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NLL 논란? 노무현은 옳았다!

 

 

[프레시안 books] <정세현의 통일토크>

한승동 <한겨레> 문화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7-05 오후 6:37:48

 

 

2007년 10월의 남북 정상회담 때 나온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발언 내용이 불법적으로 유포, 공개되고 정치 흥정의 대상물로 전락했다. 지구상에서 참으로 희귀하고도 기괴한, 그리고 비극적이고도 희극적인 반공국가 대한민국, 그 시대착오적인 냉전국가의 실체를 거기서 본다.

이 문제가 언론에 등장한 것은 지난 연말 대선 때였다. 그 5년 전의 전임 대통령 발언록이 왜 그때 불쑥 불거져 나왔을까. 공개 자체가 법으로 금지돼 있는 내용이 어떻게 세간에 흘러나오고 집권당이 이를 문제 삼았을까. 권력을 쥐고 있던 자들이 그것을 집권당 대선 전략으로 활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집권 연장을 위한 이데올로기 공세 도구로 활용하려던 그들은 노 전 대통령의 발언 내용 중 일부를 자의적으로 짜깁기해 흘리면서 정치적 반대파를 위험한 '종북좌파'로 몰아가는 반공 매카시즘을 다시 또 부추겼다.

그리고 그 문제가 대선 뒤 국정원의 불법적인 대선 개입 논란이 거세지면서 다시 등장했다. 아마도, 그대로 두면 대선 불법개입 공작을 지시한 국정원 수뇌부와 국정원이 위험해지고 공모 가능성이 짙은 집권당과 권력자들 또한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리하여 국정원의 대선 개입 비리를 입증하는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는 순간, 난데없이 과거 대통령의 NLL 발언 내용이 다시 정치 쟁점화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 국정원 불법비리 혐의라는 문제의 본질은 묻히고 엉뚱하게도 공개돼선 안 될 전임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 내용을 공개하는 게 맞느냐 틀리느냐, 그 내용이 '나라 팔아먹은 종북좌파'의 매국 행위냐 아니냐 따위의 곁가지, 근거 모호한 에피소드들이 사건의 본질인 양 행세하고 있다. 저질 코미디를 보는 듯했던 '윤창중 사건'이 상징하는 권력 주변 문제도 NLL 거품 속에 녹아버렸다. 그게 바로 노림수다. 수구 언론 매체들은 언제나 그랬듯, 거기에 맞장구치며 모략가들을 결과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고인의 발언을 자의적으로 비틀어 사건을 날조한 혐의가 짙은 이 '사기극'의 핵심에 구제불능의 언론이 자리 잡고 있다.

노 전 대통령 발언이 공개되든 말든, 또 얼마만큼 공개되든 상관없이 결국 발언 내용 중에 문제될 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설사 있다고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실체 규명이 목적이 아닐 테니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주류 수구세력에게 법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유엔 가맹국인 북한은 그들에겐 국가가 아니다. 통일 문제의 당사자요 논의 상대임에도 그들은 전혀 그런 대우를 해줄 생각이 없다. 국내 정치적 이용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면 북과의 약속이나 국가 대 국가로서 지켜야 할 기본 룰조차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특권 유지를 위해서라면 '빨갱이'들쯤은 마음대로 처분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지닌 극단적 반공투사, 이미 다른 곳에서는 다 흘러가버린 '냉전의 전사',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분열증적 영웅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유사 사태가 1992년 남북 고위급회담 때도 벌어졌다. 당시 안기부장 특보를 하다 고위급회담 남쪽 대변인을 맡고 있던 이동복의 '훈령조작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처(피랍 동진호 선원 송환요구 철회)를 취하라는 청와대 훈령을 중간에서 가로채 우리 쪽 회담 대표에게 전달하지도 않고 자기 고집대로 회담을 끌고 가 결렬시켰다. 그리고 훈령조작 사실을 은폐했다가 나중에 들통 났다. 감사원 감사를 통해 드러난 범죄 행각은 정상적인 국가에서 보기 드문 것이었다. 좁은 세계에 갇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것을 희생시켜도 상관없다는 가치관·세계관의 소유자들. 그런 유형의 시대착오적이고 광신적인 반공투사들이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핵심부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국정원 대선 불법개입과 전직 대통령 NLL 발언 공개 논란은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남북한 통일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나라 바깥의 힘센 자들과 한통속이 돼 뭔가 일이 될 만하면 사사건건 훼방을 놓으면서 70년 세월의 분단구조 속에서 특혜를 누려왔다.
 
