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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LH 개편안, 무엇이 문제인가

“해체 수준 개편할 것” 정치 논리…부작용은 결국 국민 손해로

전문가 80%는 ‘개편 반대’, “재정 투입 방안 없는 개편 무의미”

LH 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개편이 산으로 가고 있다. 정부는 별다른 이유 없이 회사를 둘로 쪼개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고 비용은 결국 LH 공공임대주택 임대료 상승, 주거복지 위축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일부 직원의 투기로 촉발된 LH 개편 후폭풍이 엉뚱한 곳으로 튀는 것이다. 때문에 80%에 육박하는 전문가들은 개편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진보에서 보수까지 이념을 떠나 학계에선 압도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풀어야 할 지 짚어봤다.

“해체 수준 개편할 것” 정치 논리…부작용은 결국 국민 손해로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제기 3개월 뒤인 지난 6월, 정부는 혁신안을 발표했다. 임원 7명만 의무였던 재산등록을 1만여명 전 직원을 대상으로 대폭 확대했다. 실거주 목적 이외 토지를 소유하면 고위직 승진에서 배제한다. 외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준법감시위원회를 꾸리고 직원의 투기 여부를 상시 모니터링 하기로 했다. 투기 대상이 될 수 있는 신도시 입지 선정 업무는 아예 LH를 배제하고 국토교통부가 실시하기로 했다. 빈틈이 없진 않지만, 투기 방지 대책 수위는 예상보다 높았다.

문제는 개혁안에 포함된 조직 개편에 있었다.

LH 주요 사업은 토지개발, 주택건설, 주거복지 세 부문으로 나뉜다. 민간이 가진 토지를 수용해 대규모 택지로 만든 뒤, 건설사에 매각하거나 일부 택지에 직접 아파트를 짓는다. LH가 건설한 아파트 대부분은 분양하고, 나머지 일부를 공공임대주택으로 소유하면서 주거복지사업을 겸한다. 

정부는 세 부문을 분리한다는 계획이다. 토지개발과 주택건설을 한 회사로 묶고, 공공임대주택을 관리하는 주거복지만 떼어내 새로운 회사로 설립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정부는 “공기업 존립 이유는 국민 신뢰에 있다. 신뢰가 무너진 LH를 이대로 둘 수 없다”고 강조한다. 회사를 둘로 쪼개는 이유는 국민 신뢰회복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회사 분리가 신뢰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지만, 백보 양보해 분리를 통해 신뢰 회복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분리를 통해 얻는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인다.

택지조성과 아파트 건설, 공공임대주택을 통한 주거복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 회사의 사업 부문으로서 토지 사업부문이 토지를 조성하고, 주택사업부문이 주택을 지으면, 주거복지 부문이 이 주택의 관리를 맡는 구조였다. 한 회사에서 모든 일이 이뤄지면서 각 기능간 체계적인 연계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회사를 분리하면 연계 시스템이 깨진다. 지금보다 복잡하고 불합리한 절차가 끼어든다.

당장 소유권 이전 문제가 생긴다. 계열사가 건설한 임대주택을 지주사가 매입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거복지용 공공임대주택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주사에 매각하는 아파트 규모는 계열사 매출이 된다. 계열사는 매출과 수익을 늘리기 위해 매각 가격에 적정 이윤을 붙여야 한다. 매각·매입 절차에 따른 행정 비용도 발생한다. 한 회사에선 생기지 않는 가격 증가 요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주사 입장에선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주거복지용 아파트를 계열사로부터 매입해야 한다. LH에만 국한한 관련 규정을 만들어 가격을 조절할 수 있지만, 최소한 이윤은 인정해야 한다. 적정 가격으로 매입하지 않으면 공정거래법상 부당 내부거래로 비칠 소지가 있다.

모-자회사 간 공공임대주택 소유권 이전은 필연적으로 매출·매입에 따른 세무 관계를 발생시킨다. 계열사는 매출에 따른 법인세를 부담해야 하고, 지주사는 아파트 매입에 따른 취득세 등 추가 세 부담이 발생한다. 매각·매입, 소유권 이전에서 발생하는 시간도 비용을 증가시킨다.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아파트 건설 사업에서 기간이 길어진다는 건 곧 금융비용의 증가를 의미한다. 회사를 따로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관리비용 중복도 피할 수 없다.

현재 운영중인 조직 내 시너지 효과와 사업 연계 시스템은 붕괴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소유권 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증가, 추가 조세 부담, 사업 기간 연장에 따른 금융비용 발생 등은 필연적으로 주거복지사업비를 증가시킨다.

