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Dr. Kim, Sung-Soo, 독한문화원 원장)
너무 안타깝다. 이산가족의 상봉과 작별의 장면, 영원한 작별을 위한 잠깐의 만남인가! 천만의 사람들이 한 세기 가깝게 안고 사는 이 세기적인 쓰라린 비극 앞에서 새삼스럽게 한반도의 숱한 비극의 근원을 다시 찾아본다. 그리고 이 비정상의 비극에서 우리는 어떻게 빨리 해방될 수 있을 것인가?
비정상의 근원
한반도의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수많은 민족적 인간적 비극의 근원은 새삼 말할 것도 없이 일제 식민통치와 외세에 의해 강요된 남북 분단이라는 비정상에 있다. 그럼에도 많은 남한 국민들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
우리 민족은 수천 년 역사에서 외세의 침략과 약탈에 많이 시달렸음에도 다른 나라를 침략할 줄 모르는 평화애호 민족이었다. 이런 민족이 결국 19세기 후반부터 유럽 제국주의 세력의 시달림을 받다가 20세기 초에는 이웃나라 일본의 식민지국가로 전락되고 말았다. 먼나라 미국은 일본 식민지 정책의 적극적인 동조자였다. 바로 “태프트 가쓰라 밀약”(1905년)으로 필리핀과 한반도를 서로 노나 먹기식 한 것은 그 한 예일 뿐이다.
미국은 드디어 세계 2차 대전에서 승기를 잡자 소련을 원자탄 위력으로 압박하여 조선반도를 자기의 입맛에 맞게 처리했다. 미국은 원자탄을 못 가진 소련에게 얄타밀약을 강요했으며 한반도의 남북 분단과 신탁통치를 실현시켰다. 1945년 8월 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의 투하는 미국의 강력한 위력의 과시였다. 아무런 역사적 정치적 책임도 없는 한반도는 수천 년의 단일국가에서 졸지에 분단의 멍에를 쓰고 만 것이다.
이제 일제 36년에 분단 73년을 합한 100여년의 세월은 끝을 모르고 흐르고 있다. 이 강요된 비정상의 세월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정치사회적 비극이 산출되고 있다.
비정상의 비극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해방의 환희가 충천했으며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기세는 비등했다. 어린 초등학생인 나는 매일같이 수많은 남녀노소와 어울려 해방의 노래를 목이 터지도록 불렀다. 그 속에는 두발 없는 앉은뱅이 젊은이도 있었다. 일본인 담장에 달린 늙은 호박 하나 따주자 환한 웃음 띠고 신나게 썰매질 하고 사라진 그의 모습 지금도 싱싱하다.
그러나 이 벅찬 세월은 불과 수개월, 시간이 갈수록 사회분위기는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신탁통치의 강요로 찬탁 대 반탁, 친외세 대 민족자주세력 간의 갈등은 마침내 동족상쟁의 비극, 수백만의 살육, 수백만의 이산가족, 온 나라의 초토화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그 후 두 번에 걸친 군사쿠데타는 정치사회 구도를 왜곡과 갈등으로 덧칠했다.
미국은 록펠러재단을 통해 친일 학술단체인 진단학회를 지원하여 한국사를 미국의 입맛에 맞게 재빨리 정리 출판했다.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는 한반도 문화의 꽃으로 각인되었다. 마침내 한반도 사람들의 의식에 “미국 똥은 조선사람 똥보다 고급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미국은 친미굴종을 강요하면서 한일관계를 일본에 유리하게 유도했다. 박정희 군사쿠데타 세력을 얼마의 배상금으로 일본에 굴종케 만들었다. 일본은 미국을 배경으로 식민지지배를 미화하고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챙겼다.
이런 비정상의 와중애서 한반도는 정치 경제 문화 도덕 전반에서 세계에 유례없는 비극적 비정상이 점철되고 있는 것이다.
- 민족자주역량은 쇠퇴하고 친미친일세력이 정치경제문화의 중추세력으로 되었다.
- 미국의 항시적인 전쟁위협은 북측을 원자핵국가로 몰아가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파괴적인 원자핵전쟁 위험지대로 되었다.
- 세계 역사상 찾기 힘든 수십만의 위안부와 강제징용의 희생과 굴욕의 몸서리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 한반도 전체는 민족적, 지역적, 정치사상적 적대감, 증오, 이질감으로 얽혀 있으며, 남측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이 신주같이 모셔지고 있다.
