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이석기와 함께 감옥에 가둔 자유, 벌써 8년...“문 열어! 지금 당장!”

전국 50여 곳에서 이석기 전 의원 석방 촉구 국민 행동 진행
이 전 의원 “문제가 있는 곳에 할 일 있어, 우리가 싸워 쟁취해야 할 과제” 옥중서신

홍민철 기자 
발행2021-07-10 20:15:30 수정2021-07-10 20:15:30
 

자유를 감옥에 가둔지 벌써 8년이 지났다.

“악랄하고 잔혹한 일제 시절에도 좌익 사범들이 8년 이상의 형기를 살지 않았는데, ‘자유대한’이라는 이 땅에서 이석기 전 의원이 받은 그 9년 형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냐”는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의 말이 비수가 되어 이 땅에 박힌다.

1년여가 지나면 이 전 의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박해를 사면으로 사죄할 기회조차 사라진다. 강우일 주교는 “세계가 칭송하는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교체했지만, 이 세상에 정의가, 진실이 바로 세워지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참 멀어 보인다”고 탄식했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불과 9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4년을 외면했다. 조헌정 목사는 “지난 정권의 정치적 희생양이었던 이 전 의원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개탄했다.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위정자와 윤똑똑이들의 외면을 비판하는 시민들이 10일 다시 전국의 거리로 나섰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서울 청와대와 부산 시청, 인천 남동구 구월동, 광주, 대구 등 전국 50개 지역에서 ‘문 열어! 지금 당장!’이라는 제목의 국민 행동이 진행됐다.

 

이날 오후 서울 도심 한복판에는 그리스 신화 속 ‘정의의 여신’들이 걸어 들어왔다. 한 손엔 저울을 들고 하얀 망사로 눈을 가렸다. 법의 평등과 권위를 상징하는 ‘유스티티아(Justitia)’가 분명했지만 조금 달랐다. 얼굴에는 마스크가 씌어있었고, 다른 손에는 사법 권위를 상징하는 칼 대신 순백의 책이 들려 있었다. 구명위 관계자는 “이석기 의원 사면복권이 민주주의의 회복이자 정의의 회복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했다.

정의의 여신이 행진하던 그 시간, 서울 시내 전철역 40여 개 역사 300여 개 출입구에선 ‘이재용이 아니라 이석기 의원을 석방하라’는 푯말을 든 시민들이 1인 시위를 벌였다. 경기도 18개 시군에서는 소규모 인원이 참석하는 이석기 전 의원 석방대회가 진행됐고, 울산광역시 주전 몽돌해변에선 석방을 촉구하는 길거리 버스킹 공연이 열렸다. 광주, 전북, 충북 등 전국 4곳에 위치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도 석방 촉구 집회가 열렸다.

최근 급격히 확산한 코로나19 방역을 의식한 ‘행진’이 전국 곳곳에서 진행됐다. 경주 시내 곳곳에는 이 전 의원 석방을 바라는 시민들의 자전거 행진이, 제주도에선 시청을 출발한 차량 행렬이 길게 이어졌고, 천안삼거리 공원에서부터 더불어민주당 충남도당까지는 전동 킥보드가 줄지어 달렸다.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이 청와대 앞 광장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이 대형 조형물을 목마태워 행진하고 있다.(대구)ⓒ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인천)ⓒ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차량 행진을 하고 있다.(제주)ⓒ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전동 킥보드를 타고 행진하고 있다.(천안)ⓒ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해수욕장 앞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울산)ⓒ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제주)ⓒ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대전교도소 앞에서 열린 청년문화제에서한국구명위 정진우 공동대표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편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발전한 사회에서 왜 노동자들은 죽어가고, 이석기를 비롯한 이들은 왜 여전히 감옥에 있는가. 우리 사회의 위선과 거짓과 무도함에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고 했다.

구명위 관계자는 “대부분 회원은 유튜브, 페이스북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 참가했고, 오프라인 행동은 사전 방역, 참석 인원 제한 및 거리 두기 등 방역 수칙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밝혔다.

이석기 전 의원은 이날 지지자들에게 보낸 옥중서한에서 “촛불혁명에서 민중이 제시했던 우리 사회 불평등의 해결, 나라다운 나라의 건설의 책임은 민중 자신에게 있다. 문제가 있는 곳에 우리의 할 일이 있다”며 “자주, 평등과 평화 정의의 실현은 그 누구에게 기대할 것이 아니며 오직 우리 스스로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 전 의원은 청년세대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지금은 태양이 뜨거운 계절이지만, 저 태양보다 뜨거운 청년세대들의 앞길에는 거칠 것이 없다”며 “엄혹한 현실 온몸으로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는 우리 청년들에게 다시 한번 특별한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지난 4년간 단 한 차례도 이른바 ‘광복절 특별사면’을 실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광복절 특별사면 가능성을 열어 놓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비판 여론이 일자 관련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구명위는 지난 19일간 청와대 분수 앞에서 릴레이 농성을 진행했다. 지난 1일에는 5대 종단 지도자를 비롯해 각계각층 인사 1,700여명의 탄원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다음은 이 전 의원이 보낸 옥중서신 전문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운 동지들.

