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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수' 없는 미·중 경쟁…'바이든 시대' 한국은?

 

[인터뷰 - 바이든 시대] ③ 현실 직시 외교전략, 한미동맹 재구성 필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미국 전문가인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바이든 정부 출범을 계기로 향후 미국 패권의 향방과 한반도 및 동아시아의 미래를 조망해 봤다. 구체적으로 바이든 집권의 의미, 트럼프 집권과 퇴장의 의미, 미중 관계와 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전망 등 세 분야에 걸쳐 알아봤다.

 

인터뷰는 지난 13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후 전화 인터뷰 등을 통해 내용을 보완했다.

 

▲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관련해 국내에서의 관심은 트럼프 행정부 때 시작됐다가 중단된 북핵 문제 해결 및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과연 언제 어떻게 재개될 것인가, 그리고 향후 바이든 행정부가 미중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아닌가 싶다.


 

이혜정 : 바이든 행정부의 최대 과제는 동맹 복원과 패권 회복인데, 결국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대내적으로는 중산층을 복원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부상을 일정하게 견제하는 한편 동맹과의 경제적 연계와 이익은 강화하는 방향으로 극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코로나로 인해 미국의 경제위기가 매우 악화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바이든은 대선 승리 연설 등에서 코로나19, 경제위기, 인종 갈등, 기후 위기 등 4대 과제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취임 직후의 최우선 과제는 코로나, 경제 위기 등 국내 문제 해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1조 9천억 달러의 코로나 지원금 발표는 이러한 대응의 일환이다.

 

대중국 정책이 대외정책의 최우선 과제인 것은 분명하고 중국에 대해 강경하게 한다는 게 미국 내 합의인 것 같다.

 

프레시안 : 대중국 견제는 2011년 말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 때부터 나오던 것 아닌가?


 

이혜정 : 그렇긴 한데 오바마는 공식적으로 중국 부상을 환영하며,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즉 기존 관여 전략의 연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정도 여유가 없다. 대선 과정에서 바이든은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신냉전-대결정책에는 반대하지만 핵 비확산과 기후변화 등에서는 중국과 협력하면서도 전략적 경쟁은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바마 행정부 때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입안했고 바이든 행정부에 신설되는 인도‧태평양 정책조정관으로 임명될 것으로 알려진 커트 캠벨이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의 입장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 대중정책의 방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는 오바마 이전의 대중 관여나 트럼프 행정부의 대결 정책 둘 다 문제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트럼프 때 훼손된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복원해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에 대응하며, 중국과는 사안 별로 협력과 경쟁을 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전략적 경쟁론이다.


 

그는 2018년 <포린어페어즈> 3/4월호 기고문에서 그동안 미국이 중국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에 빠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즉 중국을 세계경제에 참여시켜 중국경제가 발전하게 되면 중국 정치가 민주화되고 개방적 경제체제로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이는 헛된 희망이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대중국 관여 전략이 미국의 기대와 달리 중국의 민주화와 평화적 부상을 견인하는 데 실패했다고 선언한 데 이어, 트럼프의 대중국 무역 공세가 한창이던 2019년에는 파국은 회피하고 기후변화 등에서는 협력하면서 안보, 기술, 무역 등의 분야에서 중국과의 경쟁을 주창했으며, 2020년에는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중국의 공세적인 대외정책이 더욱 분명해져서 트럼프 행정부가 포기한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 복원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미국에는 전통적 관여, 전략적 경쟁론 외에 중국의 비자유주의적 체제 자체가 문제이므로 전면적인 대결을 통해 체제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대결론자들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탈패권을 주창하는 민주당 진보파의 입장이 있다. 중국, 미국 모두 노동자 착취하니까 그 게임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 군사주의, 자본주의의 플롯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입장은 여전히 소수다. 즉 주류에는 관여, 대결, 경쟁의 세 입장이 있는데 바이든은 경쟁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하지만 대결과 경쟁이라는 게 그 경계가 좀 애매하지 않나?
 

 

이혜정 : 민주당 주류도 공화당의 '체제 경쟁'까지는 아니더라도 반중 정서가 있다. 혐중, 반중 정서는 분명해 보인다. 또 기존의 관여정책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도 분명하다. 증거는 존 케리에 대한 공격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을 기후문제 특사로 기용했다. 그런데 중국과 체제 경쟁까지는 아니지만 전략적 경쟁을 주장하는 신주류에서 존 케리를 불러들인다는 것은 경쟁보다 협력이 우선될 위험이 있다면서 케리 기용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프레시안 : 인도‧태평양 조정관으로 내정된 커트 캠벨의 대중국 전략을 예상할 수 있나?