 

▲ <정세현의 통일토크>(정세현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30여년 통일 문제 전문가로, 통일부 장·차관으로, 남북대화 현장 핵심멤버로 일한 정세현 원광대학교 총장이 체험을 토대로 쓴 <정세현의 통일토크>(서해문집 펴냄)를 읽노라면 이 뒤틀린 인간들과 뒤틀린 구조가 한결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 70년 묵은 복잡하고 뒤틀린 문제를 그만큼 구수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러면서 문제의 본질과 핵심을 그만큼 쉽고 명쾌하게 풀어내는 이도 드물 것이다. 책은 박정희 정부 이후 이명박 정부까지 역대 정부의 남북관계 현장 30년 역사를 통사적으로 요약 정리한 1부,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주제 7가지를 '한반도 평화를 여는 일곱 개의 문'이란 제목으로 정리한 2부, 그리고 남북접촉 현장의 에피소드들을 묶은 3부로 구성돼 있다. <정세현의 정세토크>(서해문집 펴냄)의 자매편 격이지만 남북관계·통일 문제를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느낌을 준다.

먼저 이런 얘기부터 해 보자. 만일 2007년 10·4 남북 정상선언대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합의내용이 실행에 옮겨졌더라면? 그런데도 그 2년여 뒤인 2010년 3월의 천안함 침몰 사태가 일어났을까? 그럼에도 그 인근 해역에서 대규모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벌어지고 46명의 젊은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숨져간 비극이 일어났을까? 그리고 뒤이은 북의 연평도 포격 만행도? 우리 젊은이들의 피로 지킨 NLL을 사수해야 한다고 군과 집권당과 대통령은 말했지만,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무고한 젊은이들 피가 아니면 지킬 수 없는 NLL을 계속 '사수'해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 사수하지 않아도 지켜내는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사람들은 도대체 문제의 그 NLL에 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라는 게, 정확한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나온 것인지나 알고 있는 걸까?

2007년 10월 노무현-김정일 회담 뒤 발표된 '10·4선언'에 담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의 골자는 이랬다.

우리의 '서해 5도'가 산재해 있는 해주 앞바다와 주변 해역을 남북이 함께 안전하게 이용하는 '공동어로·평화수역'으로 지정한다. 해주경제특구를 개발하고 장차 해주-개성-인천을 연결하는 물류네트워크도 만든다. 해주와 인천간 직항로도 개설한다. 강화도와 북쪽 건너편 개풍군 사이에 다리를 놓아 개성공단을 좀 더 단거리로 남쪽과 연결함으로써 공단의 내실화, 확장을 꾀한다.

<정세현의 통일토크>에서 정 총장은 이렇게 썼다. "10·4 정상선언에는 여러 가지 계획과 사업들이 언급되어 있지만, 그 중 가장 의미 있고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서해특별지대)에 관한 합의사항입니다."

정상끼리 합의했다고 해서 일사천리로 진행되진 않았겠지만, 그 구상이 실현 가능할 뿐만 아니라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척될 수도 있으리라는 전망을 해도 될 만한 주·객관적 환경이 당시에는 어느 정도 조성돼 있었다. 경의선 철도가 연결되고 동해 쪽 도로·철도도 연결되거나 연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남쪽 사람들이 이미 육로로 금강산을 오가고 있었고, 개성공단도 시범단계를 넘어 대규모 확장이 구체화되고 있었다. 제주도와 남해안 사이에선 북쪽의 선박들이 탈 없이 통과하고 있었다.

