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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진짜 '메이커 시티'가 되려면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메이커 시티(Maker City)', 도시의 미래?

 

 

 

최근에 협업과 혁신을 통해 쇠퇴해가는 도시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창조적인 혁신주체들의 역할이 주목을 끌면서 '메이커 시티(Maker City)' 개념이 등장했다. '메이커 시티'에서 말하는 메이커란 미국 IT 출판사 오라일리 미디어 사장인 데일 도허티(Dale Dougherty)가 2004년에 주창한 개념으로 각종 설계도면이나 디자인을 오픈소스 형태로 공유하면서 협력하여 새로운 시제품을 만들어가는 제조업자들을 뜻한다. 따라서 '메이커 시티'에서 제조업은 공유된 경험과 신뢰를 통한 협업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서울특별시가 '메이커 시티'의 개념을 도입하여 추진 중인 대표적인 재생사업 사례가 '다시‧세운 프로젝트'다. 서울특별시는 세운상가 지역을 설계에서부터 제조에 이르는 모든 공정이 원스톱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전초기지로 탈바꿈시키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의 세운상가 도시재생 사업은 역사와 산업, 공동체를 활용한 도시재생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세운상가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세운상가 일대를 리모델링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실시했다.  

1단계 사업에서 세운상가 북쪽(세운상가~청계‧대림상가)을 제조업 창업기지로 변모시켜서 '세운 메이커스 큐브'라는 이름의 29개의 창업공간을 조성했다. '세운 메이커스 큐브'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젊은 혁신가인 메이커를 위한 공간이다. 특히, 청년 창업가들과 기존 세운상가 내 전통장인들과의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창업공간이 조성된 후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서울특별시가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는 빠르게 확산됐다. 한 청년 사업가는 세운상가의 기술과 재료만으로 새로운 3D프린터를 개발했고, 또 다른 청년 창업가는 기술 장인과 협력하여 진공관 오디오의 음질과 블루투스의 편리함을 결합한 '진공관 블루투스 스피커'를 선보이기도 했다. 

서울특별시의 '메이커 시티'를 강조한 도시재생사업은 세운상가만이 지닌 특수성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세운상가는 유통업체와 공장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자재공급과 가공시간을 단축시켜 신속한 제조가 가능한 이점을 가진 곳이다. 이곳의 소규모 제조업은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세운상가 제조 산업의 특징은 관련업체들끼리 유연한 협력망을 가지고 있어서 무수히 많은 생산품들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세운상가 도시재생 사업이 앞서 제시한 '메이커 시티' 개념에 적용해 볼 때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세운상가는 도시재생이란 이름으로, 청계천과 을지로는 재정비란 명칭으로 구분되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특별시는 제조업의 집적지라는 특성을 이용한 도시재생을 강조하고 있지만 세운상가와 청계천‧을지로를 연계하여 사업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실제 올해 초부터 본격적인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청계천에서 숙련된 기술자들이 일하던 정밀기계공장들이 철거됐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 자리에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세운상가의 도시재생사업은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이와 같은 물음에서 필자는 몇 가지 문제점들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서울특별시는 '메이커 시티'의 개념만을 강조하며 제조업 산업 생태계는 무시한 채 건물과 토지에 대한 재건축에만 집중하는 문제점이 있다. 결국, 도시의 제조업 공간은 재개발로 사라지고 자생적으로 형성된 산업 생태계는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정책으로 세운상가가 갖고 있던 긴밀한 협업의 연결망은 무너지게 되었다. 

둘째, 제조업 산업 공간의 역사적 흔적이 소멸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세운상가는 도심 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장소이다. 세운상가의 재생 정책은 지역이 가진 산업적 가치와 제조업의 숙련도가 높은 장인들을 지역의 자산으로 보존하고 계승시켜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등한시하였다. 또한, 도심 산업과 관련한 근대 건축물도 중요한 자원으로 그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는 시점에서 산업역사의 흔적과 공간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비판해야 될 점이다.  

