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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련희 대담] "막상 간다고 생각하니 두려워요."

[김련희 대담] "막상 간다고 생각하니 두려워요."
 
 
 
박명철 재미언론인 
기사입력: 2018/06/24 [00:59]  최종편집: ⓒ 자주시보
 
 

 

김련희 여성... 평범한 한 탈북자라는외투를 벗어던지고 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지 몇년째...

 

한겨레 신문에 의해 그의 이야기가 소개된 후 그는 분단모순의 전면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리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소개된 그의 사연과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라는 책은 많은 이들로부터 분단이 얼마나 가혹하고, 지독하고, 실질적인 일이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그는 분단으로 인한 가장 처열한 피해자이자 아픔의 산증인이다. 그는 그러나 그 아픔을 피해가지 않고 온몸으로 맞서 싸워 나왔다. 

 

살기어린 남녁땅의 한 언저리에 자리한 삶의 터에서 그는 이 시대가 주는 아픔을 고스란히 안아가고 있었다. 그의 거처로 올라가는 산동네 골목길 입구에 비낀 난삽한 전신주를 감아싼 전선들은 

마치 그의 삶을 옥죄어오는 숨막히는 현실의 장벽을 보여주는듯 했다.

 

그는 투사가 되어 있었다. 그냥 투사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어떻게 어떤 식으로 싸움을 해 나가야하는지를 아는 매우 노련하고도 세련된 투사라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어느새 분단과 민족문제의 본질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고 조리정연함 그자체였다. 그 자신이 마치 북의 힘의 실체를 대변하는 듯 했다.  

 

한 순진한 분단국가의 여성에서, 민족분단을 온 몸으로 절감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그에맞서 할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기울이는 당찬 여성인 그가 참으로 고맙고도 대견하다는 느낌이 떠나질 않았다. <대담=박명철/재미언론인> 

 

▲ 김련희 북녘동포     © 박명철


 

- 이 집으로 오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이제 3년 됐습니다.

 

 

- 그전엔 대구에 계셨었지요?

 

네. 지금도 집은 대구예요. 대구에 원룸이 있고, 한달에 20일정도는 서울에 와 있어요. 강연도 해야되고 서울에 오면 여기서 자고, 대구가면 우리 집에서 자고...

제가 처음에 한겨레신문을 통해 사연을 들어 냈을때 장기수 선생님들이 저를 찾아오신 거예요. 그 분들이 어디 다른데는 위험하니깐 여기 와 있으라고해서...

 

 

- 여기(만남의 집)는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이 몇분이나 계시나요?

 

이 집은 개인집이 아니라 양심수후원회의 사무국이예요. 그래서 집 관리는 장기수 선생님 두분이 이층에서 사시고 일층에는 저 혼자 살고 있어요.

 

 

- 네 그러시면 좀 덜 외로우시겠네요. 의지도 되고... 오빠벌이 되시나요? (웃음)

 

아버지 뻘이거나 아버지보다 나이가 더 위예요.

 

 

-어제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 한분 만나 뵈었는데, 평양에서 꼭 다시한번 보자고 하시던데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지 않겠습니까?

 

장기수 선생님들 잘하면 8.15때 갈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청와대에서 이번에 2차송환 요구하는 분들 명단을 다시 좀 올려보내라 해서 올려 보냈습니다. 그래가지고 조금 논의가 되는것 같고...

 

 

- 그러면 좋은 희망의 징조인데, 올려 보내라 했다는 것은 고려를 하겠다는 건데...

 

네. 관심이 있다는 소리이지요. 지금 선생님들도 많이 들떠 있어요.  

 

 

- 모두 몇분이나 되시나요?

 

지금 열아홉분이 2차송환 준비하고 계세요. 모두 스물여섯분인가 됐었는데 다 돌아가시고 남은 분이...

 

 

- 그럼 김선생을 포함해서 스무분이 되시는가요?

 

그렇겠지요.

 

 

- 그럼 남쪽으로 온 탈북자들도 가길 원해도 아직 안되겠지요?

 

그분들은 가기를 원해도공개적으로 나서질 못해요. 국가와 정부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개인적으로는 나 가고싶다라고 논의해야 하는데 그런게 전혀 없잖아요.  내적으로만 '가고싶다' '가고 싶다'라는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많이 두려워해요. 국정원에 대한 압박감이 너무 많아서 너무 힘들어해요. 매 탈북자한테는 담당경찰이 있잖아요. 또 그분들에 대한 의식을 많이 하기때문에 얼굴을 내놓게 되면 생계가 위험해 지거든요.

