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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내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 세력 주도권 다툼?

청와대 내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 세력 주도권 다툼?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입력 : 2018.07.22 09:51:01 수정 : 2018.07.22 09:54:33

지난 6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소득분배 관련 경제현안 간담회에서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오른쪽)·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6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소득분배 관련 경제현안 간담회에서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오른쪽)·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게까지 말하면 여지가 없어지잖아요? 중대한 위기에 직면한 거죠. 기로에 처해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완전히 포기했다고 하기는 어렵고….” 신중한 답변이다.

7월 18일, 서울 공덕동에서 있었던 ‘촛불혁명의 완수를 기원하는 지식인 일동’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진보경제학계의 거두다. 기자회견 시작 전 <주간경향>은 이 교수에게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기조였던 소득주도 성장론을 포기하는 것으로 보나”라고 물었다. 그에 대해 돌아온 말이다. 10여년 전, 기자는 뉴라이트의 역사수정과 관련한 취재를 하다 이 교수로부터 이런 고언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의 진보는 아직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과 발전에 대한 적절한 성찰이 비어 있다.” 다시 말해 진보적 성장담론이 부재하다는 평가였다.

진보적 성장담론은 그 뒤 나왔다. 바로 소득주도 성장론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식담론으로 채택되어 최근 들어 부쩍 거론되었을 뿐, 연원은 상당히 오래되었다. 보수성향 인사들로부터도 인정받는 부분이다. 김장수 제3정치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이전 정권, 그전 진보정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이나 박근혜와 같은 보수정권들조차도 확고한 이론적 기반에 기초한 경제정책은 없었던 정부라고 보면 된다. 문재인 정부는 확실한 이론적 기반으로 경제정책을 편 최초의 정권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반면, 소위 ‘좌파기득권에 기반한 포퓰리즘 정책’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권 후반기가 되면 기득권에서 배제된 청년층의 광범위한 이반이 발생할 것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진보지식인들, 경제정책 비판 나선 까닭은 
그런데 그 확고한 노선이 흔들리고 있다. 7월 18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32명의 발기인으로부터 시작한 지식인 선언 참가자는 이날까지 232명으로 늘어났다. ‘우려’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인들의 공감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DJ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 정책기획수석을 역임한 경험을 갖고 있는 원로 학자다. 기자회견문 낭독 후 이어지는 질의응답 시간에 그는 “인사는 만사”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과거 박정희·전두환 시절에 정부 지시에 따라 시행만 한 그런 관료들을 장관이나 수석, 정부 고위직에 올려놓으니 한 걸음 나갔다가 다섯 걸음 뒤로 가는 식으로 반개혁적인 정책이 나왔다. 재벌개혁은 오히려 후퇴해 20~30년 전에 비해 재벌의 힘은 더 강해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드는 우려다. 이번 지방선거를 전후해서 경제를 맡거나 새로 부른 분들이 나간 분들에 비해 개혁의지도 없고, 능력도 따라서 없는 사람들이다. 누구보다도 촛불정부를 지지하고 촛불혁명이 완수되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깝다.” 

그가 말하는 ‘나간 사람’은 홍장표 수석이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소득주도 성장론의 대표인사다. 지난 6월 26일 청와대 경제수석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신 정책기획위원회에 만들어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됐다. 

“2011년쯤인가? 연구원이 발주한 보고서를 써서 발표한 것이 기억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임금주도 성장을 소개하며 한국적 상황에 맞게 자영업자를 포함해 소득주도 성장으로 전환할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했다. 처음에는 외로운 주장이었다. 다들 무슨 말인 줄은 알겠는데 그게 될까요? 하고 물음표를 찍는 분위기였다. 2012년과 2013년에 걸쳐 논의과정을 통해 살을 붙이며 동조자들이 한 명씩 늘어났다.” 

박정식 민주연구원 정책네트워크 실장의 회고다. 2012년 대선을 치르기 전에 소득주도 성장론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경제민주주의’에 가려 대선공약으로 정식화되지는 못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소득주도 성장 철회’ 비판 아직 성급하다” 
청와대에서 홍 수석의 자리를 이은 인사는 윤종원 전 OECD 대사다.

