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위원장 구속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이 ‘10월 20일 총파업’ 예고한 이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8/19 09:07
  • 수정일
    2021/08/19 09:0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총파업 의제 발표한 양경수 위원장 “정부 진정성 있는 대화 나서야”

서울 도심에서 방역지침을 위반하고 대규모 집회를 잇달아 주도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이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1.08.18ⓒ김철수 기자

 18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사무실이 입주한 빌딩 앞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경찰이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집행을 시도하면서다. 양 위원장은 그 시각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양 위원장은 “당면한 노동자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위원장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인을 위해서 온 경찰에 협조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경찰은 “구속영장 집행에 협조해달라”고 요구하며 한동안 대기하다가 양 위원장의 불응에 ‘유감’을 표한 뒤 결국 철수했다.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탓에 건물로 진입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양 위원장은 지난 7월 3일 서울 도심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여는 등 5~7월 여러 차례 집회 및 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감염병예방법 위반)로 구속될 위기에 처했다. 3년 임기로 취임한 지 불과 반년이 지난 상태다. 양 위원장은 경찰에 자진 출두해 조사도 받고 모든 혐의를 인정하기도 했지만, 경찰은 기어코 구속영장을 신청해 발부받았다.

양 위원장은 “무조건 구속수사 하겠다는 상황이 많이 부당하다고 느껴진다”면서도 “회피할 수 없는 문제이고 회피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의 문제를 정부가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위원장도 법과 제도에 따라 신변의 문제를 판단할 의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진정성 있게 노동계와 대화를 한다면 ‘구속’에도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이다.

 

“총파업, 전환의 시기 함께 대비하자는 제안”

양 위원장은 사무실에 머물며 10월 20일로 예정된 총파업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총파업은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민주노총의 가장 큰 무기다.

민주노총은 이날 총파업 투쟁의 5대 핵심의제와 15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 중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법 전면개정 ▲정의로운 산업전환과 일자리 국가보장 ▲주택·의료·교육·돌봄 공공성 강화를 ‘총파업 3대 쟁취 목표’로 선정했다. 양 위원장은 “불평등한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한 총파업”이라며 오는 23일 온라인 대의원대회에서 최종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 위원장은 “정부도 인정하고 있고 기업도 이야기하듯이 현재 한국사회는 굉장한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며 “그 변화의 표현은 다양하게 표출된다. 4차 산업혁명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구조의 재편, 플랫폼 노동의 증가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직면했던 노동환경의 변화, 사회전반의 변화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를 들 수 있다. 당시 우리 사회는 사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외환위기라는 환란을 통해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강제로 한국사회에 이식됐고 그것에 대한 대비를 정부도, 자본도, 노동도 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며 “그러나 지금의 4차 산업혁명, 플랫폼 노동의 증가,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구조의 재편, 이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고 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과 정부가 함께 이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총파업을 통해 노동계와 직접 대화에 나서도록 정부를 압박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양 위원장은 노동자들이 정부를 그저 믿고 있을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최근 취업사이트 보면 가장 많은 노동자들을 구하는 곳이 쿠팡 같은 플랫폼 노동이다. IMF 때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 됐듯이, 지금 산업구조 재편의 시기에 밀려난 노동자들은 급격하게 플랫폼 노동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플랫폼 노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 대표적으로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가 그것을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도 ‘대한민국 대전환 한국판 뉴딜’이라고 이름을 지어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나”라며 “지금 노동환경에 대한 급격한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걸 정부도 인지하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정책을 내고 펴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양 위원장은 ‘국방예산 삭감’ 등으로 재원을 마련해 공공주택을 확대하라는 것이 총파업 투쟁 의제로 나온 것을 두고 보수언론이 트집을 잡고 있는 데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집값이 폭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 조금 오른다고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양 위원장은 “노동자들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의 절반인 약 2천만에서 2천500만 명이 노동자로 분류된다. 이들이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하고 적당한 소득을 보장받고 가정으로 돌아가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새로운 노동력을 충전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것이 보장되지 않는 한 단순히 일터에서 노동강도를 완화하고 고용을 보장받고 임금을 보전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한국사회는 자살률 1위 국가, 출산율 최하 국가 아니냐. 한국사회는 가장 불안한 사회”라며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코로나 방역을 무시한 민주노총에 책임이 있을까, 아니면 이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왔던 정부와 기득권과 자본에 그 책임이 있을까”라고 따졌다. 그러면서 “그것이 민주노총이 총파업 투쟁을 준비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과 조합원들이 지난 7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3가 인근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1.07.03ⓒ민중의소리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가장 규모 있는 투쟁될 것”

