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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외함’ 빠진 변압기 납품받고 묵인한 한수원

[단독]‘철제 외함’ 빠진 변압기 납품받고 묵인한 한수원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입력 : 2018.11.05 06:00:03 수정 : 2018.11.05 06:02:00

 

원전 변압기 납품업체 효성에 오히려 편법 알려주고 ‘특혜’
향응 제공받은 직원 16명 적발

[단독]‘철제 외함’ 빠진 변압기 납품받고 묵인한 한수원
 

원자력발전소 변압기를 납품한 효성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직원 16명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효성이 원전 부품 입찰 담합 비리로 처벌된 적은 있으나 한수원 직원이 효성의 납품 비리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특히 고리·월성 원전의 경우 지진 충격 등으로부터 변압기를 보호하기 위한 ‘철제 외함’이 빠진 채 변압기를 납품받고도 문제 삼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한수원 감사실은 “한수원 직원 16명이 2011~2014년 효성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고 납품 비리에 연루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조만간 징계 수위를 결정키로 했다고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이 4일 전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효성과 한수원 간 납품 비리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수원이 비상용 긴급전원 공급장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비상전원용 변압기를 발주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특히 2011년 9월쯤 효성은 29억3000만원에 계약한 ‘가동원전 전력용 변압기 예비품’ 납품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사실을 알고 한수원 로비에 나섰다. 

납기를 두 달 정도 앞두고 총 5기의 변압기 중 실내에 설치되는 2대의 몰드형 변압기에 대한 외함 제작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경찰에 불법 로비 사실을 제보한 김민규 전 효성중공업 차장(43)은 “당시창원공장에서 납기일까지 철제 외함 제작이 어렵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회사에서 로비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고리·월성 원전에 납품되는 몰드형 변압기 2대는 외함 없이 납품할 수 있도록 설계변경 승인을 받아오라는 것이다. 

김 전 차장은 “당시 한수원 발주 담당 ㄱ차장과 만나 상의했더니 ‘뭘 힘들게 설계변경을 하느냐’며 외함 없이도 정상 납품된 것처럼 승인사양서에 사인만 해달라고 사업소에 부탁해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외함을 납품하지 않아도 종전 외함 속에 변압기를 넣어서 사용하면 된다고 편법을 알려준 것이다. 

김 전 차장은 “외함은 변압기를 지진 등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고 변압기가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냉각기능을 갖고 있다”며 “당연히 헌 외함을 재생하는 것은 한수원 입장에서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고 했다. 

김 전 차장은 반신반의하며 ㄱ차장이 알려준 대로 납기일을 5일 정도 앞두고 2011년 10월28일 고리와 월성 발전소로 내려가 입고 검사 담당직원들을 만났다. 사업소 직원들은 ㄱ차장의 말대로 호의적이었다. 

■ 로비에 익숙 “상품권 바꿔달라” “여기로 오라” 

한수원 비리 

회사 근처에서 사용 쉽게 
인근 백화점 발행권으로

 

연락 오자 장소까지 지정 
단골 횟집 선결제 요구도

2011년10월말 효성과 한수원 고리발전소 직원이 변압기 납품을 앞두고 주고받은 카카오톡 문자.

2011년10월말 효성과 한수원 고리발전소 직원이 변압기 납품을 앞두고 주고받은 카카오톡 문자.

고리 발전소 ㄴ과장은 김 전 차장이 도착도 하기 전 “해운대 바닷가 ‘일품한우’ 네비(내비게이션) 찍으면 쉽게 찾아요. 일곱시 십분 김 과장 이름으로 예약”(오후 5시34분)이라는 문자를 보냈다.

김 전 차장과 고리 사업소 직원 3명은 1차로 고깃집에서 식사를 한 후 2차로 부산 해운대 유명 룸살롱 ‘고구려’로 옮겨 술을 마셨다. 김 전 차장은 “고리 사업소 직원들은 본사 ㄱ차장이 미리 얘기를 해놨는지 협조적이었고 룸살롱에 같이 갔을 때에는 로비가 확실히 성공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실제로 11월2일 효성은 외함 없이 고리 발전소에 변압기만 납품했고 입고 담당직원들은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았다. 월성 발전소에는 종전에 쓰던 외함의 성능 개량을 보증하는 조건으로 납품했다. 변압기를 납품할 당시 사업소 직원이 서명한 승인사양서에는 계약서에 있던 외함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 

이훈 의원에 따르면 계약서에 나온 몰드형 변압기 2대의 납품가격은 5억2000만원이었고 외함 2개(1억원)를 납품하지 않았음에도 한수원은 대금 전액을 지불했다. 이 의원은 “효성의 품의서를 보면 2대 변압기의 제작비는 3억7000만원으로 외함을 넣어 납품해도 30%의 마진이 남는데 외함을 납품하지 않고도 계약대금을 다 받아 45.2%의 마진을 챙겼다”고 했다.

효성은 그 뒤로도 2013년 4월과 5월 울진 1·2호기 몰드형 변압기 42대(11억3000만원) 납품을 위해 해당 발전소 전기팀과 자재팀 직원을 상대로 접대를 했다. 

김 전 차장은 “전기팀과 자재팀에서 품질이 의심스러우니 포장을 뜯고 제품을 검사하자고 나올 경우에 대비해 미리 기름칠을 해둬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재팀 직원의 경우 외부 시선을 의식해 자신이 잘 가는 단골 횟집을 알려주고 카드로 선결제를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신고리 발전소 품질보증팀 ㄷ차장은 서울로 교육을 받으러 오면서 김 전 차장을 불러내 룸살롱 접대를 요구하기도 했다. 김 전 차장은 “ㄷ차장의 경우 2014년 4월15일 납품 과정에서 자재팀에서 ‘포장을 뜯고 품질검사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을 때 그냥 입고를 시키기로 편의를 봐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전 차장이 ㄷ차장 도움으로 포장 해체 없이 입고를 마친 날은 세월호 참사 하루 전날이었다. 김 전 차장은 “부산 해운대 룸살롱에서 ㄷ차장을 접대한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TV를 켜니 세월호 참사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며 “ 우리나 검수하는 한수원 직원 모두 후쿠시마 사태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효성과 한수원 간의 유착 비리는 고리나 월성 등 사업소 직원뿐 아니라 본사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효성은 고리 2호기에 이어 울진 1·2호기, 신고리 3·4호기 등 발주가 있을 때마다 본사 직원을 상대로 룸살롱 등에서 접대를 했다. 김 전 차장이 상대한 한수원 직원 중 접대에 불편해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김 전 차장은 “2014년 1월 설 연휴를 앞두고 상품권을 전달하러 가니 일부 직원이 ‘신세계 상품권은 회사 주변에서 쓰기 불편하니까 다음에는 롯데나 현대백화점 상품권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며 씁쓸해했다. 

효성 측은 “변압기 외함을 납품하지 않고 대금을 받은 적은 없다”며 “구체적인 감사 결과에 대해서는 내용을 알지 못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수원 감사실은 이훈 의원에게 “재고 파악 결과 외함은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1050600035&code=940202#csidxaa1082202298b7a9c63b20533d556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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