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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화 칼럼] 영화 ‘미나리’와 아시아 혐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3/24 10:48
  • 수정일
    2021/03/24 10:4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애화 칼럼니스트
발행2021-03-24 09:05:43 수정2021-03-24 10:13:22
 

‘미나리’ 남매가 만나는 문화적 갈등

한국 이민자 가족이 시골의 작은 교회 예배에 참가한다. 신자가 전부 백인인 교회에서 첫 예배가 끝난 후에 백인 소년이 한국 소년 데이비드에게 다가와서 묻는다. “왜 너는 얼굴이 평평하니?” 데이비드는 억울한 표정으로, 평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 소녀 앤에게 백인 소녀가 다가와서 자신이 우물거리는 소리 중 너의 언어와 비슷한 단어가 있냐고 묻는다. 앤은 한국어와 비슷한 단어를 찾는다. 백인 소년소녀의 악의 없는 호기심은 한국 소년소녀를 불안하게 한다. 데이비드는 역으로 ‘너는 왜 그렇게 생겼어’라고 묻지 못하고, 누나는 ‘너희 말도 이상해’라고 말하지 못한다. 백인 소년소녀는 소수자가 이상하지만, 비주류인 한국인 소년소녀는 자신들과 다른 문화를 그저 수용해야만 한다.

영화 ‘미나리’는 지극히 사적인 친밀성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정형화된 문화 대립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듯하다. 영화는 낯선 곳에 정착하면서 부딪히는 물리적 어려움, 그를 둘러싼 가족의 갈등 나아가 가족애라는 보편성을 보여준다. 외부로부터의 갈등보다는 내부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백인 사회에서의 문화적 갈등을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는 장면은 교회 장면뿐이었다. 그 장면을 보는 나는 인종적 갈등으로 인하여 가족이 어려움을 겪게 될까 불안했다. 다행스럽게 그런 전개는 없었다. 그럼에도 교회 장면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 혐오범죄와 겹치면서 불편했다. 다른 인종이 거의 보이지 않는 아칸소에서의, 미나리 남매의 청소년 생활은 어땠을까. 무사히 잘 지냈을까.

최근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범죄 때문에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외출하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편안한 날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일어나고 있는 폭력이 남의 일이 아니라, 지난 세월 동안 자신들이 경험했던 인종 문제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판시네마

보이지 않던 오래된 오늘

미국내 인종문제는 백인우월주의가 만들어내는 흑인에 대한 폭력, 혐오로 대부분 표현된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반인종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 달에 발생한 애틀란타의 총격 사망사건은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최근 미국 내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조사가 있다. 2020년 신고된 아시아계에 대한 범죄는 3,800건에 달하고, 아시아 혐오 범죄가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150%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다. 코로나19 공포 때문에 아시아인에 대한 공격이 늘어났다는 것이 일반 언론의 태도이다. 코로나19를 ‘우한 바이러스’, ‘차이나 바이러스’, 쿵푸에 빗대어 ‘쿵 플루’라고 부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발언과 선동도 반아시안 정서에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내 아시아계의 인권단체는 아시아 혐오 사건이 새로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힘없는 아시아계 노인들에게 쏟아진 폭력을 알리는 비디오가 없었다면, 그리고 애틀란타처럼 누군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아니었다면,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범죄는 예전처럼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내 아시아인에 가해진 역사적 폭력의 사례들은 많다. 미국정부에 의해서 자행된 대표적인 폭력의 역사를 보면, 우선 중국인 이민자들을 향한 폭력이 있다. 미국인의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중국인의 재입국 금지와 시민권 중지를 합법화했다. 그리고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차이나타운은 전염병을 옮기는 진원지로 낙인 찍혀서 격리되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적국 일본과 내통할 수 있다는 혐의로, 미국내 일본인 전체를 수용소에 강제로 수용했다. 2차 세계대전의 다른 적국 출신인 독일인, 이탈리아인에 대해선 그런 조치가 없었다. 또한 LA 폭동 때 한국인 소유 가게들에 벌어진 방화와 도둑질에 미국 경찰은 거의 수수방관했다. 만약 백인 소유 사업이라면 그랬을까. 9.11 이후 벌어진 무슬림에 대한 무차별적인 혐오와 폭력이 있다. 명분은 내부 테러 방지였다. 이렇게 전쟁, 전염병 등 중대사건이 터질 때마다 미국내 이민자들에 대한 폭력이 공적으로 사적으로 급증되었다.

