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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적대 관계의 청산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의미하는 것
2018.06.10 20:08:54
 

 

 

 

북한과 미국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이번 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경우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비핵화와 함께 북미 관계의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다. 세계사의 '대전환'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커다란 변화가 오게 되는 것이다.
 
'대전환'의 요체는 북한과 미국의 관계 정상화다. 70년에 걸친 북미 대결의 역사가 끝장나고,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가장 오랜 적대관계를 이어왔다.  
 
냉전 시대의 숙적 소련은 1991년 제풀에 쓰러졌고 쿠바 혁명(1959년) 이후 50여 년간 지속됐던 미-쿠바 적대 관계도 2015년 오바마에 의해 해소됐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미국과 열전을 치렀던 중국과 베트남도 각각 1979년과 1995년 대미 수교와 함께 국제사회에 진입하면서 경제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유독 북한만이 그 길에 들어서지 못했다. 냉전 종식 이후 30년이 돼가도록 국제사회의 외톨이로 남아 동아시아 불안정의 근원이 되고 있다. 패권 국가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지 못한 탓이다. 오직 미국만이 타국의 안전보장과 국제사회 참여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 수교가 이뤄진다면 북한은 건국 이후 처음으로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안으로는 경제개발에 집중하며 밖으로는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료와 남···중 평화협정이 성사될 경우 북한은 더 이상 동아시아 불안정의 근원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있다.
 
이로써 2차 대전 종전 이후 지속돼 온 동아시아 냉전은 종식될 것이다. 나아가 1894년 청일전쟁으로 시작된 동아시아 전국(戰國)시대가 끝장나고 동아시아 평화시대의 서막이 열릴 것이다. 청일전쟁 이후 50년간 동아시아를 전쟁으로 물들여왔고 패전 이후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 동아시아 냉전의 일익을 담당했던 일본 역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은 2002년 9월 고이즈미의 평양 방문으로 북일 관계 정상화를 천명한 바 있다. 이러한 일본의 시도는 한 달 뒤 미국 네오콘에 의한 제네바합의 파기로 무산됐다. 하지만 북미 수교가 현실화된다면 일본은 미국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반전의 계기: 북한의 핵무력 완성 
 
지난해 말까지 한반도 상공에 짙게 드리웠던 전쟁의 그림자가 올 초 평창올림픽 이후 남··미 지도자 간의 평화협상으로 급반전한 계기는 무엇인가?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핵무력 완성, 북한과의 평화공존 및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는 남한 촛불정부의 탄생, 군사주의에 의한 세계 패권 유지라는 2차 대전 후 미국의 전통적 대외정책 노선을 거부하는 트럼프정부의 등장이 그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북미 관계 정상화를 가로막은 최대 걸림돌은 북한의 핵개발이었다. 북한은 핵개발 포기를 대가로 북미 수교를 요구했고 미국은 북한의 선비핵화를 요구하며 팽팽히 맞서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핵능력 완성이 이번 북미 협상의 돌파구를 열었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핵 보유 자체가 아니라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회심의 카드였던 셈이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많이 미국의 핵위협을 받아온 국가다. 반면 미국은 지난해 11월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미 본토 도달 능력이 입증된 이후 비로소 처음으로 북한의 핵능력을 실존적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6자 회담이 시작된 2003년 이후 북한의 지속적인 '핵 보유' 주장을 무시해 왔던 미국도 이제는 북한과의 진지한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사실 그동안 미국의 핵정책은 이중기준적 행태를 보여 왔다. 이스라엘, 남아공, 인도, 파키스탄 등 동맹국 또는 우방국의 핵개발은 묵인해 온 반면 북한, 이라크, 리비아 등 적대국의 핵개발에 대해서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온 것이다. 특히 세계는 핵무기가 없거나 핵개발을 포기한 후세인, 가다피의 최후를 목격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직면했던 북한이 핵개발에 일로매진한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은 2006년 10월 첫 핵실험 이후 지난해까지 무려 12년에 걸쳐 6번의 핵실험을 하면서 핵개발 포기와 북미 수교의 맞교환을 요구해 왔다. 반면 인도와 파키스탄은 단 하루, 또는 이틀 만에 5~6회의 핵실험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국제사회가 저지할 틈도 주지 않고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 하려 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남아공은 핵실험조차 하지 않은 채 은밀하게 핵무기를 개발했다. 반면 장기간에 걸친 공개적인 북한의 핵개발은 대미 협상용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그동안 미국의 세계적 핵비확산 정책은 이중적이며 기만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촛불 정부와 트럼프 정권 
 