 

 

이혜정 : 좋은 자료가 있다. 2020년 1월 발간된 미국신안보센터(CNAS)의 <중국의 도전에 대한 대응(Rising to the China Challenge: Renewing American Competitiveness in the Indo-pacific)>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중국의 도전을 제대로 다루고 있는지를 검토해 달라는 미 의회의 의뢰로 작성된 것으로 CNAS는 캠벨이 2007년 설립한 싱크탱크다. 이 보고서 작업은 엘리 래트너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래트너는 캠벨과 함게 기존 대중 관여 정책을 비판한 인물이고 바이든 행정부 대중정책 실무책임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일관성이 없고 조율되지 않았으며 자원 투입이 부족했다고 평가하면서, 다음 6가지 평가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는 향후 바이든 행정부 대중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볼 수도 있다.

 

첫째, 중국 문제는 현재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미국 외교 전반을 조직하는 원칙이 돼야 한다.

둘째, 군사, 기술, 외교, 이념, 거버넌스, 인적 자원 개발 등 모든 영역에서 포괄적이고 조율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셋째, 미국 자신의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 

넷째, 동맹과 함께, 동맹을 위해 중국과 경쟁해야 한다. 

다섯째, 중국의 도전에 대한 대응을 넘어 새로운 규칙과 제도 등 새로운 지역 질서를 적극적으로 창출해야 한다.

여섯째, 중국 문제의 단기적 해법은 없고 미 국민의 일정한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좋은 얘긴데, 문제는 미국의 능력과 실천 가능성이다. 예컨대 미국의 경쟁력 제고야말로 가장 근본적 해결책이지만, 코로나19 이후 미중의 국력 격차는 더욱 급속히 좁혀지고 있다. 대중 무역이 1순위인 나라가 더 많아졌다.

 

중국이 '쌍순환'과 기술 자립, 군사력 강화 등의 경제개발계획을 확정하는 동안 미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코로나19가 창궐하고 대선 불복으로 정권 교체가 늦어지고 있었다. 미국이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려면 첨단기술에 투자하고 해외 브레인들 모으고 해야 하는데, 백인우월주의와 반이민 정서가 끓어오르는 판국에 누가 미국에 가려 하겠나?

 

또 하나, '동맹과 함께, 동맹을 위해 중국과 경쟁'한다는 건 동맹의 참여로, 동맹에도 이익이 되는 대중 경쟁을 하겠다는 건데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반중연합을 만들려면 동맹에게 뭔가를 주어야 한다. 미국 편에 설 경우 확보할 이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보고서가 트럼프의 대중국 정책에 대해 가했던 가장 대표적 비판은 다른 국가들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미국의 반(反)중국 연합 참여를 강요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들에게 중국 화웨이의 5G 통신 장비를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게 가능하려면 화웨이를 대체할 수 있는 걸 동맹에 줘야 한다. 반대급부는 하나도 없이 화웨이를 쓰지 말라고만 하면 어쩌라는 것인가? 화웨이에 대체되는 대안적 기술 체계를 공동으로 개발하자는 이야기를 한 적도 없다. 이렇게 강압만 하면 당연히 반중 전선을 형성하기 어렵다.


 

미중 경제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얘기하고 있는데, 이게 가능하려면 그동안 중국과의 경제 협력으로 이익을 보았던 동맹국이나 미국의 금융, 정보, 유통 대기업들에게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 내에서 이를 아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중국과 경쟁 영역을 줄이고 동맹국과는 사안 별로 연합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캠벨의 경우 중국과 통신기술이나 AI 분야 등에서만 싸우자는 건데, 설사 그렇다고 해도 동맹국들이 중국에 등을 지고 미국을 택할 경우 미국이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이냐는 질문이 남는다.


 

빅터 차 같은 사람은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 보복했을 때 미국이 한국을 보호해주지 못했다면서, 향후 미중 갈등이 벌어졌을 때 한국을 끌어들일 수 있겠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호주는 신장, 홍콩, 대만 문제 등에 대해 중국을 비판했다가 중국으로부터 혹독한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데 미국이 그 피해를 보상해 줬나.


