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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방화·총격·차량 탈취는 30~40여명의 사복 입은 남한특수군이 벌여”
“5월21일 전두환 광주 방문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사살 명령 내렸을 것”
“기자들 허벌나게 와버렸네.” (5·18기념재단 관계자)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며 1980년 민주화운동을 모욕한 자유한국당 공청회가 2월8일 국회에서 열린 지 약 2개월 만에 국회에서 5·18 가짜뉴스의 실체와 광주학살 진상을 규명할 매우 중요한 증언이 나왔다. 전두환씨가 철저한 시나리오를 갖고 1980년 5월, 광주시민을 짓밟았다는 주장이 39년 전 미군 정보부대 군사정보관의 입을 통해 구체적으로 등장했다.
김용장 전 미국 육군 정보부대 군사정보관과 허장환 전 국군 보안사령부 특명부장이 참석한 특별기자회견이 13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과 박광온 최고위원을 비롯한 민주당 관계자들과 5·18기념재단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미 육군 501정보여단에서 군사정보관으로 25년간 재직한 김용장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1980년 5월 광주에서 대략 40여건의 첩보를 상부에 보고했다. 501정보여단의 첩보는 미 국방정보국으로 보내졌고, 이 첩보는 백악관으로 갔다. 내가 보낸 첩보 중 5건은 백악관으로 보내졌고 카터 대통령이 3건을 직접 읽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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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장 전 미국 육군 정보부대 군사정보관과 허장환 전 국군 보안사령부 특명부장이 참석한 특별기자회견이 13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렸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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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5·18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사실이라면 미국의 정보망이 완전히 뚫렸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며 “전두환이 만든 완전한 허위”라고 단언했다. 그는 “(1980년 당시) 한반도 상공에는 2대의 첩보 위성이 있었고 북한과 광주를 집중 정찰했다. 북한군 수백명이 미국의 첨단 감시망을 뚫고 내려오는 건 불가능하다”며 “(상부에) 보고할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가 보고했던 것은 오히려 ‘남한 특수부대원’의 수상한 활동이었다. 김용장씨는 “시민 행세를 하던 사복 군인이 실제로 존재했다. 이들은 5월20일쯤 성남비행장에서 광주비행장으로 왔다. (인원은) 30~40명가량으로 보고했다. K-57 비행기 격납고에서 3일간 주둔했다. (주둔)첩보를 입수해 격납고로 찾아가 직접 확인했다. 나이는 20~30대 젊은이로 짧은 머리였고 일부는 가발을 썼다. 그중에는 거지처럼 넝마를 걸친 이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들을 광주로 보낸 이는 전두환 보안사령부였다. 보안부대 대공과장이 이들을 지휘했다”고 말했으며 “북한 특수군이 했다는 방화·총격·수송 차량 탈취는 일반 시민이 했다고 보기 어려운 매우 극렬한 행위인데, 나는 이들을 남한 특수군으로 부르고 싶다. 이들이 직접 벌인 소행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두환이 강경 진압의 빌미를 마련하기 위해 남한군을 시민으로 위장해 고도 공작을 펼친 것이다. 유언비어 유포도 마찬가지다”라며 5·18 가짜뉴스의 실체에 쐐기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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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장 전 미국 육군 정보부대 군사정보관과 허장환 전 국군 보안사령부 특명부장이 참석한 특별기자회견이 13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렸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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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북한 게릴라가 침투했다,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을 죽인다는 식의 유언비어가 나왔다”고 전한 뒤 “광주MBC 방화 같은 사건이 광주시민에 의해 이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한 특수공작원에 의해 이뤄졌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5·18 북한군 개입설’은 ‘5·18 국군 개입설’로 바뀌어야 한다. 김씨는 “이들의 실체가 드러나면 광주의 모든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용장씨는 이어 전두환씨가 1980년 5월21일 광주에 왔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씨가 5월21일 점심 전후로 광주비행장에 왔다. 당시 헬기를 타고 왔다. 오자마자 1시간가량 회의를 열었다.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한 뒤 “(방문한) 이날 오후 집단 사살이 이뤄졌다”며 “(전두환) 방문 목적은 사살 명령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씨가 타고 온 헬기의 비행계획서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밖에도 △광주 국군통합병원 시신 소각 △전일빌딩 헬기 M60 사격 △교도소 습격 △공수부대에 의한 성폭행 등을 첩보로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시신 소각과 관련해 “당시 국군통합병원에서 시신을 최대로 소각했다면 10일간 200구 정도는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 뒤 “그래도 그 숫자는 터무니없이 적은 (사망자) 숫자이기 때문에 어디론가 (시신이 또) 수송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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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장 전 미국 육군 정보부대 군사정보관과 허장환 전 국군 보안사령부 특명부장이 참석한 특별기자회견이 13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렸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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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5공 청문회 당시 ‘양심선언’을 했던 허장환 전 국군 보안사령부 특명부장은 이날 “전두환은 발포가 아니라 사살 명령을 내렸다. 5·18 당시 전두환은 모든 작전권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으며 전일빌딩 헬기사격엔 “27일 공수특전단 지침이 진압군에 사상자가 나와선 안 된다였다. 그런데 전일빌딩 5층에 저격병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헬기로 저격병 저격하는 작전을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김용장씨가 주장한 ‘남한 특수군’과 관련해 허장환씨는 “수백명이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 그 때 와서 (임무 수행 뒤) 철수한 것으로 안다. 그 사람들은 전쟁이 벌어지면 후방교란이 주 임무로, 유언비어날조 조도 있었다”고 전했다. 시신 소각과 관련해선 “시민군 사상자 중 간첩이 있을 수 있다며 전남도청에서 지문 감식을 진행했고 가매장을 발굴해 사망자의 지문까지 채취했는데 다시 묻을 수 없어 국군통합병원에서 화장 처리했다. 그 공로로 병원장이 훈장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허씨는 “보안사가 광주를 평정한 뒤 범행을 숨기기 위해 연구단을 만들어 시나리오를 기획·작성했다. 작성자들은 죽어서도 절대 발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들의 목적은 완벽하게 역사를 변조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연구단을 통해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해당하는 만큼의 변조”가 이뤄진 결과 39년째 5·18 학살의 진상규명이 미궁에 빠졌다고 덧붙였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마침내 진실이 때가 돼 스스로를 드러낸 현장이다. 지금껏 날조되었던 5·18의 진실이 다시 밝혀졌다”고 말했다. 박광온 민주당 최고의원은 “정권찬탈세력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이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분의 증언은 진상규명을 원하는 이들과 5·18 진상조사위 활동에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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