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타락과 부채라는 이름의 독약
내부 분열, 제국을 안으로부터 무너뜨리는 불길
다섯 가지 전쟁과 흔들리는 패권
새로운 질서의 태동과 주권국가의 과제

최근 열린 뮌헨안보회의(MSC)에서 세계 주요 지도자들은 1945년 이후 구축된 국제 질서의 종말을 고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세계 질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지금은 ‘강대국 정치’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단언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또한 유럽의 기존 안보 구조는 사라졌으며 유럽은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역시 “구세계는 가고 새로운 지정학적 시대가 도래했다”고 평가했다. 세계적인 투자 전략가 레이 달리오는 이러한 현상을 그의 저서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서 제시한 ‘거대 주기(Big Cycle)’의 제6단계로 규정했다. 제6단계는 규칙이 사라지고 ‘힘이 곧 정의’가 되며, 강대국 간의 충돌이 발생하는 극도의 무질서 상태를 의미한다. [편집자주]

역사는 반복된다. 흥망성쇠의 수레바퀴는 자비가 없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수장 레이 달리오는 최근 발표한 담론을 통해 미국 제국의 황혼을 선포했다. 그는 단순히 경제 수치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난 500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순환(Big Cycle)’의 법칙을 통해 미국이 마주한 파멸의 징후를 조준했다.

그는 “지금 미국이 부채의 늪과 내부 분열의 불길, 그리고 외부 세력과의 충돌이라는 삼중고 속에 있다”며 “이는 과거 네덜란드와 영국이 제국의 지위를 내려놓기 직전에 보였던 쇠락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화폐의 타락과 부채라는 이름의 독약

제국이 몰락으로 치닫는 첫 번째 징후는 경제의 근간인 화폐와 부채에서 나타난다. 달리오는 제국이 힘을 잃기 시작할 때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빚을 지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재 미국의 국가 부채는 천문학적이다. 국내총생산(GDP)을 훌쩍 뛰어넘는 빚은 이미 통제 불능 상태다.

문제는 이 빚을 갚을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정부는 세금을 걷어 빚을 갚기보다 더 쉬운 길을 택한다. 중앙은행을 동원해 돈을 찍어내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화폐의 타락이다. 시장에 종잇조각에 불과한 달러가 넘쳐나면, 화폐 가치는 곤두박질치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실질 구매력이 사라진 화폐는 더 이상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위엄을 갖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통화 가치의 하락은 제국 붕괴의 서막이었다. 저축하는 사람들의 재산을 강탈하고, 성실히 일하는 민중의 삶을 파탄 내는 이 파렴치한 방식은 결국 체제에 대한 신뢰를 뿌리째 뒤흔든다. 미국의 경제 패권은 지금 스스로 찍어낸 달러 더미에 깔려 질식하고 있다.

내부 분열, 제국을 안으로부터 무너뜨리는 불길

달리오는 경제적 위기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내부의 질서 파괴라고 경고한다. 제국이 번영할 때 쌓인 부는 소수 특권층에게 집중된다. 빈부격차는 극에 달하고, 민중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오늘날 미국의 상위 0.1%가 하위 90%를 합친 것보다 많은 자산을 소유한 현실은 사회적 폭발의 도화선이다.

사상의 양극화는 대화와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나뉘어 서로를 적대시하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정치인들은 대중의 분노를 이용해 서로를 공격하며, 법과 질서 대신 증오를 선동한다. 달리오는 이를 '사실상의 내전 상태'로 규정한다.

역사에서 힘이 강해진 세력은 늘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기득권에 도전하는 세력과 충돌했다. 지금 미국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단순한 정치 다툼이 아니라, 낡은 체제가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배고픈 민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지배층이 분열하여 제 기능을 상실할 때 제국은 안으로부터 무너져 내렸다. 미국 역시 이 역사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다섯 가지 전쟁과 흔들리는 패권

 

미국은 현재 전 세계를 상대로 다섯 가지 전쟁을 치르고 있다. 무역 전쟁, 기술 전쟁, 지정학적 영향력 전쟁, 자본 전쟁, 그리고 실질적인 군사 전쟁이다. 과거 미국은 압도적인 힘으로 세상을 굴복시켰으나, 이제는 강력한 도전자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무역과 기술의 우위는 이미 옛일이 되었다. 공급망을 무기화하고 자국 중심의 질서를 강요하는 미국의 행보는 오히려 세계 각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새로운 결제 체계가 등장하고, 지정학적 요충지마다 미국의 통제권이 약화하고 있다.

특히 군사적 충돌의 위험은 임계점에 다다랐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획책하며 패권을 유지하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국력을 소모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달리오는 미국이 외부의 도전자를 억누르기 위해 쏟아붓는 막대한 비용이 결국 자국의 파산을 앞당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쇠락하는 제국이 지위를 지키려 벌이는 무리한 전쟁은 몰락을 가속하는 촉매제일 뿐이다.

새로운 질서의 태동과 주권국가의 과제

레이 달리오의 분석은 "영원한 제국은 없으며, 모든 체제는 스스로 지은 죄로 인해 멸망한다"는 진리다. 미국이 자부해 온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허울은 이미 벗겨졌다. 부채로 연명하고 증오로 갈라진 제국에게 남은 것은 비참한 종말뿐이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전환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낡은 것은 가고 새로운 것이 오는 시기는 언제나 혼란스럽다. 그러나 이 혼란은 새로운 정의를 세우기 위한 산고다. 미국의 몰락은 단순히 한 국가의 위기가 아니라,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고 착취하던 낡은 국제 질서의 종언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역사의 격변기를 어ᄄᅠᇂ게 맞이해야 할까. 제국이 뿌리는 공포와 거짓 선동에 휘둘리지 말고, 무너지는 패권의 잔해 속에서 진정한 주권과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빚더미 위에 세워진 허망한 번영이 아니라,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 되는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

달리오의 경고는 제국주의의 마지막 비명이다. 그 비명이 크면 클수록 새로운 시대의 발자국 소리는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방증이다. 이제 우리는 제국의 난파선에서 내려, 우리 스스로가 운전대를 잡는 자주적인 항해를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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