 

한국에서는 미국이 미중 경쟁에서 대단한 묘수를 내놓을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실제 미국 안에서 나온 논의를 들여다보면 중국과의 탈동조화에 대한 미국의 대안이 거의 없다. 미국은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이다.

 

미국과 거래하며 먹고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사안별 협력 방식이 선호될 것이다. 그런데 이는 그 정도로 미국의 힘이 약화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적어도 담론과 정책을 취하는 방식에서 판단하자면 그렇다. 거꾸로 보면 미국이 그 정도로 자신이 없어졌다는 것이기도 하다.


 

▲ 20일(현지 시각) 미 의회 의사당앞에서 열린 46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조 바이든(왼쪽) 신임 대통령이 부인 질 바이든이 들고 있는 성경에 손을 올린 채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 복원을 통해 확고한 진영을 다질 것이기 때문에 미국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 미국 안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가 남긴 역설적인 두 가지 교훈이 있는데 첫 번째는 중동에서 금기라고 돼 있었던 이스라엘 주재 미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두 번째는 동맹으로부터 미군 주둔 비용 뜯어내는 것이다. 둘 다 하면 난리 날 줄 알았는데 막상 중동은 뒤집어지지 않았고 동맹들도 드러내놓고 미국에 불만을 표시하지 못했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별 반발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밀어붙여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반면 또 다른 교훈은 미국이 지도력을 행사해야 국제사회가 안정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는데, 그렇다면 미국 패권을 부정하고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웠던 트럼프 재임 기간이 국제적 혼돈 상태였나?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하면서 국제법 체계를 망가뜨리고 전 세계를 뒤집어 놓은 것과 비교하면, 트럼프 주장처럼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지 않은 것은 그의 치적이고 그런 불개입정책으로 오히려 전 세계가 안정된 측면이 있다.


 

파리 기후 협정은 미국이 없어서 안했나? 이건 미국의 지분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의 지분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에 대해서 무엇을 하든 미국이 경제적 레버리지를 뒤집지 못하는 한 미국의 영향력은 떨어진다.


 

그러한 객관적 상황에서는 중국의 힘을 인정하고 꼭 막아야 할 곳은 막고 나머지는 냉전시대와 같은 진영이 아니라 임시방편의 사안별 연합과 최소한의 민주주의 동맹을 통해 중국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최근 캠벨이 <포린 어페어즈>에 발표한 정책 내용이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가치에 입각한 진영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미국 편승을 주장한 한국 내 입장과 결이 다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캠벨이 한국을 D-10(10대 민주국가)의 일원으로 적시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기대를 분명히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패권 경쟁이라는 게 결국은 신기술 경쟁이고 금융 패권의 문제 아닌가? 미국이 화웨이 문제에 몰두하는 것도 5G 통신이 미래의 기술 패권을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이혜정 : 기존의 경제 영역에서 미국의 힘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이 하나 있고 기술 분야는 새로운 영역이다. 그러니까 미국이 겁을 내는 거다. 신기술 분야에서는 먼저 치고 나가 선점하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금융의 경우 IMF(국제통화기금) 안에서 미국지분이 압도적이니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중국도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의 국제 금융기구를 만들어 나름대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자신들이 구축한 국제질서에 정통성(legitimacy)이 있다고 자부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자유주의적인 국제질서란 사실상 허구에 가깝다. 실제 있었던 것은 대결적 성격의 냉전질서였다. 냉전 끝나고 미국에서 하도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이야기해서 정말 그런 줄 알지만, 설사 그게 있었다고 치더라고 그것은 서유럽과의 대서양동맹에 국한되는 이야기다.


 

2차 대전 후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안정자인 적이 별로 없었다. 항상 미국이 분쟁을 만들어냈다. 적어도 베트남전쟁 끝날 때까지는 그랬다. 그러다가 베트남전쟁 패배로 지역 관리 능력이 부족해지니까 중국과 타협해서 안정화가 된 것이다.


