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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검찰의 비공개 예규 4개 전문 공개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훈령 포함 총 66개 ‘검증 불허’

본지, 자문 거쳐 일부 공개키로
‘자의적 검찰권’ 견제 논의돼야


검찰은 수사의 밀행성을 중시한다. 한 검사는 “우리 DNA에는 비공개 신념이 박혀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밀행성의 원칙을 일반 행정 업무까지 확대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최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업무 성과라며 “30여개 비공개 내규를 공개 전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검과 법무부를 합친 검찰 관련 조직 전체의 비공개 내규는 총 66개(대검 48개, 법무부 18개)에 달한다. 안보를 담당하는 국방부(62개)보다 많다.

예규와 훈령을 통칭하는 내규는 국가기관의 비밀주의를 잘 보여준다. 국가기관에는 비밀이 있을 수 있다. 국가정보원은 누설될 경우 안보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정보를 기밀로 취급한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범죄 예방, 공소 제기·유지, 형 집행 등 직무수행을 곤란하게 하는 사안이나 형사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가 침해될 만한 정보를 비공개한다. 그 외 모든 사안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적극적 공개”가 원칙이다. 국민의 알권리, 국정에 대한 국민 참여,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위해서다.

검찰은 비공개 방식도 철저하다. 어떤 내규들을 비공개로 하는지 목록도 공개하지 않는다. 비공개 사유는 물론 존재 자체도 외부에서 검증할 수가 없다. 그간 검찰은 수사 밀행성과 로비 방지라는 명목으로 내규를 비공개했다. 그러나 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최근 “자의적 기준에 따른 비공개”라며 “다른 국가기관에 의한 견제마저 받지 않는다면 내부 규정을 통한 자의적 검찰권 행사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법률 자문과 검토를 거쳐 검찰 비공개 예규 4개의 전문을 공개하기로 했다. ‘사건배당지침’(대검 예규 제848호), ‘인권수사자문관 운영에 관한 지침’(대검 예규 제960호), ‘검찰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지휘·지시 내용 기록에 관한 지침’(대검 예규 제977호), ‘검사 평가자료 수집·관리에 관한 지침’(대검 예규 제990호)이다. 사건배당지침은 전관예우의 원인으로 꼽혀 수년째 문제가 지적됐지만 배당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활발한 개혁 논의를 위해 해당 지침이 공개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자체 개혁안으로 내놓았던 인권수사자문관 지침과 의사결정 기록에 관한 지침은 개혁안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점 등 보완할 부분에 대한 외부 판단을 받기 위해 공개를 결정했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뒤로 2일 오후 어둠이 깔리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최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30여개의 비공개 내규를 공개로 전환한 것을 업무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여전히 검찰 조직 전체의 비공개 내규가 66개에 달해 비밀주의가 강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준헌 기자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뒤로 2일 오후 어둠이 깔리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최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30여개의 비공개 내규를 공개로 전환한 것을 업무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여전히 검찰 조직 전체의 비공개 내규가 66개에 달해 비밀주의가 강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준헌 기자

 

‘윗선 입맛대로’ 길 터놓은 사건배당지침
‘인권수사자문관’ 검증 길 없는 검찰개혁안
감춘 채로 두고 싶은 그들만의 예규

대검 비공개 주요 예규의 문제점
사건배당지침 - “만병의 근원 전관예우, 배당에서 시작한다”
인권수사자문관 운영에 관한 지침 - “수사 결론의 정당성을 주기 위해 만든 면죄부 장치 될 소지”
검찰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지휘·지시 내용 등 기록에 관한 지침 - “정말 실행되는지 밖에서도 알 수 있어야”

대검찰청은 지난달 7일 비공개 내규 29개를 일괄 공개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비공개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직 비공개로 남아 있는 대검 내규는 모두 48개인데, 이 중에는 1순위 개혁 대상으로 꼽힌 ‘사건배당지침’ 예규가 있다. 검찰이 스스로 만든 개혁안도 다수 비공개된 상태다. 검찰 수사의 오류를 스스로 점검하기 위해 만든 ‘인권수사자문관 운영에 관한 지침’ 예규와 검사동일체 문화를 깨기 위해 만든 ‘검찰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지휘·지시 내용 기록에 관한 지침’ 예규 등이다.