"그건 정말 대단한 발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철도·도로 연결공사를 시작하고 개성공단 개발을 추진할 때는 '군사적 대치지역'을 '경제적 협력지역'으로 변화시켜나가는 식으로 접근하다 보면 결국 남북 간에 협력과 공존의 영역이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서 있었습니다. 그게 통일로 가는 가장 정확한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죠. 기능주의적 접근을 하되 경제와 군사를 연계시키는 개념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입니다. (…) 그런데 그 범위를 훨씬 더 넓힌 것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라는 것입니다. (…) 그럼 황해도까지도 군사긴장지역에서 경제협력지대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고 NLL 문제 때문에 툭하면 긴장이 고조되던 서해가 평화협력지대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서해특별지대가 실천에 옮겨지기 전에 이미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 부지로 내 놓은 지역에 있던 6만여 명의 북한병력이 10킬로미터 이상 북쪽으로 올라갔다"고 했고, 금강산 쪽 주둔 북한군 부대들도 금강산이 경제협력지대로 바뀌면서 그 북쪽으로 15킬로미터 정도 이동했다. 보수 성향의 <신동아>가 2005년 2월호에 여러 장의 위성사진과 함께 '개성공단 일대 군사시설 전격 철거'라는 제목의 기사까지 실었다. 뿐만 아니라 경협이 확대되면서 그들 지역을 관리하는 북쪽 군대들이 어쩔 수 없이 남쪽 군대와 매일 통화하고 팩스도 주고받으면서 협력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에 따라 긴장완화, 신뢰구축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났다.

노 전 대통령이 북쪽 수뇌와 얘기했다는 NLL 관련 발언과 엮인 서해특별지대 구상은 그런 변화의 연장이자, 그것을 질과 양 모두 획기적으로 높이자는 남북 간의 합의였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은 이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협상과정에서 나온 것이며, 기록공개 여부가 논란이 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기록자들이 배석한 자리에서 이뤄진 것이다. 국민 대다수의 지지로 당선된, 수많은 공식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세계의 관심 속에 유엔 가맹국인 이웃나라를 공식방문 중인 자국 대통령을 나라를 팔아넘길지도 모르는 적국의 스파이쯤으로 간주하는 것은 정신병리학적 광기의 소산일까. 아니면 정치적 이득을 노린, 공작 차원도 못되는 졸렬한 수작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NLL을 넘어 분단체제 자체를 '사수'하려는 의지의 표명이거나.
 

▲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 김정일 국방위원장. ⓒ청와대 사진단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서해특별지대 구상뿐만 아니라 10·4 선언, 그리고 김대중 정부 때의 6·15 공동선언까지 전 정부들이 10년간 어렵사리 쌓아 올린 남북공사 토대들을 사실상 모조리 폐기처분해 버렸다. '박왕자 피살사건'으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자세는 한층 더 경화됐지만, 그 전 인수위 시절과 취임 이후 발표한 대북정책 기본구상인 '비핵·개방 3000'을 통해 강경 대결자세를 기조로 한 대북 정책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정 총장은 걱정했다.

"이명박 정부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합의를 포함해서 10·4 정상선언 전체를 부정했는데, 이렇게 한 것이 훗날에는 시간을 낭비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후회스러운 역사가 될 것입니다."

정 총장은 이명박 정부가 폐기해버린 이런 접근방식을 국제정치학상의 주요 통합이론들 가운데 하나인 '기능주의'로 분류했다. 정치 위주의 직선적 접근을 앞세우기보다는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비정치적·기능적 부문의 교류·협력을 통한 우회적 접근을 강화한 뒤 궁극적으로 정치적 통합을 꾀하는 방식이다.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치른 뒤 석탄·철강 공동체 등을 우회해 유럽연합(EU)을 결성하기에 이른 유럽의 전후 통합방식이 그랬다. 정 총장은 남북한의 경우 여기에다 정치적 요소를 가미해 의도적인 정치적 결단을 중시하는 신기능주의를 도입했다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이 바로 신기능주의 통합이론에 가깝다고 했다.

"더 많은 접촉을 통해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야만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이 햇볕정책의 기본철학 아닙니까? 접촉점을 무수히 찍으면 접촉선이 생기고, 접촉선이 무수히 생기면 접촉면이 넓어지고, 그런 접촉면이 자꾸 생기다 보면 접촉공간이 넓어지고, 그것이 바로 북한의 개방점, 개방선, 개방면, 개방공간이 되고, 이어서 통합점, 통합선, 통합면, 통합공간으로 연결된다는 철학입니다." 독일통일 방식이 그랬다.

김대중 정부 이후 이 신기능주의적 접근을 통해 남북 간 왕래가 보편화되고 통일 문제가 현실 문제가 됐다. 그러나 그렇게 되자 이번에는 남북 내부에서 각기 내부 갈등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통일 문제가 담론 차원에서 현실 차원으로 넘어가면서 냉전구조가 허물어지자, 냉전구조 위에 번성해온 기득권 세력이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 인한 우리 내부 갈등이 '남남 갈등'이다.