셋째, 개발의 주체가 수요자 중심이 아니라 공공 또는 민간의 공급 위주 개발 방식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공급자 중심의 개발은 자본의 이익만을 강조하여 소외되는 공간 사용자들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문제를 초래한다.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근대 산업공간과 청계천변 유통업체들은 수십 년 간 축적된 네트워크로 생산 활동을 해 온 곳이다. 
 

▲ 다시세운 프로젝트 홈페이지


하지만 서울특별시는 도심 제조업이 가장 밀집된 청계천 을지로 일대의 산업 생태계 훼손에 대한 실태조사 및 이주대책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개발의 원리에 밀려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대책의 마련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현재 세운상가 도시재생사업이 도시재생의 방향성을 잃었다는 비판이 우려되는 상황 속에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나 보완점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대규모 자본 위주의 무리한 투자와 개발이익의 창출을 지양해야 한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실시하다 보면 공공의 힘과 자본가의 영향력이 합쳐져 도시공간의 질적 개선보다는 양적 팽창에 기반을 두게 된다. 결국, 단기간의 물리적 개발을 통해 토지 가치만 상승시키고 지역의 장소성과 균형 잡힌 개발을 하는데 방해 요소가 된다. 따라서 사업의 재정적 타당성을 고려하고 영세한 산업 네트워크와 상생할 수 있도록 신중한 정책이 논의되어야 한다. 

둘째,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처럼 도심 제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제조업이 개발과정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산업지구로 지정하고 정부에서 관리‧감독을 하여야 한다. 제조업은 정보의 접근성이 좋은 도심에 입지하는 것이 좋으며, 시장과 연계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숙련공, 디자이너, 제조업자가 함께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특히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소규모 제조업을 보존하고 산업지구가 다른 용도로 전환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셋째, 혁신을 주도할 창조적인 인재를 위한 재정적 지원과 장인과 젊은 청년들이 입주할 수 있는 공공 임대 산업공간이 형성되어야 한다. 특히 을지로‧청계천 재개발로 퇴거 위기에 내몰린 제조업 관련 상인들이 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원래 있던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임대료를 낮추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공공이 임대상가를 조성해 영세 상인들에게 제조업 혁신센터와 같은 공간을 제공하여 산업생태계가 유지되는 재생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서울 중심에 자리한 세운상가군과 그 주변 지역은 독특한 도시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고도로 숙련된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밀집되어 주거와 상업 지역 한가운데 있으면서, 서로 다른 사람들과의 활동이 매일같이 일어나는 곳이다. 이러한 활동의 근접성과 상호작용은 제조업과 같은 생산의 공간 형성에서 협업을 가능하게 만들고 유연하고 특화된 생산이 중심인 장소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에는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드는 사람들, 즉 메이커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제조업의 현장이 혁신의 공간이 되려면 산업의 주체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적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혁신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고 이러한 인적자원을 통한 공간형성은 혁신의 사회적‧공간적 역동성에 영향을 미친다.  

첨단 제조업으로 혁신의 공간에 서 있는 세운상가 주변 을지로 일대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이제 발전의 측면보다 도시 공간의 가치와 의식을 통해 도시공동체가 상생할 수 있는 잠재력에 관심을 가질 시기다. 여기에는 협업과 혁신을 통해 도시의 경제적, 문화적 성장을 촉진하는 개방된 환경 속에서 사람, 아이디어 및 프로젝트를 도시와 함께 연결하는 '메이커 시티'가 필요하다.  

생산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된 도심의 제조업 공간은 우리의 생활유산이기도 하며 한번 사라지면 다시 복원하기 어려운 의미 있는 장소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숙련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의 산업생태계가 형성되었고 제조업의 혁신도 꽃피고 있다. 산업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공간에서 사람과 장소의 연결성과 장소의 역사성을 계승해 나간다면 미래의 도시는 혁신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자산이 될 것이다. 
 

   <필자 소개> 

이나영 연구원은 동국대학교 지리학과에서 '도시재생의 로컬 거버넌스와 지역재생역량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지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춘천에 위치한 강원대학교 DMZ HELP 연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또한, 이나영 연구원은 도시재생, DMZ와 접경지역 연구 등을 통해 쇠퇴하고 낙후되는 지역을 활성화시키는 것과 관련하여 다양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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