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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트럼프·김정은 3자 회담을 상상한다

[민경태의 북한 미래학] ① 북-중 경제협력, '신한반도체제'로 대체하자

 

 

 

북-미 실무 협상단이 수차례 만나 준비했던 합의문이 있었음에도 결국 2월 28일 하노이 선언은 무산되었다. 합의 결렬에 대한 해석은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가 가능할 것이다. 겉으로는 북-미 양측이 설명한 바와 같이 핵 폐기 대상 지역과 경제제재 해제 범위에 대한 양측의 이견이 일차적인 원인으로 보여 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도 한몫을 했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 있다. 사전 협의된 수준으로 하노이 선언이 이뤄진다 해도 미국 내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트럼프 대통령이 차라리 반전을 모색했다고 할까. 북미 정상회담 전 이미 언론에 유출된 예상 합의문에 대해 여론의 반응이 시큰둥한 상황에서 뭔가 더 큰 승부수가 없이는 청문회 국면을 타개하기 어렵다고 보았을 것이다. 즉, 북한 핵문제 해결이라는 중요한 카드를 큰 성과 없이 사용해 버리기 보다는 적절한 시기를 다시 모색하는 것이 좋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고 본다. 

여기까지는 북한 핵 협상을 둘러싼 전략적 이해관계를 북-미 간의 문제로 국한해서 보았을 때의 해석이다. 그런데 여기엔 동북아 지정학에서 매우 중요한 중국 요인이 빠져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열차를 타고 베트남으로 이동하던 많은 시간은 중국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등장하진 않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통과는 여러 가지 의미를 시사한다. 북한이 가장 넓은 접경지역을 마주하고 있는 중국, 경제제재만 해제되면 언제라도 중국은 북한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준비가 되어 있다. 

미국이 가장 싫어하는 것,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강화

북한은 미국에 경제제재의 일부를 해제해 달라고 했다고 주장한다. UN 제재 결의 11건 중 2016~2017년에 채택된 5건, 그 중에서도 민수 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일부 해제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입장은 다르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사실상 전면 해제를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 왜 이렇게 북-미 간의 주장에 차이가 있을까?

이것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 유리하도록 주장한다기보다는 제재 해제의 효과를 판단하는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 북한은 민생 경제에 해당되는 최소한의 수준이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그것이 제재의 거의 전부라고 보는 것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해제 조치가 이뤄진다면 대체 어떤 상황이 발생하기에 그런 것일까?

중국에 대한 북한의 경제 의존도는 90% 이상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UN 제재가 해제되면 중국을 통해 유류와 공산품 공급이 확대되고 북한의 광물 자원과 인력이 수출되는 등 북-중 간 무역이 더욱 활성화 될 것이다. 즉,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진다는 뜻이다. 지금 미국은 UN 제재를 빌미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가능한 억제해 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북한이 중국을 통해 숨통을 틔우게 되면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제3자가 볼 때 북한의 물리적 비핵화는 '비가역적'인 것이고, 미국의 경제제재 완화는 상대적으로 '가역적'이라고 해석하기 쉽다. 즉,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어기게 되면 언제라도 미국이 다시 경제제재를 재개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북-중 경협이 확대되면 북한은 미국에 대해 협상의 우위에 설 수 있다. 지금은 UN에서 결의한 경제제재를 중국이 마지못해 지키고 있지만, 상황이 전환되어 북한 핵위협이 감소된 후에도 중국이 그대로 따르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지 못한 채 중국과 북한에 끌려가는 수세적인 입장에 놓이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강화, 바로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단계적 제재 완화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일 수 있다.  

베트남 모델이 상징하는 미국의 제안은 무엇일까? 

베트남은 여러 가지 이유로 상징적인 곳이다. 미국과 전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방의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경제발전을 이뤘다. 반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는 오히려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게 이런 모델을 제안하고 싶지 않았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경제성장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대해서 여러 차례 얘기했다. 핵문제가 해결되면 북한에 국제 원조와 자본 투자를 유도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즉,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기존의 성장 모델이 아니라, 서방의 투자를 받고 글로벌 경제체제로 들어오라는 신호인 것이다. 중국이 아닌 한국의 길을 따르라고 북한에게 손짓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미-중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이다. 핵 폐기 대상에 대한 이견은 사실상 구실에 불과할 수도 있다. 아마도 북한이 모든 핵시설의 폐기에 합의했다고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적 제재 해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북-중 간의 경제협력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증대하고 미국이 쓸 수 있는 카드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원한다. 과거에는 한일 해협이 중국을 봉쇄하는 독트린이었으나, 이제는 휴전선을 지나 북쪽으로 끌어올려 북-중간 국경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북한은 이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외형상으로는 비핵화의 문제이지만, 실제로는 미-중 간의 주도권 싸움에서 어느 편에서 설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기존에 걸어온 길을 완전히 바꾸는 전환을 요구받는 것이다. 

북-중 경제협력을 남-북 경제협력으로 대체하자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등장해야 할 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Chief Negotiator'로서 역할해 주기를 요청한 바 있지만, 이제는 단순한 중재 역할 이상이 필요한 순간이다. 북-미 간 실무진이 수차례 만났음에도 결국 베트남 합의가 결렬되는 것을 경험한 이상, 이제는 기존의 협상 방식이 힘을 잃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북-미 '실무' 협상까지 해주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에게는 기회이다. 더 이상 북핵 문제의 조언자나 중재자로 한발 물러서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의 필요를 모두 충족시키면서 한국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고 북한과 미국을 이끌어가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을 말하면, 한국이 기존의 중국 역할을 담당하면 된다. 중국에 의존하는 북한 경제 성장 방식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이 지원하는 북한의 도약적 경제 성장을 준비해야 한다. UN 경제제재를 완전히 해제해서 북한이 다시 중국에 의존하는 형태로 북-중 경협이 활성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남북한의 경제협력에 국한하여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를 구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한반도 내의 남북한 경제협력일 경우에는 UN 제재 조치로부터 예외 적용을 받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국제사회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은 경제 성장을 추진하고 남북한의 협력 관계를 심화하게 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 대신 동맹국 한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지원하면서, 남북한 기업과 합작한 외국 기업의 참여를 통해 미국과 일본의 자본도 북한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한국이 주도하는 남-북-미 3자 정상회담 추진  

마침 문재인 정부는 3.1절을 맞아 '신한반도체제' 구상을 소개했다. 새로운 평화협력공동체와 경제협력공동체를 구성하여 미래의 한반도를 남북한이 함께 주도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제 신한반도체제는 기존 북-중 협력을 뛰어넘은 수준으로 남북한의 경제 협력을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우선 남북이 마련한 틀 안에서 미-중-러-일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북한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주도적 역할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의 협력을 북한 경제 성장의 주된 동력으로 삼는 것, 이것은 북한에게 있어 매우 어려운 결정이겠지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에 의존하여 생존하던 경제체제를 남북한이 함께 주도하는 신한반도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 철도연결은 그 시작을 상징하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남북한을 잇는 물류와 에너지 망을 통해 북한 경제의 대동맥이 글로벌 경제와 연결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더 큰 임무가 주어 졌다. 이제는 북-미 협상을 뒤에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전면에서 리드해야 한다. 북한의 어려운 결단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을 안심시키고 설득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열어 한반도 비핵화와 경제제재 해제, 북한 경제성장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중장기적 로드맵을 포함한 일괄 타결을 추진하는 것은 어떨까.  

날씨 좋은 봄날 제주에서 3국 정상이 만나 그동안의 밀린 숙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민경태 여시재 한반도미래팀장은 <서울...평양...스마트시티>(미래의창 펴냄)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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