대한민국 수구세력은 북과의 갈등 증폭을 통해 남남 갈등을 조절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온존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그들은 북과의 갈등을 전면화하고 남쪽 내부의 반대세력을 모조리 종북좌파로 몰아 약화시키는 대신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했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총리 방북 때 나온 북의 일본인 납치 사실 시인을 북-일의 오랜 갈등 해소의 출발점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 증폭 수단으로 써먹은 일본 우파의 복사판인 '자학사관 비판'과 뉴라이트의 대두가 그것과 표리일체를 이룬다.

이는 정 총장이 <정세현의 통일토크>에서 자주 거론하는 독일 통일의 예와 매우 대조적이다. 통일 전 서독은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이후 통일까지 20여 년간 엄청난 '퍼주기'를 마다하지 않고 동독과의 대화·교류 확대에 매진했고 이에 대해서는 기독교민주당이나 자유민주당 등 보수·우파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회민주당의 브란트 동방정책을 계승해 독일 통일 마지막 단계를 완수한 건 헬무트 콜의 보수 기독교민주당이었다. 정 총장이 명시적으로 얘기하진 않았으나 <정세현 통일토크>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의 핵심 축 하나가 바로 한국과 독일의 이런 자세 대비일지도 모르겠다. 통일 문제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이 대표하는 한국 보수 우파의 기본자세는 '북이 먼저 변해야 대화도 하고 지원도 한다'는 것이다. 남쪽 보수 우익은 북이 먼저 핵문제에 대한 입장을 바꾸기만 하면, 말하자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쪽으로 가기만 하면 왕창 도와주고 체제안전도 보장하겠다고 줄기차게 얘기한다. 이는 북이 자세를 바꾸지 않는 한 대화도 지원도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일본이 북을 대하는 태도와 똑같다. 북이 먼저 굴복하지 않는 한 대화도 지원도 과거 청산도 수교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대화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독일의 자세는 이와 확연히 다르다. 서독은 동독에 대해 먼저 변하라고 요구한 게 아니라 '동독이 변하게 하려면, 동독을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했다. 동독에게 안 바뀌면 대화도 지원도 없다며 변화를 다그친 게 아니라, 동독이 서독의 요구에 호응하고 나설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었다. 그 핵심 수단이 바로 한국 보수 우파들이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퍼주기'였다. 한국 우파의 대북정책이 '바꾸면 주겠다'인데 비해 서독의 대동독정책은 '주어서 바꾼다'였다.

정 총장에 따르면, 1969년 동방정책이 시작된 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까지 20년 간 서독 정부가 직접 또는 교회 등 민간을 통해 동독에 지원한 돈과 물자가 1044억 마르크, 달러로 약 576억 달러나 됐다. 연간 평균 약 29억 달러쯤 되는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남이 북에 지원한 연평균 4억 달러의 7배가 넘는다. 지금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이 3조5000억 달러 정도고 우리가 1조1600억 달러(2012년) 정도인데, 이런 소득차나 국력차를 감안해도 통일 전 서독의 동독에 대한 지원 규모는 남한의 북에 대한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이에 대해 독일 국회나 언론은 그 20여 년간 한 번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고 한다. 이게 또한 한국과 독일이 다른 점이다.

한국 우파들 논리대로 그런 퍼주기 공세를 당한 동독이 그 돈으로 첨단무기를 사들이고 신무기를 개발하는 등 군사력을 길렀다면 독일 통일의 주역은 서독이 아니라 동독이 됐어야 한다. 그러나 서독의 퍼주기는 동독을 강하게 만든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동독의 해체를 크게 앞당겼다.

