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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 위 건물주, 그 위의 '토지주'와 싸우는 노동자들

[작고도 가까운 노동, 그리고 싸움 ⑦] 성기춘 뉴대성전문운전학원지회장을 만나다

아시아나케이오 농성장에서 성기춘 씨를 보았다. 연대자로 온 사람이었다. 그가 일산에서 뉴대성운전학원을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은 들어 알고 있었다. 걱정스럽다는 투로 이런저런 상황을 묻다가 농성장 이야기가 나왔다.

 

"농성장이 있으시군요."

추임새처럼 한 말에 그가 말끝을 흐렸다.

 

"9개월째인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거리에서 1년 가까이 싸우고 있는데, 마치 엊그제 싸움을 시작한 사람을 보듯 해맑게 대했다. 농성장(을 세운 사람들)의 시간은 이토록 다르다. 타인의 일상이 바삐 흘러가는 가운데 홀로 세워진 농성장은 보름, 한 달, 100일. 그러다 해를 넘긴다.


 

'법으로 이긴 싸움도 이 정도인데' 그가 아시아나케이오 문화제에 와서 한 발언을 되새겼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들은 법으로 이긴 싸움을 하고 있다. 해고 회피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회사는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해고자들은 1년 넘도록 거리 농성을 하고 있다. 회사는 6명의 해고자를 복직시키지 못할 만큼 가난했으나, 판정 불이행에 따른 과태료를 낼 만큼은 부자였다.


 

뉴대성운전학원(이하 뉴대성학원)은 지난해 7월 문을 닫았다. 그곳에서 일한 운전 강사들은 해고 신세가 됐다. 하지만 이들에게 노동위원회 판정 같은 것은 먼 이야기다. '저희 같은 사업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모를 이야기를 들었다.


 

▲ 인터뷰 중 수첩을 펼쳐 들고 투쟁 상황을 설명하는 성기춘 지회장. ⓒ희정 기록노동자

토지주와 싸우는 사람들


 

일산 백석역에서 성기춘 씨를 만났다. 농성장이 운전학원 앞에 있냐는 내 물음에 그는 아파트 이름 하나를 댔다. 토지 소유주 첫째 아들이 사는 곳이라 했다. 아파트 단지 앞에 농성장을 차렸다. 뉴대성학원 노동자들은 토지주에게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싸운 지 10개월이다.


 

"왜 학원 사장이 아니라 토지주에게 요구를 하시나요?"


 

그는 단박에 이해가 안 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루 일지가 적힌 수첩을 폈다. 슬쩍 보니, 깨알 같은 글씨가 잔뜩 적혀 있다.


 

"저도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고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어, 들리는 이야기는 다 적어놓은 거예요."

 

토지주가 학원 운영자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은 2019년. 그 후 1년 반에 거쳐 두 사람 간에 학원 운영권을 둘러싼 법정 소송이 시작됐다. 10여 년간 유지한 임대 계약을 갑자기 해지한 토지주의 속내에 일자리를 잃은 운전 강사들의 관심이 쏠렸다. 토지주가 직접 학원을 운영할 계획이라는 데 생각이 모였다. 때마침 토지주는 자신을 운전학원 설립자로 변경 신청했다. 

그러니 작은 소문도 쉬이 지나갈 수 없어 수첩에 하루하루를 꼼꼼하게 기록해둔 것이다. 그 깨알 같은 글씨에서 나는 절박함을 느꼈는데, 그는 자존심이라 했다. 

 

14시간 일했던 시절


 

운전학원 기능강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은 그가 마흔이 되던 해. 이전까지 성기춘 씨는 보일러 설치 영업소를 운영했다.

 

"그때는 어음이라는 게 있었죠. 원래 동네에서 소소하게 공사를 했는데, 한 업자가 자기가 짓는 아파트가 500세대 정도 되는데, 보일러를 좀 대줄 수 없냐고 하는 거예요. 그래? 어음 끊어서 공사에 들어간 거예요."

