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분야 비례대표로 제도권 정치에 들어온 이유이자 그의 오랜 숙원이었던 '노동회의소'가 대선 공약에 포함됐음에도 공염불에 그친 대목에선 긴 시간을 할애해 비판했다. 노동회의소는 90%의 비조직 노동자를 사회적 대화에 참여시키기 위해 구상된 시스템으로, 오스트리아 경제회의소 모델을 딴 전문가 그룹의 자율기구다. 사업장 분배 중심의 기존 노사관계를 벗어나 한국형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노무현 정부 때 '노사관계발전재단'으로 출범하기는 했지만, 고용보험에서 재원을 충당하는 것을 두고 고용노동부의 반대로 결국 실패했다.
이 의원은 한탄했다. "대한민국의 노사관계는 불과 10%(노조 조직률)이다. 거기서 벌어지는 일은 오직 사업장 분배로 싸우는 일뿐이다. 4차산업이 도래해 사업 발전 속도는 전광석화다. 정부가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를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러나 늘 늦다. 그래서 외국 전문가들은 '한국엔 노사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이 의원은 "(노동회의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 넣었다. 장관도 이해를 못하니 관료들을 설득하지 못하더라"라며 "10% 안에서만 있었기 때문이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가 된 기분이더라. 90%는 땅이 둥글다고 하는데, 10%만 땅이 평평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내년 21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 |
ⓒ 유성호 |
- 불출마 결심은 언제부터 했나.
"(생각을 굳힌 것은) 지난 4월이었다. 의원실 식구들에게도 그때 말했다."
- 불출마 선언문에서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를 위한 정치는 없다'고 했다.
"(20대 국회에 들어오기 전) 노동계 출신들을 국회로 많이 보냈다. 그런데 그 중 노동회의소를 추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 번 해봐야겠다 하고 들어왔다. 그 사이 정권 교체도 하고, 노동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대통령도 나오지 않았나. 꿈과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들어와서 보니 참 답답하더라. 대선 공약으로 힘들게 넣은 노동회의소도 임기 반환점이 돌았지만 대통령의 입에서 한 마디 나온 적이 없다."
- 왜 이렇게 됐나.
"노동회의소 설립에 부정적인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명박 정권 시절 차관을 하던 사람이고, 박근혜 정권 땐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문 대통령의 공약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일까 의문이 들더라. 너무 실망이 컸다."
- 20대에서 노동회의소 법안 통과가 쉽지 않겠다.
"법안 발의를 하면서, 정부 반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무가입과 강제회비 징수 등 원래 안에 있던 내용을 느슨하게 바꿨다. 그런데 그것도 안 되더라. 우리 당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를 이해시키고 나니, 한국노총 출신인 야당 간사가 반대했다. 정치판이 이렇구나, 싶더라."
- 국회 입성 당시엔 '꿈과 희망을 가졌다'고 했는데.
"야당과 여당은 다를 줄 알았다. 문재인과 이명박, 박근혜와 다를 줄 알았지. 그런데 그 기대가 송두리째 무너졌다. 미국의 경우 1947년부터 2009년까지 60년 동안 집권 정당별 저소득층 소득향상률이 민주당 집권 때가 공화당 때보다 6배가 더 높았다. '저소득층을 위한 민주당'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수치다. 그걸 보고 우리도 민주당이 여당이 되고,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뭔가 다르겠지 생각했다. 10%의 고소득층보다, 90%의 저소득층 노동자가 훨씬 많은 나라 아닌가. 그런데 여당 의원으로서 법안을 발의해도 되지 않더라. 정치권에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 싶더라"
▲ 내년 21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 |
ⓒ 유성호 |
- 노동 분야를 대표하는 여당 비례대표이지 않았나.
"청와대 이중대에 그칠 거라면 정치인이 아니다. 잘못하면 지적할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노동계를 대표해서 국회에 들어온 거라면 그래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 것도 기대할 게 없다. 법안은 언제나 계류 중이고, 법안 소위도 열리지 않았다. 열린다 한들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떠난다."
- 정부가 발표한 주52시간 상한제 유예 방침에 대해서도 비판을 제기했다.
"노동시간 단축을 말한 지 2년도 안 돼 시정연설 중 보완 수정을 말하며 누더기로 만들었다. 전임 정권과 차이를 못 느끼겠다고 한 이유다. 솔직히 말하면, 시정연설을 들으면서 부글부글 끓더라."
- 왜 문제인가.
"보완 입법을 말하면서 그 이유로 영세 중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들었다. 그들의 경영 상황이 어려운 건 인정. 그런데 주52시간 상한제는 노동자들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휴식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법안이다. 서로 상충되는 이야기 아닌가? 대통령한테 이렇게 묻고 싶다. 영세 중소상공인들이 어려운 게 주52시간 상한제 때문인가? 그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해 봤나?
최소한 경영개선을 위한 종합 대책 기구라도 만들었어야 한다.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했어야 한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일부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 임차료 갑을 관계, 원청과 하청, 카드 수수료 문제 등 다른 원인도 많다. 정말 원인이 주52시간 상한제 때문이라고 하면 백 번 양보할 수 있다. 그런데 아니지 않나.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 싶더라. 그런데 야당으로 눈을 돌리면, 사람이 없다."
- 그런데도 야당은 주52시간 예외를 인정해 탄력근로제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은 야당 복이 있는 사람이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니 야당도 특별연장근로 등을 막 쏟아내고 있지 않나. 문제는 여당이다. 대통령이 한 마디 하고, 노동계는 반대하니,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 한다. 그래서 대통령 리더십이 중요하다.
야당은 이때다 하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영세 중소상공인들의 경영 개선에 큰 도움도 안 되는 노동 악법을 막 쏟아낸다. 대통령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다. 변호사 수준에 멈춰 있어서는 안된다. 판사가 돼야지, 수임 받은 피해자 입장에서 말만해선 안 된다."
- '일이 안 되는 국회'를 향한 쇄신 요구도 높다. 당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대한민국은 이제 젊은 사람들의 국가다. 민주당이든 한국당이든, 그 사람들을 많이 참여 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공간을 내줘야 한다.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상식적인 이야기다. 지금은 기성세대들 정치만 있다. 젊은 사람은 국가의 미래고, 그 미래가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게 상식이다. 물갈이든 용퇴든 모두 필요하다."
- 이젠 무엇을 할 것인가.
"노동회의소 밖에 더 있겠나. 일각에선 날 모함하기 위해 '그걸 만들어서 자기가 가려고 한다'고들 하는데, 난 전문가 출신도 아니고 은행원 출신 활동가다. 내가 중심이 돼 갈 자리는 아니다. 노동회의소로 이어나갈 수 있는 길, 그걸 찾으려고 한다.
일단 책을 쓰기로 했다. 예전에 <노동은 밥이다>라는 책을 썼는데, 베스트셀러였다. 많이들 읽어 그런 줄 알았는데, 정작 읽은 사람은 별로 없더라. 국회에 들어와 노사관계의 역사적 배경부터 상세히 설명한 동영상집을 만들었는데, 그것도 본 사람이 없더라. '노사관계에 대한 선입관이 있구나' 싶었다. 이번엔 문답식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대한민국 노사관계에 대한 지침서가 됐으면 좋겠다."
▲ 내년 21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불출마 결심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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