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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는 극우⑥] 여의도 거쳐 청와대 접수? 극우세력과 자유한국당의 불행한 결합

정치 진출 노리는 태극기부대와 손 잡으려는 자유한국당

특별취재팀 남소연 기자
발행 2019-03-21 18:18:47
수정 2019-03-21 22: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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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정의철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 이후 사실상 무력화됐던 극우세력이 정당 정치에 개입하면서 정치세력화를 꾀하고 있다. 헌정질서를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인식을 가진 이들이 정치 전면에 나서는 것은 한국 정치를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시도라 할 수 있다.

태극기부대로 대표되는 이들은 초기 '친박근혜계'의 핵심이었던 조원진 의원이 창당한 대한애국당과 결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한애국당은 매주 극우세력을 이끌고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주최하는데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극우집회 중 가장 많이 참가자들이 모이는 것으로 집계된다. 태극기부대의 중심 세력 중 하나는 여전히 대한애국당인 것이다. 대한애국당은 태극기부대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한때 정당후원금 2위를 차지하는 위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 등 일련의 사건을 기점으로 극우세력이 대한애국당을 넘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도 결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당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당원 가입 운동을 벌이고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자유한국당도 이들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당내 주요 세력으로 자리 잡은 극우세력을 끌어안으려 하고, 이들의 구미에 맞는 주장을 국회에서 늘여놓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 자유한국당이 태극기부대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당대회 3개월 앞두고 확산된 당원 가입 운동 
"탄핵 찬성 일당에게 당 대표 넘겨줄 수 없다" 
"애국세력을 대표로 뽑자"
 

5.18 폄훼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자유한국당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의원을 징계하는 여부를 논의하는 당 윤리위원회가 모처에서 비공개로 열린 지난 달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으로 김진태 의원을 비호하는 '태극기 부대' 회원들이 진입, 불법 집회를 하며 성조기 등을 들고 김 의원 등에 대한 윤리위 제소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5.18 폄훼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자유한국당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의원을 징계하는 여부를 논의하는 당 윤리위원회가 모처에서 비공개로 열린 지난 달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으로 김진태 의원을 비호하는 '태극기 부대' 회원들이 진입, 불법 집회를 하며 성조기 등을 들고 김 의원 등에 대한 윤리위 제소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뉴시스

극우세력은 지난해 말부터 자유한국당의 당원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운동을 대규모로 벌였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한 책임당원이 돼야 하는데 이 시점부터 당비를 납부해야 전당대회가 열리는 시점에 책임당원이 될 수 있다.

이들이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지난 9월 "자유한국당에 당원으로 가입해 애국세력을 대표로 뽑자", "탄핵 찬성한 김무성 일당에게 당 대표를 넘겨줄 수 없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 같은 글에는 "박사모나 태극기 드신 분들은 오래전부터 자유한국당 당원이었다", "자유한국당 책임당원 되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의 대안"이라며 호응하는 내용의 댓글이 줄지어 달렸다. 자유한국당 책임당원 가입 필요성에 동조하는 회원이 일부가 아니란 얘기다.

이는 극우세력이 전당대회 투표권을 쥔 책임당원을 최대한 확보해 전당대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이 시기 자유한국당 당원은 8천여명이 증가하는데, 평소 추세와 비교해 볼 때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당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렇게 제1야당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극우세력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거침없이 과시했고 자유한국당은 이를 막지 않았다. 

단적인 예가 바로 5.18 모욕 논란을 촉발시킨 공청회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였다.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은 태극기집회에서 나오는 망언들을 국회에서 쏟아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줬다. 나아가 북한군 개입설 등 이미 가짜 뉴스로 판정된 주장들을 검증해야 할 의혹으로 둔갑시키고 옹호하며 유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극우세력의 영향력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됐다. '탄핵 총리' 출신인 황교안 대표가 당 대표에 도전하고 끝내는 당의 수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극우세력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보수우파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극우세력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김진태 의원도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에 비해 선전했고, '5.18 모욕 발언'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은 김순례 의원도 지도부에 입성했다. 결국 자유한국당에 들어온 극우세력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한 것이다. 

극우세력과 손잡으려는 자유한국당 
"좌파, 좌파, 좌파…" 제1야당 '투톱'의 도 넘은 색깔론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김슬찬 기자

문제는 자유한국당도 극우세력에게 문을 열어놓고 오히려 이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황교안 체제 출범 후 자유한국당은 그야말로 오른쪽으로 내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자유한국당은 현재 다수의 국민보다는 자당을 향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극우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다. 국민들이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는 '5.18 모욕' 3인방의 징계 논의를 한없이 뒤로 미루고 있는 이유도 태극기부대의 영향 때문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는 "태극기부대의 놀이터"란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로 그 정도가 심했다. '빨갱이' 소리가 난무했던 합동연설회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국민의 눈높이와 동 떨어진 후보들의 '구애작전'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공직생활 내내 '법치'를 강조했던 황교안 대표는 헌법재판관이 만장일치로 결정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사실상 부정하고, 태블릿 PC조작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태극기부대의 표심에 적극 호소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최근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자극적인 색깔론 공세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다. 당의 '투톱'인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는 말끝마다 "좌파"를 외치며 국회를 이념공세의 장으로 몰아가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후 "수구 냉전세력으로 비치는 부분을 혁신하겠다"는 사과문까지 발표했으나 2년도 안 돼 더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취임 후부터 줄곧 좌파 독재 저지를 저지하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고, 황교안 체제 첫 특별위원회로 야심 차게 출범한 '좌파독재저지특별위원회'는 보수우파 단체들과 손을 잡고 앞으로 대정부 투쟁을 벌여나가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이는 장외에서 2년동안 집회를 벌이고 있는 극우세력과 함께 하겠다는 의도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색깔론 공세에 가세했다. 나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으로 칭하며 정부의 각종 정책을 좌파 정책으로 몰아세웠다. 이 같은 연설에 본회의장은 발칵 뒤집어졌고, "태극기부대에 바치는 헌정 연설이냐"는 직설적인 비판까지 쏟아졌다. 