- 70년 한을 품은 이산가족의 비극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 남북 민족 간의 교류협력도 미국의 승인 없이는 전진하지 못한다.
결자해지
우리 민족은 이 모든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남북통일을 이루고자 70여년 세월을 간고분투 해 왔다. 헤아릴 수 없는 고초와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을 비롯한 국내외 반대세력의 우위는 계속되고, 제2의 전쟁바람만 고조되었다. 그러나 항용유회(亢龍有悔)! 2018년 봄바람을 타고 한반도에는 극적인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성사는 세기적인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크지 않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수반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70여년 철천지 원수국가인 세계최강의 국가수반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과 격의 없는 담화로 한반도에서 평화의 물꼬를 튼 것이다.
이 회담의 성사는 강대국인 미국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대전환의 계기와 의도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한반도 문제를 더 이상 강압과 제재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과학적 인식이 뒷받침했을 것이다. 하여튼 북미회담의 공동성명과 그 후의 호의적인 분위기는 좋은 결실을 기대하게 하였다.
그러나 북미정상회담 이후 두 달이 지난 과정은 순조롭지 못하고 오히려 꼬여 간다는 판단이다. 미국이 북미정상회담을 즉흥적이고 변칙적인 수준에서 시작했다면 이제는 합리화 체계화 단계로 넘어가야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미국에게 한반도 비정상의 원인 제공자로서의 결자해지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결자해지란 상식이며 자연법적 원칙이며, 정의의 실현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결자해지란 비정상의 정상화일 뿐 어떤 비용이 특별히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누군가가 그에 대한 배상을 청구한 적도 없다. 이제 미국은 결자해지의 책임자답게 심기 전환하여 시대적 요구에 옳게 응답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조건 없이 휴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전환하고 남의 나라에 주둔한 군대를 철수하고, 일방적인 제재를 푸는 것은 결자해지의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당연지사를 외면하고 북핵의 원인 제공자가 본말을 전도하여 선(善)비핵화나 핵시설 신고를 종전선언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한다면 현대판의 “샤일록”(세익스피어, 베니스상인의 주인공)이라는 비난만을 받게 될 것이다.
미국이 결자해지의 참다운 입장을 성의 있게 실천할 때만 “북미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은 좋은 결실을 가져 올 것이다. 이 결과는 세계적 차원에서도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미국은 그럴만한 좋은 역사적 자원도 가지고 있다.
미국의 16대 에이브러함 링컨 대통령은 미국의 남북전쟁을 종식시키고 “노예해방선언”(1863년)을 통해 미국의 남북 분열을 막아 냈다. 그리고 온 세계 정치계가 지향해야 할 “민중의 자주권과 자결권“(게티즈버그 연설)의 주목할 만한 정치사상을 선포했다.
이 정치사상이 온 세계를 위계적 종속이 아니라 상생평등의 관계로, 갈등은 담판을 통한 평화적 해결의 길로 인도한다면 세계는 획기적으로 변혁될 것이다. 이때 미국의 핵도 북의 핵도 필요 없는 평화로운 세계가 열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저러나 주인공은 우리
미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결자해지로의 입장선회는 바람직하지만 아직은 천상의 꿈인 것 같다. 어디까지나 자기 운명의 최후책임은 자기에게 있다는 격언은 만고의 진리다. 우리가 참된 자기 운명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역사에서 최소한도 배워야 할 몇 가지가 있다.
* 우리에게 가장 큰 약점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자주자결정신의 부족이다.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사대의존주의는 망국의 길임을 절실히 경험했다.
*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동학정신을 아직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이 정신은 한미동맹과 미군주둔과 상응하지 못한다.
* “홍익인간”의 오랜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이다. 이웃도 사랑하고 같은 겨레와 손도 맞잡을 줄 알고 세계인들과 좋은 일에 연대할 줄 아는 정신이 우리 디엔에이(DNA)에 있다 할 것이다.
어떠한 조건보다 우리의 주인의식 강화와 그에 기반한 진취적인 활동만이 민족 통일과 번영의 성취 속도를 좌우할 것이다.
김성수 (Dr. Kim, Sung-Soo)
- 1936년 생, 전남 화순
- 전남 광주고, 연세대 철학 학사, 석사
-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철학박사
- 1973년 유럽거점간첩단 사건
- 1973년 – 2018년, 민주화 통일운동 참여 (민주사회건설협의회, 코리아코미티, 조국통일 해외기독자회 등 창립회원)
- 현재 6.15 유럽위원회 자문위원
- 현재 독한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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