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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하지만 GDP는 틀렸다!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 2019-03-09 10:40:50
수정 2019-03-09 10: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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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 대통령의 주도로 ‘스티글리츠-센-피투시 위원회’라는 것이 출범했다. 정식 명칭은 ‘경제실적과 사회진보 측정을 위한 위원회’이지만 사람들은 모두 이 위원회를 ‘스티글리츠-센-피투시 위원회’라고 불렀다.

이유는 이 별칭이 진보를 꿈꾸는 경제학도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는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를 뜻하고, 센은 1998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Amartya Kumar Sen)을 지칭한다. 피투시는 프랑스 진보 경제학의 거장인 장-폴 피투시(Jean-Paul Fitoussi)다.

진보 경제학계에서 이 세 사람을 한 데 묶은 건, 축구로 치면 펠레-마라도나-메시를 한 팀에 넣은 격이고, 농구로 치면 마이클 조던-매직 존슨-코비 브라이언트가 한 팀인 셈이다. 노벨 경제학상은 진보 경제학계에 매우 인색한 상이다. 이 상이 만들어진 이후 명백히 진보경제학자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스티글리츠와 센, 그리고 군나르 뮈르달(Gunnar Myrdal) 등 단 세 명 뿐이었다.

이 중 뮈르달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현존하는 진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두 명이 남아있다. 그런데 이 두 명이 한 팀에 들어간 것이다. 여기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피투시가 포함됐으니 이 위원회는 말 그대로 진보 경제학계의 드림팀이었다.  

위원회는 18개월 동안 회의를 연 끝에 2009년 결과물을 내놓았다. 보고서의 제목은 『우리 삶을 잘못 측정하고 있는 것:왜 GDP는 앞뒤가 맞지 않는가?(Mismeasuring Our Lives:Why GDP Doesn't Add Up)』였고, 이 보고서의 국내 번역본 제목은 『GDP는 틀렸다』였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잘 모르겠는데!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마침내 3만 달러를 넘어섰다. 5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1349달러, 우리 돈으로 약 3500만 원 정도로 집계됐다.

인구가 5000만 명이 넘는 국가 중 3만 달러를 넘어선 일곱 번째 경우에 해당된다. 한국 외에 ‘인구 5000만 명 이상 +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을 달성한 나라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뿐이다. 얼핏 봐도 한국이 마침내 쟁쟁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수치가 실감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1인당 국민소득 3500만 원이면 4인 가구 기준으로 연평균 소득이 1억 4000만 원이다. 이 수치부터 현실성이 없다. 국민소득 중 기업과 정부 몫을 뗀 가계소득만 집계해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GDP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60% 수준이다. 70%를 넘기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가계의 몫이 매우 작다.

게다가 가계의 몫만 계산해도 4인 가구 기준 연평균 소득은 8400만 원이나 된다. 이게 평균이라고? 대기업 현장 노동자들이 1년에 8000만 원 받으면 보수 언론은 귀족이라고 난장을 부리는데! 뭔 놈의 귀족이 평균소득에도 못 미치느냔 말이다. 그러니 “연소득 8400만 원이 평균”이라는 말도 당최 실감이 나지 않는다. 

GDP의 결정적 오류는 그것이 민중들의 삶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 평균값을 적어놓았다는 데 있다. 통계학에서는 이것을 ‘평균의 오류’라고 부른다. 반 평균이 70점이라고 그 반 학생들이 대충 70점 언저리를 맞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소득불균등 정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칠레, 멕시코 다음으로 나쁘다. 이러니 평균값이 의미를 지닐 수가 없다. 부자들은 저 위에 있고, 민중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국민소득 3만 달러가 실감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다.  

삶의 지표를 전혀 측정하지 못하는 GDP 

‘스티글리츠-센-피투시 위원회’가 지적하는 GDP의 두 번째 문제점은 측정 방법이 엉망진창이라는 점에 있다. GDP는 나라에서 새로 생긴 소득을 모조리 포함한다. 그렇다면 4대강을 파헤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여기에 든 돈 대부분이 GDP로 잡힌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이 4대강에 집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성장률 7%를 달성하겠다”는 황당한 공약으로 당선된 이명박은 어떻게 해서든 GDP 수치를 마사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멀쩡히 잘 흐르는 강을 파헤쳐 녹조라떼로 만든 것이다.  

4대강재자연화시민위원회와 한국환경회의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대강 사업 감사결과 발표에 따른 시민사회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4대강 사업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4대강재자연화시민위원회와 한국환경회의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대강 사업 감사결과 발표에 따른 시민사회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4대강 사업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슬찬 인턴기자

더 웃긴 문제가 남아있다. 망가진 4대강을 복구해야 하는데, 복구할 때 드는 공사비용도 대부분 GDP로 잡힌다는 점이다. 망치는 것도 GDP, 복구하는 것도 GDP다. 그래서 우스갯소리고 “GDP 높이는 제일 좋은 방법은 멀쩡한 건물 때려 부쉈다가 다시 짓고, 다시 때려 부쉈다가 다시 짓는 것”이라는 말까지 있다.  

플라스틱 사용은 어떤가? 많은 뜻있는 시민들이 1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줄이는 중이다. 지구 환경을 위해 매우 옳은 일이다. 하지만 GDP의 시각으로 이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1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많이 써야 GDP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쓰레기더미를 처리하는 데 또 산업이 가동돼 GDP가 높아진다. 환경을 오염했다가 정화하고, 또 오염했다가 정화하면 GDP가 좋아진다는 이야기다.  

사실 GDP는 민중들의 삶이 불편해질수록 높아지는 경향마저 있다. 출퇴근 거리가 멀어질수록 교통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건강이 악화돼도 병원과 제약회사 매출이 늘어 GDP가 좋아진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 매출이 GDP를 높이고,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면 우울증 치료제 매출이 GDP를 높인다.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계부채도 GDP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지난해 은행권이 거둔 사상 최대의 이자수익은 모두 GDP에 잡힌다. 이 따위로 측정되는 GDP 지표가 실제 국민들의 삶을 평가하는 데 전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스티글리츠-센-피투시 위원회’의 결론이다.

그래서 민중들에게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돌파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이명박은 GDP 7% 성장을, 박근혜는 4% 성장을 공약으로 내걸고 그거 달성하겠다며 한국 경제에 오만 패악질을 다 하고 떠났다. 하지만 다행해도 현 정부는 GDP 성장률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당연한 일이고 옳은 일이다. 스티글리츠-센-피투시 위원회가 내린 담대한 결론처럼 결국 GDP는 틀렸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국병(大國病)도 버려야 한다. 국민이 가난한 대국(大國)은 아무 짝에도 쓸 모가 없다. 경제의 목표가 이런 허황된 숫자가 아니라, 민중들의 삶 그 자체에 모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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