정 총장은 미국도 인정했듯이, 북이 미사일 기술 한 가지만으로도 연간 10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인 사실을 지적하면서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수익, 인도적 식량지원 등을 군사비, 나아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했을 거라며 김·노 정부의 퍼주기를 북핵 개발의 원흉으로 몰아가는 이들의 황당한 논리를 꼬집었다. 그것보다는 북한 옥죄기와 북이 느낀 체제위기 공포가 북핵 개발을 촉발시켰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설에 가깝다.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상대를 어떻게 해서든 변화시켜 통일을 달성하는 방책을 제시하는 게 통일정책의 존재이유 아닌가. 독일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정 총장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추산하는 북의 1인당 국민소득은 대체로 1000달러. 그런데 북한 경제를 연구하는 러시아 등의 전문가들은 그 절반인 500달러 정도로 본단다. 이를 기준으로 시산한 2010년대의 대체적인 남북한 1인당 소득차는 2만 달러 대 500달러. 즉 북의 소득수준은 남의 40분의 1. 남북의 인구가 2 대 1이니까 총량 기준으로는 무려 80 대 1의 격차다.

국방비만 보면, 남의 2013년 전체예산이 약 340조 원이고, 그 중에서 국방예산은 약 10퍼센트인데, 달러로 환산하면 330억 달러 정도. 이에 비해 북한의 1년 예산은 지금 60~70억 달러가 못 된다. 그 중에서 50퍼센트, 즉 절반을 군사비에 쏟아 붓는다 해도 30~35억 달러밖에 안 된다. 남북의 군사예산에 10 대 1의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이 실패한 나라, 취약한 북을 바꾸기는커녕 체제 생존을 결과적으로 도와주는 듯한 대북정책, 통일정책. 북을 변화시켜 통일로 가기 위한 방책이 아니라 북의 변화를 가로막고 분단을 영속화하기 위한 방책. 그것으로 이득을 보는 자들…. 유치한 음모론이라고 하겠지만, 그럴 리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1990년대 중반, 통일 뒤 독일에서 과다한 통일비용이 논란거리가 됐을 때, 일본 장기신용은행이 한반도 통일비용을 예측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독일 사례를 기계적으로 한반도 통일에 대입한 그 연구는 남북한이 통일되면 10년 동안 매년 한국 GDP의 15퍼센트씩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한국 혼자의 힘만으로는 감당 못할 테니 결국 일본이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는 논평까지 달았다. GDP의 15퍼센트면 국가예산의 거의 절반인데, 차라리 통일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만큼의 출혈이다.

그 연구를 계기로 우리 국내에서도 통일비용 연구 붐이 일었고 하나같이 천문학적인 통일비용들을 제시했다. 40퍼센트가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한 7월 2일의 서울대생 대상 통일의식 관련 조사 발표까지 증폭돼 온 통일에 대한 부정적 사고의 근저에는 이런 경제적 요인, 특히 천문학적 통일비용이 자신의 호주머니를 비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것을 누구보다 먼저 촉발한 게 일본이라는 게 아이러니라고 정 총장은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의 통일비용, 통일세 얘기도 거기에 연원이 닿아 있다.

하지만 정 총장은 그런 식의 통일비용 산정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독일의 통일비용이 산더미처럼 커진 것은 통화통합 탓이 가장 크다. 동서독 화폐는 당시 명목상으로는 2 대 1, 실질적으로는 4 대 1 정도의 가치 격차가 있었다. 즉 서독의 1마르크는 동독 돈 4마르크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동서독의 통합을 서두르면서, 동독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정치인들이 동서독 화폐를 1 대 1의 동일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하는 통화통합을 강행했다. 그 결과 동독인들의 마음을 일시적으로 사로잡았지만, 서독의 4분의 1 가치 밖에 없는 노동력과 기술, 물품에 1마르크의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비용은 4배로 늘었다. 게다가 동독 고향의 땅문서를 지닌 서독인들에게 그 토지에 대한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동독 땅값을 일거에 치솟게 만들었다. 결국 높은 인건비(노동력)와 땅값 때문에 서독 기업들이 동독 진출을 꺼렸고, 그것은 동독경제의 오랜 침체와 동서독 소득격차, 고실업 등을 초래해 결과적으로 통일비용을 엄청나게 부풀렸다.

일본 장기신용은행의 통일비용 연구는 이런 사정을 무시했으며, 엄청난 분단비용도 고려하지 않았고, 또 통일될 경우 비용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는 통일수익 또한 논의대상에서 빼버렸다. 정 총장은 말했다.

"그러니 통일을 포기하는 것이 차라리 편하게 사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무서운 분단 이데올로기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참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우리 분단의 근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데 통일 공포증까지 유포시키면서 분단을 지속시키려는 장난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일비용 과다론, 이거 정말 무서운 분단 이데올로기입니다."
 