 

그래서 힘들다. 어떤 분들은 "김련희씨도 가겠다고해도 7년을 있지 않느냐. 우리가 가겠다고 나서서 당신처럼 7년을 기다려야된다면 그동안 우리는 생계를 어떻게 할거냐. 사방에서 압박이 들어올건데... 그래서 당장 올해정도 보내주겠다. 이런 담보만 있다면 나서겠다. 그런데 그런 담보가 없으면 우린 무섭다." 이런 거지요.

 

▲ 김련희 북녘동포     © 박명철


 

- 마음은 있어도 표현을 못한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무서운 법이 있고, 국정원압박이나, 또 기본은 생계가 위협을 받게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이지요.

 

 

- 그런데 김선생같은 경우에도 같은 조건이지만 이렇게 나서서 의사표명을 확실하게 하는건데, 그게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것 아닌가요? 어떻게보면 용기의 문제라고 볼수도 있지 않겠는가?

 

별로 제가 대담하거나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예요. 저도 겁이 엄청 많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나서게 된거는, 사람이 내일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장담을 못하잖아요. 저도 부모님과 남편과 딸과 생이별을 할 거라는 것은 상상을 못해 봤어요. 남쪽에 올거라는 것도 상상을 못해 봤고... 

 

그런데 실제 제가 가족과 생이별을 당하고 이렇게 7년을 있어보니까 너무 아픈거예요. 진짜 뼈를 깍고 피를 저리는 이른 아픔을 당하면서, 내가 너무 아프니깐 다른 누군가가 내같은 아픔을 당하면 안되겠구나, 나까지 눈을 감고 모른채 하고 주저않으면 내일은 또다시 나같은 사람들이 계속 생겨날수 있겠구나... 이 땅에 분단이 있는 한은 누구도 이걸 막지를 못하겠구나... 이런 무서움이 생기더라구요. 또 내가 설사 못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비극막은 무조건 막아야 겠구나, 이런 생각이 제일 컷어요. 제가 너무 아프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이런 아픔을 겪는게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나섰던 거지요.

 

 

- 네. 지금 강연도 다니시고, 저희가 보기엔 김선생께서 북에 대해 남쪽에다 알리고하시는데, 너무나 가려져 있잖아요. 너무나 왜곡되어 있고해서... 

아직도 아마 다 못느끼셨을 거예요. 저희들은 어릴때부터 여기 남쪽에서 자라서 저희는 미국으로 간지가 한 30년가까지 되는데, 그때 당시에 받았던 북에 대한 묘사라든지 교육은 어마어마한 거 였어요. 말도 못하는 것이었지요. 심지어는 북의 사람들이 뿔이 나있다...(김련희씨 웃음) 피부가 빨강색이다, 그런말도안되는 유치한 수준의 왜곡과 세뇌를 받고 같은 동족을 적개심을 가지게하는 그런 교육을 받았거든요. 저희가 알기로는 북에서는 그런 식으로 안 가르치거든요. 저희가 아는 북은 같은 민족으로서, 있는 그대로 걱정을 해 주고 하는데...

 

그런데 북에서도 남쪽에 대해서 교육을 하잖아요.  저희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되면 제일먼저 국가로부터 교육을 받는게 그거에요. 저 남조선은 우리형제고 동포다. 언젠가는 한 집에서 살아야 할 우리 가족이다. 저 군사분계선에 나와있는 국군들은 미국의 총알받이로 나와있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저 사람들을 교양해서 총구를 자기 동족의 가슴이 아니라 이 땅을 가로막고 있는 미국으로 돌리도록 해야한다. 남조선의 풀 한포기 자갈하나라도 절대 다치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런 교육을 수없이 계속 받아왔기 때문에 남조선 하게되면 그냥 내 이웃, 내 형제, 친구...이렇게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예요. 그러니깐 그런 교육으로부터 남조선 하면 저처럼 무서움을 모르고 무턱대고 그냥 몰해 한번 갔다오면 되나? 이런 착각을 할 정도로 이리 가깝게 생각하는 거예요.