정부도 비용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국토교통부가 발주한 ‘LH 혁신을 위한 조직구조 방안 연구’ 용역 지시서는 조직 개편 후 발생할 수 있는 세무·공정거래 등 법적 위험요인을 검토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주거복지 부문에서 발생하는 적자에 대한 손실 보전 방안 및 위험요인 검토’를 주요 용역 내용으로 언급하고 있다.

장경석 국회 입법조사관은 “주거복지·토지·주택의 개발 및 공급은 막대한 자금이 투자되고 국민 주거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향후 LH 개편안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경영 및 업무 효율성에 대한 논의도 깊이 있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다. 최근 한국도시연구소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건축·도시·주거복지 전문가 65명을 대상으로 개편안에 대한 찬반 여론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78%가 개편안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설문에서 눈에 띄는 것은 조직개편이 LH 혁신과 관련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응답자의 58%는 ‘관련이 없다’고 답했고, 이중 ‘관련성과 효과가 전혀 없다’고 답한 비율도 33.8%에 달했다. 전문가들 상당수는 정부가 관련도 없고 효과도 없는 개편안을 추진한다고 혹평한 것이다.



정부가 불합리한 LH 조직 개편을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정치논리가 작용한 탓이 커 보인다. 정세균·김부겸 두 총리가 연이어 “사실상 해체 수준의 개편”을 주문한 이유도 LH를 개편함으로써 악화한 여론을 달래 보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치권이 강하게 주문하자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LH 분할을 위한 분할안을 만들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측면이 있다.

김영욱 국가건축정책위원회 분과위원장은 “정부 개편안은 LH 역할과 사업의 본질과는 무관한 정치적 시각에서 진행된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며 “LH가 새로운 사회를 위한 공간 생산 방식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한 조직 정비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시민이 LH 마이홈 상담창구에서 3기 신도시 사전 청약 안내를 받고 있다.ⓒ제공 : 뉴시스

교차보조 문제 그대로인데…조직 바꾸면 주거복지 확대 되나
“재정 투입 방안 없는 개편 무의미”

LH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주거복지 정책을 집행하는 중요한 공공기관이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한 이후 LH의 공공임대주택 공급 비중은 대폭 확대됐다. 2017년 이후 신규 공공임대주택은 80% 이상 LH가 공급하면서 주거복지 정책의 주요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는 이번 조직 개편이 주거복지를 더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LH에서 떼어낸 주거복지 부문이 지주사 역할을 하면, 기존 주택·토지 사업을 주거복지 중심으로 개편할 가능성이 높다는 기대다. 

하지만 정부는 그간 주거복지 사업이 부진한 원인을 알고도 애써 무시하고 있다. 그간 LH가 주거복지에서 더 큰 역할을 하지 못한 데는 적자사업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탓이 크다. LH는 주택·토지 사업으로 수익을 내고 이 돈을 주거복지에 쓰는 이른바 교차보조로 사업을 꾸려왔다.

사업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커지고 부채가 쌓이는 주거복지 영역이 외면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조직을 분리한다고 해서 이런 사업 관행이 사라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발상이거나, 아니면 분할을 위한 공허한 명분 쌓기에 가깝다.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기존에도 돈을 못 벌어 서자 취급받던 주거복지 사업이 지주사가 됐다고 확대될 리가 있느냐”고 꼬집었다.

결국, 정부 주장대로 주거복지를 강화하는 개편을 위해서는 교차보조 사업 구조를 깨뜨릴 수 있는 근본 방안과, 주거복지 사업 적자 보전을 위한 재정 투입이 선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20년 기준 LH 토지사업부문 순이익은 2조4천억원, 주택부문 순이익은 2조6천억원 규모를 기록했다.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순이익 폭은 조금씩 다르지만, 최근 5년간 LH 토지·주택 사업부문은 꾸준히 5조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우량 공기업이다. 반면 공공임대주택을 관리하는 주거복지 사업은 지난해 1조6,827억원 순손실을 본 것뿐만 아니라 지난 5년간 매년 1조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적자 폭도 순차적으로 커지는 추세다.

학계에선 LH의 순이익을 줄이고, 적자를 정부 재정으로 보조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순이익을 줄인다는 것은, LH가 판매하는 택지 매각 가격을 낮추고, 공공분양하는 아파트 분양가를 낮춘다는 뜻이다. 건설사가 LH로부터 받는 택지 가격이 낮아지면 분양 원가를 낮출 수 있는 유인이 만들어진다. 분양 원가가 낮아지면 최종 분양자 역시 낮은 가격으로 주택을 살 수 있게 된다. LH의 공공분양은 민간분양보다 저렴하지만, 이윤을 줄이면 가격은 더 낮아질 수 있다. 결국 LH가 가져갈 이익을 시장으로 환원하자는 뜻이다. 



