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 광주 소속 전주안씨는 현장 동료들과 얘기하다 보면, 최근 과로사 소식에 대해 '다음은 나일 수도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내일 내가 안 보이면 과로사한 줄 알아"라는 말을 주고받을 정도로 현장의 상황은 열악하다.
"가을이 되면 택배 물품이 무거워져요. 물량도 늘지만, 쌀이나 과일 같은 대형 택배가 늘어나죠. 노동 강도도 세지고, 무거운 만큼 시간도 더 많이 걸리고요. 몸에 무리가 가고 피로가 누적되는 게 느껴집니다. 추석부터 시작해서 구정까지 이런 상태가 지속되죠. 날씨가 추우니까 무릎이나 허리 같은 데 무리도 많이 가고요."
전주안씨 역시 분류 인력을 투입하겠다는 회사의 발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실상 무임금 노동에 해당하는 분류 작업 인원을 따로 투입해달라는 것은 줄곧 노조와 대책위가 요구해 왔던 거고요. 택배 산업 초기에는 분류 작업은 그다지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었는데, 점점 물량이 많아지면서 수수료를 받는 배송 작업보다 오히려 분류작업 시간이 더 늘어나서 하루 5~7시간 정도까지 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분류작업을 위한 인력 투입을 하겠다는 발표는 매우 의미가 있죠.
노조에서 정말 많이 노력했기에 이런 발표를 끌어낼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시민사회와 언론도 화답해주었고요. 이전에는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해도 알려지지 않고 단순 죽음으로 처리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과로사 대책위가 만들어지면서 제대로 알려지고, 그 심각성도 부각되었어요. 그렇게 국내 가장 큰 택배 회사의 사과와 대책 발표를 끌어냈고, 또 다른 회사들의 발표도 이어졌으니까요. 물론 인원 투입을 '단계적으로 한다'는 모호한 표현이 있기에, 노조에서 계속 주시해야 되겠지만요."
그러면서도 그는 분류작업 인력 비용을 사측이 부담한다는 명확한 표현이 없음을 우려했다. 택배기사는 '개인 사업자' 신분으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이기에, 새로 투입되는 분류 작업 인력의 비용을 택배 기사에게 부담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주안씨는 분류 비용을 회사가 100%를 부담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한진택배가 그나마 좀 나은 편이라는 평가를 덧붙였다.
노동자, 정부, 택배사가 참여하는 '민관공동위원회' 구성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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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서울 서초구 CJ대한통운 강남2지사 터미널 택배분류 작업장에서 택배기사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
ⓒ 국회사진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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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우씨는 이번 CJ대한통운에서 발표한 '택배종사자를 위한 종합대책'에서 '건강한 청년이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배송의 적정 물량을 산출하고, 이를 초과해서 일하지 않도록 바꿔 가겠다'는 구절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건강한 청년이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적정 물량'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통계적으로 측정 가능한지도 의문이지만, 현재 우선 문제가 되는 무임금 노동인 분류작업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배송물량을 조절한다면, 당장 임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어요. 적정 물량을 논하려면, 적정 수수료부터 논해야 한다고 봐요."
그의 말대로 택배 산업이 시작된 이래 택배 기사들에게 돌아가는 건당 배송 수수료는 계속 하락해왔다. 회사는 엄청난 수익을 내는데, 그러한 수익에 가장 크게 공헌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건당 받는 수수료는 갈수록 줄어든 현실도 이제는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는 "과로사 대책위와 전국택배연대 노동조합이 줄곧 요구해온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해서 택배 노동을 둘러싼 문제를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주안씨 역시 '민관공동위원회' 구성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택배 노동자들과 정부 관련 기관, 그리고 택배회사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해서, 대화와 협의를 통해 일회적 발표가 아닌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이해 당사자들이 모이면 해법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또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생활물류서비스법(일명 택배법)이 통과된다면 조금 더 상황이 나아지겠죠."
이광우씨는 이번 발표와 대책이 대한통운을 비롯한 세 개 회사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회사도 이에 화답해야 함을 강조했다.
"분류작업 인력 투입만으로는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고요. 출발점이라고 봐요. 노조 활동을 하면서 제가 근무하는 CJ대한통운의 지점들뿐 아니라 여러 택배사를 방문했는데, 1970~1980년대도 아니고 정말 어처구니없는 현장이 너무 많아요. 가서 보면 비 다 맞으면서 몇 시간씩 분류작업하고, 자갈바닥에 휴대용 천막을 쳐놓고 물건을 그 안에 쌓아놓고 비를 피하고요.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현장의 복지 환경 변화 역시 시급한 문제거든요. 과로사를 막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도 필요하지만, 노동 강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장 복지도 필요해요. 그런 환경에서 5시간, 7시간씩 분류작업을 하고 나면, 배송할 힘이 남겠어요? 물론 지금 분류 인력을 투입한다고 하지만, 그 환경을 그대로 두면 새로 분류작업에 투입되어 일하는 그분들이 또 그런 환경에서 일하게 되잖아요. 그 또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저나 우리 조합원들이 노조 활동하는 이유도 그런 거예요. 저뿐만 아니라, 이 땅의 노동자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게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이니까요. 그 누구도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해도 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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