 

 

- 그러니깐 분단된 상태에서 서로 총을 겨누고 있지만 남쪽에 대한 적개심이 아니고 민족의 통일 가로막은 외세랄까 인위적인 힘에대해 적개심을 가진 것이지 남쪽 동포들, 형제들에 대한 적개심이 라는게 없었다는 말인거지요.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깐 전혀 아니더란 말인거지요. 

 

▲ 김련희 북녘동포     © 박명철

 

적개심이 아니고 우린 철저하게 미국과 일제에 대한 적개심이지요. 또 놀랐던게 북에 있을때 한 15년~20년전에 당시 남쪽이 한창 경제성장을 했을때예요. 그때 우리 북쪽에 전국에 이런 유행어가 있었어요. '야 남조선이 경제가 엄청 발전했데. 세계 10위권이래.' 이런 말이 유행이 됐거든요. 그말을 들었을때 우리 북쪽 사람들은 끼리 끼리 친구들끼리 모여앉으면 '야. 역시 우리 민족은 위대한 민족이야. 우리민족은 머리가 비상해. 통일이 되면 다 우리민족의 자산이잖아.' 이렇게 말을 했어요. 그런데 남쪽에 와 보니깐, '북에서 인공위성 쐈데' 하니깐 언론자체도 '그건 거짓말이다. 마분지로 쐈다' 뭐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인공위성이 물대포 펑쏘는 것도 아니고 최첨단 기술인데 마분지로 올리는 정도면 오히려 신이 잖아요(웃음)  이거 너무 찬양하거 아냐? (웃음) 막 숙청됐다가는 얼마있다가 부활됐다고 하고... 이거 너무나 코메디다. 이렇게...(웃음)

 

그런 것을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해 왔단 말이예요. 그걸 원하는 세력이 있지요. 그렇게 해야지만이 자기들이 버틸수 있고 또 가져왔던 기득권을 유지해왔고 그래서 반북적이되고 외세와 결합해온 상황이었지요. 제가 7년을 있어보니까, 아 분단은 정말 아프고 무섭고 악마같은 거구나, 하지만 분단으로 인한 고통보다는 분단이 필요한 자들, 분단으로 살찌우고 분단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들때문에 더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분단이 필요한 자들, 이 자들에 대한 눈을 좀 떠야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 맞습니다. 결국은 이 분단이 필요한 자들은 첫번째로 외세, 즉 미국이나 주변세력들이 필요한 것이고, 그들이 민족의 분단을 원하고 있고 이 상태 그대로 지속되기를 원하는 거지요.

그래야 자기권력이 유지되니깐요. 계속 남과 북을 이간질시키는 것인데, 이번에도 사실 조미수뇌회담에 끌려나오는것 아니겠습니까? 핵을 보니 무서워서 나오는거지 뭐 북과 친해지고 싶어서 나오는 것이겠습니까?

 

그렇죠. 미국을 위협하니깐 끌려나온 거지요. 최소한의 체면은 차리고 싶은 거지요. 

 

그런데 그 방식은 '아, 싫다. 안하겠다'하고 한번쯤 앙탈도 부려보고 한것 아니겠습니까?

대국이잖아요. 세계대국... 

 

 

-우리민족의 입장에서 볼때는 민족의 힘을 과시한 아주 통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의 사변이다.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서 큰 물결이 뒤바뀔수 있으리라고 이번에는 저는 개인적으로 매우 낙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북에서 얼려도보고 타일러도보고 정말 가진자의 배짱이랄까 당당함 이런걸 보면서, 아 자기힘이 최고로구나, 가진자의 당당함이로구나, 이런걸 느낍니다. 한번 더 기회를 주겠다하고...