 

그해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이후 그에게 닥친 일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한 1년 쉬었어요. 사람도 싫더라고요. 그런데 일은 또 해야 될 거 아니에요. 하루는 서점에 갔는데, 운전기능강사 시험이라는 책자가 있는 거예요. 교육을 받으면 바로 취업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해볼까 하고, 자격증 따고 바로 온 데가 여기예요. 뉴대성학원."


 

1995년 운전전문학원 등록 제도가 생겼다. 도로교통공단에서 운영하는 시험장에서만 운전면허 시험을 치를 수 있었으나, 90년대 들어서자 응시자 수요를 감당하질 못했다. 자동차 소유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그래서 개인 사업자가 운전전문학원을 설립할 수 있게끔 허가를 한다. 다만 그 운영 조건을 도로교통법(제2조 32항)으로 정해두는 등 학원 설립과 운영이 경찰청 책임 하에 있음을 밝혀두었다.


 

그가 강사자격증 시험 원서에서 본 '준공무원 대우'라는 문구는 그런 의미였다. 그런데 막상 기능강사로 취업하니 14시간 수업이라는 장시간 근무에, 생활을 꾸려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월급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원에 들어와 보니까 노조가 막 생겨 시끄럽더라고요."


 

노동조합 설립에 대한 학원장의 거부감은 엄청 났다. 노조 세우는 것을 막겠다고 용역깡패를 학원 안에 들이기까지 했다. 그 폭행 건이 오히려 원장의 발목을 잡아 어렵사리 노동조합을 세웠다. 그렇게 "사람이 모이고 정당하게 요구해서 월급도 올라가고" 일한 만큼 받는 삶이 시작되려나 했다.


 

하지만 학원장은 토지 임대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폐업 수순을 밟았다. 성기춘 씨는 학원장이 '질려서' 떠난 것이라 했다.

 

"일하는 사람은 할 소리를 한 거지만, 사업주는 참기 힘든 거지. 사람들이 찍소리 못하던 시절을 안 겪었던 원장이면 모르는데. 그전에는 죽어라 일만 하고 저거 했던 사람들이 노조 만들고 나더니만 감히 소리를 내? 이런 거죠."


 

▲ 뉴대성운전학원 문제 해결을 위한 거리 행진. ⓒ희정 기록노동자

고용승계를 요구한 강사들


 

이들이 감히 낸 소리는 근무시간, 월급과 휴일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일. 한마디로 학원장은 노조 생기니 귀찮아서 떠난 것이다.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겠다는 사람이 넘치던 2000년대 초반이었다. 운영권(인가증)만, 아니 그 권한을 살 수 있는 돈만 있다면 어디서든 학원을 열 수 있었다. 그곳에서 '노조 없이' '일한 만큼 주지 않고' 운영할 수 있었다.


 

2002년, 원장이 학원 문을 닫고 떠나자 토지주가 학원을 직접 운영하겠다고 나섰다. 운전학원 땅에 기능시험 코스와 설비, 그리고 인수받을 차량까지 있으니 운영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운영과 임대는 전혀 다른 일. 앉아만 있어도 임대료로 월 3000여만 원씩 받아 가던 토지주가 학원 운영이라는 번거로운 일을 하는 데 질려버린 시간은 겨우 1년이었다.

 

학원은 문을 닫았다. 2년 사이 두 번이나 폐업을 겪은 강사들은 이 자리에 다른 운전학원이 들어올 경우, 고용승계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토지주는 새로운 임대인을 구하지 않고 6개월을 버틴다. 노동조합이 떠나길 기다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반년이 지나도 노조가 떠날 생각이 없자, 결국 새 임차인을 구한다. 그 사이 40여 명이던 조합원은 7명으로 줄었다.
 