미국 백인우월주의, 주류사회는 한 손에는 이런 폭력적 수단을, 다른 한 손에는 분리정책 또는 회유책을 사용하여 아시아인을 조종했다. 그들은 흑인 사회를 정신적으로 억압하기 위해서 아시아계를 이용했다. 미국 주류사회는 아시아인을 ‘모범적 소수자(Model Minority)’라고 부르며, 흑인과 비교하여 우월감을 갖게 했다. 1950년대에 미국내 중국인계와 일본계 일부가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보고, 이를 일반화하였다. 유교적인 가족관, 공동체성, 자녀에 대한 학업열, 근면성이 바로 ‘Model Minority’의 기초라고 했다. 아시아들은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인종적 차별은 존재하지 않으며, 흑인들이 생각하는 불평등은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의식이었다.

Model Minority는 아시아계 이민자의 스테레오타입이 되었다. 이는 대다수 이민자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 사회적 고립, 인종 차별 등을 덮는 역할을 해왔다. 그럼에도 아시아 이민자들을 지배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80년대에 이민간 ‘미나리’ 가족, 특히 아버지 제이콥은 이런 스테레오타입을 강하게 보여준다. 제이콥 같은 가부장적 아시아계 아버지들에게 인종문제나 문화적 대립은 부차적인 성질이었을 것이다. 인종적 피해 경험은 흑인들의 몫이고, 스스로가 성공하지 못해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내재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시아인이 경험하는 인종주의 피해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아시아계의 이민 특징도 작용을 했다. 아시아인들은 이민온 후 영주권, 시민권이란 합법적 신분을 얻기 위해서 미국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조용히 지내야 하는 이주의 기간이 필요했다. 또한 스스로 자신들의 경험을 소리낼 수 있는 운동 경험과 기반이 약했다. 아시안은 오리엔탈 또는 출신국으로 불렸다. 아시안 아메리칸으로 스스로를 호명하게 된 것은 베트남 전쟁과 흑인 민권운동의 영향을 받은 후였다.

이민 제2세대, 3세대가 되면서 스스로 자신을 옹호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아시안계 단체, 여성단체들은 끊임없이 소중한 목소리를 내왔다. 그들은 ‘영원히 외국인’으로 취급당할 수밖에 없는 미국이란 사회에 아시아인만이 아니라 다른 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사건들을 계기로 아시아인 내에서 인종적 언어, 물리적 폭력 외에 인종적 언어, 문화를 경험한 사례들이 더 공될 것을 기대해 본다.

22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폭력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위대가 ‘증오 범죄 중단’이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2021.03.23.ⓒ뉴시스/AP

인종주의에 의한 Model Minority에 갇히지 않길

한국에서 미나리 영화는 미국에서 아시아인 혐오범죄가 급증하는 때에 상영을 했다. 미나리가 이 때에 상영되는 것이 어쩌면 불운일지 모른다. 나와 같은 관객은 이 영화 속에서 보이지 않는 인종주의와 그 갈등을 추측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 환경 때문에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주제가 더 많이 이야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감독은 문화적 갈등을 가볍게 스치듯 지나갔으나, 영화가 내딛은 세상은 그렇게 가볍지 않았다. 골든 글로브에서 현지 영화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외국어영화로의 분류는 다양한 인종 사회로서의 현실을 무시한 인종주의적 판단이었다. 어쩌면 미나리 제작진은 이런 영화계의 인종주의를 예측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국어를 고집하면서 다양한 이민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은 인종주의에 대한 다른 저항의 표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아카데미에는 외국어 영화에서 벗어나서 본선 후보 명단에 올랐다. 본선 후보 부문 중 하나라도 누군가 수상을 한다면, 그것이 Model Minority 표상으로서 수상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수상 소감에서 인종주의 문화에 힘찬 발언을 하길 기대해본다. 세상은 다양한 역사를 가진 다양한 인간이 살고 있음을 외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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