 

그 다음에 국내 문제를 보면, 인종 문제 등 미국 체제의 본원적 위선이 있는데, 의회 난입 사건 이후 국내정치에 대해서는 일정한 반성을 하고 있다. 선거 결과에 대통령 자신이 불복하고 지지자들이 의사당 난입하고 그런 것을 보면 도저히 외국에 대해 미국 민주주의를 배우라고 말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외 정책에서는 아직 미국이 국제질서를 이끌 자격이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가 일단은 중국을 몰아붙이기는 할 것이다. 중국을 손보겠다는 의지는 분명한데, 언제까지 중국의 부상을 막을 수 있을까? 1-2년 게임이 아니고 장기적으로, 최소한 다음 2024년 대선 이후에도 정책적 연속성이 있으려면 대내외적인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


 

정책 써클 내에서, 그리고 정책 써클과 재계, 더 넓게 보면 엘리트와 대중 들 사이에 대중정책에 대한 합의와 타협, 대외적으로 동맹들과의 타협과 합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과 경쟁과 협력의 영역과 방법 등에 대한 합의와 타협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이익과 지분을 인정해줘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정치적 이념/가치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rans-Pacific Partnership)로 대표되는, 그리고 기존 동맹 네트워크 강화의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 것과 비교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가치와 경제의 축을 무너뜨렸고 기존 동맹의 논리를 부정했다. 그 결과로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은 군사적 논리만 강조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중국 입장에서 보면 주권의 원칙에 따라 신장, 홍콩, 대만 문제 등에서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허용할 수 없다는 건데, 그럼 중국과 전쟁할 것인가? 미국 내부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더 벌어지고 국내 정치가 난리인데 미국이 대만을 놓고, 또는 미래의 군사적 우위와 패권 유지를 위해 중국과 전면전을 벌일 수 있을까?

 

 

프레시안 : 미국이 현재 가지고 있는 능력과 의도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인가?


 

이혜정 : 미국이 군사적으로 힘이 있긴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군사력이 모자라는 게 아니라 2008년 대침체 이후 세계자본주의 운영의 새로운 모델을 못 내놓고 있고 무엇보다도 미국 국내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정치적 대결 상태가 지속되면서 패권 유지를 위한 국내적 합의 기반이 무너졌다. 그런데도 미국은 군사력 위주의 패권 유지방식을 취하고 있다.
 

 

동맹은 기본적으로 수단이다. 미국도 동맹을 자산, 목적화한 것인데,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 보존과 동맹 자체를 목적으로 설정하면, 그에 대한 위협 요인들은 거의 무제한적으로 커져버린다. 즉 동맹을 유지하려면 미국이 일정하게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그런데 미국의 능력은 항상 모자란다. 그럼 계속 투자해야 한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대안으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중산층이 공동으로 번영할 수 있는 묘책을 제시하든가, 아니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고 적어도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역할과 지위를 일정하게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이게 안 된다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은 민주주의 수사를 남발하면서 실제로는 군사력을 통한 대중국 압박에 집중될 것이고 미중 간 협력의 공간은 쉽게 마련되지 않을 것이다.


 

대북 정책 재검토한다는 미국, 향후 대북정책 방향은


 

프레시안 : 북핵 문제는 어떻게 될까?


 

이혜정 : 국무장관 내정자인 토니 블링컨이 최근 의회 청문회 모두 발언에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바탕으로 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예의 자신감과 미국의 리더십이 없으면 국제사회는 혼돈 상태가 된다는 주장을 이어나가서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기자 회견에서 공식적으로 싱가포르 선언 인정 등 한국 정부 입장을 밝혔으니 미국도 부담은 될 것이다.


 

▲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가 19일(현지 시각) 상원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북핵 문제는 북한이 도발하지 않는 한 바이든 행정부 정책과제에서의 우선순위는 밀릴 수밖에 없다. 지난 6일 의회 난입만 없었어도 우선순위는 경제 문제와 코로나, 그리고 새 정부 인선이었는데 여기에 의회 사건이 나오게 된 것이다. 사실 우선순위로 보면 국내정치 측면에서는 트럼프의 잔재를 치우는 게 1순위다.


 

미국 패권의 입장에서는 동맹 복원이 최우선이고 첫 번째는 대서양동맹이다. 미중 경쟁의 최대 우군이 유럽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 중국과 유럽이 투자협정을 맺었는데 당시 제이크 설리반이 유럽에 "우리와 상의하라"라고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날렸지만 유럽이 이를 무시하고 강행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어떻든 유럽도 손을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지금 유럽도 브렉시트 때문에 영국과 독일 입장이 나뉘어지고 있다. 일단 여기부터 빨리 수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이 잘 안 되는 이유가 여전히 유럽과 중동을 중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미국은 적대시 정책 철회하지 않을 것이고, 트럼프 때와 같은 탑다운 협상도 어렵고, 한국도 내년에 대통령 선거 있고, 미국 선거 때문에 1년을 기다렸는데 한국을 뭘 믿고 기다리겠나. 김정은에게 남겨진 것은 중국과 관계 개선 돼있는 것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지구적 차원에서 비확산, 반확산 체제를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북핵 이슈가 올라올 수도 있는데 이것도 힘들다. 러시아하고는 일단 핵감축조약(START2)의 시한을 1년 연장해 놓은 상태다. 반확산, 비확산 의제로 북핵 이슈가 뜨기도 힘들다.