이제 감옥에서 아홉 번째 여름이 시작됩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제 곧 십년입니다. 돌아보면 참으로 긴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저를 감옥에 가두었던 내란음모조작사건은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선언한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고,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정보기관의 도발이었습니다.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권을 정권과 거래한 사법부의 비열한 농간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밝혀졌고, 촛불혁명을 거쳐 마침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지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낡은 것이 이미 죽어가는데도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고 하지요. 이 공백 기간이야말로 다양한 기형적 징후들이 출현하는 때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러합니다. 촛불혁명과 박근혜의 탄핵, 그리고 지난 해 봄의 총선을 거쳐 낡은 지배세력은 사망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얼마전 내놓은 종부세 완화 정책이나 누더기가 되어버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언제 만들어질 수 있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차별금지법에서처럼 집권세력은 낡은 것을 대체할 새로운 것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과 촛불혁명 이후 우리 민중의 삶은 무엇이 바뀌었습니까?

이런 공백은 그야말로 병적 징후를 낳고 있습니다. 검찰총장, 감사원장처럼 어제까지 현 정부의 최고위급 직위에 있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야당의 대선 후보로 돌아선 것은 도무지 이해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일각에서 들고 나오는 ‘공정경쟁’이니 ‘능력주의’니 하는 주장은 이미 파산된 MB시절의 시장만능주의와 승자독식 위에 간판만 새로 단 낡은 구호인 것이지요.

이처럼 범야권이라는 자들이 촛불혁명을 뒤로 돌리려는 이 병리적 상황의 책임은 온전히 현 집권세력에 있습니다. 한 때 목숨걸고 독재와 맞섰던 이른 바 여권의 586정치인들이 세대교체의 거센 바람 앞에 선 것은 그들이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내세웠던 가치의 실현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년간 크게 늘어난 플랫폼 노동은 이른바 첨단 기술이 만들어 내는 현실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어 장시간의 고된 노동을 강요받습니다. 미국의 주식시장에서 엄청난 투자금을 끌어모았던 온라인 쇼핑회사에서는 과로사라는 20세기적 비극이 계속됩니다. 신문에서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우리가 지금 어느 세기에 살고 있는지를 묻게 됩니다. 이들의 성공신화는 기술혁신에서 창출된 이윤이 아니라, 그저 노동자들을 더 쥐어짠 결과일 뿐입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불평등은 완화되기는커녕 모든 계급 계층으로 더 심화됩니다. 이것은 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오로지 자신의 과업으로 하는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촛불혁명에서 민중이 제시했던 우리 사회 불평등의 해결, 나라다운 나라의 건설의 책임은 민중 자신에게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곳에 우리의 할 일이 있습니다. 자주, 평등과 평화 정의의 실현은 그 누구에게 기대할 것이 아니며 오직 우리 스스로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사랑하는 동지들.

한여름의 감옥 안은 뜨거운 태양의 복사열로 숨만 쉬어도 등에 땀이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이 찜통더위를 견디는 힘은 미래에 대한 낙관에서 나옵니다. 전국의 수많은 동지들이 현장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청년들의 생기발랄한 이야기가 담긴 편지 한 통, 노동 현장의 생동하는 소식을 들을 때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벗들의 이야기는 이 무더위를 이겨내는 한 줄기 바람과도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청년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의 석방을 위해 청년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헌신해왔다고 들었습니다. 청년은 우리 사회의 첨예한 구조적 불평등의 최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해결을 해 나갈 당사자입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 남은 우리의 민족문제를 해결해 나갈 주체 역시 청년들입니다.

지금 청년들 앞에는 불완전한 고용과 저임금,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가 놓여져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국가와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 개인의 능력이나 책임으로 돌릴 일이 아닙니다. 결국 청년 문제는 가장 시급한 정치적 과제인 것입니다. 이런 정치를 개척하는 것 역시 새 것에 제일 민감한 청년들의 몫입니다.

지금은 태양이 뜨거운 계절입니다만, 저 태양보다 뜨거운 청년세대들의 앞길에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저는 언제나 청년들을 무한히 믿고 또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습니다. 엄혹한 현실 온 몸으로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는 우리 청년들에게 다시 한 번 특별한 마음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운 동지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21. 7. 10
대전옥에서 이석기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 3월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누나 이경진 씨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에게 인사를 하며 눈가 젖어있다. 이경진 씨는 지난해말 말기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했지만 19일 끝내 사망했다. 2021.03.21ⓒ김철수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