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현장] “아베는 각성하라” 일본 제품 불매 선언한 의정부시 고등학생들

스스로 아이디어 내고 모여 글쓰고 행동에 나서..기성세대에게 “다시는 이런 치욕 당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달라”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19-07-26 21:57:25
수정 2019-07-26 21:57:25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제품 불매 선언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2019.07.26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제품 불매 선언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2019.07.26ⓒ김철수 기자
 

26일 오전 서울과 경기 북부 일원엔 호우특보가 내렸다. 오전 내내 장대비가 거리에 쏟아졌다.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진 오전 11시 30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로로 교복을 입은 남녀 고등학교 학생들 스무 명이 걸어 들어왔다.

이들은 비닐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쓴 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더니 빗줄기를 피해 인근 빌딩 현관에 붙어 서서 준비해 온 것들을 꺼냈다. 직접 작성해서 인쇄해온 성명서, 직접 글씨를 쓰고 붙여서 만들어 온 손피켓 등이 보였다. 이들은 이날 ‘의정부시 고등학생 일본제품 불매 선언’을 하겠다며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게 저희가 준비한 성명서예요”

또래 친구들을 모아 불매선언을 하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의정부고등학교 2학년 김호성 군은 비닐 파일에서 A4용지를 한 장 꺼내 기자에게 건넸다.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제품 불매 선언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2019.07.26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제품 불매 선언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2019.07.26ⓒ김철수 기자

“의정부 고등학교 학생연합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규탄 성명”이라고 적힌 성명서엔 이 자리에 함께 한 고등학생들의 생각이 정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들은 과거사에 대해 반성 없이 경제 보복을 하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며, 스스로를 ‘유관순 열사’, ‘이순신 장군의 후예’라고 지칭했다. 또 기성세대들에게 지금 당하는 치욕을 다시 당해서는 안 된다며 당당히 맞서 이겨내 달라고 요청했다.

성명서를 읽으며 옆에 서 있었더니 김호성 군은 “원래 오늘 일본산 학용품 버리는 퍼포먼스를 준비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포기했어요. 성명서를 같이 읽고 구호 좀 외치고 끝날 거예요”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조금 후에 호성 군과 함께 이날 행사에 아이디어를 낸 부용고등학교 이종원 군이 와 “이제 시작할께요”라고 말했다.

방송사, 신문사, 인터넷 언론 등 수십 명의 취재진들이 현장에 몰렸다. 고등학생들은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도 당당했다. 자연스럽게 성명서를 낭독하고 구호도 외쳤다. 이종원 군이 함께 온 친구들을 대표해 성명서를 힘찬 목소리로 낭독했다.

“최근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보복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라고 규정한다.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덮으려는 일본의 간사함이 원인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것은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어져 왔는데 지금도 침략하니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도 참을 만큼 참아왔고, 우리 국력도 과거와 같이 당하고만 있을 국력이 아니라는 것을 일본에 보여줄 때가 되었다. 1919년 3.1운동 100년을 맞은 이때, 유관순 열사의 후예인 우리 의정부시 6개 고등학교(부용고, 송현고, 경민비즈니스고, 의정부고, 호원고, 발곡고) 연합 학생들은 성명을 낸다”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제품 불매 선언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2019.07.26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제품 불매 선언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2019.07.26ⓒ김철수 기자

이날 학생들은 일본 정부에 즉각 경제보복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으면 현재 알고 있는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지금 고등학생인 우리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는 그때까지도 이어갈 것”이라며 “우리의 준엄하고 엄중한 경고를 무시하지 않길 바란다”고 선언했다.

학생들은 특히 일본 아베 신조 총리를 ‘콕’ 짚어 경고를 보내며, “한일 양국의 미래마저 갈등과 대립의 장으로 만들려는 아베는 각성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이들은 일본 아베 정부의 행동이 잘못됐고 사죄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양국 간의 ‘평화’를 원한다면서 “우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일본을 침략하거나 노략질 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평화를 원하는 만큼 우리도 그와 동등한 평화를 약속한다. 앞으로 20~30년 후 우리가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대한민국과 일본이 다정한 이웃나라이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한국 사회 기성세대들에게는 “다시 이런 치욕을 당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달라. 미래에 저희들이 잘못될까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된다, 당당히 이겨내달라”고 촉구했다.

끝으로 학생들은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우리가 대한민국이다”, “아빠 엄마 파이팅‘,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쳤다. 일본산 학용품 버리기 퍼포먼스는 비 때문에 포기했지만, 피켓을 뒤집는 짧은 카드섹션을 통해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말고 맞서세요. 미래는 우리가 책임집니다’라는 메시지를 취재진에게 전했다.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제품 불매 선언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2019.07.26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제품 불매 선언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2019.07.26ⓒ김철수 기자

기자회견이 끝나고, 이날 행사에 아이디어를 낸 이종원 군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이런 선언을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처음엔 저랑 호성이랑 수경이가 아이디어를 냈어요. 셋이 모여서 이야기하다보니 이런 걸 해보고 싶었죠. 인원이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친한 친구들을 알음알음 모았어요”

고등학생인데 평일 오전에 학교 밖에 나와도 괜찮은 것인지 괜한 노파심에 ‘학교에서 뭐라고 하지는 않았냐’고 물었더니, ‘쿨’하게 답했다.

“방학중이라서 괜찮아요. 방학엔 선생님들도 좀 쉬셔야죠. 따로 말씀을 드리진 않았어요.”

종원 군에게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를 부당한 경제보복으로 생각하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하는 어른들도 있지만, 이를 반대하고 비판하는 어른들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했다.

“경제 제재 하나만 놓고 보면 그렇게 이야기 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여태 일본이 우리나라한테 어떻게 해왔나를 봐야하는 것 같아요. 너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역사왜곡도 계속하잖아요. 그렇게 쌓이고 쌓이다보니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하는 것 같아요”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제품 불매 선언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2019.07.26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제품 불매 선언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2019.07.26ⓒ김철수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빠 엄마’를 응원하는 부분이 남다르게 보였다고 말하자, 종원 군은 “그건 우리 부모님이기도 하지만, 기성세대와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에게 하는 말”이라면서, “그분들이 좀 잘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종원 군은 학교에서 이미 “친구들이 일본 제품을 거부하기 시작했다”면서 “우리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일상생활용품을 덜 쓰는 것 같다. 노노재팬 같은 사이트에서 찾아보면 정보가 많이 나오니까 그런걸 참고해서 조금씩이라도 덜 썼으면 좋겠다”며 또래 친구들에게 ‘불매 운동’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평화로에서 만난 고등학생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했고 매우 당당했다. 한국 기성세대와 정치권에게 참혹한 과거사가 다시 되풀이되지 않게 제대로 대응하라고 요구했고, 일본 아베 총리에겐 즉각 경제제재를 풀고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또래 친구들에겐 함께 불매운동에 나서자고 권유하기도 했다.

청소년들까지 일본 정부의 과거사 왜곡과 경제 제재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바로잡아야 겠다는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함이 없는 것이 오늘 한국 사회의 현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현장이었다.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제품 불매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왼쪽부터 경민비지니스고 정민영 학생, 부용고 염혜령 학생, 송현고 류다영 학생, 호원고 남은서 학생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정민영 학생의 뒤로 부용고 이종원 학생이 서 있다. 2019.07.26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제품 불매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왼쪽부터 경민비지니스고 정민영 학생, 부용고 염혜령 학생, 송현고 류다영 학생, 호원고 남은서 학생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정민영 학생의 뒤로 부용고 이종원 학생이 서 있다. 2019.07.26ⓒ민중의소리
 

이소희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