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을’들의 싸움, 누가 부추기고, 누가 구경만 하는가?

수구 언론·정당 최임 인상 탓만… 가맹사업법·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 국회 표류

지난 14일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가 결정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이 못마땅한 수구보수언론들이 강변하는 게 바로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다 죽는다’는 논리다.

조선일보는 16일자 사설에서 ‘내년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 인건비 인상을 부담스러워 하는 소상공인의 비명을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최저임금이 결정되기도 전인 13일 사설에서 최저임금 인상 기류에 반발한 소상공인들이 내년 최저임금 기준을 따르지 않겠다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도 마찬가지. 월수입이 하락될 위기에 놓인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해 동시휴업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편의점 심야가격 할증 적용, 카드결제 거부 등 편의점주들의 단체행동을 대대적으로 예고하는 보도행태를 보인 수구언론들은 점주들의 반발 이유를 ‘최저임금 인상’에 뒀다. 최저임금 인상을 꼬투리 잡는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내며 수구언론들은 ‘을’들의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자영업자 힘든 이유, 따로 있다”

그러나 ‘을’의 싸움은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생, 즉 ‘또 다른 을’이 아닌 가맹점 본사를 비롯한 대기업 등 ‘갑’을 향했다. 수구보수언론의 대서특필과는 달리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을과 을의 싸움을 원치 않는다”며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근본 대책을 요구했다.

최저임금을 주면서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사업을 운영하는 대표 업종인 편의점 점주들의 단체인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협회)는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가맹수수료 인하 ▲카드수수료 인하 ▲근접 출점(250m 안에 다른 편의점이 입점하는 행위) 중단 등을 요구했다. 협회엔 CU, GS25, 세븐일레븐 등 전국에 있는 편의점 점주 4~5000명이 가입해 있다.

이들의 주장은 매출의 평균 30~35%를 편의점 본사에 가맹수수료로 내야하고, 대형마트 카드수수료(0.7%)보다 비싼 편의점 카드수수료(평균 2.3%)와 골목마다 하나씩 편의점을 입점시켜 편의점끼리 경쟁을 부추기는 본사의 정책이 자영업자를 더 힘들게 하는 요인이란 것이다.

▲ “을과 을의 싸움을 원치 않는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가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최저임금 결정에 따른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사진 : 뉴시스]

또 다른 가맹점주 단체인 전국가맹점주협의회(협의회)도 자영업자들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 본사의 갑질과 비싼 임대료라는 데 동의했다. 이들은 “인건비 인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큰 고통 가운데 하나는 본사에 내야 하는 가맹수수료”라며 “점주의 부담이 모두 최저임금 때문에 발생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전국의 가맹점주들이 본사에 지불하는 가맹수수료는 2조5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수수료와 임대료 문제도 마찬가지. 협의회는 “카드수수료는 겨우 0.2% 인하됐고, 임대료 인하도 전무하다”고 꼬집었다.

협의회는 16일 논평을 내 ▲카드수수료 인하 및 카드수수료를 가맹점단체가 직접 협상할 수 있게 하고 ▲가맹사업 필수물품 범위 최소화와 부당한 필수물품 강요 금지, 가맹금 인하 등 ‘가맹사업법 개정’ ▲상가임대차 갱신요구권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 등 ‘상가임차인 보호 강화’ 등을 요구했다.

누가 법안의 발목을 잡고 있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6일 “가맹점주 부담을 가중시키는 편의점 본사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공정위는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 등 편의점 본사에 대한 현장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점주들의 요구인 ‘가맹점사업법’ 개정안과 상가임차인 보호를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은 현재 국회에 묶여 있는 상태다. 최저임금이 인상되기 전 국회에 제출된 법안들이지만 아직 처리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9월 MBC 김장겸 사장 체포영장 발부가 언론장악 의도라며 국회 일정을 거부, 본사와 가맹점 사이의 불공정계약을 규제하는 ‘가맹사업법(가맹사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 민생법안 처리를 사실상 막았다.

자유한국당은 또 12월 임시국회에서도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법위반 행위 조사권’을 지방자치단체와 공유하는 법안에 반대했다. 당시 임시국회에선 ‘가맹사업법’ 개정안의 일부가 의결됐지만 ▲부당한 필수물품 구입 강요 금지 ▲광고비·판촉비 부과시 가맹점사업자 사전 동의 ▲오너리스크 배상책임 도입 등의 개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남은 법안들은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반대한 것도 자유한국당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엔 건물주가 임차인의 재계약 요구를 거절할 수 없도록 하고, 건물 계약기간 갱신 청구권 행사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고, 영세상인의 권리금을 보호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것이 ‘사유재산권 침해’, ‘시장질서에 혼란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반대해 왔다. 결국 이 법안도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17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이달 말 열리는 본회의에서 처리하고,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는 비판만 늘어놓던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의 제안에 ‘최저임금 인상의 적정성 문제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또 딴죽걸이다. 공정위가 불공정행위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가맹 본부(본사) 때리기”라고 강변하는 형국이다.

▲ 사진 : 뉴시스

16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진행자 김어준씨는 “불평등 계약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점주들이 개별적으로 본점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전형적인 프랜차이즈 갑질 문제”라고 꼬집는 한편 “갑-을-병(본사-점주-아르바이트) 구조에서 가장 약자인 알바들의 시급을 두고 싸워서 해결될 리 없다”면서 “‘을’을 보호해야 할 법안들이 누구에 의해 국회에 묶여 있는가, 이 법안의 통과를 누가 반대했는가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어준씨는 또 “600만 명의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때문에 망한다는 것도 언론의 과장”이라고 지적했다. 직원을 둔 자영업자는 160만 명 정도이며, 자영업자 440만 명은 애초 고용한 직원이 없어 최저임금 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의 불만을 과대포장하는 수구보수언론, ‘본사와 대기업의 불공정 갑질을 막야야 한다’는 ‘을’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구경만 해온 보수정당. ‘을’들이 요구하는 ‘을’들을 보호할 법안. 누구에 의해 막혀 있는 것일까? 답을 찾는 게 어렵진 않아 보인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