우리끼리만 알자…전관 ‘인센티브’ 된 예규

사건 배당, 법령에 구체적 기준 없고
검찰청의 장에 무제한 재배당 권한
개혁위 “기준위 설치” 권고 이행 안 돼

사건배당지침은 검찰의 사건 배당 기준 및 절차를 정한 내규다. 지난해 10월 경향신문은 사건배당지침 내용을 보도하면서 각 검찰청의 장에게 지나친 배당 재량권을 부여한 일부 조항의 문제점을 전했다(2019년 10월24일자 4면). 그 무렵 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도 불투명한 사건 배당 방식을 해결하는 ‘사건 배당 기준위원회’ 설치를 권고했다. 그 뒤로 1년이 지났다. 사건배당지침은 2016년 마지막 개정된 이후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다. 개혁위 권고도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사건 배당은 법령에 구체적 기준이 없고 오직 대검 예규에 따라 운영된다. 그 내용이 비공개라 자의적 사건 배당이 있는지에 대해 외부 감시가 불가능하다. 권영빈 변호사는 “오랜 문제로 지적됐는데 개선의 여지가 없다면 지침을 공개해 외부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검은 사건배당지침이 비공개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공개될 경우 업무 수행에 지장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상명하복 문화와 전관예우 등 다양한 문제가 현 사건 배당 방식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실제 배당지침에도 검찰청의 장에게 자의적인 배당을 보장하는 내용이 다수 담겼다.

4조 ‘배당의 기본원리와 배당 준비’는 각 검찰청의 장들이 사건 배당을 할 때 준수해야 할 4개의 추상적 기준을 나열했다.

이에 따르면 검찰청의 장은 사건을 배당할 때 수사 검사의 전담·전문성, 수사지휘 관할 지역의 지휘·관련성, 검사별 사건 부담 균형을 맞추는 합리·형평성, 시기별 각 검사의 부담량과 능력을 고려하는 시의·상당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과 별개로 5조는 검찰청의 장이 모든 유형의 사건을 자신이 원하는 특정 검사에게 직접 배당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검찰청의 장이 직접 배당할 수 있는 사건의 종류를 나열하면서 맨 마지막에 ‘그 밖에 검찰청의 장 등이 직접 검사에게 배당할 필요가 있는 사건’을 포함하는 식이다.

검찰청의 장은 사실상 무제한의 사건 재배당 권한을 갖고 있다. 8조에는 ‘검찰청의 장은 직접 배당한 사건에 대해 재배당이 필요한 경우 재배당한다’고 적혀 있다. 재배당은 사건 처리를 놓고 주임검사와 지휘부 간 의견이 다를 때 윗선의 입맛대로 사건의 결론을 이끌 수 있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중간간부급 A검사는 “위에서 원하는 대로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더니 다른 검사에게 사건이 재배당된 경험을 겪었다”며 “이런 일은 검찰에서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검찰청의 장은 배당 기준도 새롭게 만들 수 있다. 9조는 “검찰청의 장은 청별 사정을 고려해 필요한 경우 지침 본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사건 배당 기준 및 절차, 배당 현황의 보고 등에 관한 자체 기준을 마련하여 시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지침은 마지막으로 개정된 2016년 7월1일 기준으로 매 3년이 되는 시점마다 타당성을 검토하도록 되어 있지만 내규는 3년 전과 비교해 개선되지 않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임의로 사건 배당이 가능해 전관예우가 우려된다’는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배당 방식은) 전관 특혜의 하나의 원인”이라며 “특혜를 폐지하기 위해 검찰청법과 직무 이전·승계 권한과의 조화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답했다.

지난달 7일 대검이 공개로 전환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협의체 등 운영에 관한 지침’도 비공개 과정에서 전관 변호사에게 특혜로 작용했다. 이 지침은 수사팀과 지휘부가 사건 처리를 놓고 의견이 갈릴 때 검찰 내·외부의 형사법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해 사건 심의를 맡긴다는 내용이다. 지난 6월 ‘검·언 유착’ 의혹을 받은 채널A 이동재 전 기자 측이 자문단 소집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대검에 제출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화제가 됐다. 일반 변호인들은 자문단의 존재 자체를 몰랐고 규정상 사건 당사자는 자문단 소집 권한이 없었음에도 진정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당시 이 전 기자 측 변호인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맡았다. 유승익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결과적으로 사건 당사자가 자문단을 소집할 수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 절차는 피의자 방어권과 관련이 있었음에도 검사 출신만 알고 활용했다”고 말했다. 양홍석 변호사는 “일반인은 모르고 검사 출신은 모두 안다면 전관 인센티브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단독]검찰의 비공개 예규 4개 전문 공개

개혁안 만들어놓고 비공개, 이행 ‘검증 불가’

검 내부서도 ‘인권수사자문관’ 두고
“특수부 결론 정당성 위한 면죄부”
‘지휘 내용 기록’ 지침도 활용 의문

검찰은 검찰개혁안으로 만든 내규도 비공개했다. 2017년과 2018년 각각 도입한 ‘검찰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지휘·지시 내용 등 기록에 관한 지침’과 ‘인권수사자문관 운영에 관한 지침’이 대표적이다. 인권수사자문관은 검찰 내에서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맡는 대검 소속 검사들이다. 수사팀의 확증편향, 수사 과정상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류 등을 내부에서 검토해 걸러내고 기소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명칭에 ‘인권’이 들어가긴 하지만 수사 과정의 인권 침해 행위를 감독하는 각 검찰청 소속 인권감독관과는 역할이 다르다.