이로 미뤄볼 때, 자유한국당은 일정 부분 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극우세력이라는 확실한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이를 발판 삼아 탄핵 전 당의 위세를 회복하겠다는 구상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최근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30%까지 끌어올려, 탄핵 정국 이후 최고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극우세력도 자유한국당의 대정부 투쟁을 든든히 뒷받침해주고 있다. 일례로 자유한국당이 집중하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반대 투쟁에 일부 극우 단체들이 화력지원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유한국당은 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본부를 출범시켜 탈원전 반대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극우세력이 해당 서명 운동에 참여하는 방법 등을 서로 공유하며 독려하고 있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국가농단 사례 중 시급하게 막아야 할 탈원전 반대 서명을 제안하니 아직 서명 안 하신 분들은 필히 서명해 줄 것을 당부한다"며 자유한국당의 서명 사이트 주소를 함께 적었다. 서명운동본부에도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는 단체로 알려진 나라지킴이고교연합이 포함돼 있다.  

탄핵 기점으로 보수 재건 기회 맞이했지만… 
자유한국당의 위험한 선택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이 지난해 지방선거 결과에 따른 보수 몰락에 책임을 지고 다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이 지난해 지방선거 결과에 따른 보수 몰락에 책임을 지고 다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자료사진ⓒ정의철 기자

이러한 모습은 지금까지 자유한국당이 보여준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위험 신호로 보인다. 물론 과거에도 강경 보수를 표방하는 의원들이 있기는 했으나 당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전까지 자유한국당의 중추 세력 중 하나는 민주화 세력으로 분류되는 'YS(고 김영삼 전 대통령)계'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YS 후예들로 분류되는 의원들과 개혁적 목소리를 내는 소장파 의원 일부가 당에 남아 있긴 하다.  

YS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하는 김무성 전 대표는 극우화 논란이 번질 때마다 당을 향해 쓴소리를 내왔다. '5.18 모욕' 논란으로 당이 휘청일 때 김 전 대표는 일부 의원들의 의견일 뿐이며 금도를 넘어서는 일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극우세력이 활보하는 데 대해서도 "당이 과격분자들의 놀이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다른 의원들 역시 당이 극우정당화 되는 흐름에 대해 크게 우려하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우경화 논란이 절정에 달했던 전당대회 과정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앞다투어 비판하며 자중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극우세력의 망동을 자제하고 당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목소리는 점차 작아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당내 극우적인 모습과 결별하고 합리적인 보수로 재탄생해야 했지만, 스스로 이 같은 기회를 걷어차고 극우세력과 결탁한 셈이다.

계속되는 극우세력의 정치세력화 
자유한국당은 이들과 결별할 수 있을까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극우세력들. 자료사진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극우세력들. 자료사진ⓒ김철수 기자

불행히도 극우세력의 정치세력화는 계속될 것이고 당분간 자유한국당도 이들의 손을 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지지자들 역시 극우세력을 포용하고, 이들과의 통합을 원하는 의견이 과반이다. 자신들을 따라 점점 오른쪽으로 향하는 자유한국당의 모습에 자신감을 얻은 극우세력은 '2차 당원 가입' 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이처럼 자유한국당이 장외에 떠돌던 극우세력에게 자리를 내주고 제1야당이 이들의 영향을 받아 우경화되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결국 보수 정당의 퇴행은 물론 한국 정치의 퇴행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헌법을 파괴하는 주장을 하는 세력이 국회 안을 활보하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도 자유한국당이 극우화되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은 21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이제 전당대회는 끝났고 총선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인데 자유한국당이 계속 우경화 되고 있어서 걱정"이라며 "지지층 결집에도 한계가 있는데 지금의 자유한국당은 '텃밭'에만 맞춰서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전 의원은 이어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는 (극우세력으로 이뤄진) 집토끼들이 떠날까 무서워하며 이들을 의식하고 있다"며 "총선이 다가와도 자유한국당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최근 자유한국당을 보면 당내 개혁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노골적으로 좌우파 이념대결을 부추기고 있는데, 이는 당이 점점 극우화되고 있단 증거"라며 "(이렇게 되면) 당의 합리적인 개혁 노선은 실종되고 극우세력만 남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박 교수는 "지금은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가 총선을 앞두고 광범위하게 중도층을 끌어안을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만일 (그렇지 않고) 극우세력과도 이대로 간다면 자유한국당도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순애 시사평론가도 "현재 자유한국당은 탄핵 이후 자기 혁신의 과제가 있음에도,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극우화되고 있는 것"이라며 "제1야당이 특정 소수 지지세력에 기반해 그들에게만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국 소모적인 이념 경쟁만 하게 될 뿐"이라고 내다봤다.

편집자주ㅣ탄핵 이후 잦아들 것이라 예상했던 극우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60·70·80대 노년층의 집회라 불리던 ‘태극기 집회’는 그 규모를 유지하거나 확장하고 있다. 극우 유튜버들의 구독자 수는 주요 방송사를 앞질렀다. 철지난 색깔론을 내뱉으며 안보장사를 한다. 대다수의 대중이 이를 애써 무시하는 듯해도, 이들은 멈추지 않고 같은 주장을 펼친다.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오히려 극우가 더욱 활개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증 또한 커지고 있다. 국내 주요 학술지에 실릴 논문 주제가 되기도 한다. 이에 ‘민중의소리’는 보다 자세히 관련 현상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폭주하는 극우’라는 주제로 몇 차례에 걸쳐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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