2006년 10월 북한의 첫 핵실험 직후 호전적인 부시행정부조차 종전선언 등 북한과의 핵협상에 나섰다.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배경에는 이러한 미국의 태도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등장한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선비핵화를 요구하며 진지한 대북 협상을 거부했다. 북한붕괴론의 망령에 씌운 탓이다. '핵 없는 세계'를 주창하며 북한에 대한 건설적 관여를 추구했던 오바마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라는 실패한 정책으로 귀결된 데는 한국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새로운 동력을 제공했다. 특히 이번 프로세스가 힘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전과는 달리 남과 북의 주도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보인 것은 19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와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제네바합의의 경우 당시 김영삼 정부의 변덕 탓에 한국은 협상과정에서 원천 배제됐다. 9.19공동성명은 노무현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가 있었지만 여전히 협상의 주역은 북한과 미국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남과 북의 정상이 먼저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부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미국을 협상에 끌어들였다. 협상의 주도권을 남과 북이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남북의 확고한 평화 의지가 협상의 버팀목이 되면서, 협상 타결의 가능성은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정부를 탄생시킨 2016-17년의 촛불혁명은 한반도 평화의 시발점이라고 할 만하다. 
 
미국의 참여는 트럼프 정부 유일의 좋은 정책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TPP 탈퇴, 파리기후협약 탈퇴, 이란 핵협정 탈퇴 등 일방주의로만 질주하던 트럼프 정부가 한반도 평화협상에 참여한 것은 어쩌면 '이성의 간계(奸計)'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위한 선택이 결과적으로 동아시아 평화의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8일 그가 미국 주류의 경악 속에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한 배경에는 트럼프 특유의 미국우선주의가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외교의 초당적 합의는 '세계적 군사 개입에 의한 미국 국익의 관철'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트럼프는 이러한 초당적 합의를 거부한다. 기존 엘리트들이 강조해온 세계에 대한 미국의 의무(와 권리) 따위는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 핵이 미국에 실질적 위협이 됐으므로 마땅히 이를 제거해야 하며, 협상의 달인인 자신만이 이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이 트럼프의 입장이다.  
 
한반도, 전쟁의 진원지이자 평화의 발신지 
 
근대 이래 한반도는 열강의 전쟁터였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전쟁 등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은 한반도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삼기 위해 바로 이 땅 위에서 전쟁을 벌여왔다. 중국과 러시아에게 한반도는 일본, 미국 등 해양세력의 대륙 침략 통로였고 미국, 일본에게 한반도는 대륙 세력이 자신을 겨누는 비수였다.  
 
···러의 각축 속에 한반도의 민초들은 어육의 신세를 면치 못했다. 가히 '지리의 저주'라 할 만하다. 그러나 '지리의 저주'를 불러온 것은 '인화의 실패'였다. 동학농민전쟁이 청일전쟁의 단초가 됐고 남북 대결이 미국과 중국의 전쟁을 초래했다. 내부의 분열이 외부 세력의 전쟁을 불러온 것이다. 한마디로 지난 120여 년간 한반도는 동아시아 전쟁의 진원지였다. 
 
그러나 이제 한반도가 평화의 발신지가 되는 절호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3월 이후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한반도에 보여준 뜨거운 관심은 남북의 화해가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평화의 초석이 될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오랜 역사에서 입증된 명제다.     
 
단재 신채호는 1921년에 쓴 '조선독립과 동양평화'라는 글에서 대륙에서 바다로 진출하려는 힘과 바다로부터 대륙으로 쳐들어가려는 힘을 중간에서 막는 것이 "유사 이래 조선인의 천직"이라면서 동양평화의 상책은 "조선의 독립"만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조선 병탄을 지원, 묵인한 미국 등 서방 세력에 대한 비판이자 호소였다. 이후 일본은 단재의 예언대로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파멸적 전쟁의 길로 나아갔다. 
 
또한 민세 안재홍은 "조선이 한번 자주독립을 잃어버리면 동아시아의 평화는 문득 깨어지고" 만다면서 한민족의 반침략투쟁이 중국과 일본에 방파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몽골에 대한 고려의 항쟁이 일본을 구원했고 임진왜란에서는 일본을 격퇴함으로써 중국의 병화를 막았다는 것이다. 남북의 화해와 한반도의 자주성이 동아시아 평화의 핵심이자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 거대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특히 남··미 세 나라 지도자의 결단에 의한 평화 공모(共謀)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어 있고',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은' 법이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기대하며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간절히 기원한다.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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