‘인권수사자문관 운영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전국의 모든 특별수사부(현 대검 반부패부 산하) 수사 사건은 원칙적으로 인권수사자문관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 이 지침의 5조와 7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방검찰청의 특수부 사건은 신병 및 기소 여부에 대해 인권수사자문관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형사부·공안부 사건도 “특별수사에 준하는 객관적 자문이 필요한 사건”은 인권수사자문관 자문 대상이 될 수 있고 특수부 사건과 관련된 진정, 탄원 사건도 자문 대상이 될 수 있다(6조). 이를 감안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된 정진웅 차장검사 등 다양한 사건이 인권수사자문관의 자문을 받았어야 한다.

인권수사자문관들이 모든 반부패부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문 활동을 했는지는 미지수다. 인권수사자문관은 도입 후 1년7개월여 동안 30여개 사건을 심리한 것으로만 알려졌다. 법무부는 지난 8월 대검 인권부를 대검 차장 산하 인권정책관 체제로 개편하면서 “인권수사자문관이 실효성 있게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수사자문관 운영에 관한 지침’ 5조 5항은 ‘대검 반부패부가 자문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검찰총장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인권수사자문관의 자문을 거치지 아니한다’며 예외 조건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지침에 규정된 인권수사자문관의 사건 검토 방식에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8조는 ‘자문관은 검토 과정에서 사건 담당 검사, 수사관, 사건 관계인, 변호인과 접촉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수사기록만 보고 검증한다는 것인데 인권수사자문관의 모델인 일본 총괄심사관이 수사 검사와 적극적인 토론을 통해 의견을 도출하는 것과 차이가 크다. 검찰 내에서도 인권수사자문관은 특수부 결론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면죄부 장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신업 변호사는 “상세 지침을 봐야 검찰이 만든 자체 개혁안에 과연 개혁적 요소가 있는지, 실제로 제대로 운영되는지를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검 관계자는 “수사 점검 과정의 설계 내용 등이 공개되면 수사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며 “개혁을 위해 도입했지만 자랑 삼아 공개할 만한 내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검찰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지휘·지시 내용 기록에 관한 지침’도 문무일 검찰총장 당시 내부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도입됐다. 검사동일체 문화를 깨기 위한 개혁안으로 만들어졌지만 제대로 활용되는지 밖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중간간부급 B검사는 “초반에는 팀 밖에서 의사 기록을 볼 것을 우려해 기록에 소극적이다 최근 나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기록 대상은 ‘상급자와 주임검사 혹은 각 검찰청과 대검 간의 이견이 발생할 때’이다. 상급자가 상신된 결재를 반려하거나, 상급자 또는 대검이 구체적 지휘·지시를 해서 결재 절차 외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기록 대상이다.

검사 평가는 어떤 기준으로?…“인사와 별개”

총장에 보고되는 개별 검사 평가 자료
법무부 요청 땐 전달할 수 있지만
그 예규도 비공개라 ‘묻지마 인사’가능

 비공개 대검 예규 ‘검사평가자료 수집 관리 등에 관한 지침’은 검찰총장에게 보고되는 개별 검사에 대한 평가 자료에 무엇이 포함되는지를 담고 있다. 2조에 따르면 각 부서의 각종 포상, 격려 내역, 분야별 우수업무 사례, 미담·선행 사례, 감찰 조사 및 징계처분 결과, 감찰 세평, 사건평정, 사무감사 결과 및 각급 청의 장이 제시하는 의견 등 일체 자료가 검사 평가자료에 해당한다.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이러한 자료를 종합해 정리한 내용을 매 분기 1회 또는 필요한 경우에 수시로 검찰총장에게 보고할 수 있다. 법무부 요청에 따라 이 자료를 법무부에 전달할 수도 있다. 법무부 예규인 ‘검사 석순 기준’도 비공개라 구체적으로 검사 순위를 어떻게 매기는지는 외부에서 확인할 수 없다. 그간 객관적 평가 자료와 별개로 검찰 인사가 이뤄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후배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공판에서는 음주운전, 변호사 소개 등으로 징계 감찰을 받은 검사들이 희망지로 인사 배치되는 사례가 제시됐다. 복무평정 순위가 좋아도 희망지 반영이 되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030600015&code=940301#csidx55b41133264d7228f5d98bb9b628d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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