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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국방비 감축 세계적 추세 될 것...우리는?

[정욱식 칼럼] 남 탓 전에 '내 탓'도 돌아봐야

코로나19 위기는 남북관계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까? 4.27 판문점 선언 2주년을 맞이해 문재인 대통령은 "남과 북은 하나의 생명 공동체"라며 "코로나19의 위기가 남북 협력에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 경색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호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필자 역시 코로나19 사태가 남북관계에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남북관계 악화의 주된 원인을 여전히 외면하면서 실효성이 떨어지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 실천을 속도 내지 못한 건 결코 우리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며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국제적 제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가 촘촘히 짜여 있고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마저 '노딜'로 끝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남북관계 악화의 "국제적 제약"은 분명히 존재한다.

 

 

'내 탓'도 돌아봐야


 

 

하지만 "우리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18년에 다른 나라들은 "국제적 제약" 속에서도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800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해놓고도 이를 집행하지 않았다. 또한 대북 개별 관광은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만큼 이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2018년에도 나왔지만 정부는 조심스러워했다.

 

 

민간단체의 대북 협력 사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2019년 봄부터 변화를 시도했지만, 남북관계 악화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판문점 선언에서 "단계적 군축"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는데, 그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단하겠다고 했던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계속해온 것이 남북관계 악화의 결정타였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7월 25일 실시된 미사일 발사를 지도한 자리에서 "남조선 당국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최신 공격형 무기반입과 합동 군사 연습 강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해(2018년) 4월과 9월과 같은 바른 자세를 되찾기 바란다는 권언을 남쪽을 향해 오늘의 위력 시위 사격소식과 함께 알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이후의 상황 전개는 김정은의 "권언"이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4.27 선언 이후 바로 군축을 추진할 수는 없었더라도 그 속도와 폭은 조절해야 했다. 한미군사훈련도 트럼프 대통령도 중단을 말한 바 있었기에 문재인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풀어갈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 사안마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국제적 제약"에 속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바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순적인 언행은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된 직후부터 코로나19 방역을 비롯한 남북 협력을 제안해왔다. 그런데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첨단 전투기들을 동원해 한미공중연합훈련을 실시했다.

 

 

'남북협력 제안 따로, 군사 문제 따로'인 셈인데, 이는 판문점 선언 및 9.19 평양공동선언과 군사 분야 합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 것이다. 이들 합의 정신의 핵심은 대북 제재라는 "국제적 제약"을 고려해 군사 문제 해결부터 시도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위기가 '진짜 기회'가 되려면


 

 

어느덧 2년을 넘긴 4.27 판문점 선언은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 평창 대회는 두 가지 반전을 잉태하고 있었다. 하나는 올림픽의 정신을 앞세워 전쟁 위기에 처한 한반도에서 '반전(反戰)'을 도모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꽉 막힌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반전(反轉)'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 기회를 포착했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전세계적인 휴전을 제안하면서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한미군사훈련도 올림픽 이후로 연기하기로 했다. 또한 북한의 참가를 지속적으로 설득해 북한의 호응도 이끌어냈다. 

 

 

올림픽과 같은 축제가 아니라 지구적인 악재이지만 코로나19 사태도 비슷한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전세계적인 휴전과 군사비 감축을 통해 인류의 공동의 적인 바이러스 대처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호소해왔다. 방영 모범국으로 세계적인 칭송을 받고 있는 한국이 솔선수범을 보여야 했지만, 아직까진 호응이 없는 상태이다. 

 

 

4월 하순에 실시된 한미공중연합훈련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이제 관건은 이 훈련보다 규모가 훨씬 큰 8월 연합훈련의 실시 여부에 있다. 변수는 코로나19의 추이이다. 크게 누그러지지 않으면 연합훈련을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에 수동적으로 반응해서는 안 된다. 능동적이고 선제적으로 연합훈련을 안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시점은 빠를수록 좋다. 

 

 

또한 국방비를 삭감해 불필요한 군비증강도 하향 조정해야 한다. 국방부 스스로도 "단거리 미사일에선 북한보다 수적·질적 우세에 있다"고 밝힐 정도로 지난 몇 년간 한국의 군사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3축 체계' 및 입체기동부대 창설·증강 등에 투입되는 국방예산에서 5~10조원 가량은 충분히 줄일 수 있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남북관계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역지사지에 있다. 남한이 강자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문재인 정부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코로나19가 남북관계에 전화위복이 되려면 북한 내에서 코로나19 창궐이라는 인도적 위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은 초기부터 강력한 방역에 성공해 확진자가 없다고 밝혀왔다. 이게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북한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방역 협력을 자꾸 제안하는 것이 북한에 선의로 비춰질지는 의문이다. 

 

 

설사 북한에서 코로나19가 유행하더라도 남한이 내민 손을 북한이 선뜻 잡을 것 같지도 않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배신했다고 여긴다. 문재인 정부가 이 원초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북한이 남북 협력에 나설 동기가 생길까? 식량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북한이 지난해 봄에 문재인 정부의 식량 지원을 거부했던 사례를 떠올려보면 이에 대한 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가 잉태한 '기회의 씨앗'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씨앗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 있다. 방역이 한미 양국의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고 있는 현실은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이다. 유엔과 교황이 이를 호소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국방비 감축도 마찬가지이다.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기 위해, 전시 경제를 방불케 하는 최악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국방비를 줄이겠다고 해서 과연 정부여당의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겠는가? 나라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국방비 동결이나 감축은 세계적인 추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장서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남북관계 돌파구를 찾겠다고 고심하고 다짐해온 문재인 정부와 총선에서 역대급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질문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42916002390595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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