이것 역시 북한 붕괴론, 흡수 통합론의 득세와 표리관계다.

정 총장이 인용한 신창민 중앙대 명예교수의 '통일비용과 분단비용'(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홈페이지 자료실에 들어가 116번 자료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단다)을 보면 통일비용은 통일되는 날부터 10년 동안 매년 GDP의 6~6.9퍼센트가 들어가는데, 우리 GDP가 지금 1조 달러 남짓이니 600억~690억 달러쯤 된다. 그런데 통일이 되면 지금 쏟아 붓고 있는 분단비용을 쓰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해마다 30조원 이상, 국가예산의 9~10퍼센트, GDP의 3퍼센트 정도를 국방비로 쓰고 있다. 기타 외교비용 등을 합하면 해마다 분단비용으로 GDP의 4.35~4.6퍼센트를 쓰고 있는데, 통일되면 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예상 통일비용에서 이 분단비용을 뺀 순 통일비용은 GDP의 1.65~2.3퍼센트, 평균 2퍼센트 정도가 된다. 2011년 GDP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연간 200여 억 달러, 20조 원 정도가 되는데, 지금의 국방비 연평균 34조 원의 60퍼센트 정도다. 게다가 통일 뒤에는 연평균 11.25퍼센트의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고 신 교수는 추산했다. 거기서 2퍼센트의 순통일비용 만큼 빼더라도 연평균 GDP 9.25퍼센트의 고도성장을 할 수 있다.

이는 통일비용을 투자로 보는 사고와 맞물려 있다. 철도와 도로, 전기를 연결하는 등 북의 인프라를 새로 깔고 질 좋고 값싼 노동력과 토지를 이용해 공장을 짓고 저렴한 인건비로 경쟁력 있는 고품질의 상품을 쏟아내게 되면 북 주민소득 수준을 단기간에 크게 높일 수 있다. 거기에 필요한 비용을 몽땅 통일비용으로 간주할 수도 있지만, 더 큰 수익을 위한 투자로 볼 수도 있다.

남북 합해 7000만이 넘는 광대한 인구의 거대 시장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중국 동북3성(만주)과 러시아 연해주, 나아가 유라시아 대륙과의 연결로 이어지면서 섬과 같은 지금의 분단 약점을 일거에 털어버릴 획기적 차원 상승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반면 분단은 그런 가능성을 모조리 차단하고, 한반도 남북 모두 주변 대국들에 종속돼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약자 신세가 되도록 속박한다.

미국 주류세력 역시 한국 우파나 일본 우파들처럼 북이 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북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1차 북핵위기 때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를 불과 보름여 만에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공화당이 사실상 뒤엎은 것, 2005년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공동성명 발표 바로 다음날 미 재무부 매파 네오콘들이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 예치 북한 자금 동결조처로 공동성명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남북관계 자체를 동결시켜버린 것,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에 가고 조명록 북 차수가 워싱턴에 간 북-미 접근을 그 직후 대선에서 이긴 공화당 부시 정부가 가로막은 것, 2002년 고이즈미 방북과 함께 급진전되던 북-일 접근을 그 직후 평양에 간 제임스 켈리 국무차관보가 촉발한 북의 고농축우라늄 소동과 제2차 북핵 위기로 막아버린 것 등등. 정 총장은 이런 사건들의 실체와 의미를 일목요연하게,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오바마의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바라는 것은, 애초에 그들이 갈라 놓은 대로, 한반도 통일이 아니라 분단체제 유지일지도 모르겠다. 대신 미국이 바라는 통합은 한-미-일 통합이다. 그게 일본 우파 이익에도 부합한다. 한-미-일 통합은 북-중 통합 또한 보장해줄 테니까, 중국 역시 영구분단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약자들의 이해는 아랑곳 않는 대국들의 분할 통치방식이다. 거기에 국내의 일부 광신적 반공투사들이 동조하면서 분단구조 속에서 특혜를 누려온 자신들 기득권을 영구화하려 할 것이다. 그 자신 1980년대 말까지 반공투사였던 정세현의 '통일토크'는 그걸 꿰뚫어 보라고 주문한다.
 

 
 
 
 

 

/한승동 <한겨레> 문화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요즘트위터페이스북더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