임대주택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한 논의도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 대표적인 방안이 주거비지원 강화다. 임대료를 시장가격보다 낮게 책정하는 공공임대 정책상 발생하는 구조적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입주자들에게 주거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기준 1조6천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는데, 입주자들에게 비슷한 규모의 주거비를 지원하고 임대료를 끌어올리면 LH는 만성 적자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소장은 “회사를 분할하면 주거복지 사업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안일한 인식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순이익을 줄이고 주거복지 적자를 재정으로 지원하는 구조적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여전히 매우 부족한 공공임대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축·도시·주거학회 공동대응 TF 단장 김광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 부르는데, 아파트 공화국의 본래 뜻은 아파트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며 “정부가 주거를 책임지지 않고 계속해서 민간에게 맡기는 정책을 일관한 나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를 대신해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 유일한 공공기관인 LH를 외부 요인에 대한 반성 없이, 정치적 행정적 이유를 들어 축소·개편한다면 매우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지원단가를 단계적으로 현실화하는 등 재정의 역할을 재정립하겠다”고 밝혔으나, 벌써 수년째 반복된 원론적 언급에 불과하다는 것이 학계 평가다.

주거복지 강화라면서 연구기능 축소
3기 신도시 등 개발 사업자 역할 시키면서...직원 사기는 바닥으로

정부 개편안은 LH의 현재 기능과 장기적인 역할에 대한 고민도 부족해 보인다.

LH는 현재 3기 신도시와 2·4 대책 등 정부의 주택공급에 핵심 기관이다. 특히 디벨로퍼(개발자)로서 LH의 짐이 무겁다. 3기 신도시는 이제 막 사업 시작 단계다. 토지 수용부터 택지개발을 거쳐 국민들에게 아파트를 분양하기까지 사업기간은 최소 5~6년이 남아있다. 공공주도 재건축·재개발에서도 LH는 지방개발공사를 압도하는 역량을 보유한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주거복지로 사업 중심을 이동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국토부가 LH에 요구하는 업무는 개발기능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직원들 사기는 바닥에 가깝다. 당장 조직 개편안이 발표되면서 분사와 구조조정에 대한 고용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LH 기능 조정에 따라 20% 이상 인력을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신도시 입지 조사 국토부 이전 등 기능 조정에 따라 1천여명의 직원이 줄어들 전망이다. 이후에도 지방도시공사와 업무 중복 우려 여부를 따져 1천여명의 인원은 추가 감축한다.

정부는 LH의 직원이 최근 2천여명 이상 증가하는 등 방만한 경영으로 조직이 비대해진 것 처럼 낙인 찍고 있지만, 실상을 알고보면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LH는 주거급여 사업을 정부로 부터 위탁받고 있다. 주거급여를 지급하려면 수급자의 정확한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LH는 수급자의 임대차계약·주택상태 조사를 위해 1천여명 규모의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약 900명이 무기계약(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나머지 인원 역시 LH가 수행하는 정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업무 충원이 대부분이었다.

보수체계 개편도 강행한다. 그간 재직기간에 기반한 연공서열에서 직무중심 보수체계 개편을 시도한다. 공기업에서 개인 성과중심의 연봉제가 도입되는 것이라 부작용과 이에 따른 논란이 예상된다. 향후 3년간 고위직 인건비는 동결되고, 임직원 성과급 환수가 추진된다. 경상비 10%는 삭감하고 업무추진비도 15% 감축된다.

장기적으로 LH는 정부 계획대로 주거 복지 기능 중심 기관이 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향후 수도권 중심의 대규모 택지 개발 수요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4기 신도시 등을 건설할 토지가 부족하다. 3기 신도시는 1·2기 신도시와 달리 여러곳에 흩어져 있는 짜투리 택지들을 모두 긁어 모아 발표한 측면이 있다. 앞으론 대규모 신도시 건설 사업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대로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고 관리하는 사업 영역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변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간 천편일률적으로 공급했던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해소하는 방안 도출이 중요하다. 공공임대주택 유형통합, 소셜믹스를 통한 임대주택 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연구·기획 인력을 확충하고 관련 예산을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이번 개편안에서 정반대 정책을 내놨다. 정부는 연구개발 등에서 총 100여명의 인원을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개편안 확정을 위한 일정을 차근차근 진행중이다. 오는 20일 개편안에 대한 2차 공청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정부는 2차 공청회를 마친 뒤, 이날 말까지 개편안을 확정하고,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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