 지회장, 염호석 전 분회장
왼쪽부터 조현주 변호사, 조돈문 교수, 이남신 소장, 나두식 지회장, 염호석 전 분회장
나 지회장이 ‘노동조합’을 알게 된 건 2012년이다. 삼성전자서비스 사내 네트워크를 이끌던 그는 그해 우연히 민주노총 ‘노동자 권리찾기 수첩’을 보게 됐다. “내 나이 마흔세살에 ‘노동3권’을 처음 배웠다. 머리가 띵했다. 왜 아무도 나한테 그걸 알려주지 않았을까?” 나 지회장은 그때 처음 삼성에서는 금기로 통했던 노동조합 설립을 꿈꿨다.

 

그는 자신이 속한 사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노동조합 조직을 시작했다. 매일 가방에 ‘노동자 권리찾기 수첩’을 200권씩 넣고 다녔다. “그동안 몰랐는데 내 권리를 알고 나니 이렇게는 도저히 못살겠다고, 같이 해보자고 설득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센터마다 수첩을 들고 찾아가면 100% 가입, 완전 접수였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2013년 7월14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출범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출범한 뒤 삼성 쪽에서는 센터 위장폐업, 일감 차별배분 등의 방법으로 지회를 와해하려 애썼다. 2014년 5월 ‘지회의 승리를 기원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염호석 전 양산분회장도 ‘노조 탄압’을 온몸으로 겪은 인물이다. 염 전 분회장과 가까이 지냈던 양산분회 대의원 염태원(42)씨는 “회사에서 사소한 걸로 조합원들 트집을 잡고 표적 감사해서 징계하고… 탄압이 심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수리기사는 물론) 내근직·상담직 동료와도 친하게 지내던 호석이가 분회장을 맡으니 그를 믿고 조합에 가입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염 전 분회장의 ‘주검 탈취’ 사건은 지회 출범에 하나의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염 전 분회장 사망 이튿날부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41일째 되던 6월28일, 협력업체들을 상대로 단체협약을 얻어냈다. 염 전 분회장의 죽음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조합원 1천여명이 일군 성과였다. 이후 회사 쪽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일었지만, 협약에는 염 전 분회장의 사망과 관련한 유감과 재발방지 노력 등을 사쪽이 발표한다는 것과 폐업한 센터 소속 조합원에 대한 고용승계 약속 등이 담겼다.

 

삼성 바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지지하며 삼성의 변화를 촉구해온 많은 이들의 ‘연대’도 무시할 수 없다. 20여년간 삼성 문제를 연구해온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삼성의 노조 탄압 방법을 지적한 책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2008)를 내는 등 삼성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워왔다.

 

조 교수는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삼성 노동자를 직접 만나 상담과 교육을 하기도 했다. 그는 매번 ‘이번에는 성공할 것 같다’며 기대를 품지만 대부분 “잔인한 삼성의 탄압” 앞에 실패했다. 기대와 실망이 반복됐다. 심지어 그는 삼성 노동자 여럿이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찾아왔다가 그 가운데 밀고자가 생겨 무산되는 일도 겪었다. 조 교수는 “이제 삼성에서 노동조합 한다고 찾아오는 사람은 비밀을 지켜주려고 꼭 일대일로만 만난다”고 말한다.

 

지회를 법률적으로 지원한 조현주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당시 금속노조 소속)도 있다. 조 변호사는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 1334명이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를 상대로 낸 근로자성 확인소송을 맡았다. 지난해 1월 1심 패소 판결을 받은 뒤, 그는 기자회견에서 “싸움을 멈추지 않는 자가, 계속 문제제기를 하는 자가 승리한다”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번 삼성전자서비스 노사 합의를 “일부 승리”라고 평한 그는 또다시 앞으로의 싸움을 강조했다. “그동안 이 문제에 눈감았던 검찰과 고용부에 대한 의혹도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시민단체의 연대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벌인 여러번의 투쟁에 언제나 많은 시민단체과 진보정당이 함께했다. 농성하는 조합원을 위해 식사를 마련하거나 거리 음악공연 등 문화행사와 시위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연대체를 조직하는 데 앞장섰던 이는 이남신 소장이다. 이 소장은 “간접고용, 서비스직, 전국에 퍼진 사업장 등 노동조합 투쟁을 하기에 불리한 여건만 고루 갖춘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시민사회의 폭넓은 연대와 지지는 가장 중요한 힘이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이 중심이 되어 꾸려진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고용 근절 및 근로기준법 준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는 민변 노동위원회, 참여연대,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등 10여개 단체가 모였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