 

남은 7명이 토지주와 임차인 앞에서 고용승계를 약속받고 단체협약을 다시 맺었다. 2003년 다시 문을 연 것이 뉴대성운전학원. 그 후로 원장이 바뀌어도 노동자는 떠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정직원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2000년대 중반이 되자 운전학원은 아르바이트(알바)와 계약직으로 넘친다. 대다수의 운전학원이 정직원 강사를 뽑지 않으려 했다.

 

"성수기 때 딱 3개월만 쓰거든요. 11개월도 쓰고, 21개월도 쓰고. 퇴직금 안 주려고 무기계약직 안 만들려고."

 

그렇게 강사만 40여 명인 학원에서 정직원 수가 반을 넘은 적이 없다고 했다. 툭하면 알바를 쓰고 제대로 사람을 뽑지 않으려는 학원과 잦은 갈등이 있었다. 그래도 정규 직원 수가 이 정도라도 유지된 것은 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문 닫기 좋은 학원


 

뉴대성학원의 고용승계는 다른 운전학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고 했다. 땅 자체에 기본 설비가 갖춰져 있으니 운전 학원을 연다고 크게 자본이 들어갈 것도 없고, 새로운 도전을 할 일도 없다. 회사가 문을 닫고 여는 것이 제재 없이 손쉬울 때 생기는 문제 중 하나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다.


 

마음에 안 들면 떠나겠다는 고용주 앞에서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이유로, 2000년대 초반 우후죽순 만들어졌던 운전학원 노동조합이 지금은 거의 사라져 5곳만 남아 있다. 전국을 다 합쳐도 노조에 가입한 전문운전기능학원 강사가 30여 명이라 했다.


 

2019년에는 한 운전학원에서 원장이 계약직 강사들에게 업무 외 노동을 지시해 문제가 됐다. 충북 영동에 있는 회장 사유지를 제초하거나 운전학원 공사 작업에 동원하는 일이 관행처럼 이뤄졌다. 국내 최대 운전학원이라 일컬어지는 곳이었다. 갑질이 폭로되고 노동조합이 생기자, 학원이 취한 대응은 이것이었다. 돌연 폐업. ('성산운전학원 강사들, 학원 소유주 개인농장에서 강제노역', 유하라, <레디앙>, 2019. 5. 20.)


 

알바와 계약직 같은 고용형태로는 부당한 지시를 막을 방법이 별로 없다. 나가라면 나가야 한다. 나가지 않으면 학원이 문을 닫고 사라진다. 학원의 흥망과 무관하게 20년째 일하는 사람의 고용을 지킨 곳은 '뉴대성'이 유일하다고 했다. 이토록 오래 일한 직장이 성기춘 씨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그 자존심이 위협받은 것은 지난 해 7월. 토지주가 10여 년간 지속된 임대 계약 종료를 통보했고, 학원이 사라졌다. 그 자신이 직접 운전학원을 운영하고 싶었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추측이다. 노조는 내용 증명을 보낸다. '임대지에 운전학원을 운영할 생각이 있느냐?'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토지주가 학원을 직접 운영 또는 재임대할 경우, 고용을 승계하라.'


 

토지주의 대응은 2003년과 다를 바 없었다. 응답 없이 땅을 비워두었다. 2003년 싸움이 6개월 동안 계속되었다면, 이번에는 10개월이다. 그때도 지금도, 노동조합은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조합원이 4명으로 줄었다. 한 달 임대료 수천 만 원이 없어도 사는 토지주가 버티듯, 한 달에 2~300만 원 없어도 되는 나이 든 노동자와 1인 가구 노동자만 남았다.

 

그리고 올해 3월, '호수'라는 이름을 달고 그 자리에 운전학원이 새로 문을 연다. 하지만 새 원장은 노동조합과 고용승계를 맺을 책임이 없다며 대화를 거부한 상태다.


