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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중심 통일론 30년, 이제 '동독'에서 바라보기

[장벽 너머 사람들을 만나다 ①] 독일 신연방주 사람들을 만난 이유는?

 

 

올해 초만 해도 이 같은 반전이 일어나리라곤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남북은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해빙의 물꼬를 텄다.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중요한 변수인 북미관계 역시 화해의 전기를 맞았다. 
 
지금 필요한 건 공존과 교류의 길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세밀히 닦는 것이다. 그간 북한은 어떤 한국인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한국에는 남극만큼이나 먼 땅이었다. 한국이 사실상 섬이었던 까닭이다. 이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남북이 진정한 이웃이 되어야만 그 다음(통일)을 본격적으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 통합'이 먼저 선행되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정부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교류가 시작된다면 정부는 필연적으로 뒤로 물러나게 된다. 시민 각자가, 인민 각자가 교류의 주체가 된다. 이제 질문을 준비해야 할 때다. 과연 우리는 북한과 교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오는 2019년은,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진지 꼭 30년째 되는 해다. 그 30년간, 이를테면 베를린 장벽을 넘어 온 동독의 스무살 청년은 이제 50살이 됐다.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어떻게 직업을 구했고, 어떻게 서독사람들과 어울려 살았을까?  
 
교류는 상호 동등히 이뤄져야 한다 
 
<프레시안>은 지난 9월 7일부터 약 이주일에 걸쳐 독일을 둘러봤다. 정확히는 독일 신연방주, 즉 옛 동독 지역을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모두 동독 체제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만난 이유는 간단하다. 분단 시절 동서독이 얼마나 달랐는지, 재통일 후 두 체제가 어떻게 하나로 융합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를 개개인 삶의 여정을 통해 알아보기 위해서다.  
 
우리에게 독일 재통일은 어느 정도 익숙한 주제다. 모두가 대략적인 재통일 이야기를 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로부터 1년여 후인 1990년 10월 3일, 분단됐던 서독과 동독은 다시 하나의 독일로 통일됐다. 서독의 동독 흡수 통일이었다. 독일은 급박했던 재통일의 비용을 치르느라 한때 ‘유럽의 병자’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고생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 탄탄한 통일 국가로 다시 섰다. 지금도 유럽 경제를 견인하는 선진국 독일의 역사에 관해 우리가 익히 들어온 줄거리다.  
 
이 이야기에서 빠진 내용이 사람이다. 우리는 오랜 기간 이어진 동서독의 교류를 서독 정부, 서독 체제 중심적으로 들어왔다. 서독 정부가 이른바 '동방정책'을 이어왔고, 때맞춰 소련을 정점으로 한 공산 체제가 무너졌기에 재통일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실제 사람의 이야기는 빠져 있다. 통일은 당시 극단적으로 다른 체제를 살던 사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동서 교류가 정말 동독 사람들에게 통일에의 열망을 불러일으켰는지 등의 이야기를 통일의 약자였던 동독의 입장에서 우리는 정리해보고자 했다.  
 
통일 후 교류의 경험 역시 중요하다. 동서독 통일 후 이어진 동서 독일 사람들의 교류는 일방적이었다. 서독 자본이 주역이었고, 서독 정치가 주역이었고, 서독 사회가 주역이었다. 흡수 통일의 결과다. 동독은 철저히 조연에 머물렀다. 그 차이가 잘못된 교류로 이어졌다. 독일은 지금도 이 격차를 극복하는 중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반면교사다. '흡수통일은 안 된다'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강자 주도의 일방적 교류는 안 된다'는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남북한 사람이 동등하게 교류할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통일로 북한 시장이 열리면 남한에도 일자리 기회가, 추가 투자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식의 통일 설득론은 자칫 북한을 단순한 투자 대상으로만 전락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 독일 베를린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인근에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의 잔해. 베를린 시내 곳곳에 장벽이 보존되어 있다. ⓒ특별취재팀

다른 체제는 다른 사람을 만든다 
 
물론 독일과 한반도 사정은 다르다. 이제는 둘의 역사가 다르다는 점 때문에 두 분단 상황의 동질성이 오히려 논의되지 않을 지경이다.  
 
다른 체제는 다른 사람을 만든다. 오늘날 북한을 '우리의 이웃'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오늘날 청년세대 중 일본인, 미국인, 유럽인보다 북한사람을 더 가까운 이로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북한에는 이제야 기초적 자본주의 체제가 이식되고 있다. 자생적으로 피어난 '장마당 자본주의'다.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체제다. 한국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최선봉에 선 나라다.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다시 말해 세계 경제에 밀접하게 접목된 나라다. 시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몰아낸 경험을 한 민주주의 국가다. 이처럼 다른 체제가 70년 이상 잦은 교류를 하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리며 이어졌다. 우리가 남북 교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건, 화성인과 금성인의 만남이다. 
 
때로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살펴야 숲이 살아난다. 정부가 숲을 조성하지만, 나무를 건강하게 자라게끔 하는 힘은 민간에서 나온다. 우리는 독일의 사례에서, 민족 통일의 당위론 차원에서 오직 큰 이야기만 하다 놓친 세밀한 이야기들이 결국 커져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친구 사이에서, 연인 사이에서 작은 갈등이 큰 싸움으로 벌어지는 것과 같다. 한국 사회는 이에 관한 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동독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최대한 세밀히 정리할 것이다. 그들의 삶을 통해 동독에서, 통일 독일에서 한국의 과거사를, 북한의 오늘을, 미래에 평화로운 공존이 보장되는 한반도를 상상해보고자 했다. 동독인의 삶을 거울로 삼아, 우리는 다가올 교류의 시간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인터뷰이 각자의 관점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는 각자의 삶만큼이나 제각기다. 그럼에도 화자들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남북 교류에의 단초를, 반면교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11편의 이어질 이야기는 크게 통일 당시 성년이었던 이들의 이야기, 통일 당시 청소년이었던 이들의 이야기로 나뉜다. 마지막으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정리한다. 독일 분단이 낳은 아주 특별한 기업사 한 편도 준비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 바란다.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본 기획은 독일 신연방주에서 분단과 재통일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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