“10월 정도 한국 복귀를 예상했는데 시기가 빨라졌다”고 그는 말한다. 그도 예상 못했던 갑작스런 인사다. 행시 27회 출신인 그는 김동연 부총리의 1년 후배다. 둘 다 재무부, 현 기재부 정통관료 출신이다. 

윤 수석의 취임일성(一聲)에는 소득주도 성장 대신 포용성장과 혁신성장이라는 말이 나왔다.

포용성장은 그가 대사로 재적했던 OECD가 지난 2012년부터 꾸준히 밀고 있는 개념이다.

<주간경향>은 여러 경로로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포용성장과 혁신성장이 소득주도 성장을 대체해 나온 개념이 아니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엇비슷했다.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쟁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개념이다. 포용성장도 마찬가지다. 소득주도 성장과 다르지 않은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각각의 개념이 서로가 서로를 전제하는, 말하자면 J노믹스를 이루는 세 바퀴 성장론으로 선순환하는 관계로 보면 된다.”

당의 인식도 비슷하다. 박정식 실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성장과 고용, 복지의 경제 전체 영역에서 사회·경제의 키워드로 수요의 측면에서 소득주도 성장을 말하는 것이라면, 공급의 측면에서는 혁신성장이 필요한 것이고, 이 두 가지가 가능하려면 공정한 룰이 전제돼야 하므로 공정경쟁을 말하는 것이다. 최근 자영업자들이 반발하면서 최저임금 문제가 부각하고, 또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국정과제로 설정해 우선 추진하다보니 마치 그런 정책만이 소득주도 성장을 대표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면이 있지만, 지금까지의 정책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마중물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소득주도 성장론’으로 대표되는 ‘J노믹스’는 테이크오프(take-off) 단계인데, 실패나 철회를 이야기하기에는 성급하다는 인식이다. 

<주간경향>은 대선공약으로 ‘소득주도 성장론’ 정립에 핵심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학계 인사를 만났다. 

“정부 직위를 가진 것도 아니고…”라며 그는 익명을 요청했다. 이 인사의 최근 상황인식은 위의 공식 버전과 엇비슷하면서도 또 달랐다. 

“…인구감소, 저성장 시대에 맞춰 성장에 대한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것이 우리의 논의내용이었다. 중심은 우리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겪게 될 삶이었다. 대기업 중심으로 수출 주도로 경제성장을 하고 그 성과물이 사회에 퍼진다는 낙수효과(트리클 다운)와 다른 경제운영 원리를 전면적으로 도입해보자는 것이었다.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최저임금은 올라가면 남는 시간에 노동자들은 어떤 삶을 보내게 될까, 그런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대기업이 성장을 덜하고 우리가 일을 좀 더 적게 한다고 삶이 불행해지는 것일까. 돈을 조금 적게 번다고 하더라도 행복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최근의 청와대 인사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김동연 부총리가 하겠다는 것은 이런 정책적 전환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다. 혁신성장은 그냥 성장주의를 하자는 것이다. 아니 칼자루까지 쥔 마당에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나. 대통령이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하는데….” 

그는 소위 ‘장하성의 소득주도 성장론 대 김동연 또는 기획재정부의 혁신성장론의 대립’으로 알려진 현재 청와대 내의 구도가 실상과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현재 청와대 내의 혁신성장론을 주도하는 사람은 일자리 수석으로 간 정태호다. 그 콘셉트를 들고 나온 것도 정 수석이고. 그런데 정 수석은 또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밑에서 정책기획비서관을 했던 사람이다. 언론에서는 장하성 실장과 김동연 부총리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니 장 실장이 소득주도 성장을 대표하는 인사이고, 저쪽은 혁신성장으로 인식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으로 안되니 혁신성장으로 밀어붙입시다’라고 당시 정 비서관이 제안을 했고, 장 실장이 물타기한 것이다.” 

18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공유지내 기린캐슬에서 대학 교수들과 시민들이 모여 ‘문재인 정부의 담대한 사회경제개혁을 촉구하는 지식인선언’ 기자회견을 열고있다. / 이준헌 기자

18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공유지내 기린캐슬에서 대학 교수들과 시민들이 모여 ‘문재인 정부의 담대한 사회경제개혁을 촉구하는 지식인선언’ 기자회견을 열고있다. / 이준헌 기자

소득주도 성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케인스로부터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으로 이야기한다.