세계의 모든 여론이나 남쪽 사람들이나 북에대해서 너무나도 모르는게 뭐냐하면, 유튜브같은걸 보면 현재 북의 발전상이라든가 이런게 보여지잖아요, 이걸 '아 많이 발전했구나'하고, 그냥 일반적으로 발전했구나하고 바라보겠지만 북쪽 사람들은 목숨과 바꾼 거예요, 그게...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병과의 싸움에서 죽으면서 지켜낸 조국이거든요. 그 목숨과 바꾼 조국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감히 다칠수 없는 내 목숨과도 같은 조국이거든요. 그런데 그 정도로 2천5백만이 수령과 당과 군대와 인민이 하나의 일심단결로 똘똘 뭉쳐서 목숨바쳐 지켜낸다는 것을 온 세계사람들은 몰라요. 지금도 김정원위원장님이 뭐라고 하면 '아, 내부결속을 위해서 내부가 와해가 될까봐 저런 말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 모르는 바보같은 소리예요. 내부결속이라는 것자체가 우리 남쪽이나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나 각 파가 있고 갈등이 생겨서 서로 결속이 필요하겠지만, 북은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의 일심단결로해서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이런 말이 있드시 철저하게 믿고 신뢰하고 무조건 따르는 이런 걸 다른사람들은 세계는 정말 모르거든요.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그 령도자와 인민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그런 것 아닌가요. 북은 령도자와 인민과의 관계가 아니예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거든요. 그게 하나의 나라이기 이전에 하나의 가정이고 령도자는그 가정의 아버지인거예요. 이런 혈연적으로 이어진 가정이기 때문에 절대로 바늘틈도 들어갈 짬이 없다는 거예요. 그 세계를 잘 몰라요. 그 얼마나 위력한지, 그 힘이... 

 

 

- 그 힘이 오늘날 미국을 조미협상탁으로 불러낸  원천이다. 매우 위대한 힘의 승리다... 그런거 아니겠나요? 아직 결론은 아니지만 가시권 안이다. 이렇게 보여집니다. 좋은 징조가 많이 보입니다. 그동안 몸고생 마음고생한거 다 씻을 날도 오지 않았나...

 

이제 잘 될것 같아요. 제일 바빠난게 미국이고... 이제 주도권은 북에 있으니까 잘될것 같아요.

 

 

- 이제 북에있는 가족들한데 전해드리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가요?

 

심심치 않게 소식을 받고 있어요. 남쪽에서도 현재 다큐영화를 찍고 있어요. 저에 대해서... 그 감독들이 저희 가족들한데가서 열흘동안 일상을 다 찍어왔고 진천규기자, 신은미선생 통해서 12명 종업원 소식도 듣고 화상통화까지 했구요.

 

그런데 지금은 또 갈날이 더 가까와지고 나니깐 마음이 더 설레고... 마음이 막 들뜨고 그래요. 그런데 참 이상해요. 제가 가게 됐으니까 정말 기쁘고 즐거울꺼잖아요. 그런데 왠지 슬퍼요. 슬프고 무섭고, 그 날짜가 다가오는게 두려워요. 이때까지는 오직 북에 있는 내 가족만을 위해서 가족품에만 돌아가자, 이 한가지만 생각으로 울고, 아파하고 이랬는데 정작 돌아가자고 보니까 아, 정말 북에가서 내 가족만나면 내가 웃을수 있을까? 눈물 흘리지 않을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깐, 지금보다 더 큰 고통과 아픔과 눈물을 더 많이 흘릴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 남쪽에는 하나가 아닌 수많은 저희 동포들과 형제와 자식같은 분들이, 혈육한점 없는 곳에서 저를 7년동안 감싸줬던 이런 가족이 많거든요. 이 분들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파요. 이게 또 하나의 이산이고 생이별이고... 그래서 우리 민족은 언제 이런 이산의 아픔에서 벗어날수 있을까, 이게 정말 심장에 와 닿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8천만이 정말 눈물없이 웃음속에서 살날이, 우리가 통일까지는 당장 바라지 못하더라도 편하게 교류하고 관광객 오가면서, 제가 딸을 데리고 저를 도와주신 남쪽 분들한데 와서 다시 인사할 수도 있고, 남녁분들이 저희 집에 놀러 올수 있고... 이런 날들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런 간절한 바램이지요.

 

 

김련희씨는 이번에 과연 고향땅으로 돌아갈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애타는 마음은 본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이 분단체제는 영원히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측당국은 과연 이 한 여성의 호소를 이데올로기와 체제대결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볼수 있을까. 이번 8.15가 그것을 뚜렷이 말해 줄 것이다. <끝>

 

 

▲ 김련희 씨 거쳐로 가는 골목길     © 박명철

 

그의 거처로 올라가는 가파른 서울의 산동네 골목길 입구. 난삽한 전신주를 감아싼 전선들은 마치 그의 삶을 옥죄어오는 숨막히는 현실의 장막을 보여주는듯 했다. 그는 과연 이번 8.15에 북으로 돌아갈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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