 

사실 북핵 해결 방안은 이미 다 나와 있다. 실제로 이를 집행할 의지가 없을 뿐이다. 지금은 북한의 체제 전환/대북 제재 만능/핵군축 타협 등으로 입장이 갈리고 있다. 

 

북핵 해법은 핵 동결과 부분적 제재를 맞바꾸면서 단계적으로 신뢰를 쌓아가며 장기간에 걸쳐 협상하는 수밖에 없다. 전쟁은 불가능하고, 제재로 풀 수 없다면 협상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 견제도 하고 싶고 협력도 하고 싶다면, 중국 협력 이슈 중에 가장 큰 것이 북핵 문제와 기후 환경인데, 중국도 바보가 아니니까 그 협력의 대가를 바랄 것이다.

 

미국 쪽에 정책 처방이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중국과 북한에 대한 정책 처방이 있으면, 30년이 넘은 북핵 문제를 이렇게 방치해 뒀을까? 갑자기 새로운 정책 처방이 나오나? 결국 협상밖에 답이 없다.


 

빅터 차는 지난해 11월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에서 1단계로 북한이 핵물질 생산 동결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미국이 부분적으로 제재를 해제하며, 2단계로 북미 수교 등을 통해 신뢰 회복하고 마지막 단계는 핵군축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런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안을 내놓으면 한미가 난리가 나니까 이 방안에 대해 단계적인 것이라고 포장을 하자고 했는데, 이 패키지로 갈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사실 북한은 이제 핵보유국 아닌가. 그런데 미국 내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이혜정 : 북한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 입장이고 북한에 대한 정책을 하면서 한국을 중국 편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잡아두고 한미일 협력을 구축하면 나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임계점은 계속 넘어갔고, 현실적으로는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있지 않나? 전략의 기본은 목적-수단-방법인데,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는 이 기본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목표도 수단도 방법도 모두 북한의 선 비핵화만을 주장하는 것이다.


 

북한이 실제 핵무장 상태인데, 논리적으로 보면 무력으로 북핵을 제거하거나 제재 등 강압을 통해서 비핵화를 달성하거나 아니면 협상, 이 세 가지 방법밖에 없다. 무력-전쟁이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은 물론 지금까지 제재 국면에서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능력을 증가시켜온 점을 고려하면 무력도 강압도 작동하지 않았고 결국 현실적으로 협상 외에 해결책이 없다고 본다.
 

 

문제는 실질적으로 핵군축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는 협상과 '북핵 불용'이라는 정치적 입장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전략적, 정치적 능력이 발휘되지 않으면 대안은 그냥 북한 핵을 이고 사는 것이다. 이 경우 국제적, 국내적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향후 한국 외교의 방향 설정에 대해 제언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미중 대결 속에서 우리 중심을 잡고 한반도 평화를 확보하며 동아시아 지역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지.


 

이혜정 : 매우 거창한 질문인데 아주 간략하게 얘기하자면, 북한이 됐든 미국, 중국, 일본이 됐든 우리 주변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직시하면서 한국 입장에서 외교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이 한국 외교의 주요한 자산인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하락한 것도 분명하고 양국의 국익이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군사기술의 발달과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통합을 고려하면 한반도는 이제 지정학적 분단선이 아니라 정치체제의 분단선이다. 남북, 한중의 공존과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는 가치와 이익의 조화에 대한 고민과 전략이 필요한 것이지, 오직 가치에 따른 냉전식 진영 논리를 전부가 돼서는 곤란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주의와 동맹을 강조하고 있는데, 민주주의를 이견을 제시할 권리라고 본다면 민주주의 동맹은 동맹의 논리에 민주주의를 복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동맹 자체의 목적과 운영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국익과 민주주의에 따른 한미 동맹의 재구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끝)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12117394293769#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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