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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효과' 경기 살아난다...그런데 우리는?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6/20 09:18
  • 수정일
    2021/06/20 09:1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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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입력 : 2021.06.20 08:54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속도가 붙었다. 동시에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오는 7월 완화된 방역조치를 적용한 거리 두기 개편을 통해 소비 활성화에 나설 계획이다. 실제로 경북 12개 군 지역에 개편안을 시범 적용했더니 한달 평균 소비가 7.8%포인트 증가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9일 발표한 ‘2021년 1분기 국민소득(잠정)’에서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경제 규모를 회복했다’고 밝혔다. 경기지표와 경제 전망은 하나같이 ‘회복’을 가리키고 있다.

모처럼 경기 회복세를 맞았지만 자영업자들은 마음 한켠이 불안하다. 코로나19 방역에 따른 손실보상 문제가 여전히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당정은 과거 손실보상에 대해 소급적용 대신 폭넓고 두터운 피해지원을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얼마나 넓고 두터운 지원인지 구체적인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지원 규모도 방식도 ‘미정’이다. 앞서 2~4차 재난지원금을 경험한 자영업자들은 부실 지원을 걱정한다. 전처럼 ‘돈 몇푼’ 주고 생색내기에 그칠지 모른다는 우려다.

이런 이유로 자영업자들은 수혜적 ‘지원’이 아닌 정당한 ‘보상’을 요구해왔다. 무엇보다 피해지원은 보상 수준을 명문화한 소급보상에 비해 강제력이 약하다. 그래서 불안하다. 경기 회복 국면에 들어서면 과거 자신들의 피해가 잊힐까 두렵다는 것이다. 앞장서서 ‘소급보상’을 주장했던 여당이 한달 만에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꾼 것도 불신을 키웠다. 정부는 자영업자의 불신을 폭넓고 두터운 지원으로 해소할 수 있을까.

 
폐업한 서울 종로구의 한 코인노래방에서 철거작업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폐업한 서울 종로구의 한 코인노래방에서 철거작업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무산된 소급보상 

노용규씨(46)는 서울 광진구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한다. 지난해 5월 이태원 코인노래방 확진 발생 이후 중점관리시설로 지정돼 집합금지·제한 처분을 받았다. 매출은 바닥을 쳤다. 코로나19 이전(2019년 3월~2020년 2월) 1억4000만원에 달했던 매출은 지난해(2020년 3월~2021년 2월) 3300만원까지 떨어졌다. 비용을 계산해 손익을 따졌더니 1900만원 마이너스였다. 노씨는 6000만원 대출을 받아 간신히 폐업을 면했다. 지난해 정부·지자체로부터 받은 재난지원금은 1350만원이다. 올해 4인 가족 최저생계비 1463만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지난 5월 25일 국회 손실보상법 입법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노씨는 ‘손실보상 소급입법’과 ‘매출 손실분의 최소 70% 보상’을 요구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노씨의 발언에 공감을 표했다. 지원 형평성과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소급보상에 난색을 표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과 중소기업벤처부 소상공인정책실장을 상대로 ‘소상공인의 어려운 현실을 모른다’며 매섭게 몰아붙였다. 당시 노씨는 “여러 위원께서 좋은 방법에 대해 많이 말씀을 해주었다”며 “오늘 희망의 메시지, 저희 자영업자들이 빛을 본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런데 불과 2주 만에 상황이 달라졌다. ‘소급보상’을 주장했던 민주당은 6월 7일 당정 협의에서 “손실보상법 시행 이전에 입은 피해에 대해 소급적용 대신, 2차 추가경정예산으로 지원금을 제공한다”는 뜻을 밝혔다. 소급적용을 하면 손실 추계에 오랜 시간이 걸려 보상이 늦어지는데다 업종별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모두발언에서 “더 이상 소급적용 문구 하나 때문에 실질적 보상과 지원이 늦어지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며 “이미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도 폭넓고 두터운 지원이 이뤄지게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6월 16일 민주당과 정부가 협의한 대로 소급적용 조항이 빠진 손실보상법이 야당의 반발 속에 국회 소위를 통과했다. 법 공포 이후 발생한 손실에 대해서는 ‘보상’하되 법 공포 이전 피해에 대해서는 ‘지원’으로 갈음한다. 부칙으로 “법이 공포된 날 이전 코로나19 관련 조치로 발생한 심각한 피해에 대해서는 조치 수준, 피해 규모 및 기존의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해를 회복하기에 충분한 지원을 한다”고 명시했기 때문에 사실상 소급보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민주당 입장이다. 법안 표결에 찬성한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부칙에 명시한 ‘피해를 회복하기에 충분한 지원’은 굉장히 무거운 문구”라며 “소급적용을 통한 보상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락가락’ 신뢰 잃은 당정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불신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먼저 부칙에서 언급한 소급 피해지원 대상과 규모와 방식이 불분명하다. 손실보상법에 따른 보상은 소상공인이 아니더라도 받을 수 있지만, 부칙에 따른 소급 피해지원 대상은 소상공인으로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2~4차 재난지원금 때처럼 지원 사각지대가 생긴다. 노씨는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같은 편에 서줬기 때문에 기대가 컸는데 이렇게 되니 정말 실망스럽다”며 “소급적용이 무산됐기 때문에 이제는 손실보상법에 대한 기대감도 없다. 말로는 두터운 지원을 한다지만 기존 피해지원금 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섭 교수(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는 “입법을 통해 앞으로 발생할 피해에 대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도 “지금 중요한 것은 이전에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상이다. 기 발생한 피해에 대한 명확한 보상 방안이 빠진 입법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자영업자의 분노에는 명분이 있다. 민주당은 1월부터 손실보상 법안을 쏟아내며 코로나19 여론을 주도해왔다. 지난 1월 21일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가 자영업자 손실보상 문제와 관련해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며 신속한 법제화를 요구했다. 사흘 뒤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손실보상을 법제화하는 방안을 당정이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지난 1월부터 손실보상 법안을 쏟아내며 코로나19 여론을 주도해왔다. ‘소급적용’에 대한 민주당 내 이견은 없었다. 국민의힘과 정의당도 소급적용 손실보상법에 찬성했다.