양 위원장은 이번 총파업 투쟁 규모가 상당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이번 총파업 투쟁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가장 규모 있는 노동자 투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1995년 민주노총을 결성하고 노동조합을 통해서 현장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자고 했던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양 위원장은 “서울교통공사를 포함해서 (전국) 6개 교통공사가 (파업 참가) 찬반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며 “그 외 학교비정규직, 건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조업, 서비스업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총파업을 의결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각 조합원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어떻게 총파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10월 20일 총파업 전에 9월 정기국회를 겨냥한 의제별 투쟁도 이어질 예정이라고 양 위원장은 전했다. 한 예로 코로나19와 최전선에서 싸우던 보건의료노동자들도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전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산하 120여 곳의 지부가 중앙노동위원회와 각 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조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양 위원장은 “작년 코로나19가 발생하고 보건의료노동자의 사회적 공헌에 대해서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됐다”며 “그런데 불과 10%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코로나 환자의 90%를 담당하고 있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간병원인 대형병원은 코로나19에 대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현장의 보건의료노동자들은 공공의료를 확충하라고, 의료인력을 늘려달라고 요구했지만 1년 반이 넘도록 외면당했다”고 전했다.

이어 “올해 예산에서 공공의료와 의료인력 확충 예산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코로나19에 맞서왔던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총파업이라는 걸 결단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을 누가 만들어놓았는지, 정부는 책임 있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또한 양 위원장은 총파업 투쟁이 대규모 집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객관적 상황에 따른 다양한 방식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파업은 집회를 하기 위한 게 아니라 생산을 멈추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우리의 요구를 귀담아들으라는 노동자들의 권리”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오히려 정부가 먼저 나서서 다양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고, (민주노총이) 공식적으로 요청한 대화 테이블을 빠르게 구성하고, 시민사회와 함께 거버넌스(governance)를 구성하는 것이 성숙된 시민의식을 보장하고 비판적인 목소리, 절박한 목소리를 (법과 제도에) 반영하는 과정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가운데 경찰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입주 건물 앞에서 영장 집행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2021.08.18ⓒ김철수 기자

“코로나19 아니었으면 한국사회에서 노동 문제는 전면적으로 제기됐을 것”

양 위원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집회 및 시위를 둘러싼 논란, 이로 인한 자신의 구속 문제에 대해서만 사회적 관심이 쏠리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가렸다는 것이다.

양 위원장은 “코로나19라는 상황이 민주노총의 요구를 가릴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라는 것이 너무나 가슴을 아프게 한다”며 “지금 이 시기에 코로나19가 없었다면 한국사회에서 노동의 문제는 전면적으로 제기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현재 노동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는 대선후보는 보이지 않는다고 양 위원장은 지적했다. 그는 “그저 정쟁만 있을 뿐”이라며 “그런 모습 속에서 우리 노동자들은, 우리 국민들은 도대체 어떤 희망을, 어떤 기대를 품어야 하나”라고 한탄했다.

나아가 양 위원장은 “양극화, 불평등의 악순환을 멈추는 건 말로만 해서는 되지 않는다”며 “대선 주자들이, 정부가, 정치인들이, 국회가, 그리고 많은 재부를 쌓아놓고 있는 재벌과 대기업이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절규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나라를 나라답게 만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양 위원장은 거듭해서 노정 대화를 촉구했다. 그는 “당장 절박한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정부가 정말 민주노총, 그리고 조합원들과 진정어린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민주노총 위원장 인신의 구속을 미뤄둘 필요도, 하반기에 총파업 투쟁을 강행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양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7월 3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한 이유도 그렇고, 10월 20일 총파업을 준비하는 것도 발전적 대화를 모색하기 위함이지 무조건 우리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진행하려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속영장 실질심사) 출두를 연기한 이유도 당장 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며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구속 판단이 내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만약 제가 바로 구속됐더라면 그 이후에 민주노총에 대한 관심은 아예 사라졌을 거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양 위원장은 “언젠가는 출두하고 사법적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을 텐데, 그 기간을 어떻게 판단할 거냐는 정부의 태도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진정성 있게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한편 양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무조건적으로 야외에서의 집합 집회를 강행했던 건 아니다"라며 7월 3일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기 일주일 전쯤 김부겸 국무총리를 공관에서 직접 만나 나눈 대화 내용도 공개했다.

양 위원장에 따르면 당시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긴급한 현안을 의제로 하는 ‘노정 대화 테이블’을 가질 것을 요구했다. 그는 “구체적인 현안 얘기는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며 “현장의 목소리, 노동자의 현안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김부겸 총리도 그 자리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존재하는 조건, 한국노총이 존재하는 조건 등을 고려해서 제한된 의제를 가지고 함께 얘기해보자, 그리고 그런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보자’고 화답했다고 양 위원장은 전했다. 양 위원장은 “실무적인 라인도 구축해보자는 이야기로 진전되기도 했다”며 “민주노총은 산별노조 대표자 간담회도 요청했고, 총리도 코로나 방역 상황을 지켜보면서 빠른 시간 내에 그런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이야기했다”고 소개했다.

양 위원장은 “그런 논의의 테이블이 이어지고 정부가 진정성 있게 그 사안들을 집행했다면 민주노총은 야외에서의 집합 집회를 강행 이유가 없었다”며 “하지만 그 이후 총리의 답은 민주노총을 ‘방역 방해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이었고, 실질적인 논의 과정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고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