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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항만노동자 34명 숨졌지만…법원 실형 선고 10년간 1건

조문희·조해람 기자 moony@kyunghyang.com

입력 : 2021.05.17 06:00 수정 : 2021.05.17 07:44

 

2011~2021년 산재 판결 분석 

안전하게 일할 권리 지난달 평택항에서 산재 사고로 숨진 이선호씨 추모 움직임이 온라인상에서 이어지는 가운데 16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일하다 죽지 않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준헌 기자

안전하게 일할 권리 지난달 평택항에서 산재 사고로 숨진 이선호씨 추모 움직임이 온라인상에서 이어지는 가운데 16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일하다 죽지 않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준헌 기자

 

30건 중 24건서 사망사고 발생
안전관리책임자는 벌금형·집유
경영 악화 등 이유로 형량 감경
여야는 안전법 논의 않고 방치
 

4.16%. 지난 10년간 항만노동자 사망으로 안전관리 책임자들이 재판에 넘겨져 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24건의 판결 가운데 피고인에게 실형이 선고된 사건(1건)의 비율이다. 항만 안전사고가 반복되자 20대 국회 말에 부랴부랴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해당 법안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채 폐기됐다. 경기 평택항에서 무게 300㎏에 달하는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이선호씨(23)의 사고를 계기로 이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부상한 가운데 사법부와 입법부의 무성의한 대처가 또 다른 죽음을 불러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대법원 판결문 검색 서비스를 이용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항만 노동 현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판결 30건을 분석한 결과 노동자 사망까지 이어진 사고는 24건으로 34명이 목숨을 잃고 35명이 다쳤다.

항만 내 모든 공간은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지뢰밭이었다. 노동자들은 선박에서 발생한 가스 폭발로 화염에 휩싸여 화상을 입거나, 암모니아 등 화학물질 유출로 질식해 죽었다. 부두 내 컨테이너 장치 블록에서 크레인을 따라 하강하는 컨테이너에 깔리고, 조선소 블록 결합 공정을 수행하는 곳에서 떨어진 붐대(타워크레인의 팔에 해당하는 부분)에 맞았다. 물속 시설물을 보수하다가 익사했고, 방파제에 안전 난간을 설치하다 파도에 휩쓸리기도 했다.

법원은 열악한 노동 현실에 무감각했다. 법원은 노동자가 사망한 24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안전관리 책임자들의 재판에서 33%인 8건에 100만~200만원의 벌금형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금고형이나 징역형이 선고돼도 대부분 집행유예로 마무리됐다. 집행유예 없이 실형을 선고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했다.

솜방망이 처벌의 근거로 제시한 양형 이유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한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피고인이 회사에서 퇴직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회사가 경영악화로 인력 감축이 컸고 손실 보전에 힘쓸 수밖에 없었다’면서 사측의 입장에 서서 이유를 적시한 재판부도 있었다. ‘사측이 유가족에게 합의금을 지급했다’거나 ‘사고가 산재로 처리됐다’는 사유도 빈번하게 등장했다. ‘초범이다’ ‘반성하고 있다’ 등의 구절도 형량 감경 사유로 자주 등장했다.

국회는 항만 안전을 위한 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부산항에서 항만노동자 안전사고가 빈발한 것을 계기로 지난해 2월 국회에서 이른바 ‘항만 김용균법’인 항만운송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당시 20대 국회는 해당 법안을 발의만 해놓고 회의석상에 올리지도 않았다.

같은 내용의 법안이 21대 국회에서 재차 발의됐지만 현장 감독에 나설 ‘항만안전감독관’의 명칭과 권한, 업무 범위 등을 두고 논의가 겉돌고 있다. 이선호씨가 산재로 사망한 지난달 22일 열린 국회 해양수산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도 항만노동자의 열악한 처우 등은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5170600005&code=940100#csidx52a59e875f1e7c1b3c7d0a1b9a09d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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