하지만 소급적용 손실보상법은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내세운 기획재정부·중소벤처기업부의 반대에 가로막혔다. 제자리를 맴돌던 법안 논의는 3월에 이르러 당정 협의를 통해 소급적용 없는 손실보상으로 중론이 모아졌다. 그런데 4·7 재보궐선거 이후 민주당 내 여론이 달라졌다. 재보궐선거 패인으로 민생 무능을 지목한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대안으로 손실보상 소급적용을 제시했다. 민병덕, 이탄희 등 민주당 초선의원 27명은 4월 14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국민을 필요한 만큼 보살피지 못했다”며 “국가재정 운운하는 기재부의 주장 앞에 멈칫한 채로 골든타임을 계속 흘려보내는 우를 범했다”고 사죄했다.

소상공인들이 손실보상 소급적용 관철을 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소상공인들이 손실보상 소급적용 관철을 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도 손실보상법 소급적용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당시 선거에 나선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영업 제한으로 인한 손실보상제에서 소급적용을 제외해선 안 된다”며 자신의 대표 정책으로 내세웠다. 소급적용 손실보상법은 민주당 당론처럼 거론됐지만 이후 국회에서 공전을 거듭했고 끝내 무산됐다. 박지호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사무국장은 “자영업자에게는 절박한 문제인데 너무나 쉽게 정책을 뒤집는다”며 “부실한 지원대책 자체도 화가 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오락가락 말을 바꾸는 데 더 분노한다”고 말했다.
 

■전국민재난지원금, 반갑지만 

자영업자의 공통된 바람은 ‘방역 조치로 인해 피해를 본 만큼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다. 2~4차 재난지원금과 같은 이전 방식은 빠르지만 도움이 필요한 대상을 특정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사각지대가 생기는 한편 과잉 지원 부작용 우려도 있다. 당정은 두텁고 넓게 피해지원을 약속했지만, 이전과 같은 일괄 지원 방식이라면 부작용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4차 재난지원금까지는 자영업자의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지원한 건데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5월 종합소득세 신고를 통해 지난해 실제 소득금액 파악이 가능하다. 의지만 있다면 정확한 피해규모를 산출해 보상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합리적인 보상이 가능해진 만큼 손실보상 부분을 대충 넘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여당은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을 통한 2차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 논의에 착수했다. 재난지원금이 풀리면 경기 회복도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정의당은 재난지원금 지급 전 소상공인 손실보상 문제부터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6월 2일 국회 브리핑에서 “한마디로 ‘심폐소생술을 하다 말고 동네사람들에게 영양제를 나눠주자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밀린 숙제부터 끝내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국민재난지원금 소식에 자영업자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소비 활성화는 반갑지만 경기 회복 국면에 들어서면 피해 보상 요구가 힘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은 “정부가 충분한 피해지원 의지가 있다면 두터운 지원을 하겠다고 할 게 아니라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지원 가이드라인을 줘야 한다”며 “구체적인 그림 없이 법부터 처리하고 나면 피해지원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걱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2106200854001&code=920100#csidxe9aa4bb9953028aa3cd595b95adc9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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