케인스는 그의 <일반이론>의 마지막 장인 ‘일반이론이 도출하는 사회철학에 대한 제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적 상황에서 부의 성장은 일반적으로 상정되고 있는 것과 같이 부자의 절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의해 저해될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비용의 역설(paradox of cost)’이다.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가급적 임금비용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경제 전체의 임금소득이 부족해져 총수요가 침체돼 결국 기업에도 해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성장은 자본 또는 자본가의 절제가 아니라 소비가 촉진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적 상황으로 들어오면 전 보수정권 때까지 신주단지처럼 모셔지던 ‘낙수효과’ 대신 아래로부터 위로 뿜어지는 소비의 ‘분수효과’가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의문은 거기서 등장한다. 혁신 없는 소비의 증가로 내수회복이나 성장은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앞의 학계 인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른바 국고를 투입해 복지혜택을 준다는 것도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이 제일 낮은 수준이다. 그만큼 투입해 할 수 있는 정부 여력이 크다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정책을 구사하는 의지다. 정책을 집행한 지 1년도 안돼 자꾸 딴죽을 거는 사람들에게 흔들리면 안 되는데….”

정책 전환처럼 보이는 최근의 인사와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 있다.

변양균 전 참여정부 정책실장이다. 이른바 신정아 사건으로 얽힌 후 그가 가진 공식 직함은 없다. 하지만 현재 혁신성장을 주도하는 청와대 내외부 인사들, 구체적으로 기재부 출신 인사들을 묶는 하나의 키워드가 바로 변양균이라는 것이다. 변 실장은 지난 대선 때 캠프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라는 인연으로 문 대통령의 인사에 막강한 영향을 끼친다는 후문이 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그는 <경제철학의 전환>이라는 책을 펴냈다. 책이 주장하는 요지는 케인스적 수요에서 슘페터적인 공급정책으로 정책 전환을 설파하고 있다. 우연하게도 현재 이른바 ‘혁신성장’의 포커스가 공급으로 맞춰지고 있다는 점에서 맞아떨어진다. 실제 청와대 주변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기조를 알려면 변 실장의 책을 읽어라”는 조언이 돌고 있다.
 

변양균 전 실장이 거론되는 까닭은 
7월 17일, 국회 의원회관. ‘혁신성장·규제혁신,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라는 제목의 민주당 행사가 제1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추미애 당대표는 “인도 방문길에서 대통령이 강조한 혁신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규제혁신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듣는 자리”라고 말했다. 

같은 시간 제1세미나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정책 및 제도 개선방안’ 토론회라는 행사도 열렸다. 이날 본격 가동을 시작한 민주당 원내 민생평화상황실 소득주도성장팀의 행사다. 정치인들이 참여해 인사말을 한 1부 행사를 마치고 본격토론이 진행된 이후 2부 토론행사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민주당 인사는 소득주도성장팀장을 맡은 한정애 의원뿐이었다.

“혁신성장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경제학자라면 성장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혁신을 통해 성장하라는 말은 맞는데, 거기서 나온 정책이라는 것이 별볼 일 없다. 지금 기재부 측도 포용성장을 이야기하면서 소외계층 선별복지를 통해 빈곤선 탈출 정도의 개념으로 쓴다면 결국 소득주도 성장을 덮는 포장지 정도로 사용되는 것이라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한 주상영 건국대 교수가 <주간경향>에 한 말이다. 주 교수는 홍 전 수석과 함께 소득주도 성장론을 실증정립한 대표적 인사다. 18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결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혁신성장을 선택했다는) 논리인데 천박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그건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에 계속 써왔던 프레임이다. ‘당신들은 형평이나 평등을 말하지만 성장에는 젬병 아니냐.’ 경제민주화나 공정경쟁이 성장에 기여하고,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믿지 못했기 때문에 ‘역시 구관이 명관이야’라는 식으로 과거회귀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런 것일까. 경제문제에 봉착한 문재인 정부 2기는 관료들 중심의 오랜 성장주의에 발목 잡힌 것일까. 포용성장이든 혁신성장이든 소득주도 성장은 부드럽게 재포장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진단처럼 “진보의 개혁 조급성·경직성이 문제”(7월 5일 <한겨레> 인터뷰)였던 것일까. 


역사가 판단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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