 

법으로는 책임이 없을 수 있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어떤 용역 파견인력 업체도 2년 계약이 끝난 후 노동자들과 고용승계를 맺을 법적 의무가 없다. 그럼에도 고용을 유지한다. 새 사람 데려다 '쓰는' 일이 번거롭기 때문이다. 관례처럼 고용을 유지해오다가, 일하는 사람이 더 번거롭게 굴면(노동조합을 만든다던가) 자신은 법적 책임이 없으니 나가라 한다. 운영하는 사람으로선 번거로움을 줄이는 방법이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의 권리는?


 

내가 노동자로 살려면


 

성기춘 씨의 신입강사 시절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갸웃거린 부분이 있다. 아직 수습 딱지도 떼지 않은 신입 사원이 노조에 가입해, 점심시간이면 여기저기 연대 집회를 갔다는 내용이었다. 왜 이렇게 노조 일을 열심히 했나요?

 

"모르니까요. 배워야겠다. 이왕 내가 노동자로 살려면, 노동조합이 있어야겠고. 노동조합이 뭔지 배워야겠다."

 

마흔 살에 다시 노동자가 되어, 노동자로 권리를 지키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를 만나 이야기 듣기 전까지 나조차 운전학원 기능강사가 노동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우리는 모두 노동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일할 권리를 지키려는 사람을 대면하기 전까진, 누군가의 '노동자성'을 쉽게 지나친다.

 

노동자는 노동에 관해 권리를 갖는 사람이다. '나는 노동자'라는 말은, 자신의 고용을 지키고 근무 환경을 개선할 권리와 권한을 가지겠다는 선언이다. 인가증을 사고팔고, 설비와 차량 인수인계를 마치고 학원장은 쉬이 떠난다. 새 원장이 왔을 때, 기존 직원을 고용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과 아량이라 한다. 그 말에 반기를 들고 일할 권리를 말하는 것이 성기춘 씨가 노동자로 살아가며 배운 것이다.


 

그런 그조차 여기를 떠나면 3개월짜리 알바가 되거나 정년 촉탁직이 될 것이라 말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을 하지만 노동자는 될 수 없을까.


 

▲ 일산 토지주 가족 소유 아파트 단지 앞에 자리한 뉴대성자동차전문학원지회 농성장. ⓒ희정 기록노동자

일할 권리를 외로이 묻다


 

내가 의문을 지닌 것은 또 있었다.


 

"한 달에 3000만원 씩 들어오는 땅을 어떻게 반 년 넘게 비워둘 수 있지요? 아무리..."

 

이어지는 말은 삼켰다. '아무리 노동조합이 없어졌으면 한다고 해도.' 나는 그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고집을 부릴 토지주가 있을지 의아해했다. 하지만 '호수자동차운전학원'이 그 자리에 들어오고, 임대료가 월 1000만 원 가량 인상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문이 해소됐다.


 

누군가 돈 잘 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특정 업종(운전기능강사)의 75%가 비정규직으로 고용되고, 1년 사이에 임대료가 천 단위로 변경되고, 수십 명을 고용한 사업체가 문을 닫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실직은 말하여지지 않는다. 

성기춘 씨는 말한다.


 

"나라에서 해야 할 걸 전문학원이라는 이름으로 권한을 대여해준 거잖아요. 그러면 적어도 공공성의 현실이 어떤지, 노동자들의 처우는 어떤지 최소한 그걸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되죠."

 

누군들 자신의 일자리가 손쉽게 사라지는 것을 용인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세상은 납득하라고 한다. 노동청은 토지주는 사업주가 아니라는 말로 해고된 노동자를 가볍게 돌려보낸다. 사장이 사업하기 싫다는데 노동자가 떼를 쓰다며 아파트 주민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고용하는 자의 책임을 묻지 않는 세상에서 성기춘 씨와 뉴대성운전전문학원의 노동자들은 오늘도 아파트 길가에 놓은 작은 천막을 지킨다. 새로 개장한 운전학원으로 가서 확성기를 튼다. 그것은 투쟁이자, 일하는 사람이 일할 권리를 외로이 묻는 일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60112335930060#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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